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에 물집처럼 /김두안 달이 뜬다 해도 지기 전에 뜬다 나는 어둠이 보고 싶어 내 어두움도 보일 것 같아서 부두에 앉아있는데 달이 활짝 뜬다 달빛은 심장을 욱신거리게 하고 희번득 희번득 부두에 달라붙고 있다 아 벌리다 찢어진 입가에 물집처럼 달빛은 진물로 번지고 있다 달은 어둠을 뻘밭에 번들번들 쳐바르고 있다 저 달은 환하고도 아찔한 내 안에 근심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초병에게 쫓겨가는 통제구역인 것 같아서 나는 캄캄한 나를 어떻게든 더 견뎌 보기로 한다 우리 삶은 상처들로 막을 이루고 있다. 사라진 꿈들 혹은 누군가 내게 입혔던 내가 누군가에게 입혔던 얼룩들. 시인은 지금 달과 마주 앉아 있다. 고요한 달의 몸을 벗겨내고 있다. 벗겨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불러내고 있다. 고백하고 있다. 상처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달 속에서 걸어 나온 것마다 모두 고통의 낯으로 서있다. 뾰족해진 빛의 혈족들이 번식해 환해지는 내면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수심이 덧나 온 몸으로 번져간다. 썰물처럼 쫓겨 가다 밀물로 잡혀와 출렁이고 있다. 시인의 내면을 부풀리고 있는 달의 역동성이 빛나는 시이다. /김유미 시인
우리나라 농촌이 직면한 비극의 하나는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진지 오래란 점이다. 내가 아는 50여 호 되는 한 마을에서는 가장 어린 주민이 57세이다. 70대, 80대 노인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러니 농촌 마을에서 희망을 가지기는 턱 부족일 수밖에 없다. 마을이 마을로서 제구실을 하고 바람직한 공동체가 되려면 어린이들과 청소년, 청년, 장년 그리고 노인들이 어울려 살며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어야 할 터인데, 노인들만 남아 있으니 시들어가는 마을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래서 남은 삶의 설계를 새롭게 하여 멋있는 노후를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렇다면 20년 이상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를 장고(長考)한 결과, 삼모작 인생(三謀作 人生)을 새롭게 도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퇴직금 전액을 투자하여 동두천 쇠목골이란 골짜기에 6만평의 산을 매입하였다. 이곳에서 나의 노년을 멋있게, 행복하게 보내기로 작정하고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늙어서도 일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70세가 넘으면 안방에 들어앉아 기침이나 하며 노인 냄새를 피우면서 젊은이들에게 짐되는 나날을 보내려고들 한다. 나는 그런 식의 노후
서해 바다 꽃게의 씨가 말랐다. 옹진군 집계에 의하면 지난 5월 말까지 연평어장(801㎢) 꽃게 어획량은 5만1천600㎏으로 작년 같은 기간 14만9천995㎏에 비해 약 70%p가 줄어들었다. 2014년 같은 기간에 비하면 85.5%p나 급감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질대로 깊어져 조업을 그만둬야 할 지경이다. 가격도 폭등해 서민들이 제철맞은 꽃게를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3개월(3~5월) 수꽃게(3㎏) 가격은 1만8천728원으로, 작년보다 152% 올랐다. 암꽃게(3㎏) 5월 거래가격은 2만2천214원으로, 이는 전년에 비해 112% 올랐다. 어획량이 줄어 산지가격도 뛰었기 때문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 남북한과 중국 간 6월 꽃게조업 경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꽃게의 산란기를 맞은데다 7~8월은 꽃게잡이 금지기간이어서다. 꽃게 값이 폭등한 중국도 어선들이 서해로 몰려와 치어까지 싹쓸이하고 있다. 해양경비안전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 6월 들어 NLL 인근 해역에서는 중국어선 300척, 북한어선 190척, 우리 어선 100척 가량이 조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중국과 북한 어선들
수원에 있던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타지로 이전함으로써 수원은 더 이상 ‘농업과학 도시’ ‘농업의 메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없게 됐다. 농진청과 함께 농업수원의 두 축이었던 서울 농생대는 수원시민들이 ‘수원농대’라고 불렀을 정도로 지역의 사랑을 받던 학교였지만 지난 2003년 서울 관악캠퍼스로 옮겨가고 난 후 10년 넘게 폐허로 방치돼 왔었다. 학생과 교수, 교직원들이 사라진 캠퍼스는 폐쇄돼 잡초만 무성했고 빈 건물들은 흉가와 같았다. 학생들을 상대하던 인근 점포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상실감에 젖은 주민들은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농대 부지를 공원으로 개방하라고 집단시위까지 벌였다. 이에 2013년 경기도가 농대부지-시흥 경인교대 부지를 맞교환한 뒤 시민들에게 공원으로 전면 개방했다. 그리고 도는 옛 서울대 농생대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성과물이 지난 11일부터 문을 연 경기상상캠퍼스다. 경기상상캠퍼스는 3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개장했는데 핵심공간은 경기청년문화창작소와 상상공학관이다. 경기청년문화창작소는 청년들이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는 창직(創職) 실험과 창직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곳이다. 경기생활문화센터, 어린이
인사동이라는 이름에는 왠지 모를 설레임이 담겨있다. 맑고 쾌청한 날은 쾌청한 데로, 날씨가 흐리면 흐린 데로 그 나름대로의 멋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인사동이다. 거리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인사동은 많은 외국인이 찾는 관광명소가 된지 오래다. 오늘은 아무 준비 없이 훌쩍 다녀올 수 있는 인사동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인사동여행은 안국역에서 가까운 북인사 마당에서 출발해보자. 북인사 마당에 인사동관광안내소가 있으니 인사동 관광지도를 한 장 받아들고 출발하는 것도 좋다. 북인사 마당에서는 ‘북인사 물길’이라는 상징물을 만날 수 있다. 이 상징은 두꺼비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으며 북인사 마당에서부터 시냇물이 흐르듯 물길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상징화시켰다. 북인사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쌈지길이 나타난다. 쌈지길은 인사동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쌈지길이 탄생하기 전 인사동의 랜드마크는 수도약국이었다. 랜드마크 자리를 내준 수도약국은 아직도 쌈지길 옆에 자리하고 있다. 쌈지길은 12개의 작은 가게를 살리는 일환으로 시민들과 인사동 상인들이 함께 노력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쌈지길은 오솔길들을 따라 정상에 오르듯, 작은 가게들을 길로 연결해 사람들이 모이고…
왜에에엥~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어디론가 긴급하게 달려간다. 기세 좋게 달려나가던 소방차는 도심에 들어서서는 멈칫멈칫 굼벵이처럼 굼띠기만 하다. 가마솥 안에 콩처럼 소방차 안에 타고 있는 소방대원들은 1분1초 지체에 안절부절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밀려있는 앞차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심 또는 피양을 해주려고 해도 측면 주정차 차량들로 인하여 우물쭈물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전국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아파트, 주택가, 시장상가 등 진입로 여건의 공통점은 차량 급증에 따른 주차 공간 부족에 의해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이 화재발생 또는 응급환자 발생 시 긴급 출동하는 소방차의 신속한 진입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에 초기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에 어려움을 겪는 등 신속한 현장 도착을 위한 소방출동로 확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실례로 지난해 1월 의정부시 아파트 1층 주차장 오토바이에서 시작돼 인접한 아파트와 4층 상가건물까지 불이 옮겨 붙어 134명의 사상자와 함께 90여억원의 재산피해를 낸 대형 화재사고가 있었다. 이 화재사고가 대형사고가 된 이유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명확한 한 가지는 이미 알려진 바대로 출
신문산업이 위기라고 한다. 신문은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과 함께 4대 대중매체 중의 으뜸인 시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 시절만 보더라도 TV수상기의 보급률이 아주 낮아 일간 신문이 가장 중요한 정보습득의 수단이었다. 학기 초에 담임교사가 가정환경조사를 할 때 TV 있는 학생 손들라 하면 한 반에 불과 몇 명뿐이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만화가게에서 쿠폰을 받아 TV 한 시간 구경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대표적인 일간지에서는 소년신문을 같이 발행할 정도였다. 1995년 신문구독률은 거의 70%에 육박했다. 10여 년이 지난 2006년에는 35%대에 머물렀다. 지금은 더할 거다. 라디오가 탄생하면서 망한다던 신문은 그래도 아직 건재하고는 있다. 그러나 상위기술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그 존재가치는 미미해진다는 분석이다. 주 수입원인 광고시장도 다양한 다른 매체에 잠식당해 신문사들의 운영이 만만찮다. 140년 된 미국의 대표 일간지 WP(워싱턴포스트)도 경영난에 봉착해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에게 3년 전 팔려 신문업계의 충격이 컸다. 젊은 층을 비롯한 요즘 사람들이 신문을 안 본다는 사실에 크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현대인들이 인터
찔레꽃 아버지 /김경애 느그 아부지는 학교 댕길 때 공부는 잘했다는디 할 줄 아는 것이 암껏도 없시야. 마늘, 양파 밭에 농약 치면서 아버지가 줄도 제대로 못 잡는다고 너무 화가 난 우리 엄마. 딸딸거리는 경운기 몰고 가면서 시동도 못 거는 양반이라고 자꾸만 아버지를 흉본다. 마늘 뽑다가도 ‘동물의 왕국’ 본다며 찔레꽃 한 아름 꺾어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두고 엄마는 원수, 사자, 속창시 없는 인간이라고 오후 햇살 아래 험담을 널어놓는다. 한 동안 찔레꽃 향기로 가득해지는 우리 집 방안 무담시 순해지는 엄마, 성명자씨. 아픈 가족사가 종종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때가 있다. 시간이라는 강력한 치료제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풍경은 현재라는 시간의 행복한 포로가 된다. 이 시도 그렇다. 겉으로 보면 제대로 일(농사)도 못하는 무능한 ‘아부지’와 그걸 흉보거나 타박하는 억척스런 ‘엄마’는 대립·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부모의 불편한 관계는 어린 자식에게는 상처가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상처는 화해의 다른 이름이 된다. ‘속창시 없는&rsq
일기예보는 또 빗나가고 말았다. 오후부터 내리겠다고 했던 비는 전날 저녁부터 후두둑거리며 무거운 빗방울을 떨어뜨리더니 하룻밤을 참다 끝내 새벽에 울음보를 터뜨렸다. 하는 수 없이 작은 구멍이 뚫려 통기성도 좋고 굽도 낮아 편안한 구두를 두고 전에 자주 신고 다니던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연휴 내내 서서 일을 하느라 피곤했던지 잘 맞던 구두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운동을 마치고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가벼운 수다를 곁들인 티타임을 끝내고 헤어졌다. 비는 그치고 바람은 산뜻했다. 그새 발이 더 자랄 리는 없는데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프게 조여 왔다. 한 걸음 옮기는 일이 그야말로 저승 같았다. 그렇다고 집으로 전화를 해서 다른 신을 가지고 오라고 할 수도 없고 벗어들고 맨발로 걷자니 볼썽사납겠고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의 통행이 드문 골목에서 꺾어 신고 걸었다. 처음에는 조금 편해진 듯 했으나 몇 걸음 만에 허사였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죄 없는 구두를 당장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휙휙 되는 대로 내동댕이쳤다. 아침을 먹고 잠시 신문을 보는 동안에도 발로 신경이 간다. 양말을 벗고 살펴보니 엄지발가락이 시작되는 부분이 빨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