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시작한 무논은 개구리 울음소리로 시끄럽고, 월담하는 붉은 장미 틈에 끼인 찔레꽃이 석양에 풋풋해 보인다. 푸른 것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깃들고 도시를 떠나 바다로 향하는 마음은 영락없이 초등학교 때 소풍 전날의 설렘 같다. 달의 날짜에 맞춰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날을 골라 남편 친구 내외와 서해안으로 해삼을 잡으러 갔다. 랜턴과 장화 그리고 해삼 담을 통을 하나씩 들고 물 빠진 바다로 향했다. 보름이라지만 구름에 가려진 달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랜턴 움직임에 따라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넓은 바다를 뒤져 해삼을 줍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반신반의 하면서 물 빠진 바다 밑을 살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성게였다. 바위에 붙어 있는 성게를 떼어낼 때 기분이 짜릿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삼이 보였다. 물속에 조금의 미동도 없이 있는 해삼, 언뜻 보기에는 돌 같았다. 해삼을 보는 순간 ‘심봤다’ 하고 외쳤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해삼. 여기저기서 해삼을 잡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썰물을 따라 일행은 바다로 들어갔고, 그 물이 다시 들어올 때 물을 따라 나왔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해삼과 성게 그리고 꽃게도 몇 마리 잡
“뉴 라이트가 교과서를 뒤집으려 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다.” 뉴 라이트를 공격하는 측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다. 뉴 라이트 진영의 원로 역사학자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의 말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토론회 개회사에서 뉴 라이트가 새로운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1980~1990년대의 “교과서 쿠데타”를 바로잡으려 한다고 밝혔다. 저 토론회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교 한국사(교학사) 검정 통과에 즈음하여 개최된 자리다. 뉴 라이트 논법에 따르면 기존의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나 검정 한국사 교과서들은 “쿠데타” 세력의 작품이 된다. 북한에 동조하는 역사학자 무리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 농단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냐 아니냐는 매우 중요하다. 기존의 교과서를 집필하는 데 참여한 역사 교수와 교사, 이들이 참고한 수많은 역사학 논문과 저서의 필자들, 이들 교과서의 내용이 옳다고 믿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전국의 역사 교사들, 학원 사탐 강사들, 참고서 집필자들의 처벌이 걸린 무시무시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 많은 학자와 선생들이 역사
최근 지방자치단체 부채에 대한 논의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인천에 이어 2위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인구로 보면 자치단체 중에서 첫 번째이고, 예산 규모로 보아 일반회계만 해도 12조에 달하고, 총규모로 보면 18조나 되는 경기도가 왜 총부채규모가 15조8천억원으로 총부채비율이 71%에 이르게 되었는가? 부채관리와 탈선한 기차 최근 보도되고 있는 총부채비율은 지방자치단체의 직접 채무와 산하 지방공기업의 부채, 민자(民資) 사업 부담(임대료·운영비)을 합한 총부채를 지방정부 예산과 지방공기업 자본을 합산한 액수로 나눈 것이다. 이에 경기도의 부채는 3조4천억원이고, 특히 지방공기업 부채가 12조4천억원이 되어 규모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심각한 쟁점을 제기하고 있다.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서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자치단체 중 부채 규모가 큰 지역을 보면 용인 1조3천800억원, 시흥 6천억원, 화성 5천억원, 김포 6천800억원, 하남 4천300억원 등인데, 신도시가 형성되고 아파트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성장기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다가 막차를 타는 바람에 부동산 경기 침체의
6월 임시국회에서 일련의 경제민주화법안이 처리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른바 ‘갑의 횡포’로 촉발된 ‘을의 분노’에 당황한 여야가 국민들에게 몇몇 법안 처리를 여러 차례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법안에 대한 국회 내 시각차가 여전한 탓에 순조로운 통과를 장담할 수만은 없다. 예컨대 대리점에 대한 갑의 횡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최고 10배까지 물리겠다던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약속은 벌써 당내 반발에 부딪쳐 후퇴 조짐이 역력하다. 여기에 경기부진과 투자위축을 앞세운 재계의 입김까지 작용하게 되면 자못 기세를 올리던 경제민주화 법제화가 껍데기만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벌써 나온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정치적 쟁점이 부각되면서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가 뒷전으로 밀리거나 물타기 되는 상황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추문, 개성공단 대책 등 요란하기는 하지만 국회에서 실효성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 쉽지 않은 쟁점들을 둘러싸고 지루한 공방만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분명히 말해 두지만 경제민주화 법안을 이들 정치 쟁점에 묻어버린다거나 뒷전에서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은 비겁하다. 6월 임시국회에서 경
앞으로 경기도내에서 가장 기대되는 지자체는 평택시이다. 최근 평택 고덕 삼성전자 산업단지가 착공되고, 고덕산단 인근에 LG디지털파크산단 등 총 1천418만㎡에 이르는 8개 산업단지가 추진되고 있는데다, 배후단지인 고덕국제화계획지구 개발에도 탄력을 받기 때문이다. 이들 산업단지는 평택시가 농업도시에서 첨단산업도시로 변신하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사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평택시에서 가장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평택항이다. 평택항은 1986년 12월 5일 동북아시아의 무역·물류 중심 항만으로 문을 열었으니 이제 개항 26년밖에 되지 않은 ‘청년항’이지만 전국 항만 중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국제 무역항만으로서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평택항은 국내 29개 무역항만 중 자동차 화물량이 1위다. 또 컨테이너 처리량은 4위, 총 화물처리량은 5위다. 전망은 더 밝다. 왜냐하면 평택항은 전기한 것처럼 앞으로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 일류기업이 평택으로 입주하면 당연히 시너지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평택시는 서해안 시대의 가장 역동적인 도시가 될 것이지만 홀대를 당하고 있다. 평택항은 국내 항만 중 최단기간 내 총 화물량 1억t 달성과 3년…
“요트 항해의 목적지를 한국에 정한 것도, 어머니 고생의 대가로 이렇게 자란 장한 딸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요트 항해 중의 모든 고생들은 어머니를 만난다는 한 가지 희망 속에서 자연스레 극복되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어머니는 우리들의 항해에 끊임없는 등댓불이었습니다.” 1974년 파독 간호사로 간 김영희씨는 독일인 남편 루디 하나스와 함께 세계 일주를 하기위해 1983년 요트를 타고 독일을 출발한다. 그리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한 후 3년여 만인 1986년 5월 한국에 도착, 그해 8월 항해 체험을 글로 적은 오이라스(Euras)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다. 이것이 바로 동양 최초로 여자가 쓴 요트 항해일지다. 윗글은 그 내용 중 일부다. 이 책은 당시로선 생소한, 요트라는 배를 타고 남편과 함께 겪은 초인적인 생활을 기록한 매우 이색적인 소재의 글이어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요트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30년 초, 연희전문학교 언더우드씨가 광나루에 ‘황해요트클럽’을 만들고 요트를 띄운 것이 시초다. 본격적으로 요트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대한요트클럽이 창단하면서부터. 그리고 40여년이 지난 현재 요트는 해양레저와 스포츠
조용한 아침이다. 한참 집안 일로 분주한데 방송소리가 들린다. “알려드립니다. 오늘 저녁 마을 부녀회의가 있으니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마을 부녀회장이 회원들 집합하라는 방송이다. 마을에서 자주 만나지 못하니 얼굴도 잊어버리겠다며 다달이 만나 예전같이 돈독한 사이로 지내보자고 해서 하는 부녀회의다. 예전엔 마을 대동우물이 사랑방 역할을 했다.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면서 집집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을 오랜 경험이 있는 형님들의 조언으로 일의 진로를 정하기도 했다. 첫새벽부터 물을 길러 와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고, 오전 아홉시쯤 되면 우물은 여인들이 빨래하는 풍경으로 바뀐다. 그 시절 곱디고운 새색시들은 선배 형님들의 보호를 받기도 했지만 여차하면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야했다. 한쪽에서 빨래를 하며 마을 형님들이 구수하게 펼치는 집안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을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었고, 어떻게 처신해야 어려운 시집식구들과 잘 어울리며 살 수 있는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웃는 일로 우물가가 시끌벅적하기도 했고 때로는 슬픈 일로 함께 눈물짓던 우물가
1974년 8월9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결국 대통령직을 사퇴했다. 사건이 불거진 지 2년2개월여 만이다.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고 닉슨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정치 스캔들,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은 처음 문제가 불거진 뒤 ‘침입사건과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거짓말로 드러났고,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중도 사퇴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거짓말은 가면을 뒤집어 쓴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거짓말이란 눈뭉치와 같아서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고 했다. 딱 그 모습에서 한 뼘도 벗어나지 못했다.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프랑스 칸영화제가 지난 15일부터 26일까지 열렸다. 올해 우리나라는 장편 경쟁부문에 한 작품도 진출하지 못했다. 다만 문병곤 감독이 단편 경쟁부문에서 &lsquo
두어 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여학생이 부지런히 와서 문을 두드린다. 매년 5월 중순이면 있는 스승의 날 기념식 때문이다. “선생님, 이제 식을 시작한대요. 가세요! 아니 교수님이지. 죄송해요, 교수님!” 당황스럽지만 낯선 경험은 아니어서 나는 웃으며 알려준다. “교수는 직위고, 나는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 선생이 맞아.” 학생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몰랐어요. 근데 선생님보다 교수님이 더 좋은 거 아니에요?” 할 말이 없다. 학생을 탓할 수도 없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게 학생의 일 아닌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호칭에는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보다, 대학교육에 종사하는 교수가 더 위라는 생각 같은 것이 그 예다. 물론 교수가 좀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전문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다른 교육기관에서 차지하고 있는 직위의 표현이지,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 선생이라는 것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먼저 배웠기에 앞에서 알려주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그런 점에서 선생이란 용어가 참 좋다. 나에게는 초중등 교육에 종사하
수원시가 엊그제 4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하는 서수원 종합발전방향을 내놓았다. 수원비행장 이전, 수인선 시가지 구간 지하화, 농촌진흥청 이전부지 농업테마공원 조성, 돔구장 건립 후보지였던 당수동 국유지 개발이 시가 제시한 4대 프로젝트다. 익히 알려진 숙원사업들이긴 하지만 시민들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사업들을 총정리하고 강력한 실천의지를 밝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들 사업 가운데는 이미 결정이 이뤄진 것도 있고,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들도 있다. 이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서수원뿐만 아니라 수원의 면모가 확연히 일신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난관도 예상된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업무협약이 체결된 수인선 지하화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당수동 국유지 개발도 짜임새 있는 계획을 세워 집행하면 훌륭한 여가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수원비행장의 경우 군공항이전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즉각 이전이 가시화되리라고 예상하기 어렵다. 이전장소의 결정부터 이전 방식과 비용에 이르기까지 첩첩산중이다. 시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농진청 이전부지 활용문제도 매입협상과 활용방안 및 재원조달까지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