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주민등록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0년 12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는 5천182만9천23명으로 전년도 말보다 2만838명이 감소했다. 결혼 기피와 노령화로 40년 뒤인 2060년쯤이면 대한민국 인구가 반 토막 나고 40%를 훨씬 넘는 인구가 65세 이상이 된다.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국가소멸’ 재앙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절체절명의 시간이 닥쳐왔다. 지난해 출생아는 사상 최초로 30만 명 이하인 27만5천800명을 기록해 1년 전보다 10.7% 감소했다. 반면 사망자는 3% 늘어난 30만7천700명으로 나타나 사망이 출생보다 많은 ‘데드 크로스’를 형성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0.84명)은 세계 최악이다. 매 분기 수치를 발표할 때마다 세계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런 한편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25년 20%, 2036년 30%, 2051년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1인 가구는 모두 906만 가구, 전체 가구의 39.2%로 가장 비중이 높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일찌감치 포기한 채,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욜로족’으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1, 2인 가구가 전체의 62.6%를 차지해 전통적 가족 개념이 여지없이 붕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물론 인생에 대한 젊은이들의 가치관 변화가 한몫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요인은 역시나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다.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던 구시대적 미덕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현상에 대한 해법도 이 같은 요인에서 찾는 게 마땅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흐름을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정부는 지난 15년 동안 무려 1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동안 쏟아낸 백화점식 저출산 대책은 ‘고비용 무효율’ 정책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그런데도 지난해 말 정부가 2025년까지 196조 원을 투입하겠다며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역시 백화점식 대응에 그치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때가 됐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근시안적 대책으로는 이미 큰 물줄기가 형성된 ‘수축 사회’의 비극을 막아설 수가 없다. 지금 상태라면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먹히거나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험성은 급속히 고조될 것이다. 한국은 남북대치뿐 아니라, 호시탐탐 우리 영토 침범을 노리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를 마주하고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4~5천만 명의 인구를 유지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해서는 출산율이 1.5명은 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이를 낳는 일을 로또처럼 ‘수지맞는 선택’으로 여기게 만들어야 한다. 낳기만 하면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져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두 자녀 이상만 되면 부모들까지 의·식·주 문제 모두를 나라가 보장해주자는 의견이 이제는 만용이 아니다. 어떻게든 젊은이들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미적거릴 여유도,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다.
사회적협동조합이란 ‘지역주민들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협동조합’을 말한다(협동조합기본법). 2020.12월 기준, 사회적협동조합은 총 2572개가 있으며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481개, 교육서비스업 370개, 도소매업 319개, 예술·스포츠·여가 서비스업 247개, 농업·어업·임업 172개,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서비스업 151개, 제조업 146개,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136개, 협·단체수리·기타개인서비스업 111개, 전기 가스 증기 수도사업 84개, 출판·영상·방송·통신·정보서비스업 83개, 숙박음식점업 68개, 부동산임대업 562개, 건설업 48개, 운수업 43개, 하수·폐기물처리환경복원업 22개, 공공행정 16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수많은 인파가 새해 출발을 자축했던 1년전과는 달리 극도로 제한된 소수 인원만이 참가하는 조촐한 자축으로 새해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북한의 모습은 달랐다. 김일성광장에 수많은 평양시민이 모여 유명 아이돌 야외공연과 같은 경축공연과 불꽃놀이로 새해를 맞이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8차 당대회 참가를 위해 평양에 모인 당 대표자들과 함께 새해 첫날 0시에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는 행사로 새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매해 6시경에 발표했던 장문의 신년사 대신에 단 한 장의 짧은 친필서한으로 신년사를 대신하였다. 지난 해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생략하였고 그 이전 해에는 소파에 양복차림으로 앉아서 서구 정상처럼 신년사를 연설이 아닌 이야기하듯 하였었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
한 방송국의 심층 프로그램이 촉발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논란이 새삼스럽게 신년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네요. 고작 생후 16개월 된 아기 정인이가 악마 같은 양모(養母)에게 짓밟혀 사망한 지 80여 일이 지난 다음에야 온 사회가 들고일어난 시끌벅적 난리가 몹시도 불편합니다. 왜냐면, 이렇게 들썩들썩 법석을 떨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돌아서서 까맣게 잊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지요. 눈웃음이 예쁜, 천사 같던 아기 정인이는 과연 누가 죽인 걸까요. 정인이는 2019년 6월에 태어났지만, 친부모 양육이 어려워 그해 7월 일단 위탁모에게 맡겨집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0년 2월에 입양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새엄마 J모에게 입양됩니다. 그런데, 불과 1개월 이후부터 새엄마는 장시간 아이를 빈집에다 버려..
‘코로나 19 시대 인간 본질 탐구 보도 필요하다.’ 《미디어 오늘》 1281호(2020년 12월 23일자) 사설 제목이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박재영 교수의 “사건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인물이 있고, 인물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인간의 본질이 나온다.” 라는 글에서 영감을 받은 제안이다. 여기서 본질이라는 것은 물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substance)을 따지자면 주기율표에 기록된 원소들 중에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을 상기하게 된다. 이 원소들은 모두 별의 잔해들이다. 이런 것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해서는 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인간 본성(nature)의 탐구 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일단 제안을 수정하기로 한다. 코로나 시대와 관계없이 언론 보도에서는 인간 본성의 탐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
나는 경기도 파주에 산다. 가끔 차를 타고 지나다가 이런저런 플래카드를 보게 된다. 거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결사반대” 다. 무슨 화장터, 무슨 특수학교, 무슨 공장 뒤에는 어김없이 “결사” 반대란다. 뭐 반대하는 것이야 민주사회에서 정당한 의사표시니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조금 유감인 점은 “결사”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말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의 무게를 아는 것일까? 진정으로 목숨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초반, 나는 ‘행남사’라는 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다가 해고되었다. 93년 봄, 전국의 해고자들이 모여 ‘전해투’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전국을 돌며 복직투쟁을 할 때의 일이다. 노동청 점거농성을 했는데 청장이 면담에 응하지 않자 노동청 창문 난간에 매..
전대미문의 시대적 전환기에 올해와 내년 큰 선거가 잇따라 예정돼 있다. 4월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내년에는 대선,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모든 일상을 코로나의 블랙홀에 빼앗기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홀로 광야에 서 있는 모습이 우리 국민들의 현주소다. 그래서 목마름으로 백마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계절이다.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여야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출사표를 던지거나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선급 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도전장을 내밀며 서울시장 선거의 판이 커졌다. 특히 이번 선거는 전직 단체장들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막대한 국민혈세가 추가로 투입되는 등 엄중한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부터 내년까지 이어지는 선거는 오랫동안 우리정치를 감싸고 있는 누더기 옷..
양평 용문사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추정나이 1100년,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4m, 가지너비가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라는 숫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은행나무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의 인상을 잊을 수 없다. 그 나무, 아니 그녀(암나무이다)는 나에게 동양최대라는 거대한 자태로 힘찬 가지와 무성한 은행잎을 휘날리며 지나온 1100년의 시간을 문자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 나이의 두 배가 넘는 기간 전부터 여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했던 불교는 2500년 전 보리수나무 밑에 앉아 호흡을 통해서 지혜를 개발한 붓다의 한 숨결에서 시작되었다. 그 모습은 초기불교서적인 (맛지마니까야:들숨날숨기억경)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기억을 확립하여 앉는다. 기억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기억하면서 숨을 내쉰다..
아이 하나 낳고 셋방을 살던 그 때 아침 해는 둥그렇게 떠오르는데 출근하려고 막 골목길을 돌아나오는데 뒤에서 야야! 야야! 아버지 목소리 들린다 “저어---너--- 한 삼십만 원 없겠니?” 그 말 하려고 엊저녁에 딸네 집에 오신 아버지 밤새 만석 같은 이 말, 그 한 마디 뱉지 못해 하얗게 몸을 뒤척이시다가 해 뜨는 골목길에서 붉은 얼굴 감추시고 천형처럼 무거운 그 말 뱉으셨을 텐데 철부지 초년생, 그 딸 “아버지, 내가 뭔 돈이 있어요?!” 싹둑 무 토막 자르듯 그 한 마디 뱉고 돌아섰던 녹슨 철대문 앞 골목길, 가난한 골목길의 그 길이만큼 내가 뱉은 그 말 아버지 심장에 천 근 쇠못이 되었을 그 말 오래 오래 가슴속 붉은 강물로 살아 아버지 무덤 그 봉분까지 치닫고 있다 이영춘 약력 『월간문학』(1976) 등단. 시집 [노자의 무덤을 가다] [따뜻한 편지] [들풀]..
지난해 12월 5일은 리영희 선생(1929-2010) 10주기였다. 리영희 재단 등에서는 몇 차례 추모세미나를 열었고, 창비출판사에서는 새로운 《리영희 평전》과 《리영희선집》을 펴냈다. 추모 논술대회나 글쓰기 공모전도 열렸고, 리영희상 시상식도 이어졌다. 리영희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는 《다큐 리영희》 5부작을 제작하여 공개했다. 리영희선생 관련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리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리선생을 다시 소환하는 동력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이고, 시민의 열망이다. 리영희를 통해 검찰(법조)과 언론, 재벌과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한국 지배 권력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고, 동시에 한국사회의 근본적 개혁방향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리선생은 언론사 기자로 지낸 10여년을 포함하여 평생을 정론직필의 투사로 살았다. 반공주의와 파시즘체제, 베트남전쟁과 중국사회주의, 6·25전쟁과 미제국주의, 친일파와 일본군국주의, 분단체제와 통일, 수구권력과 언론매체 등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모든 ‘우상’의 본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군부정권은 물리적 탄압으로 응답했다. 언론사와 대학은 리선생을 내쫓았고, 검찰은 체포·구금·기소했으며, 법관은 그의 입을 막고 형무소로 보냈다. 이에 질세라 수구신문지들은 리영희를 ‘빨갱이’로 낙인찍었다. 리선생은 굴하지 않고 글로 싸웠다. 자신을 겁박하고 자의적으로 단죄하려는 권력의 주장을 검증함으로써 ‘진실의 심판대’에 세우고자 했다. 대표적인 글이 1977년 감옥에서 쓴 ‘상고이유서’다. 자신을 기소하고 감금한 군부파시즘체제와 검찰, 법원을 역으로 ‘기소’했다. 이성적 논증을 통해 우상의 허구성과 언론의 요설,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판했다. 이후에도 지치지 않는 장구한 싸움을 통해 결국 그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웠다. 리영희에게 저널리즘은 비판이고 정명이고 실천이다. 언론인 리영희는 거의 죽어가는 그 날까지 모든 종류의 부당한 권력을 비판했다. 비판은 사물과 사상의 화려한 외피를 제거하고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다. 비판의 다음 단계는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친일족벌언론(민족지), 기레기(기자), 허위조작정보(부실기사), 검비(검찰), 법비(법관), 반민족이권동맹(보수정당)… 이름을 바로잡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천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말년에 리선생은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시민 개개인의 힘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가 선 위치에서 우리를 옥죄고 약탈하는 부당하고 불의한 언론-검찰-법조-수구정치권-재벌로 이어지는 권력카르텔을 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언론비판과 언론개혁이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