그리스 신화의 많은 영웅 중 헤라클레스가 있다. 그의 모험 중에 ‘축사 청소’가 있다. 축사 청소라는 밋밋해 보이는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 속 영웅담이 된 이유가 궁금하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헤라클레스는 엘리스라는 나라의 왕 아우게이아스의 엄청나고 크고 더러운 축사를 청소하라는 과업을 받고 하루 만에 그 과업을 완수하였으나, 아우게이아스와 축사 청소에 관련된 보수를 흥정하였음을 이유로 그 과업을 인정받지 못했다. 괴물 또는 악당과의 한판 승부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헤라클레스가 엘리스를 쳐들어가 점령한 후 약속을 어긴 아우게이아스와 그의 아들들을 죽이는 후반부 장면이 관심을 끌 법하다. 그런데 헤라클레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우게이아스의 죽음이 이야기의 결론은 아니다. 이야기는 헤라클레스가 헤라여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과업수행의 일환으로 축사를 치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우게이아스와 보수를 흥정한 뒤에 일을 마쳤으므로 순수한 과업수행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부패와 악의 화신인 아우게이아스에 대한 응징이 주요 뼈대가 되었다면 영웅의 모험담 수준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신이 헤라클레스가 내린 과업은 축사 청소였
바다에서 물질하는 제주 해녀의 숨소리는 독특하다. 얼핏 새소리나 휘파람 소리 같지만 자세히 들으면 전혀 다르다. 수심 10m가 넘는 곳까지 내려가 2분 넘게 숨 쉬려는 본능을 견디다, 물 위로 떠올라 참고 참은 숨을 길게 내뱉는 소리답게 듣는 이에게 어딘지 모를 안도감도 준다. 해녀들은 이를 ‘숨비소리’라 부른다. ‘숨비’는 제주말로 잠수를 뜻한다. 매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오가는 작업을 하는 해녀는 바다에 나갈 때 ‘이어도타령’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남(소나무)의 배여/ 잘잘 가는 건 잡남(잣나무)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 이별 없는 이상향에 대한 애틋한 염원을 담아 안전을 기원하는 것이다.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은 세계에서 한국 해녀와 일본 해녀인 ‘아마’뿐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크다. 제주 해녀는 추운 겨울도 마다하지 않지만 일본 해녀 ‘아마’는 바다가 잔잔한 5∼9월에만 일하며 그것도 부부 2인1조로 물질을 한다. 기량 면에서도 비교가 되질 못한다. 제주 해녀는 ‘19세기 말 한반도 남쪽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
나비 /정동철 하얀 낱장을 펄럭이며 그 여자가 왔다 묵은 풀을 매고 살구나무 쳐진 그늘을 잡아 올리는 동안 담장 너머를 서성거렸다 곤하면 잠깐 마루에 앉아 쉬어가도 좋다고 하였으나 배추꽃 가장자리 미타리꽃 위에 앉았다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얇은 낱장만 펼쳤다 닫았다 하길래 산 그림자가 안마당을 덮고 나서야 낱장을 열어보았다 글귀는 한 자 없고 흰 화선지 위에 눈물자국만 눈물자국만 두어 방울 번져 있었다 차라리 펴보지 말 걸 산 그림자가 마을을 다 덮고 난 뒤에야 깨달은 일이다 -정동철 시집 ‘나타났다’ 인연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가온 인연을 그저 슬쩍 스쳐 지나가 버리는 가벼움으로 떠나보낼 때가 있다. 한 여자가 왔다. 하얀 낱장을 펄럭이는 그 나비가 담장 너머에서 서성거린다. 잠깐 마루에 쉬어가도 좋다고 하였으나 묵은 풀을 매고 살구나무 쳐진 그늘을 잡아 올리는 화자의 모습에 얇은 낱장만 펼쳤다 닫았다 날아가 버린다. ‘글귀는 한 자 없고 흰 화선지 위에 눈물 자국만 두어 방울 번져 있는’, 뒤늦게 그녀의 슬픔을 알게 된 화자는 못내 안타깝다. 단지 겉모습만을 읽고 떠나보내고 만 인연, 이렇듯…
내일이면 죽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뿐이다. 막상 하루밖에 삶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할 일이 없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많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먹먹할 뿐이다.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은 딸아이를 출가시키지 못한 것이다. 아들이야 가정을 이뤘으니 서로 의지해서 살 테고 남편이야 아직 능력 있으니 알아서 살겠지 하면서도 혼자 남겨질 남편과 아이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나는 살 수 있는 하루 동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을 초대해서 식사대접을 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고 푸짐하게 온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 계획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야 하는데 초대장을 어떻게 써야할지가 문제였다.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초대장을 쓰느라 끙끙대다 잠에서 깼다. 눈을 번쩍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잠자는 남편을 한참을 쳐다보고 딸아이 방문을 열어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왜 죽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또렷이 기억나는 건 주어진 시간이 24시간이고 그 안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과거 운동선수들은 수업시간에 볼 수가 없었다.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도 체육특기자들은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한국에서 운동선수는 ‘운동 아니면 없다’, ‘1등 아니면 안된다’라고 할 정도로 치열했다. 엘리트 스포츠 지상주의가 낳은 결과다. 어떻게 보면 한국 스포츠가 세계에서 지금의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체육특기자 선발을 둘러싼 논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줄이려고 운동부 학생들을 배제시키는 사례, 체육계 입시비리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당정이 2011년 일정 수준의 성적에 도달한 경우에만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최저 학력제’를 도입하기로 한 바 있지만 유예기간을 두어 그동안 시행이 미뤄졌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부터 C학점 미만인 선수들에 대해서는 경기 출전이 금지돼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는 7일 학업 성적이 나쁜 운동선수는 올해부터 대학리그전 출전을 금지키로 했다. 직전 2개 학기 평균 학점이 C미만인 선수가 이에 해당되므로 2016학년도 1·2학기 평균 학업 성적이 C가 되지 않는 선수는 올해 상반기 KUSF 주최 대학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지난 2일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력단절여성’은 줄임말로 ‘경단녀’라고도 하는데 임신, 출산, 육아와 가족의 돌봄 등으로 경제활동을 중단한 뒤 다시 취업을 하고자 하는 여성을 지칭한다. 지금까지는 경력단절여성의 정의에 혼인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제외돼 있었으나 최근 개정안 통과로 포함됐다. 여성들은 앞에 열거한 사유 등으로 직장이나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편 혼자만의 ‘외벌이’로는 자녀 교육비와 양육비,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엔 다시 직장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경력단절여성 채용하는 곳 찾는 중인데요 어디서부터 찾아야할까요? 경력단절여성 채용하는 곳이 많지 않네요’ ‘알아보시면 느끼시겠지만 진짜 갈 수 있는 데가 없어요.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없나 싶기도 하고 진짜 막막하죠’ 인터넷에 뜬 여성들의 대화에서 일자리 구하기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통계청은 지난달 27일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세 이상 기혼여성 중 결혼 전 직장 경험이 있는 여성의 44%가 결혼, 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을
헌법재판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 하나하나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방송에서는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과 예측을 쏟아내고 있다. 탄핵 법정에서의 양측 변호사들 사이 법적공방도 치열하다. 한편 최순실 등 먼저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는 형사사건과 특별검사의 수사 과정에서 추가 기소된 내용이 마구 혼합되어 보도되는 관계로 가끔 이게 어떤 내용인지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탄핵사건은 현 박근혜 대통령 한 명 개인에 국한된 내용이므로 단순하게 보면 싶게 이해할 수도 있다. 어느 법 몇 조에 위반되고 어떤 어떠한 죄가 성립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파면, 해임 정도의 중대한 업무상 잘못이 있는지의 관점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된다. 현재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여론은 극도로 양분되어 있다. 그리고 마치 사생결단의 자세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강력한 여론전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의 카카오톡에까지 이러한 주장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을 정도이니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정말 예상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대한 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들을 상대로 헌법재판소 결정에 승복하자는 서명운동까지 진행하게 되었을까. 변호사 경력 30년 차
저신장은 같은 성별, 같은 연령(만연령) 소아청소년의 평균키와 비교하여 표준편차보다 더 작은 키를 말합니다. 대략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성장곡선에서 10번째 보다 작다면 저신장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키가 작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많은 부분은 가족성 저신장입니다. 즉 아이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의 작은 키 유전자가 아이에게 유전된 경우로 아이는 키가 작은 증상 외에는 건강한 상태로 연간 4㎝정도의 비교적 적은 성장속도를 가지나 꾸준히 자신만의 성장패턴을 유지하며 자라고 골연령도 본인의 역연령과 같습니다. 다른 성장변이 저신장은 체질성 성장지연으로, 이군에 속하는 아이들은 정상적인 키와 체중으로 출생하나 이후 성장이 많이 저조하고 골연령이 역연령보다 느리며 사춘기가 또래 아이들보다 늦게 시작하여 학창기에는 저신장을 가지지만 청소년기 이후로 뒤늦게 키가 성장하여 그들의 목표키에 해당하는 성인키를 가지게 됩니다. 앞의 두 질환은 성장호르몬 치료가 필요 없는 정상변이 저신장이나 성장호르몬 치료가 꼭 필요한 질병도 있습니다. 성장호르몬결핍증은 그런 대표적인 질병으로 이들 환아는 출생 시에는 정상이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장애가 발생하며 일부에서는 분만
지금도,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음악을 들으면 맘이 설렌다. 그러면서 남성적 저음에다 “오늘은 왠지”라는 사탕을 문 듯한 DJ 이종환의 특이한 발성이 지금이라도 곧 바로 울려 나올 듯한 착각에 빠진다. 40년도 더 지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사람은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70·80세대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젊은이들의 마음 속 깊이 스며들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음악, 청아하면서도 몽환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멜로디가 감성을 사로잡으며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던 그 음악이 1966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오스트리아 가수 우도 율겐스(Udo Jurgens)가 불러 그랑프리를 차지한 칸초네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다. 아울러 제목이 메르시 체리(Merci Cherie)라는 것도 그 후에 알았다. 당시엔 마냥 좋아 무작정 사랑했던 것조차 우리의 뇌리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한 힘, 라디오는 이처럼 신비로운 힘을 늘 우리들에게 선사했다. 텔레비전은 물론 스테레오 전축도 귀하던 시대에 학창시절을…
우는 시간 /피재현 정오 무렵이나 오후 두 시 쯤이나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에 옛날에 우리 학교 다닐 때처럼 일제히 사이렌이 울리고 걸어가던 사람이, 아직 누워 있던 사람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공호 같은 데, 혹은 그늘 밑, 담장 밑, 다리 밑, 공중화장실 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곳에 모여서 숨어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한 십 분쯤 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시 걸어도 다시 누워도 오후 서너 시가 되어도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 피재현 시집 ‘우는 시간’ / 2016·애지 새해가 되면서 사람들이 새해에는 웃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서로 인사를 한다. 그런데 시인은 지금은 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노래한다. 마치 민방공훈련 하듯이 일제히 시간을 정해 울어볼 수 있는 한 십 분의 시간. 사람들이 울지 않음으로써 생긴 질병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온통 응급실이 되었고, 전쟁터가 되었고, 위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울음대신 웃음으로 질병을 키우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정해진 이치에 슬퍼할 줄 아는, 정해진 사랑에 아파할 줄 아는, 그래서 누구라도 부끄럽지 않게 울 수 있는 자유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