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에 처음 발의된 '사회적경제기본법'과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실현에 관한 기본법', '사회적경제기업을 위한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 사회적경제 3법이 19대, 20대 국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있다. 기본법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사회적경제기업, 사회적경제 활동가 등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의 실망감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중소기업통계(2018년 기준)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99.9%에 이르는 380만여 개의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직원 수는 1588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9.7%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1986년 5월 12일 중소기업의 창업과 신규 중소기업 지원 및 중소기업..
천만뜻밖이다. 방역 당국이 교정기관과 요양병원 등 집단수용시설을 이렇게 엉터리로 관리해온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법무부 소관인 서울동부구치소에서 감염된 코로나19 확진자가 30일 오전 현재 792명으로 늘어났다. 전국의 요양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는 27일 기준 900여 명,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만 지난 28일 기준 모두 57명을 헤아린다. 특히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은 마치 살처분을 기다리는 ‘도살장’처럼 취급되면서 방치돼있다고 아우성이다. 지금이라도 집단수용시설에 대한 총력 지원이 절실하다. 서울 동부구치소에서는 29일에도 233명이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첫 환자 발생 후 한 달 만에 800명 가까운 확진자가 쏟아졌다. 단일 시설 내 최대 규모의 감염이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에서 터졌다는 사실은 세계에 자랑해온 K-방역의 부끄러운 속살이다. 구치소 같은 집단거주 시설은 원래 감염에 취약한 데다 동부구치소는 모든 활동이 실내에서 이뤄지는 아파트형 구조여서 특별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환자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용자들에게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지난 15일 두 자릿수 확진자가 나왔는데 사흘 뒤에야 전수 검사를 했다고 한다. 수용자가 정원을 초과한 과밀 상태임에도 수용 인원의 30%가 감염돼 ‘코로나 지옥’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서야 환자 345명을 경북 청송교도소로 이송했다. 노인요양시설 상황은 더욱 비참하다. 요양 시설 내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코호트(동일집단) 격리하되 중증 환자는 전담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 급증에 따른 병상 부족으로 이송을 기다리다 가족 얼굴도 한번 못 보고 사망한 환자가 이달 들어서만 40명이 넘는다. 지난 27일 기준으로 서울 구로구 요양병원 136명, 경기 부천시 효플러스요양병원 164명, 전북 김제시 가나안요양원 91명, 충북 청주시 참사랑노인요양원 105명, 울산 남구 요양병원 243명 등 대규모 집단감염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을 치료하는 요양병원에는 코로나 진료 경험이 있는 의료진도 없고 인공호흡기도 태부족하다. 그런데도 ‘코호트 격리’만 하고 환자가 죽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는 상황이란다. 환자와 가족들은 “일본 유람선처럼 갇혀 죽어가고 있다”며 ‘도살장’에 다름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올 2월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사망자가 속출한 비극을 보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노를 부른다. 코호트 격리된 시설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관리를 놓고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역병이 창궐했다고 길을 막고 다리를 끊어 단 한 명의 환자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조선 시대 방역이 웬 말이냐”는 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의 절규가 아프게 들려온다. 24시간 목숨을 건 격무에도 현장을 이탈하지 않고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의료진의 “제발 좀 지원을 해달라”는 호소에 가슴이 먹먹하다. 아직 이 전쟁은 멀었다. 제발 정부 당국이 제대로 해주길 신신당부한다.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변명만 앞세워서는 해결될 일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을 이렇게 부실하게 해서는 안 된다.
태어나서 이런 날들은 처음 이다.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다. 언제나 절망속에서도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말했던 것처럼. 2019년 12월 프랑스 개인전을 마치고 영국을 거쳐 한국에 돌아와서 터진 코로나19는 차라리 휴식 시간 같았다. 하지만 일년동안 나아질 기미 없이 계속 되는 일련의 상황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한 작가에게도 점점 마치 질주하던 기차가 멈춘 것 같이 답답한 상황이다. 미술계 또한 많은 국제 전시를 취소 하면서 다양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 방식을 강구 한다. 하지만 공간 안에서 입체적인 감상이 절대적 우의를 차지 할 수밖에 없는 미술 전시 특성상 고민은 더욱더 깊어 진다. 누군가가 말을 할 때 들어 보아도 정확한 제시는 없이 그럴 것이라는 추측만 들려 온다. 예측할 수 있는 경험의 시간들이 사라진 지금의 미술환경에서 모니터로 주고 받는 영상, VR 전시, 증강현실 접목등은 이 시간들을 새로운 미술 시스템을 마련하는 시간들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모두들 동의 한다. 하지만 인간의 깊은 내면을 시각적 표현으로 손이 익숙한 작가들에게는 참으로 황당한 말이다. 2020년 국내외 미술계도 코로나19의 거리두기로 전시장은 여닫음을 반복하고 베니스, 광주, 서울비엔나레는 2021년으로 연기 했다. 따라서 비평 활동도 위축되고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거의 중단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열린 2020부산비엔나레의 야곱 파브리시우스 전시감독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경험으로 스카이프, 줌등 온라인미디어에 강하고 사용이 자유로워 온라인 미술 플랫폼 활용을 잘했다. 작가로 참가한 수원시립미술관 ‘내 나니 여자라,’ 전이 팬데믹 기간인 9월8일에 개막식도 생략된 가운데 오픈 되었을 때 많은 우려를 했다. 하지만 미술관측의 빠른 온라인 전시로 다양한 홍보 덕분에 11월의 전시로 뽑히기도 하였다. 가까이에서 미술관의 적극적인 언택트 온라인 활동을 지켜 보며 이제 전시가 보여주는 것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온라인 확장이 필요 하다는 것이 느껴 졌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접어 드는 미술계의 목소리도 다양 하다. 한국미술계가 국제교류와 해외 유명작가들의 전시에 가려 빛을 못본 지역의 콘테츠 개발도 하고 한국사회의 고속 성장과 글로벌리즘 세계유행 추종에서 벗어나 우리 내면의 감정과 문화가 담긴 전시 문화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지금까지 가져 왔던 사고의 변화를 요구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는 2021년은 미술계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결국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만고의 진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으로 일상을 멈춘 채 맞는 연말이다. 얼마 전 온라인 좌담회 형식인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제인 구달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류는 이번 재난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고, 자신은 세계 제1, 2차 대전도 겪어본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쯤 되면 인생은 재난 극복의 연속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와 같은 젊은 세대들에게조차 몇 가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학생이었을 때, 요즘처럼 추웠던 어느 날 IMF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시거나 하시던 사업이 어려워졌다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 건가 진심으로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세월호, 메르스, 국정 농단,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한 나라 전체가 휘청거렸던 사건을 여러 번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윤석열 검찰총장은 언제나 위풍당당하다. 한국의 권력 지형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인다. 그의 그동안의 '힘'을 보면 착각만은 아니다. 그가 검찰총장에 임명된 지난 2019년 7월부터 지금까지 1년 5개월 동안 기성 언론에 보도된 횟수로 치자면 윤 총장이 대통령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윤석열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이 시간에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한 것은 가장 강력했던 사건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장관에 지명되자마자 시작된 그의 가족에 대한 수사는 상상을 불허한다.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무려 69곳이나 압수수색한 것이다. 이 정도 규모는 특정 개인비리에 대한 형사 사건사에 있어 신기록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윤 총장의 숱한 비리 혐의 건에 대해서는 그의 수사철학인 '성역 없음'이 미사여구에 불과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이것이 그의 '힘'의 본질적 작동원리는 아닐까? 실제 윤 총장에 관한 고발 건은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행에 따르면 윤 총장 비리 혐의는 직권남용 등 무려 31개에 이른다. 이 단체가 이를 지난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12차례나 고발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고발인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대접이 가히 황제 급이다. 조국 전 장관 가족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하지만 윤 총장은 언제나 초심 그대로 위풍당당하다. 그 흔한 유감 표명 하나 하지 않는다. 법무부의 2개월 정직 징계에 따른 소제기에서 법원(12월 24일)이 "(윤 총장의 지시에 따른) 판사 사찰문건 작성은 매우 부적절하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는데도 모른척하는 건 그의 캐릭터가 일관된다는 방증이다. 우매한 걸까, 신념에 찬 걸까? 그가 '국민', '전체주의', '독재', '법치주의' 등의 말을 즐겨 쓰나 그간의 행동은 그 말이 품고 있는 뜻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독재 시대였으면 그는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됐을 것이고, 법치주의였다면 조국 전 장관 가족과 본인에게 법 잣대를 그렇게 불공정하게 적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캐릭터는 누가 보아도 인문적 성찰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다. 개인 고유의 캐릭터와 상관없는, 인간이면 가슴 속에 흐르고 있는 양심이 과연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송파 세 모녀 동반 자살사건이 떠오른다. 그들은 생활고로 생을 마감하면서도 현금 70만 원을 유서와 함께 남겼다. 공과금과 집세로 내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공과금이 뭐라고 마지막 순간까지 깔끔하게 정산했던 밑바닥 사람들의 가슴에 있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마지노선, 양심. 이 양심, 윤 총장에게 있기는 있는 것일까? 거대한 폭력과 맞서기도 하는 큰 '힘'인 양심. 광주 항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룬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인간의 양심이 얼마나 거룩한지를 기록하고 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이런 양심은 바라지도 않는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평범한 양심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윤석열 총장님,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신 겁니까?
취득세·보유세·양도소득세 등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이 강화되는 가운데 주택값이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증여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국면에서 중과세가 거듭 발표되니, 지금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얄팍한 계산법이 작동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부의 대물림’ 풍조는 철저하게 후진국형 ‘병든 사회상’이다. 지방에서마저도 증여 열풍이 일고 있다니 참으로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월 전국의 아파트 증여는 총 9천619건으로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7월(1만 4천153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의 증여 건수가 3천209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2천400건), 부산(618건), 대구(602건) 등의 순이었다. 경기도에서는 화성시의 증여 건수가 847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평택(616건), 수원(387건), 성남(223건), 고양(210건), 과천(135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매도 물량을 조절해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증여에 따른 매물 품귀 현상으로 집값이 불안해지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시장의 지적이다. 특히 지방 집값까지 골고루 뛰게 한 ‘핀셋 뒷북규제’로 수도권 위주 주택 증여가 지방까지 확산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상 전국의 규제 지역화로 다주택자 등의 세금이 강화되면서 증여를 부추긴 꼴이 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노동 가치가 떨어지고 자산 격차가 벌어진 상태에서 ‘부의 대물림’까지 이뤄져 계층 간 불균형이 고착화하는 양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취득세율이 큰 폭으로 올라갔는데도 증여 건수가 오히려 급증한 것은 집값에 대한 상승 예측이 시장에 깊게 퍼져 있다는 증거다. 당장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지금 집을 물려주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침 건설교통부 장관이 바뀌었다. 재개발 시장을 억누르고, 세금을 높이고, 매매를 억제하는 조치들만 쏟아내는 대책이 부동산 시장의 생태계를 무시한 탁상공론이었다는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보유세와 거래세 부담을 동시에 높이는 정책수단이 매물 잠김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고 양도세율이 증여세율보다 높은 것도 증여가 늘어나는 현상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보유세를 높이고 양도세를 오히려 낮춰 매물이 나오게 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귀담아듣고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 증여와 부친의 취재기자 청탁 의혹을 받던 중 탈당을 선언한 국민의힘 전봉민 국회의원의 케이스는 ‘부의 대물림’을 위해 편법도 서슴지 않는 구시대적 국민의식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집과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치열한 의식을 보유하고 있다. 제 자식들의 미래만 생각하는 천박한 부자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위정자들은 ‘기부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선진적인 정책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에 맞서 온갖 기술을 다 동원하여 재산을 자녀들에게 넘겨줄 방법을 탐닉하는 이 나라 부유층들의 변함없는 이기주의적 행태가 참으로 한심하다.
북한은 김일성시대부터 매년 신년사를 발표해 왔다. 1945년1월1일 육성으로 시작된 신년사는 김정일위원장 시대에 노동신문 등 3개 신문 공동사설로 변화했고,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는 다시 육성으로 변화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서방 정상처럼 노동당 청사에서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 2020년에는 신년사를 하지 않고 직전에 있었던 노동당 중앙위 회의 결정서로 대체하기도 하였다. 2021년을 몇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북한에서 1월1일에 신년사를 내 보낼지 지켜볼 일이다. 북한은 1월에 8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이미 공지해둔 상황이다. 8차 당대회는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 이어 김정은 위원장 시기에 두번째 개최되며 북한의 국정운영방향을 결정하는 최고 회의체 성격을 갖고 있..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다가왔지만 인류는 코로나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까스로 백신을 만들어 희망의 불빛을 비추려 하자 변이 바이러스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그동안의 노력이 다시 제자리가 될까 걱정이다. 사람이 눈을 가리고 100 미터 앞의 목표물을 갈 때 대부분의 경우 얼마 못가서 원형으로 맴돌며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독일의 잔 소우만 박사는 이런 현상을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라고 했다. 독일어로 ‘링’(Ring:고리 또는 원)과 ‘반데룽’(Wanerung:걷는 것)이 합쳐진 것으로 원형방황(圓形彷徨)을 뜻한다.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코로나를 잡으려 쫓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코로나가 아직은 우리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것 같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은 정말 온 국민이 마스크 쓰기에 열심히 동참했고, 소상공인과 의료진 등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을 딛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코로나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변종 바이러스로 또 도망하가려 하고 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변곡점에서 혹시라도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인류의 그동안의 노력이 ‘원형방황’이 안되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하지만 원형방황은 실제 우리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각종 안전사고나, 대형산불, 홍수, 가뭄 등 기후로 인한 재난사고 같은 경우 우리 의식속에는 그 존재의 두려움과 피하고 싶은 본능이 있고 대비를 한다지만 번번히 당하기 일쑤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그것을 대응하는 방법론이 옛날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매번 정치 혁신을 부르짖고, 검찰 개혁을 얘기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잘못된 관행이나 적당주의, 관료주의, 무관심 등과 타협하면 미래로 갈 수 없다. ‘맴돎 위기’를 극복하려면 몇 걸음을 내딛은 뒤 다시 직선으로 가려는 의식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코로나 대응이나 국정운영, 인생길 모두 나침반 없이 헤쳐가야 하는 지도에 없는 길이다. 새해에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직선으로 걷자! 아니 걸을 수 있다!”는 자기 혁신의 최면을 걸어보자. 그래서 2021년을 희망의 해로 만들자.
세모(歲暮)다. 이틀 후면 미증유의 고통과 어지러움으로 점철된 경자년 한 해가 저문다. 올 한 해도 많은 시(詩)가 쏟아졌다. 시의 언어는 달리 공감의 언어다. 나 아닌 남의 처지를 살펴 아픈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의 언어다. 그런 측면에서 가황(歌皇) 나훈아가 작시한 ‘테스형!’이 올해의 최고의 시가 아닐까.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70~339년)를 불러내 ‘세상이 왜 이런지. 왜 이리 힘이 드는지’를 물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또 왜 이래/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나훈아가 직접 지은 테스형! 노랫말의 일부다..
BTS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그래미상 후보에 선정되었고 다이너마이트는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계속 상위권에 올라있다.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다. 심지어 극우적인 발언을 쏟아냈던 일본의 전 오사카 지사 하시모토는 자녀들이 하루 종일 BTS 노래를 듣는다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다. 팬덤 현상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BTS의 팬클럽인 아미(Army)는 전 세계에 조직되어 있으며 매우 활동적이다. 영국의 아미 회원들은 BTS의 웸블리 공연 때 자발적으로 홍보를 하고 질서유지에 나서는 등 헌신적인 봉사를 했다. 당연히 대중문화 평론가나 연구자들은 BTS 현상을 좇아 분석하느라 바쁘다. 현상을 분석한다는 것은 눈으로 본 것(appearance)에 대해 본대로 기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실체의 한 조각을 볼 뿐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다. 더구나 사람마다 다르게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직접 본 것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에 그걸 실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보이는 것은 실재(實在)가 아니다.’ 라는 문제의식도 없다. 현상과 실재가 동일하다면, 사유도 분석도 연구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대중문화의 해외 진출에 대해 한류라는 기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애국자들이다.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을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살아왔기 때문에 소속 집단에 애착을 가지고 충성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도 대학 동창이나 고향, 심지어 사법연수원 출신들끼리 뭉치는 것도 씨족사회 이래로 유지되어온 인간의 특성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대중)문화는 나라와 인종과 계층을 초월해 온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된장찌개를 좋아하면서도 스테이크와 스시를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미들은 물론이고 중년의 점잖은 신사들까지 국경을 초월하여 BTS에 열광하는 까닭이다. 조용필의 노래를 좋아하는 오빠부대에서부터 서태지, HOT, 소녀시대 등의 팬클럽을 거쳐 아미까지 수많은 팬덤 현상이 있(었)다. 연구자라면 현상의 설명에 그치지 말고 원인(실재)을 추적해야 한다. 가수 중심이 아니라 생물학적 인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방탄로그, 방탄밤(bomb), 페스타, 믹스테이프, 달려라 방탄...이런 거 말고 사람의 마음을 보란 얘기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보나? 보려고 하면 보인다. 이게 진짜다. 비단 대중가요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클래식, 회화, 영화, 드라마, 조각, 건축 등 문화 전반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은 심장이 아니라 뇌의 활동이다. 따라서 문화란 뇌의 상상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유형무형의 산물이다. 그러니 만드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이 통할 때 팬덤 현상이 형성되는 것이다. 어떤 노래는 슬프고 외로울 때 위로가 되고, 어떤 그림은 마음의 평안을 주고, 어떤 영화는 불의한 현실에 분노하게 만든다. 연말에는 그동안 시들했던 크리스머스 캐롤이 새삼스럽게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우울해진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기분 전환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노래와 그림과 영화가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대중문화의 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