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은 우리의 음주문화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술을 마시면서도 차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귀가할 걱정에 제대로 흥이 나지 않았던 애주가들에게 대리운전은 구세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차를 몰고 가야 된다며 술을 거부하던 사람들의 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술 분위기에 젖어 음주에 전념하다 보면 대리운전 기사가 그야말로 집에까지 모셔다 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고였다. 대리운전 기사가 밤길을 질주하다 보면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대리운전 관련 사고는 6개 주요 보험사에 신고된 것만 연간 3만건을 넘을 정도로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운전자는 대부분 관련 보험에 들지 않아 무보험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 남의 차를 모는 셈이다. 대리운전업체나 대리운전사가 보험에 가입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보상 규정에 허점이 많아 관련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현행 대리운전 사고 보상체계의 기본 골격은 대리운전사의 특약 가입 여부를 먼저 따지고, 보험가입이 안 됐다면 차 주인의 특약으로 보상을 받도록 돼 있다. 일단 대리운전업체가 단체보험의 특약에 가입했거나 대리운전사가 개별적으로 특약을 들었다면 의무보험인 ‘대인배상Ⅰ’ 담보로 기본적인 보상은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사고가 크게 나 기본 보상 범위를 넘으면 보험가입 조건에 따라 ‘대인배상Ⅱ’, ‘자기차량손해’ 등은 보상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
영세업체가 난립한 대리운전 업계의 특성상 충분한 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는 대리운전사와 대리운전 고객이 몇 명인지 공식적인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보험에 가입했다는 업체의 안내를 믿고 대리운전을 이용했다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대리운전사가 차를 몰아 사고를 내는 일도 있다. 대리운전사의 보험이 없어도 운전자가 스스로 보험에 들었다면 대리운전 사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특약 가입자가 아직 13만명에 불과해 대다수 운전자는 대리운전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다. 특약은 1천300원 정도면 가입할 수 있지만 아직은 외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대리운전업을 법의 테두리로 끌어들이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강기윤(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의원 10명은 최근 ‘대리운전업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제정안은 대리운전업체·기사의 등록, 퇴출 기준과 자격을 규정하고 대리운전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완벽한 법이 될 수 있도록 각계의 의견을 여과 없이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