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침이다. 한참 집안 일로 분주한데 방송소리가 들린다. “알려드립니다. 오늘 저녁 마을 부녀회의가 있으니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마을 부녀회장이 회원들 집합하라는 방송이다. 마을에서 자주 만나지 못하니 얼굴도 잊어버리겠다며 다달이 만나 예전같이 돈독한 사이로 지내보자고 해서 하는 부녀회의다. 예전엔 마을 대동우물이 사랑방 역할을 했다.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면서 집집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을 오랜 경험이 있는 형님들의 조언으로 일의 진로를 정하기도 했다. 첫새벽부터 물을 길러 와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고, 오전 아홉시쯤 되면 우물은 여인들이 빨래하는 풍경으로 바뀐다. 그 시절 곱디고운 새색시들은 선배 형님들의 보호를 받기도 했지만 여차하면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야했다. 한쪽에서 빨래를 하며 마을 형님들이 구수하게 펼치는 집안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을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었고, 어떻게 처신해야 어려운 시집식구들과 잘 어울리며 살 수 있는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웃는 일로 우물가가 시끌벅적하기도 했고 때로는 슬픈 일로 함께 눈물짓던 우물가
1974년 8월9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결국 대통령직을 사퇴했다. 사건이 불거진 지 2년2개월여 만이다.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고 닉슨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정치 스캔들,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은 처음 문제가 불거진 뒤 ‘침입사건과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거짓말로 드러났고,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중도 사퇴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거짓말은 가면을 뒤집어 쓴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거짓말이란 눈뭉치와 같아서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고 했다. 딱 그 모습에서 한 뼘도 벗어나지 못했다.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프랑스 칸영화제가 지난 15일부터 26일까지 열렸다. 올해 우리나라는 장편 경쟁부문에 한 작품도 진출하지 못했다. 다만 문병곤 감독이 단편 경쟁부문에서 &lsquo
지난 29일 눈에 띄는 두개의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경기도의료원이 29일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기아대책)와 의료인 교육, 긴급구호·의료봉사활동, 긴급의료지원 등에 관한 보건의료지원 협약을 체결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 하나는 경상남도가 29일 도립경남 진주의료원 폐업을 발표함으로써 103년 역사의 진주의료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나 홍준표 경남도지사 모두 새누리당 소속인데도 공공의료에 대한 생각이 이처럼 다르다. 지난해 12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홍준표 도지사는 지난 2월 26일 만성적자와 부채 누적을 이유로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 야권 도의원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심지어는 정부와 국회까지 나서서 만류했다. 그러나 누구도 홍 지사의 ‘소신’을 꺾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100년 넘게 경남도민과 애환을 함께하며 공공의료의 산실로 자리 잡았던 도립경남 진주의료원은 이제 경남도의회가 진주의료원 법인 자체를 해산하는 조례안을 다음 달에 가결하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그것도 번듯한 새 건물과 첨단 장비들을 갖추고 새로 출발한 지 5년 만에. 공공의료를 무조건 자본주의 논리로 몰아가려는 일
요즘 국내에서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내 건강식품시장 또한 제약시장에 필적할 만큼 성장하였다. 먹을거리 안전과 직결되는 농산물에 대한 연구 정보 또한 매우 중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올해 초 새 정부가 출범한 후 창조경제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해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안전한 식품산업을 위해 미래 한국의 먹을거리 산업에서 농산업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지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농업기초연구’가 창조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장 수출 또는 상품화로 이어지기 어려운 기초과학 분야가 흔히 그렇듯이 농업기초연구도 국가 주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쉬운 분야다. 그러나 농업기초연구는 새로운 정부의 창조경제 구축에 꼭 필요한 분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농업은 사람들이 먹는 식품을 생산하는 1차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영향력이 매우 큰 서비스 산업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산물에 대한 연구 정보가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예가 하나…
두어 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여학생이 부지런히 와서 문을 두드린다. 매년 5월 중순이면 있는 스승의 날 기념식 때문이다. “선생님, 이제 식을 시작한대요. 가세요! 아니 교수님이지. 죄송해요, 교수님!” 당황스럽지만 낯선 경험은 아니어서 나는 웃으며 알려준다. “교수는 직위고, 나는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 선생이 맞아.” 학생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몰랐어요. 근데 선생님보다 교수님이 더 좋은 거 아니에요?” 할 말이 없다. 학생을 탓할 수도 없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게 학생의 일 아닌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호칭에는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보다, 대학교육에 종사하는 교수가 더 위라는 생각 같은 것이 그 예다. 물론 교수가 좀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전문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다른 교육기관에서 차지하고 있는 직위의 표현이지,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 선생이라는 것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먼저 배웠기에 앞에서 알려주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그런 점에서 선생이란 용어가 참 좋다. 나에게는 초중등 교육에 종사하
수원시가 엊그제 4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하는 서수원 종합발전방향을 내놓았다. 수원비행장 이전, 수인선 시가지 구간 지하화, 농촌진흥청 이전부지 농업테마공원 조성, 돔구장 건립 후보지였던 당수동 국유지 개발이 시가 제시한 4대 프로젝트다. 익히 알려진 숙원사업들이긴 하지만 시민들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사업들을 총정리하고 강력한 실천의지를 밝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들 사업 가운데는 이미 결정이 이뤄진 것도 있고,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들도 있다. 이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서수원뿐만 아니라 수원의 면모가 확연히 일신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난관도 예상된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업무협약이 체결된 수인선 지하화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당수동 국유지 개발도 짜임새 있는 계획을 세워 집행하면 훌륭한 여가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수원비행장의 경우 군공항이전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즉각 이전이 가시화되리라고 예상하기 어렵다. 이전장소의 결정부터 이전 방식과 비용에 이르기까지 첩첩산중이다. 시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농진청 이전부지 활용문제도 매입협상과 활용방안 및 재원조달까지 풀
‘청소년에게 희망을.’ ‘가족에게 행복을.’ 5월은 청소년의 달이다. 가정의 달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듯 5월이 가고 있다. 친정 엄마의 옛이야기를 시작으로 요즘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친정엄마께서는 좁은 관사에서 온 가족이 함께 지내기가 어려워 시골 할머니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도시로 나와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셨는데 가끔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교복을 입고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온 동네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녔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을 종종 들으며 엄마의 학창시절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의 학창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리를 둘둘 말아 입어도 빙빙 돌아가는 교복스커트를 입고 다니면서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더욱이 학생들은 외출 시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교칙 준수 차원에서 항상 교복을 입고 지냈던 것 같다. 머리모양부터 발끝 신발까지 규격화된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며 스스로 학생이라는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교복 입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은 각 학교마다 특징 있는 교
오산시의회가 의장과 부의장 관련 구설로 연일 시끄럽다. 최웅수 의장은 지난 16일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자 조수석 여성과 자리를 바꿨다는 진실공방에 휘말렸다. 당시 단속 중이던 의경 등은 최 의장 차의 운전자와 조수석 탑승자가 바꿔 앉는 걸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최 의장은 이 자리에서 측정 결과 운전면허 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84%로 나타났지만 지금까지 자리 교체 자체를 극력 부인하고 있다. 한편 김지혜 부의장은 자신과 특수관계인 K어린이집의 불법 건축, 보육료 부정수급 적발 건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이래서야 통틀어 의원 7명인 시의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최 의장 건의 경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도 일반인이 같은 상황이라면 경찰의 목격이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그러나 최 의장이 조수석 여성과 자리를 바꿀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자리바꿈을 목격했다는 경찰 3명이 동시에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이들이 의장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인지, 의장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인지 반드시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진실공방이 벌어지면서 사건을 맡은 화성
올 여름은 더위가 일찍 시작돼서 늦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이다. 그런데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전력공급 차질로 수급 비상상황이 발령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장 6월부터 비상상황이란다. 오는 8월에는 매우 심각한 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걱정이 크다. 발단은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사태 때문이다. 원자로 부품인 제어케이블이 해외 시험기관 검증에는 탈락했는데 국내 시험기관 직원이 이를 위조해 합격시킨 것이다. 정말 몹쓸 인간이다. 미증유의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를 모르진 않았을 텐데. 중요 부품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행위는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 등 6기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제어케이블이 사용된 것을 정부가 확인했고 원전 2기 발전이 중단됐다. 현재 전국 원전 23기 중 원전 10기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총발전량 가운데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이 30%였다. 따라서 원전 10기가 가동을 중단한다는 것은 전체 전력공급량의 10%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당연히 여름철 전력수요 폭주를 앞두고 전력수급에 비상
얼마 전 ‘삶이 사랑이고 사랑이 삶이라고’라는 시집을 출간한 이경렬 시인과 가까운 문인 몇몇이 조촐한 자리를 가졌다. 이번 시집은 이경렬 시인이 세 번째로 펴낸 시집이다. 이경렬 시인은 교육자로 교단에 서 있으면서 시를 쓰고 있다. 1957년생이니 필자의 큰형과 동갑인데, 이 시인을 대면할 때마다 작은형을 연상한다. 구수한 마음과 정겨운 미소 때문이다. 1990년 봄에 우리는 그렇게 마주했다. 이경렬 시인은 산을 좋아한다. 500개 이상의 주요 명산뿐 아니라 마음 가고 발길 닿는 대로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그래서 그는 2007년에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구나’라는 수상록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백두대간의 시작점인 지리산 천왕봉을 향한 첫 등정을 시작해 우리나라 산하 굽이굽이를 모두 넘어 1천800리의 산 능선을 따라 백두대간 35구간 대장정을 종료했다. 1년 6개월에 걸쳐 남쪽 백두대간을 종주한 과정과 종주를 통해 얻은 영감과 지혜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백두대간의 종주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직 북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리산부터 출발해 휴전선까지 이르고 언젠가 통일이 되면 백두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