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패전국이다. 전세계 특히 동아시아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국가다. 군국주의의 폐해를 누구보다 절실히 경험한 국가다. 이러한 일본의 경험은 몇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본 헌법 제9조 제1항은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천명한다. 평화헌법이다. 일본 총리는 자위대를 사열할 때 중절모까지 갖춘 턱시도를 말끔히 차려입어 군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다. 그러나 절대로 거수경례는 하지 않는다. 단지 오른손으로 중절모를 벗어 왼쪽 가슴에 댈 뿐이다. 이는 민(民)에 의한 자위대의 통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다. 어느 사회이든 군과 경찰은 모든 폭력을 독점한다. 폭력을 독점한 군과 경찰을 '민'이 통제하면 민주국가 그렇지 않으면 독재국가가 된다. 그런데 군대라는 절대적 폭력을..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본 궤도에 올랐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비젼은 “평화로운 한반도, 번영하는 동아시아”이다. 첫째 원칙은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이고, 둘째 원칙은 남북협력과 국제협력의 조화이다. 이를 위해 한국이 취할 기본전략은 첫째, 비핵화-평화체제-관계정상화. 둘째, 남북관계 발전전략의 다변화이다. 2018년 개시된 평화프로세스는 관련국들 간 일련의 정상외교로 비핵화-평화체제-관계 정상화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이후 2021년 현재까지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2021년 1월에 개최한 제 8차 당대회에서 경제 실패 성찰속에 대내외 어려운 상황에도 자력갱생과 자강의 기틀을 마련하고, 핵무력 건설 완성 등으로 국방력 강화로 병진 노선으로 승리후 적극적 대외활동 전개를..
건강한 뉴스소비자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심각한 정파적 편집증을 앓고 있는 언론들 때문이다. 뉴스를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한다. 일종의 ‘뉴스 의심증’이다. 억지춘향식으로 짜맞춘 기사는 아닌지,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해 꾸민 기사는 아닌지…지향이 다른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판단해야 완전한 뉴스를 얻게 된다. 이런 불편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개선될 기미가 없어서다. 중병을 앓아도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고 환자가 잘 따르면 희망이 있다. 검진결과는 ‘저널리즘 원칙 무감각증’이다. 처방전은 “환자(언론)가 처방약(저널리즘 원칙 준수)을 상당기간 꾸준히 복용하고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그러나 이 처방전을 따르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과거 선배들이 했던 경험요법에만 집착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
오월은 멀었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들린다. 노랫말의 모태가 된 시 ‘묏비나리’를 지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노동자, 빈민의 편에 서서 독재와 싸우고 통일 운동에 헌신했던 그의 족적이 노래의 장엄함을 더한다. ‘민중의 애국가’가 된 이 노래는 국경을 넘어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독재와 탄압에 맞서는 시위현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아이돌 가요처럼 한류를 만든 민중가요다. 2년 전, 홍콩시민의 범죄인 송환 법안 반대 시위 현장에서도 불렸던 이 노래를 두고 한 신문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아시아 각국에서 불리는 스텐카 라진(Stenka Razin)’이라고 소개했다. 스텐카 라진도 낯선 단어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과는 또 무슨 관계일까. 스텐카 라진은 7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의 시위 현장에서, 더 멀리..
사람은 아직 젊고 사려가 깊지 못한 때일수록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 육체에 있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예지가 깊어짐에 따라, 자신과 온 세상의 생명의 근원이 정신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생활은 인생이라는 건물을 짓기 위한 비계와 같은 것이다. 비계가 필요한 것은 건물을 짓는 동안뿐이다. 건축이 끝나면 용도가 다하여 제거된다. 우리의 육체생활도 그와 같다. 육체는 정신적인 생활의 집을 짓기 위해서만 필요할 따름이며, 그 집이 다 지어지고 나면 육체는 폐기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보고 생각하라. 산도, 강도, 온갖 형태의 생명도, 자연이 만들어낸 것도, 모두 덧없이 지나가 버린다.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네가 그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당장 한 줄기의 빛이 나타나,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것의 존재를 인식하..
스산한 바람에 새벽비 뿌리더니 새가 떨어졌다. 장산곶에서 날아오른 매가 지친 날개를 접었다. 밖에서는 수리와 겨루고 안에서는 구렁이와 싸우던 장산곶매가 날갯짓을 멈췄다. 황망한 소식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황망함을 아들에게 전했지만, 내 아들은 백기완 선생을 몰랐다. 선생을 모르는 대학생 아들과 밥상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돌아설 때, 비로소 선생의 부고(訃告)를 절감했다. 아, 선생이 가셨구나. 가셔도 벌써 가시고 이 세상에 없었구나. 아들아, 고백하건데 아비는 백기완 선생을 오래도록 흠모했다. 너에게 조언했던 여러 말들 또한 선생의 책과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비가 선생을 처음 안 것도 너처럼 대학시절이었다. 국어순화론자인 선생의 우리말 사랑 덕에 ‘새내기’가 되어서 ‘동아리’ 활동도 하였다. 학우들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2시간 전화 대화를 했다. 취임 후 첫 통화다. 백악관이 공개한 대화 내용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비롯해 신장위구르 인권, 대만 문제까지 민감한 현안들을 꺼내며 시진핑 주석과 강한 기싸움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직후 트럼프 정부에서 탈퇴한 ‘파리기후협약’(탄소배출을 줄이자는 국제협약) 재가입을 공식화했다. 또 재무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은퇴연금(401k) 법안도 재검토하도록 했다. 이와함께 연방정부가 전기자동차 등 물품을 구매할 때 미국산을 우선으로 하는 이른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을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후 진행한 일련의 행정서명이나 정책 등은 공통적인 지향점이 있다고 한다. 바로 뉴욕 월가의 시대적 패러..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앞선 부모들이 늘 그렇게 말씀하시며 살았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세대였던 만큼 하루하루가 위태로웠을 것이다. 눈앞에서 코 베어가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기대했던 삶의 해결방식은 양심이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원. 근데 그 기준은 늘 애매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게 다였다. 상식은 기준이 없다. 원칙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상식’으로 분쟁이 해결될 때가 적지 않았다. 일종의 ‘무질서의 질서’인 셈이다. 지금은 오히려 ‘질서의 무질서’의 행태들이 넘쳐 나고 있지만. 영화평론가인 만큼 이번 달은 영화 얘기를 두어 편 하겠다. 하드 보일드 작가로 유명한 미국 보스톤의데니스루헤인은 지금까지 연인 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딱 5권만 썼는데 그중 꽤나 유명한 작품이 '가라 아이야 가라, Gone baby gone' 이고 2007년 배우 벤 에플렉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패트릭켄지 역은 케이시에플렉이, 앤지 제나로는 미셸 모나한이 했다. 이 소설과 영화의 핵심은 4살짜리 아이 아만다의 유괴범을 잡는 일인데 처음엔 미해결로 보였던 (그래서 아이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종결처리된) 사건이 또 다른 유괴 살해사건과 연결되면서 우연히 실마리를 찾는다. 문제는 진짜 유괴범이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는, 모범적인 사람이고 정작 친엄마 헬렌(에이미 라이언)은 마약중독에 난잡한 성생활, 마약 조직과도 연관이 있는, 양육에는 최악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서로 지독하고 쿨(cool)한 사랑을 나누기로 유명한 켄지와제나로는 이 일로 부딪힌다. 제나로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사건을 이대로 놔둬야 한다고 말한다. 켄지는 법리의 원칙대로 유괴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는 친엄마의 품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둘은 결국 이 일로 오랜 파트너 생활을 정리한다. 김학의 사건을 두고 법을 수호합네 어쩌네 하면서 법리 공방에 나서 있는 일부 일선 검찰들께서는 실체적 범죄가 어떻든 그 범죄를 가리는 절차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의 행복이 중요한지 아이를 둘러싼 범죄를 소명하는 게 더 중요한지에 대한 켄지와제나로의 논쟁과 얼핏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소설과 영화 속 켄지와제나로는 둘 다 목적이 순수하다. 그게 돌아가는 길이건 지름길이건 모두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각자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학의에 대한 법적 절차 논쟁은 켄지나제나로와 달리 한쪽의 의도가 순수치 못하다. 여기엔 단지 큰 범죄와 작은 범죄가 있을 뿐이며 작은 범죄가 큰 범죄와 연동돼서 일어난 일이다. 당연히 큰 것 먼저 잡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세상은 상식적으로 움직여져야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는다. 인간들이 양심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된다. 얼굴도 다 공개됐는데 식별할 수 없다며 무죄, 출국 금지를 시킨 것이 절차상 하자가 있는 식으로 온갖 판례를 일방적으로 동원해 또 방면하려는 의도는 상식적이지 않다. 세상은 상식이 움직여야 한다. 국민은 개 돼지가 아니다. 영화 얘기 하나 더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부 시리는 1, 2, 3으로 돼 있다. 한편 모두 걸작이지만 역시 1편이 최고다. 1편에서 주인공 대부 비토꼴레오네(말론 브란도)는 뉴욕 채과상 앞에서 총을 맞는다. 총상에서 가까스로 회복은 했지만 큰 아들은 죽고 막내 아들마저 곁을 떠나 있는 걸 알게 된비토콜레오네는 수십년은 더 늙은 얼굴과 표정으로 미국 내 모든 패밀리들의 회합을 주도한다. 그는 모든 것을 협조하겠다고 약속한다. 마약을 매매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상관 안하겠다고 한다. 매춘으로 돈을 벌겠다고 하면 그것도 용인하겠다고 한다. 그의 조건은 단 하나다.시칠리에 있는 아들 마이클을 무사히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이클이 돌아 오는 길에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만에 하나 그 아이의 머리에 번개가 떨어진다 해도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오.” 자리가 숙연해진다. 아들 마이클은 무사히 뉴욕으로 복귀한다. 각 패밀리들은 서로의 아이들과 여자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룰을 지킨다. 아이들만큼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세상의 상식 중의 최고 상식이다. 그래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곽상도와 나경원은 그런 점에서 상식적이지 않다. 곽상도는 오래 전 유서대필사건을 조작해 강기훈을 장기간 투옥시킨 사람이다. 그런 정도의 범죄를 저질렀고 세상이 다 알고 있으면 조용히 세상 한켠에 물러나 있어야 한다. 다시 정쟁을 일으키며 대통령 아들의 있지도 않은 특혜논란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려 하지말아야 한다. 인간이 양심이 있어야지 원. 곽상도는 상식의 이름으로 처벌돼야 한다. 그는 그 때를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나경원은 다른 건 다 몰라도 두 가지 점에 있어 상식의 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는 본인의 아이 문제다. 법적으로 다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해도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어떻게 해서 아이의 성적이 D학점에서 A학점으로 고스란히, 여러 과목이나 조정될 수 있었는지. 본인 만큼은 잘 알 것이다. 나경원은 조국과 어렸을 때 학교를, 그것도 같은 과를 다닌 적이 있다. 흔히 얘기하는 친구인 셈이다. 같은 학번 동기이다. 그러니 친구의 자식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건 뉴욕 마피아들도 안하던 짓이다. 골목 깡패, 양아치 짓이다. 그러니 나경원 역시 한켠에서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 가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사람이 양심이 없다. 상식을 못배워서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전문가가 움직이지 않는다. 테크노크라트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다. 상식을 지닌 보통 사람들, 제너럴리스트들이 궁극적으로는 지배한다. 지금 세상이 복원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국민들은 개 돼지가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생각하는 영장류이다.
천성적인 소박함과 예지에서 오는 소박함이 있다. 이 둘 다 사랑과 존경을 불러 일으킨다. 인생의 문제는 대부분 대수방정식과 같다. 즉 가장 간단한 형태로 바꿈으로써 풀리는 것이다. 진실한 말은 언제나 꾸밈이 없고 단순하다. (마르실리우스)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간결하다. 어린아이와 동물이 지닌 매력은 바로 소박함에 있다. 자연은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 조작한 차별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연은 신분이나 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자질을 부여한다. 자연스럽고 선량한 감정은 오히려 서민들 가운데서 더욱 많이 볼 수 있다. (레싱) 사람들이 교활하고 화려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은, 우리를 속이거나 잘난척하기 위함이다. 그런 사람들을 믿어서는 안 되며 흉내를 내서도 안 된다. 좋은 말은 언제나 간결하고 누구나 알기 쉬우며 논리적이다...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1년도에도 나는 사찰 대상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시절에 정부가 맺은 미국소고기 수입 조건이 과학이나 국제기준에 의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정원 사찰 대상자였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 특명팀에 의해 소위 '종북좌파연계 불순활동혐의자'라는 특정 30여명 중의 하나로 2011년에도 관리되었다는 것은 매우 낯설었다. 과연 2011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 해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의 상임의장으로서 쌍용차 사태와 함께 한진중공업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에 연대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탔다. 정동영, 이정희 등 당시 야당 정치인들과 함께 경찰의 초록색 물대포를 맞은 기억이 있다. 그 김진숙이 '복직 기원 희망 뚜벅행진'의 이름으로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