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다가왔다. 상가와 거리가 북적이고 고향가는 마음으로 들떠야 하지만 올해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마음은 무겁고 지갑은 얇다. 코로나가 힘든 것은 맞지만 진짜 국민을 더 우울하게 하는 것은 ‘딴 세상’에 사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다. 오는 4월7일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많은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누가 적임자인지, 비전이나 공약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검증할 길도 시간도 별로 없다. 진보·보수 진영에서 각각 단일 후보를 내면 그것으로 투표하라고 한다. 성 추행 등 도덕성이 문제가 돼, 693억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는 선거에서 당만 보고 찍으라고 한다. 도덕성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는 어떤가. 대법원장은 거짓말 파동에 휩싸였고, 사법농단에 연루돼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안..
“하인은 괭이를 집어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팠다. 바흠의 묘혈(墓穴)을 위해. 그리고 그를 그곳에 묻었다.” 잘 알려진 톨스토이의 민담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의 마무리다. 해가 저물기 전 출발선에 다시 돌아오는 만큼의 땅은 모두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계약에 따라 바흠은 진종일 다니다가 노을이 보이려 하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런 계약 조건에 혹하도록 만든 것은 사실 악마의 계략이었던 걸 몰랐던 거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악마는 배를 움켜쥐고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왔다. 조끼도 장화도 물통도 모자도 모두 내팽개치고 괭이자루 하나만 붙잡고 지팡이 삼아 달렸으나 결국 돌아온 출발선에서 숨이 찬 나머지 세상과 하직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갔다. 소유란 어느 정도 필요하..
새해를 며칠 앞둔 2020년 연말 교육청에서 공문이 하나 왔다. 올해 다문화 교육 관련 연수를 들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고양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다문화 교육 연수가 필수이니 얼마 남지 않은 12월 31일까지 꼭 15시간 이상 연수를 이수하라고 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소동은 21년 내에 연수를 학습하라는 수정 안내로 마무리 되었다. 다문화 교육이 필수 연수가 된 건 교실에 다문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문화와 크게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 고양시 일산구 어느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우리 학교에도 한 학년에 몇 명 정도 학생이 다양한 국적을 가졌거나 부모님 중에 한분 혹은 두분 모두 외국인이신 친구들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비율을 따지면 대략 5% 남짓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비율인데 조금씩 비..
고양·김포·파주시의회가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고양시의회는 지난 5일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시행 촉구 결의문’을 긴급발의, 의원 전원 만장일치로 최종 의결했다. 결의문은 국토교통부, 경기도, 경기도의회, 김포시의회, 파주시의회 등 관계기관에 전달했다. 같은 날 김포시의회도 일산대교 통행료 징수 백지화를 촉구하는 일산대교 무료통행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파주시의회 의원들도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 경기서북부 시민들의 교통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의회 고양·김포·파주지역 의원들도 가세했다. 해당 지역 도의원 16명은 4일 일산대교에서 ‘경기도의 일산대교 인수를 통한 통행료 무료화 방안’을 제안하며 관계기관 협력을 촉구했다. 통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 소국이 어우러진 푸짐한 꽃바구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뭐지?’ 어리둥절해하던 나는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아침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뜬금없이 우리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던 것이. 친구를 반기듯 꽃바구니를 집안으로 들여 차근차근 들여다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짙은 향이 나는 잘디잔 소국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군데군데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눈송이 같은 꽃봉오리가 여리디여린 미소를 띠고. 날개처럼 울타리를 치고 있는 초록의 잎사귀들. 알록달록한 소국의 꽃망울은 빨갛고 작은 장미를 품은 채 잔잔한 위로를 보내오듯 끊임없이 재잘재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소국 좋아하는 나를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친구의 마음처럼, 촉촉한 그 친구와의 지난 추억들처럼 말이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돌발 변수는 바로 설화(舌禍)다. 이번에도 설화는 여야 가리지 않고 예외 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설화는 왜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일까? 선거란 권력을 잡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의례이기 때문이다. 선거란 그런 존재여서 모든 정당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오버하게 마련이다. 때로는 방어를 위해, 때로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오버한다. 설화는 바로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가짜 뉴스도 동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모든 국가의 선거에서는 설화와 가짜 뉴스가 등장하는 것이다. 미국도 선거에서 가짜 뉴스와 설화가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은 우리보다 설화나 가..
‘코로나19’ 백신이 이달부터 국내에 들어온다.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를 통해 우선 미국 화이자 백신 약 6만명분이 공급된다. 변이 바이러스라는 위협요인이 남아 있지만 백신 접종 선두 국가인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코로나 감염 추세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백신 접종을 앞둔 우리에게는 고무적일 일이다. 백신은 그 종류 만큼이나 효능이나 접종 방법이 다양하고, 까다로운 보관 조건 등으로 매우 과학적이고 셈세한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백신 배포 과정은 난이도가 높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1~3일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민관군경 합동으로 백신 운송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해 “빈틈없는 대비”를 당부한 정도로 백신 유통 과정은 엄중하다. 인천공항으로 들어오..
우리는 뉴욕에 있는 브루클린 대교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존 뢰블링이란 뛰어난 영감을 지닌 한 엔지니어 이야기다. 그는 뉴욕과 롱아일랜드 사이에 거대한 다리를 놓는 장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몇몇 교량전문가에게 이 일에 대한 자문을 구해 보았다. 결론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건축가의 가슴에서 다리를 놓는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한 시도 그 꿈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그 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또 몇몇 전문가에게 그 일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긴 과정을 거친 끝에 그는 마침내 한 지원군을 만났다. 바로 젊은 엔지니어인 그의 아들 워싱턴 뢰블링이었다. 그들은 다리건설에 따른 구체적인 콘셉과 장애물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했다. 이 장..
“나는 스물일곱살에 죽지 않았으니, 천재는 아니었군.” 예전 음악하던 동료가 스물여덟살 생일을 맞이하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장난삼아서 했던 이야기였지만, 당시에는 그 말이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우리가 좋아하던 영웅 같은 뮤지션들이 대부분 그 나이 즈음 요절했기 때문이다. . 동료가 언급했던, 스물일곱 살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 뮤지션들이 있다. 아마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3J에 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그리고 짐 모리슨(Jim Morrison)이다. 이름이 이니셜 제이(J)로 시작하는 세 명 모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불과 같이 살다가, 스물일곱의 어린 나이에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 중후반 미국을 사회적 문화로 보자면 반체제 평화주의를 부르짖던 히피..
새댁은 경찰서 앞마당 우물에 몸을 던졌다. 휴전협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그 해 정월이었다. 형사들의 겁박에 시달리던 새댁은 우물로 도망쳐 빠져 죽었다. 살아남은 건 우물가에 벗겨진 고무신 한 짝 뿐이었다. 딸이 남긴 고무신을 보자 새댁의 어미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새댁의 시신은 두레박에 묶여 우물 밖으로 나왔다. 건져 올린 시신 위로 가마니가 덮일 때, 좌익이었던 새댁 남편은 북으로 가고 없었다. 소달구지에 실린 주검이 마을로 돌아왔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곡소리조차 담을 넘지 못하고 마당에 붙어 기어 다녔다. 장례랄 것도 절차랄 것도 따로 없었다. 시신은 관도 없이 덕석에 말아 뒷산에 묻었다. 얼어붙은 뽕밭에 시신을 묻을 때, 늙은이와 아낙네들만 구덩이에 코를 박고 울었다. 개중에는 왜 우는 줄도 모르고 따라 우는 어린 것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