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작전권 전환 시까지 한미연합사 등을 미군기지에 잔류시키기로 하자 동두천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국이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용산의 연합사, 동두천의 미2사단 210포병여단은 현 위치에 잔류한다는 것이다. 미2사단 210 화력여단이 자리 잡은 경기도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는 동두천지역 6곳의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넓은 곳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 전체 면적의 15% 이르는 지역이다. 당초대로 미군기지를 2016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하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거시설과 외국 대학, 연구단지 등을 유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미군기지의 일방적 잔류발표가 동두천시민들을 화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세창 동두천시장은 “일방적인 잔류 발표는 동두천 주민이 죽든지 살든지 상관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미2사단 정문 폐쇄가 됐든 뭐가 됐든 우리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산이나 평택이나 동두천 모두 각각의 개발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동두천의 경우 1조5천480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이 자칫하면 무산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지난 60년간 동두천시는 배상이나 보상
경기도를 남북으로 가르자는 ‘분도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분도의 명분은 ‘과잉규제와 역차별 해소’ ‘낙후된 경기북부지역의 균형발전’ 등이다. 이에 경기도의회가 ‘경기도 북부지역 분도 촉구 결의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분도를 위해 과반(65명) 의원의 서명을 목표로 분도 결의안 서명에 들어갔다. 현재 49명이 참여했는데 다음달 정례회에 결의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한다(본보 27일자 2면). 지난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새정치연합 박기춘(남양주을) 의원도 “분도가 근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접경지역인 경기북부에 대한 과잉규제와 역차별이 심화되어 분도는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한 행정구역 내에 있어도 소속감을 가질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경기도 분도론은 선거 때마다 단골 이슈가 되곤 했다. 지난 1992년, 1997년 대선과 16, 17대 총선, 2010년 지방선거 때 각 정당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2010년엔 시민단체들이 분도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서명운동까지 벌인 바 있다. 이처럼 분도론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경기 남북 간 발전 격차로 인한 경기북부 주민들의 소외감 때
최근 강원도 평창에서 유네스코(UNESCO)와 유엔생물다양성협약 사무국 총회(SCBD) ‘지역주민의 날’을 맞아 알펜시아리조트 내 콘서트홀에서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이란 주제로 가진 세계 20여국의 주민과 NGO대표들의 사례발표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파주지역 농민은 임진강변 마정, 사목, 거곡리의 친환경농업과 수원청개구리 조사에 지역농민들이 협력한 사례를 발표하면서 국토부의 하천정비사업으로 임진강 유역의 멸종위기종이 절멸위기에 처해있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또한, 추진 중인 DMZ일원 임진강 준설사업이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사업이며 지역농민과 주민들의 임진강을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에 대해 전 세계의 관심을 호소했다. 임진강 준설사업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최근 주민공청회를 강행하면서 임진강 준설사업의 근거로 지난 1996년, 1998년, 1999년 파주시 문산지역에서 발생한 홍수를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문산 일대의 홍수의 원인은 이미 각종 정부보고서에서 이미 밝혀진 것처럼 동문천과 문산천의 내수배제 불량으로 인한 범람이 직접적인 원인임이 밝혀져 있다. 심지어 이번 사업의 직접적인
서수원권의 개발은 향후 수원시 핵심사업의 하나다. 각종 규제에 시달리는 경기북부처럼 평동 서둔동 고색동 당수동 등 서수원도 낙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지역은 수원시이지만 공군비행장으로 인한 고도제한을 비롯해 소음문제 등 각종 개발제한 등으로 50년 이상 심각한 고통을 받아왔다. 그래서 수원시는 지난해 말 수원비행장 이전, 수인선 시가지 구간 지하화, 농촌진흥청 이전부지 농업테마공원 조성, 돔구장 건립 후보지였던 당수동 국유지 개발 등 4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하는 서수원 종합발전방향을 내놓았다. 앞으로 5년 동안 총 2조1천억원을 투입키로 한 대형 프로젝트가 원만하게 이뤄진다면 서수원뿐만 아니라 수원의 면모가 확연히 일신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각종 개발사업에서 소외돼 지금까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던 지역 주민들이 환영하고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가뜩이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이미 이전하고 또 농촌진흥청과 산하 연구시설들도 전북으로 이전할 계획인 상태여서 상실감이 커진 서수원권 주민들로서는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다. 그런데 이들 사업내용 중에는 평동 서둔동 일대 SK부지에 관한 언급은 없다. SK그룹의 모태가 되는 선경직물 공장 터와 인근 부
대형마트와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켓(SSM)등에 밀려 사양화의 길에 들어선 전통시장들의 자구책과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고사상태에서 살아나고 있는 시장들이 있다. 대표적인 시장이 수원의 못골시장과 지동시장이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시설물로서 국가 보물로도 지정된 팔달문 인근에는 두 시장 외에도 미나리광시장, 영동시장, 팔달문 시장 등 크고작은 시장들이 어깨를 맞대고 형성돼 있다. 이들 시장가운데 영동시장은 독특한 시장이다. 모두 285개 점포가 있는데, 이 중 의류, 신발, 잡화 등이 39%(110개)나 되며 한복집과 포목점포가 집중된 특화시장이다. 상인과 시민, 예술작가의 복합문화공간인 ‘아트포라’도 운영한다. 영동시장이 최근 중소기업청 선정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돼, 지난 8월26일 영동시장 육성사업 선포식을 개최한 바 있다. 영동시장은 전통시장 특성화 발굴을 통한 콘텐츠 개발과 관광객 유치사업을 연계한 국비 지원 지역경제 활성화 시책사업으로 선정됐다.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됨으로써 2016년 말까지 2년6개월 간 국비와 시비 등 13억8천만원을 투입, 전통시장 특성화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광객 유치를 위한 사업을 벌인다. 올해 연말
무예(武藝)는 글자 그대로 몸으로 말하는 예술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는 신체언어적인 특성을 갖는다. 만약 자신의 신체 어딘가가 불편하다면 자세가 바를 수 없고, 역시 마음 어딘가가 아프다면 그 또한 원하는 움직임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무예 수련시 핵심에는 몸과 마음의 조화를 근본으로 삼는다. 몸과 마음 어느 한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게 풀어나가기 위해 만들어가야 할 것이 바로 ‘평상심(平常心)’이다. 평상심에는 평온한 마음으로 끝나지 않고 평온한 몸을 갖춰야만 이뤄내는 일종의 경지에 해당한다. 상대가 무력을 사용하여 도발하거나 헛된 입담으로 마음을 공격하려 할 때 찾아야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의 평상심인 것이다. 유학에서는 그런 조화로움을 중용(中庸)이라고도 표현한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유학자들이 입이 닳도록 읽고 외웠던 전통시대의 유교 경전 중 사서(四書) 중 하나가 바로 중용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무관이 되려면 반드시 이 사서를 통달해야만 무과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으니, 전통시대 무예를 익히는 사람들에게도 필수인 공부이기도 했다. 특히 사서를 공부할 때 마지막으로 읽는 것이 중용이었다. 먼저 대학(
가습기살균제에 PGH[Poly(2-(2-ethoxy)ethoxyethyl guanidium hydrochloride)], PHMG(Polyhexamethyleneguanidine) 등 흡입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이 원료물질로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해당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하여 사용한 소비자 중 일부의 경우 폐질환이 발생하거나 끝내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는 논란이 현재까지 수년 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특히 일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소비자들이 가습기살균제 제조회사 및 국가를 상대로 민사상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위 소송은 현재도 진행 중인데 이 사건에서 회사의 제조물책임 및 국가의 국가배상책임이 주요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제조물책임과 관련하여, 위 가습기살균제에 제품이 통상적으로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하였는지 (대법원 2013.9.26. 선고 2011다88870 판결), 그리고 가습기살균제의 결함(유해성)과 폐질환 발병 사이에 ‘일반적’인 인관관계가 있는지 및 피해자들의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병 사이의 ‘개별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가 구체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흔히들 교과서에 대한 미신을 갖고 있다. 여간해서는 척결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하는 특별한 것으로는, 교과서를 바이블(聖典),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미신이다. 또 교사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책, 집과 학교를 오가며 늘 지참해야 하는 책, 서점에서는 팔지 않을 책, 국정교과서가 더 미덥고 그다음이 검인정인 책, 국어 교과서 이름은 당연히 ‘국어’, 수학 교과서는 ‘수학’, 과학 교과서는 ‘과학’인 책…… 그 중에서도 쉽사리 깨지지 않을 미신은 뭐니 뭐니 해도 교과서 존중의식이다. ‘교과서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그 증거가 된다. 지나치게 정석적이어서 ‘답답한 사람’을 비유할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달인(達人)’ ‘절대적’ ‘최상’ 쯤의 뜻으로 쓴다. ‘교과서 속의 인물’ ‘교과서에도 나오는 작품’ ‘야구의 신, 타격의 교과서’…… 이런 미신도…
로마의 네로 황제가 시칠리아섬 에트나 산 꼭데기에서 가져온 만년설에 과일 등을 섞어 먹은 데서 비롯됐다는 아이스크림. 그런가 하면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 지역을 통치하던 아랍세력이 자신들의 음료 ‘샤르바트(sharbat)’를 근처의 에트나산 꼭대기의 만년설로 얼려 먹은 것이 기원이라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스크림이라기 보다는 셔벗의 원조에 가깝다. 따라서 학자들은 최초의 기원을 중국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고 해서다. 그리고 이것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16세기 무렵부터 상류층에서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얼음이라는 의미의 ‘글라세(Glace)’라고 부르는 프랑스도 원조격에 낀다.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1774년 루이왕가의 요리사 ‘제랑드 티생’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초로 우유와 크림을 사용하여 아이스 디저트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디저트는 현재와 같은 얼음의 결정입자가 섬세하고 차고 부드러운 제품이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은 200년 동안 부유층의 전유물로 이어져 왔다. 그러다 1851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제이콥 푸셀’이 남는 크림은…
지금은 군복무까지 마친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필자의 아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유학때문에 초등학교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다녀야했다. 넉넉치 않은 유학생의 신분으로 아들의 학교생활을 지켜보던 일은 아릿한 아픔으로 남아 있다. 다행스럽게도 학교와 선생님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분위기와 세심한 배려 덕에 아이는 학교 가기를 매우 즐거워했고 지금도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학교 수업 내용이나 방식이 신선하고 흥미로워서 매일 자료를 살펴보는 즐거움이 있었고, 필자가 경험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음악, 미술 교육방식과 비교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비엔나의 초등학교에는 음악이나 미술 등의 과목이 따로 없고, 대신 예술 교과목이 국어나 수학 등의 수업에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예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교육과정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즉, 예술과 일반 교과목이 통합 운영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년 동안 숫자는 0에서 9까지만, 문자는 알파벳만 배우는데 이 때 그림이나 노래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체활동 등,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서 학습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