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녀가 2주간 3일을 빼고는 매일 걸었다는 표시가 된 체크리스트를 나에게 주었다. 시간도 기입하였는데 보행시간이 모두 30분은 넘고 1시간씩 되는 날도 몇 번 있었다. 치료 초기에는 위장기능이 극도로 저하되어 속도 쓰리고 잘 먹지도 못해서, 통증으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서, 두통이 심해서. 생리통이 심해서 등등의 이유로 계속 주저되었고 몸의 증상이 조금씩 호전이 되자 조금 활동이 느나 싶더니 곧, 비가 여러날 와서,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가기 싫어서. 김장을 하느라 며칠간 몸살이 나서, 또 나가서 걸으면 귀가 너무 시려서 라는 아주 다양한 이유로 주저되었던 걷기였다. 체크리스트를 나에게 건내면서 그녀는 계속 걸으니 소화가 좀 되고 장이 움직여서 그런지 식사량이 좀 늘었어요, 두끼가 먹어져요. 라고 덧붙인다. 몸도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단다. 과연 체크리스트를 비교해보니 30분씩이라도 걷기를 지속한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 되니 식사가 한끼에서 두끼로 늘기 시작했다. 좋은 면역을 위한 영양섭취와 소화를 위해 움직임이 필요하고 최소한 하루에 30분정도의 걷기를 권했던 5개월만의 일이다. 그동안 위장통증, 설사를 비롯하여 불안장애도, 화병도, 대상포진도, 진통제
양평 용문사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추정나이 1100년,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4m, 가지너비가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라는 숫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은행나무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의 인상을 잊을 수 없다. 그 나무, 아니 그녀(암나무이다)는 나에게 동양최대라는 거대한 자태로 힘찬 가지와 무성한 은행잎을 휘날리며 지나온 1100년의 시간을 문자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 나이의 두 배가 넘는 기간 전부터 여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했던 불교는 2500년 전 보리수나무 밑에 앉아 호흡을 통해서 지혜를 개발한 붓다의 한 숨결에서 시작되었다. 그 모습은 초기불교서적인 (맛지마니까야:들숨날숨기억경)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기억을 확립하여 앉는다. 기억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기억하면서 숨을 내쉰다.’로 시작되는 설명에서 호흡을 의식의 중심에 두고 관찰함으로 고요한 호흡과 삼매에 도달하는 방법을 전한다. 2200년전의 가장 오래된 한의학 서적인 황제내경에서는 양생 즉,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호흡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호흡이 고요하면서 가늘면서 천천히 이루어지고 들숨날숨비율이 적절한 호흡
수도권에서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변화하였다. 아무래도 2020년은 코로나 19와 함께 마무리되려나 보다. 한의원 입구의 마스크안내문은 물론이고 몇 달전쯤 한의원에 설치한 안면인식체온계와 자동손소독기는 자연스럽게 한의원의 풍경이 되었다. 한명 한명을 치료할 때마다의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의 알콜소독, 대부분의 1회용화도 마찬가지다. 오셨던 분들을 제외하고 올해 최근에 내원하는 환자분들은 설진(혀에 나타나는 색과 모양등의 징후를 보는 진단법)을 꼭 해야 하거나 코와 입부근을 치료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마스크를 벗지 않기에 얼굴을 잘 모르는 환자들도 꽤 된다. 망문문절로 얼굴의 이목구비를 관찰하기도 하는 한의사인 나에게는 꽤나 이례적인일이다. 이렇게 낯설음이 어느덧 익숙해진다. 종종 미열, 기침, 콧물등의 동반하여 양방병원을 방문하나 코로나 19의 진단여부검사를 위해 며칠을 불안해하다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내원하는 환자들를 종종 마주한다. 치료와 함께 바이러스로 인한 증상으로 설명되는 감기, 비염, 기관지염에서의 면역과 한약의 효용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경험하는 환자들은 효용을 이해한다. 아프리카의 풍토전염병이라도 말할 수 있을정도로 아프리카에서
며칠전에 어깨가 뻐근하고 팔에 힘이 없다고 내원하여 침과 보험한약 며칠분을 처방받았던 환자가 주말을 지내고 오늘 와서는 50% 정도 통증이 좋아졌다고 하면서 묻는다. 그런데 원장님 그때 주신 한약이 무슨 약이예요? 그래서 나는 일종의 한방감기약이예요. 몸을 따뜻하게 하는 약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열이 많이 난다기 보다는 평소때 몸이 차고 소화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기침, 콧물, 통증 등의 감기에 쓰는 약 이예요. 여러종류의 감기약중에 보약에 속하지요. 했다. 그런데 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신기해요. 그걸 먹으니 피로감이 덜하고 기운이 나는 것 같아서 여쭤봤어요,’ 한다. 그럴수 있지요. 환자분이 타고나길 소화기능이 좋지 않고 몸이 찬 경향이 있어요. 최근 여름이라 에어컨, 찬음식 등으로 어깨 증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해서 처방을 한거고 이 약이 체온을 올리고 따뜻하게 혈행을 도우니 몸이 가볍고 좋아진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대답했다. 한 엄마가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데리고 온다. 아들은 평소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재채기와 콧물이 간혹 있는데 최근에 덥다고 에어컨을 많이 틀고 찬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재채기가 며칠 전부터 난다고
20여년 전부터 한방전문의 과정이 실시됐다. 나는 인턴 1년 레지던트 3년의 전문의 과정을 거쳐 한방내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했고, 그로부터 15년이 넘어가는 많은 기간을 한의사 역할로 진료실에서 채워갔다. 그 과정에서 치료를 하는 일은 오히려 쉽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현실에서 넘어야 될 벽들을 마주할 때였다. 한약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게끔 돕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전문의 교육병원이 그러하듯 그때의 한방병원은 양방병원과 협진형태의 시스템으로 임상병리실과 영상검사실을 두었고 여러 검사들에 제약이 없었다. 재직했던 한방내과는 특히 환자군도 다양하고 중한 환자의 입원이 많아 MRI, CT 뿐아니라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심전도, x-ray, 초음파 등 검사가 다양하게 필요했다. 병동주치의로서 양방병원에 진료의뢰를 해서 입·퇴원시 뿐만 아니라 입원기간 중에도 검사의뢰를 했고 대부분 당일내로 결과를 확인했다. 수련기간 동안 혈압, 당뇨, 심장질환, 중풍, 간질환, 파킨슨, 치매 등을 비롯한 다양한 질환 환자의 증상에 따른 검사영상, 수치를 확인하고 변화 양상을 관찰했다. 대부분의 입원환자들은 양약을 복용중이었다. 간염, 간경화, 간암환자들이 입원하는 경우도 있
어머니는 여수 바닷가 근처의 마을에 사신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맏딸의 집에 잠깐 올라오신 칠십대 중반의 그녀는 속쓰리고 잘 먹지 못하며 몸도 퉁퉁 붓고 기운도 너무 없다고 하며 내원하셨다. 허리와 무릎이 아픈건 오래되어서 치료받고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밭농사를 제법 크게 하시니 일이 끊임없는데 소화도 안되고 입맛도 없으니 잘 먹지도 않고 간단히 때우면서 쉼없이 밭일을 하셨다고 했다. 오랜 밭일에 까무잡잡하게 그으른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속에 웃는 눈매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곱게 숨어있다. 진료과정의 문답중 술고래 남편과의 50년의 경혼생활을 포함한 이야기에 ‘아이고 힘들어서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말씀하시는 중 ‘몸이 약하고 안좋다고 하니까 남편이 자신이 먹는 민들레 달인즙이 효과가 너무 좋다고 나에게도 한박스 달여 만들어줬는데 나는 맛도 별로고 속쓰리고 몸도 무거워지는거 같았어요’ 하신다. ‘그럼 그만 드시지 그랬어요’라고 말하니 ‘먹기 싫어서 안먹을려고 했는데 남편이 몸에 좋은건데 안 먹는다고 화내기도 하고 해서 억지로 먹었지요. 글고 나도 남편이 모처럼 해준건데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챙겨먹었지요’ 하신다. 민들레가 그녀에게 적절치
무릎과 허리가 만성적으로 아픈 60대 환자분이 1달만에 내원하셨다.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데 한달에 한번 오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홍삼과 홍합추출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한다. 그것들을 먹어서 좋아질 무릎과 허리면 한의원에 오시지도 않았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홍삼을 먹고 나서 부터인가 이상하게 눈이 침침하다고 한다. 혹시 관련이 있는지 나에게 묻는다. 한의사로 진료를 하면서 수없이 받은 질문 중 하나이다. 치료재인 한약은 치료의 효과를 가지는 각각의 기미(氣味)를 가진다. 인삼을 찌고 말린 홍삼도 그렇다. 인삼은 대표적인 기운을 보충하는 약재로 미온(微溫, 약간 따뜻한 성질)하다. 홍삼도 기본성질이 크게 변하진 않는다. 어깨가 아파서 내원했던 80세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의 할머니가 생각난다. 80세의 연세가 무색하게 똑부러지는 말과 행동을 하셨는데 홍삼을 매달 구입해 먹고 있다고 했다. 체질진단을 해보니 소양체질이다. 그래서 소량을 잠깐씩 복용하는 것은 괜찮은데 장기적으로 꾸준히 복용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체질과 홍삼의 약성을 말씀드리며 홍삼만을 장기복용하는 것은 권하지 않고 당분간은 기혈을 보하는 보약이 필요하면 홍삼과 반대되는 기운이 포함된
진료시간이 끝날때가 다 될 즈음 얼굴에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안색으로 만난 그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느 수요일 오늘도 하루가 끝났다고 한숨 돌리고 있었던 나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금방 쓰러질 듯한 표정과 힘없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내뱉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였다. 다른 한의원에서 보약도 먹고 있고 동시에 타 양방내과의원에서 4개월전 심해진 두통 때문에 향정신성약과 진통제를 그 병원에서 줄수 있는 최대로 복용하면서 하루하루 넘기고 있었다고 한다. 며칠전부터는 더 이상 양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게 되어 힘들어 하였는데 친구가 자신이 치료를 받고 두통이 좋아졌다며 가보라고 소개를 해 주어 오게 되었다 했다. 그녀는 둘째아이 출산후부터 발생한 10년이 넘은 두통 외에도 많은 증상을 호소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붓고 무겁고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되는 상태가 오래되어 식사는 간단한 분식류가 다반사다. 대변은 스트레스 받으면 설사와 시원치 않은 상태가 공존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양상을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럽기도 했다. 손발이 차고 다리가 저리고 쥐나는 것도 꽤 오래다. 게다가 등에는 어제부터 대상포진으로 의심되는
어느 시점엔가 한의원에 암환자들이 갑자기 많이 내원했던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4차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이었다. 구역, 소화불량, 부종. 저림, 전신탈력감 등이 힘들어 뜸과 침치료를 하기 위해 내원한 한분이 같은 병실, 옆 병실로 소개를 하면서 매일 한의원은 암, 특히 유방암 환자들로 북적였다. 치료가 쌓임에 따라 증상이 점점 완화되었고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그 요양병원은 없어졌지만 이후 양방치료 끝나고 후유증이 남아있는 분들의 내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유방암으로 타목시펜을 복용하고 있었고 그렇게 부작용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타목시펜은 유방암환자에서 다른 쪽 유방의 유방암을 억제하는 목적으로 처방되지만, 동시에 우울, 안면홍조, 발한과다, 불면, 피로, 부종, 자궁 이상 등 갱년기 증상 뿐 아니라 자궁내막암의 발생을 높일 수 있는 약이다. 내원했던 분들 중 자궁근종과 자궁출혈로 내원했던 분이 있었다. 그녀는 40대 초반으로 타목시펜 복용 3개월차였는데 위에 나열한 갱년기 증상에 더해 야간에 2~4번씩 소변을 보고 가슴두근거림 그리고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한 분이었다. 달라진
오늘은 야간진료다. 누군가 화사하게 인사한다. “원장님 계속 치료 많이 받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늦게 끝나고 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계속 못왔어요”.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잘 지내요 호호호.”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이쁘다. 문득 그녀가 처음 내원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힘들게 약속을 몇 번이나 바꿔가며 진료실에서 만나 연변 사투리로 꺼내놓는 증상들이 심상치 않다. 자신의 몸에서 고름 냄새가 나고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욕하고 수군거리고 쳐다보고 또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쫓아온다고 하였다. 검사가 필요해 대기실에 기다리라고 하는 사이 하필이면 그때 불시에 방문한 타업체의 남자직원이 방문하였다. 그녀는 저 사람이 자신을 쫓아왔다고 말하며 다음에 오겠다고 부리나케 나가버렸다. 나는 소개한 분의 염려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세심한 관심과 치료가 필요함을 전화로 알렸고 이어 연결되어 딸의 상황을 들은 그녀의 엄마는 자신이 잘 챙기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 일을 잊어버릴 때 쯤 그녀는 엄마와 함께 내원하였다. 처음 내원시 증상과 함께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불면, 통증 등 증상이 한보따리다. 화병과 중증도의 우울과 불안을 보인다.화병은 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