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글은 세종대왕이 아닌 궁녀 ‘소이’가 만들었다”는 우스개소리가 회자됐다. 드라마와 담쌓고 지내던 남편들을 TV앞에 주저앉혔던 사극(史劇) ‘뿌리깊은 나무’의 영향 때문이었다.
대단한 시청률을 보인 이 드라마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집현전 학자들뿐 아니라 궁녀 소이를 비롯한 ‘한글창제 T/F팀’이 세종을 도와 한글창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묘사된다.
드라마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광해’처럼 역사적 사실이라는 기둥에 허구로 치장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남자들뿐 아니라 시청자 모두가 한글의 역사성을 새삼 깨닫고 무궁한 긍지와 세종의 애민정신에 눈시울을 적시기까지 했다.
드라마에서 세종은 훈민정음에 대해 “스물 여덟자만 알면 한자로 쓰지 못하는 이름, 사투리, 우리 마음, 바람소리, 새소리, 이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다 담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찌 이보다 한글의 쓰임새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랴.
어찌 한자(漢字)로 ‘거무죽죽하다’와 ‘푸르스름하다’를 표현할 것이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알록달록한 단풍을 전할 수 있으랴. 드라마에서 세종은 세상을 향해 “칼이 아니라 말로, 글로, 베어버릴 것이다. 말이 칼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내 보여줄 것이다”라고 외친다.
세종의 바람대로 훈민정음은 반포한지 100년만에 노비들도 읽고 쓰게 됐다.
특히 외침과 내란이라는 환란 속에서도 우리민족을 지켜내고 하나로 묶어내는 뿌리였다.
한글의 과학성은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문자가 없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던 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인 ‘찌아찌아족’이 자신들의 언어 표기 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 이어 최근에는 솔로몬제도의 섬에서도 한글을 도입한다고 하니 또 하나의 한류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566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한데 국경일이기는 하지만 공휴일은 아니다.
외래한 ‘석탄일’과 ‘성탄절’도 공휴일인데, 민족의 뿌리를 지키는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니라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 반포때부터 정음(正音)이 ‘반절(半切)’이라고 멸시 당했던 한글이 지금도 후손들에 의해 능욕을 당하는 기분이다.
다행히 국정감사 현장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글날의 공휴일 지정에 뜻을 모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또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문화여가 부문과 관광여행 관련 지출로 인해 1조8천억원의 생산유발효과가 난다고 하니 미룰게 없다. 한글은 우리 민족 그 자체이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