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는 언론에 대해 말을 아낀다. 말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실제 별다른 언론 정책 없이 집권 5년 차를 맞고 있다.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이 마무리되고 있어 이어 언론개혁 논의도 본격화될 거라는 기대가 많다. 지금 상황에서 시급한 일은 MB정권 이후 망가진 우리 언론시장을 정상화하는 일이다. MB정권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겪으며 한국언론 전반에 수구DNA를 확실하게 심었다. 방송은 장악하고, 보수 신문에는 선물을 안기고 소셜미디어로 진화하던 인터넷에는 재갈을 물렸다. 먼저 MBC, KBS라는 공영방송을 무력화시킨다. 진보적 노조원을 길거리로 내몰고 낙하산 사장 투입을 통해서였다. 국세청에서 검찰까지 모든 국가기관을 동원했던 KBS 정연주 사장해임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어 신뢰성과 영향력 저하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있던..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은 전세계 패권을 장악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전쟁 당시 연합국이었던 옛 소련과 군사적 대결의 길로 들어선 미국은 한국전쟁을 통해서는 전세계적 수준의 냉전체제를 구축했다. 일제에 빌붙어 사리사욕을 채우던 반민족세력은 이제는 재빨리 미국에 충성을 다하면서 다시 민족의 압제자로 돌아왔다. 이런 사정은 남미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긴 세월 스페인 침략자들과 싸운 남미인들은 20세기 들어 미국 침략에 대한 투쟁으로 피를 흘렸다. 애국 전사들은 ‘라틴 아메리카 해방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의 뜻을 이어받아 반제 반봉건 혁명을 쉼없이 전개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형제가 주도한 쿠바혁명을 비롯해 남미 곳곳의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쿠바 혁명이 남미 전체로 확산되는..
새해 들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뜨거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이슈가 있다. 바로 환경 문제다. 기후 온난화로 인한 야생동물 생태계 파괴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주목받더니 최근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인한 쓰레기 재활용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기존 계획보다 5년 앞선 2030년부터 모든 내연기관 차량의 신규 판매를 금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친환경, 공정경쟁,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강조하는 ESG(Environment, Society, Governance)가 새해 기업들의 주요 경영 화두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20일 새롭게 들어선 바이든 정부는 취임 일성으로 파리기후협정 복귀를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2050년까지 탄소 배출과 제거의 총량이 ‘제로’에 수렴하는 이른바,..
최근 ‘한국 다음세대 살리기 운동본부’라는 IM선교회가 선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하는 비인가 IEM국제학교에서 171명(26일 0시)이 무더기로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방역당국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진정국면에 접어드는 듯 했던 3차 대유행이 다시 집단으로 확산될까봐 우려된다. 얼마 전 광주광역시의 한 교회에서도 신도 1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인터콥 BTJ 열방센터 발 확진자는 전국적으로 800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과 11월 수천명이 모이는 집회를 열었다. 이로 인해 코로나 19 확진자는 전국으로 번졌다. 이 단체 관계자는 ‘백신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백신을 맞으면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열방센터 방문자들이 여전히 코로나 19 검사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발 코로나19 확산에..
2021년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공포의 년도였다. 인문계, 실업계, 재수생을 합친 고교졸업생 숫자가 4년제 대학 입학정원보다 적어진 사상 첫 해였기 때문이다. 현실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초유의 입시 충격파가 대학을 덮쳤다. 수시모집부터 조짐이 있었지만, 본격적 쓰나미는 1월 중순에 끝난 정시모집에서 닥쳐왔다. 서울과 수도권도 하락 추세가 없지는 않았다. 문제는 지방대학이었다. 초토화에 가까운 경쟁률 추락이 나타난 것이다. 학령인구 급감 때문이다. 여성 한 사람이 평생 낳을 걸로 예측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합계출산율이다. 이 수치가 2018년에 처음으로 1.0 이하로 떨어졌다. 이후 하락 추세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올해 예상 합계출산율은 고작 0.78명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조사한 198개국 가운데 이 수치가 0점대인 나라는 몇 년 째 대한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지난해 11월 취중 택시기사 폭행 사건의 축소·은폐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경찰 수사관이 핵심 물증인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민심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양상이다. 취중에 일어난 일순간의 실수이고, 쌍방 합의 사건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경찰의 처리는 관행상 무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찰이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이 본질적 문제를 파생시키는 양상이다. 경찰은 처음부터 “객관적 증거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택시기사의 증언에 의존해 내사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택시기사가 “목적지에 도착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진술했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단순 폭행 사건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특히 폭행 사건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차관 측 역시 기사에게 정중하게 사과했고 적절한 합의금을 전달하면서 원만하게 매듭지어진 사안이라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검찰이 고발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피해 택시기사가 폭행 사건 다음날 블랙박스 업체에서 영상을 복원했고, 복원한 영상을 수사관에게도 보여줬다는 새로운 진술도 나왔다. 영상을 확인한 경찰이 오히려 “영상 못 본 것으로 할게요”라며 묵살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최승렬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는 25일 “지난해 연말 해당 사건에 관해 언론에 설명한 내용의 일부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돼 국민들께 상당히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경찰은 해당 수사관을 대기발령하고 수사부장을 단장으로 13명 규모의 진상조사단을 꾸려 전면 재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 논란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올해부터 수사 권한이 대폭 커진 경찰에 대한 국민 신뢰 문제와 곧바로 직결되고 있다. 당장 최근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들부터 소환된다.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정인이 사건’의 경우, 세 차례 학대신고에도 무혐의 처리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 수장이 머리를 조아렸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도 167일간 전담팀을 투입하고도 뭐 하나 제대로 건진 게 없었다는 비판여론이 높다. 이 사건의 핵심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의 대상이 되는 ‘이동 중 운전자 폭행’ 여부이지만, 그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경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권무죄(有權無罪)의 폐해에 오래도록 치를 떨어온 국민 정서도 무섭게 흔들고 있다. 이대로 유야무야 뭉개려고 하다가는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대의마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검찰의 수사와 별개로, 경찰 스스로 논란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의 진솔한 진상조사 결과를 내놓고 엄정조치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라, 다시는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내부감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제 ‘수사종결권’까지 확보한 우리 경찰은 지난날의 평범한 치안조직이 아니다.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으로부터 진정 사랑받는 조직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다시는 무능한 공룡 경찰이 ‘봐주기 수사’를 일삼고 있다는 불평이 국민 사이에서 터져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새해가 금세 한 달이나 지났다. 이승의 시간은 이렇게 고속으로 줄어든다. 내가 열여섯 살에 청운의 꿈을 꾸며 상경하던 장면이 엊그제 일인 듯 생생한데, 어언 45년 전이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志學). 서른 살에는 학문의 기초를 확고하게 세웠다(而立). 마흔 살에는 세상의 어떤 풍파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不惑). 다시 십 년 후, 오십에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知天命). 환갑의 나이에 이르자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다 들렸으며, 불필요한 잡음들은 걸러져 들어왔다(耳順). 칠순이 되니 마침내 어떤 일을 마음 가는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從心). 그리고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연초에 매스미디어나 소셜미디어에서 나이와 관련된 한자 표현들을 자주 접한다. "이제 불혹이다", "지천명에 이르고 보니...", "내 나이 벌써 이순이라니..." 등의 문장들이다. 이런 글들을 대할 때마다 좀 불편하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에서 공자 자신의 인격성장 단계를 나이와 연관지어 고백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학'이나 '이립'은 범부들도 가능한 경우겠지만,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 등은 필부들이 그 나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공자에게나 가능한 높이였을 것이다. 이 언어관습은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마찬가지라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공자가 십년 단위로 바꾸어 부른 철학개념들과 나이의 숫자를 동일시하여 사용한다. 우리가 가장 심하다고 한다. 어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본뜻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속성이 있다. 바로잡기 힘든 걸 모르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마흔이 아니라 일흔에도 '불혹'의 경지로 사는 건 쉽지 않다. '지천명'의 天命이 중용1장에 나오는 그 '천명'이라면 이제 오십이 된 중년의 사내가 결코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건 일종의 참칭(僭稱)이다. '이순'이나 '종심'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공자만이 도달한 수준인 것이다. 나는 예순이 넘었으나, 여전히 세상잡사에 미혹되어 횡보한다. 천명은 커녕 든든하지 못한 쌀독의 공허가 언제 끝날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 시대 민초들 모두의 수준이며 공동운명이다. 귀는 조금도 순하지 못하다. 오히려 야단법석의 집결지다. 갑남을녀들은 칠순을 넘어 팔십이 되더라도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그 각각이 실로 초인적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가치들을 품격 있는 삶의 목표로 정해놓고, 일상에서 소박하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온당하고 마땅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어느 날 높이 존엄하고, 깊이 질적인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비로소 그 소수에게만 진정으로 나이가 숫자를 넘어 격조를 갖게 되지 않을까. 공자는 바로 이걸 가르친 것이다.
항간에 한 금고털이가 살았다. 그 아비도 금고털이였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 그는 오직 아비를 따라다니며 금고 터는 방법만 배웠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가 덜미를 잡혔다. 아버지는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그만 죽어 버렸다. 고아가 된 그는 늘 한탕 하는 것이 꿈이었다. 배운 기술이라고는 금고를 터는 일뿐이라 그는 시내를 헤매며 털 금고만 살피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에 밤톨만 한 다이아몬드를 소장하고 있는 한 귀금속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금고 속의 그 다이아몬드를 훔치기로 결심했다. 먼저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먼저 그 귀금속상 가까운 곳에 있는 허름한 집 한 채를 샀다. 그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집안의 마당에서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귀금속상과는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파낸 흙은 남몰래 강가에 내다 버렸다. 그러기..
내 정서적 토양은 농가의 생활풍경에 뿌리가 닿아 있다. 평화롭고 온화했던 마을에서 아버지 쟁기질하고 어머니는 작곡가가 오선지 위에 음계를 내리듯 씨앗을 심으셨다. 형은 퇴비를 넣고 나는 고무래로 덮으며 스스로의 밥벌이를 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그곳이 나의 유토피아이며 그곳을 나는 지상천국으로 생각한다. 그곳에 가야 내 부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금년에는 ‘흰 소’의 해라고 한다. 어느 수필인은 흰 소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왔고 운경 화백은 토종소가 힘차게 달리고 있는 그림을 그려 보내주었다. 우리 집에는 소띠 해에 태어난 가족이 두 명 있다. 그래서 이 소띠 해에 소 꿈을 타고 온 아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길에서 성취감과 즐거움이 가..
일본 제국주의와 군사독재정권, 부패정권을 미화해온 언론 참칭 매체들은 정치혐오를 부추기는데 여념이 없다. 기사 제목만 봐도 언론인지, 증권가 등에서 유통하는 속칭 찌라시인지 헷갈리기 일쑤다. 팩트 비틀기 천재들이어서 감귤을 탱자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거기에 붙이는 제목은 신박한 경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천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매우 선동적이다. 수구 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의 '워딩'은 조폭들의 막말과 구별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분명 정치인인데 말 품새는 시정잡배인 것이다. 차마 귀 열고 듣기조차 거북한 극우적 목사 등의 말과 오십 보 백 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진보적 지식인이었다가 돌변한 교수 등도 닮은꼴이다. 진리를 논했던 그 고상한 입에서는 연일 막말이 흘러나온다. 비판하기도 민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