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목록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딸의 고교·대학 특혜,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설립, 대통령 연설문의 외부 유출과 수정, 고위 공직 인사개입 등 분야도 다양하기만 하다. 급기야 일부 정당과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기까지 이르렀다. 지금까지의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최씨가 자진해서 귀국했으므로 검찰은 조속히 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여차하면 특검이 시작될 예정이므로 검찰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 압수수색의 시도는 올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진실을 규명하고 빨리 사건을 마무리 하는 것이 대통령을 위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제도 어렵고 북핵문제도 진전이 없는 지금 대다수 국민들은 이 문제로 국력이 낭비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사안 별로 대응책을 찾아야 아직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이 시점에서 온 국민이 침통해하거나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건들은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최씨 딸을 비롯한 가족들의 비리와 축재문제, 둘째
목민심서의 저자 정약용의 호는 다산(茶山)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다. 조선 최고 사상가, 개혁가인 그가 강진에서 18년간 유배를 당하면서 지은 다산초당이 워낙 유명하고 익숙해서일 게다. 하지만 정약용의 호는 이것 말고도 여럿 있다. 호가, ‘부모님이 지어주시는 이름’과 달리 자신의 철학을 반영해 스스로 지을 수 있어서였다. 젊은 시절 사용했으며 한강의 옛 이름이라는 ‘열수’에서부터 ‘삼미(三眉)’ ‘사암(俟庵)’까지 무려 10개나 된다. 그중에는 ‘여유당(與猶堂)’이란 호도 있다. 경기도 양수리에 있는 그의 생가에 걸려있는 당호지만 목민관을 이야기 할 때마다 그 의미가 인용돼 꽤나 알려져 있다. 한글명으로만 보면 ‘정계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여유롭게 여생을 살아가겠다’는 뜻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여유당에서의 ‘여유’는 도덕경에서 따온 것으로 “겨울에 살얼음이 언 개울을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與)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한다(猶)”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의 자질과 업무역량은 국민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공직자의 사명과 책임이 제대로 발휘될 때 민본과 위민의 정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
애기나리꽃 /박효숙 예순 넘어서야 애기나리꽃 이름 알게 되었네 백합 닮은 그 꽃을 애기 손톱만한 그 꽃을 해마다 오월이면 피었을 그 꽃을 내가 애기였을 때도 피었을 그 꽃을 하찮은 풀이라고 뒤뜰의 잡초라고 관심 두지 않았네 바람 한 톨에도 고개 숙이고 이슬 한 방울로도 여유로운 미소 애기로만 살다가 가는 꽃 예순 넘어서야 겨우 알았네 -박효숙 시집 <은유의 콩깍지>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 바로 앞이나 옆에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아름다웠던 유년의 기억들이나 청춘의 뜨거웠던 열정들도 반추하며 돌아볼 여유가 없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로움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와 사랑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미래 어른의 세계가 꿈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다시 어린 시절이 꿈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장종권 시인…
발효된 사랑 /황경순 잡초로만 알았던 초록 쇠비름들이 꾸룩꾸룩 효소가 되어 30분의 1쯤만 남아 새 세상을 열고 있다. 꼭 필요한 것은 지극히 소량일 뿐 사랑도 이와 같아 녹초가 된 쇠비름처럼 내 몸은 자꾸자꾸 줄어들어도 꾸룩꾸룩 단 한 모금 진액이 되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쓸모없는 잡초라 여기던 풀들이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고 있다. 더불어 풀, 벌레등 작은 생명들을 시 속으로 끌어들여 사상이나 철학을 노래하는 시인들도 많아졌다. 이렇게 작은 풀 하나가 사람의 몸을 이롭게 하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마음을 풍요룝게 하는 철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마음을 건네주는 사람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박병두 문학평론가
따뜻하게 얼굴을 쓰다듬는 햇빛 속에서도 어린 유홍초는 떨고 있다. 올망졸망 모여서서 빨간 열매를 매달고 선 산수유나무를 올려다보는 강아지풀도 서로 곁눈질을 하며 지나간 날들을 이야기하는 담쟁이도 가을의 깊이를 알려준다. 자그마한 시골 성당 마당 가장자리 드문드문 놓인 벤치나 평상 위로 은행잎이 빼곡히 올라앉아 있고 밤나무나 느티나무 잎이 마당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성전 안은 신자들로 가득했다. 감기에 걸린 아이는 계속해서 기침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휴지로 아이의 입과 얼굴을 닦아 주고 있었고 드디어 아이는 기침과 함께 허연 코가 입술을 지나고 있었다. 엄마는 황급히 휴지를 찾았으나 이미 다 써버린 뒤여서 몹시 난처한 지경이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성당의 긴 의자 중간에 앉은 사람이 밖으로 나가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더욱이 기침하는 아이와 젖먹이 아기까지 두 아이를 데리고 온 여인에게는 몸을 빠져 나갈 길이 없었다. 나무계단을 내려오는 들꽃무늬가 가득한 원피스 차림의 여인의 얼굴은 평화로 가득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풍기는 정갈한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에게도 묘한 안도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모두가 무심히 계
스티브 잡스는 PC와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직원들에게 정보의 독점을 막고 모든 사람들에게 권력을 나눠주겠다고 여러번 말했다. 인터넷은 그렇게해서 ‘위키리크스’를 등장하게 했고 법과 의학, 특허지식도 대중들이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순식간에 반정부 시위를 조직할 수 있게 하였고 투표의 흐름에도 실시간 영향을 준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자기조직하는 우주’라는 책을 대학교 도서관에서 보았다. 해외유학, 고시를 준비하던 학생들 틈에서 예술적 자양분을 얻을 목적으로 본 책이었다. 현재 ‘블록체인혁명’이란 책을 번역하고 있는 금융권의 후배 박지훈과 몇달 전 블록체인이 던지는 미래학 화두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그러던 중 필자는 직관적으로 확신했다. 이제 ‘비도덕적 인간과 도덕적 사회’라는 제목으로 이 세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앞으로 우리는 ‘자기조직하는 만물’을 보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기는 모든 계산이 즉각 이루어지는…
2009년 1월 20일, 부시 미대통령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자 미 언론들은 당시 대통령의 지도력이 ‘레임덕’(lame-duck, 임기 말 권력 누수현상)을 넘어 ‘브로큰덕’(broken-duck)에 이르렀다며 부시의 무능을 꼬집었다. 임기 말의 대통령을 ‘절름발이 오리(lame-duck)’에 비유하는데 부시의 경우 이 단계를 넘어 ‘다리가 부러진 오리’가 됐다는 것이다. 레임덕은 원래 18세기 영국 증권시장에서 미수금을 갚지 못하는 투자자를 일컫던 말이다. 정치권에선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 때부터 사용됐다. 재선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마치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처럼 정책집행에 일관성이 없고, 정치력 저하를초래하는 상황을 비꼰 것이다. 레임 덕이 미국의 정치 관용어가 된 것은 11월에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패배하는 경우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다음해 1월까지의 약 3개월 동안 국정정체 상태가 빚어지는 현행 선거제도도 한몫하고 있다. ‘브로큰덕’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 권력통제 불능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상 처음 400조를 넘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지난주 시작됐다. 예산안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지난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도중 개헌을 들고 나왔고, 그날 저녁 ‘최순실 국정농단’의 일부 실체가 언론에 보도됐다. 곧바로 정국은 소용돌이쳤고, 나라와 국민은 일종의 패닉상태에 빠져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의 살림과 민생에 직결되는 예산안에 대한 국회의 심의활동이 위축된다거나, 본말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도 예산안은 미르·K스포츠재단이라는 최대 쟁점과 법인세, 누리과정 예산, 노동개혁법과 서비스활성화법 등 숱한 쟁점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심사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인 상태다. 박 대통령은 물론 정세균 국회의장도 이번 만큼은 법정처리시한인 오는 12월 2일까지 반드시 처리해줄 것을 국회에 당부했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국회가 구성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되는데다 앞에 언급한 쟁점에 대해 정부·여당과 야권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예산안의 법정기한내 통과에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미르·K스포츠재단, 송민순 회고록 등에 대한 정쟁으로 망쳤는데
‘우리에게 할로윈데이(Halloween day)는 무엇인가. 대체 그게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과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단오나 대보름축제 보다도 더 요란하게 축제를 즐긴다. 그것도 문화라면 할 말이 없다. 할로윈데이는 고대 켈트족들의 축제다. 매년 10월31일,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린다. 이때 악령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은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봐 두려워서다. 처음엔 미국에서 소규모로 행해졌는데 어느덧 미국전역으로 퍼졌고 한국까지 흘러들어왔다. 할로윈데이 예찬론자들은 아이들이 외국의 문화도 접해보고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라는 주장도 펼친다. 그들의 생각도 존중한다. 그런데 지난해 이맘때 본란에서도 밝혔지만 서양 귀신문화까지 무분별하게 들여와 축제로 즐긴다는 사실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올해도 이태원이나 테마파크, 호텔 클럽, 바 등은 할로윈데이 축제로 떠들썩하다. 지난해 이태원에서는 마녀모자나 가면, 귀신 복장·분장을 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여기가 과연 한국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고대 환인 환웅 단군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하지만 세상이 어수선하다.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도 좋다. 휴먼 인문학도시 수원에서 ‘제4회 세계인문학포럼’이 10월27~29일까지 3일간 아주대학교, 경기도문화의전당, 수원SK아트리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수원시가 교육부, 유네스코, 경기도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포럼은 세계적인 인문학 석학들의 강연은 물론 ‘인문학도시 수원’에 걸맞은 의미깊은 행사였다. 수원이 인문학도시임을 세계에 알리는 측면도 있지만 사람이 반가운 휴먼도시의 위상은 평소 염태영 수원시장의 철학에 맞게 많은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개회식에는 수원시장을 비롯한 이영 교육부차관, 조무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고, 철학자이자 작가로 칼럼니스트로 길을 걸어온 로제 폴 드루와와 그의 아내인 저널리스트 모니크 아트랑을 비롯해 83명의 석학들이 자리해 ‘희망, 사람됨의 새로운 길’을 주제로 기조강연이 시작됐다. 일본 나라대학에서 정신분석학자인 가즈시게 신구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장 먼 과거’ 등을 인문학에서 찾았고, 이밖에도 다양한 세션들로 마련돼 시민들의 열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28일에는 독일 뷔르츠 부르크대학 칼 메르텐스 교수의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