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와 검사의 두 얼굴 “블랙머니”. 검은 돈, 뇌물이나 부정한 거래에 은밀하게 오가는 돈이라는 뜻인데, 은행매각 비리, 금융 범죄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의 소재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은행을 헐값에 매입하고, 매각한 사건을 파헤치는 검사 이야기. 영화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한 수사 검사가 수사 중지라는 윗선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증거자료를 폭로한다. 그런데 부장검사와 사건 배후에 있는 핵심 인물인 전직 총리가 사건 실체의 은폐를 은밀히 합의하는 데, 더 눈길을 끈 것은 검사 사무실 벽면에 걸린 액자였다. 이 액자에는 “공명정대(公明正大)”라는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공명정대한 길을 걸어 왔는가 현실은 영화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내외부적 압력에 따른 사건 무마 등 사회적 사건을 그저 영화 속의 픽션으..
코로나19는 시민들의 일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시민들의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대면접촉을 최소화하는 패러다임으로 삶의 틀이 급변하고 말았다. 비접촉(언택트)이 새로운 일상(뉴노멀)이 되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음식 배달서비스가 외식을 대체하게 된다. 음식 배달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압도적 다수가 주문배달 대행서비스, 약칭 ‘배달앱’을 이용한다. 수도권공정경제협의체가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수도권 외식배달 음식점 점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배달앱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96%가 배달앱을 이용해 주문을 하고 있다. 배달에 응하는 음식점들도 평균 1.4개의 배달앱에 가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렇게 주문과 배달의 길목을 외국자본인 독일회사가 ‘사실상 독점’..
형사사건에 변호인으로 참여해 보면 때때로 한 없이 초라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되고는 한다. 모든 증거는 검찰이 가지고 있고 검사는 유죄입증에 유리한 증거만 제출한다. 수사를 통해 무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했다고 해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그러한 증거가 검사에게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천신만고 끝에 증거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해도 이를 검사로부터 얻어내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지난 2010년 용산 사건에서 검찰은 재판부의 공개결정에도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버텼다. 결국 검찰 손에 있는 증거는 검찰이 제출하기 전에는 변호인 심지어 판사마저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형사법정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무죄 입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변호인이 되고..
재일동포 한영용씨가 개발한 ‘뿅뿅사’ 모리오카 냉면은 부산 밀면가 가장 유사하다. 그 냉면 하나 가지고, 한적한 지방인 모리오카(盛岡)역 주변을 비롯해 시내 여러 곳에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리오카하면 '냉면'이라는 이미지를 떠오른다는 일본인들도 상당히 많다. 그가 이렇게 냉면을 개발, 보급하게 된 것도 유년 시절 맛본 냉면의 기억 때문에 비롯되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일본인 故 가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사장은 어린 시절 부산 초량시장에서 먹었던 매운 '명란젓' 맛을 잊지 못해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식품으로 만들어 일본 최대 명란 식품 회사 '후쿠야'(ふくや)을 만들었다. 이 명란젓 이야기는 연극, 소설, TV 드라마를 통해 알려졌다. 그는 부산 초량시장 유년 시절의 맛을 평생 잊지 못했다. 일본인들도..
민주당이 지난 8일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등 핵심 쟁점 개정법안을 상임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다수의석의 여당은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 야당은 몸으로 막아서는, 국회 창설 이후 줄기차게 보아왔던 장면들이 또다시 연출됐다. 집권당이 나라를 위해서 진정 절박해서 그런 것이라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야당과 언론이 쏟아낸 우려가 기우(杞憂)라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오롯이 여당에 주어졌다. 기업규제 3법의 경우도 논란이지만, 역시 가장 첨예한 법안은 공수처법 개정안이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사회를 맑게 하여 ‘유권무죄(有權無罪)’의 치명적 모순사회를 끊어낼 소중한 국가기구다. 공수처의 출범은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적 완성이고, 20년간 기울여온 무수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보길도는 기억의 창고다. 첫 장편소설을 집필했고, 어머님과 별리, 여인과 별리, 백구 토순이와 별리, 필자에게는 이별의 공간이었다. 큰형님의 공직생활을 기점으로 보길도와 맺은 인연은, 수원서 열차로 광주에 와 시외버스로 환승하여 땅끝 마을 항에 도착하면, 30분 간격으로 항해하는 철선을 타고 노화도 산양진항에서 정박한다. 승용차로 15분간 달리면 국문학사에 길이 남는 가사문학의 최고봉인 조선시대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지었던 곳, 보길도다. 세연정과 동천석실, 곡수당과 낙서재, 부용동 원림을 둘러보고, 예송리 해변 자갈을 밟고 건너편 예작도를 바라보면 조석으로, 지는 해의 찬미와 함께 황홀한 일출광경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여름철이면 예송리, 중리, 통리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북바위와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씐바위, 보죽..
문재인 대통령이 개각을 단행했다. 아마도 최근 여론조사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리얼미터가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RDD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응답률은 4.4%)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6.4%p. 급락한 37.4%로 나타났다. 또, 지난 12월 1~3일에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전화 인터뷰 형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15%)에서도 문 대통령 지지율은 39%를 기록했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은 30%대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아마도 개각을 단행한 것 같은데, 민심을 수습한다는 차원에서의 개각은 과거 거의 모든 정권이 민심수습책으로 사용했던 방법이다..
국민의힘이 수감 중인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대국민 사과’ 여부를 놓고 또 내홍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사과를 공언해온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실행할 뜻을 내비치자 당내에서 거센 반발이 이는 양상이다. 김 비대위원장 혼자서 비쭉 사과에 나선다면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지지도가 오르는 등 조금 형편이 나아지자 또다시 집안싸움 고질병이 도지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지난 6일 청년국민의힘 창당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대국민 사과’는 국민의힘에 처음 올 때부터 예고했던 사항인데 그동안 여러 가지를 참작하느라고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운을 뗐다. 그러자 당내 여기저기에서 태클을..
내 고향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떠내려가는 돌다리 건너, 읍내에서 꼬불꼬불한 논길을 5리 걸어가야 하는 억불산 자락이다. 어릴 적 읍내에 살았던 나는 항상 고향 가는 것이 즐겁고 기대되었다. 대여섯 살 어린이에게 5리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지만 나는 흔쾌히 길을 나섰다. 명분은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첫 번째는 큰집에 가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던 쑥떡 한 덩이와 조청이었다. 큰집에는 쑥떡이 살강에 놓여 있었다. 쑥이 쌀보다 많이 들어간 쑥떡은 거칠어서 씹다보면 껌처럼 되었다. 나는 조청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어떤 때는 독 속에서 홍시를 하나 내주실 때도 있었다. 그 큰 홍시를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결코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큰집 즉 고향에 가면 맛볼 수 있는 맛..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Time Magazine)가 사상 처음으로 '올해의 어린이'를 선정했다. 그 주인공은 미국 콜로라도주 더글라스 카운티의 고교생인 기탄잘리 라오(Gitanjali Rao)로, 15세 소녀 과학자다. 5000명이 넘는 8∼16세 후보들을 제치고 선정된 인도계 미국 소녀 라오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우리 주변에 발생하는 실생활 관련 앱과 장치들을 개발했다. 2014~2015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는 수돗물 납 오염 사건이 발생해 미 전역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당시 10살이었던 그녀는 “이런 문제는 곧 우리세대의 문제로 돌아온다”며 “아무도 하지 않으면 내가 (연구 개발) 할거야”라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탄소나노튜브 센서를 이용해 싸고 간편하게 수돗물에서 납을 검출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