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왕벚나무 자생지로 제주에는 살아 있는 보물과도 같은 자원이다. 자생지를 보존하고 다양한 유전자원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왕벚나무와 같이 세계인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보물로 만드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미국 농업연구원 벨츠빌지역 국립유전자원부 정은주 박사가 지난해 3월 ‘왕벚나무 자생지-제주’를 주제로 한 말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벚나무는 1910년 일본 도쿄시장이 2천 그루를 기증하면서 처음 심어졌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벚나무가 모두 일본산이라고 생각을 한다. 미국에선 1935년 처음 벚꽃축제가 시작돼 필라델피아, 뉴저지, 샌디에고, 시애틀, 하와이 등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캐나다와 영국,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도 벚꽃축제를 열만큼 봄축제의 대명사가 됐다. 워싱턴 DC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에 ‘한국 정원’이 생긴다. 아메리칸대가 한국정원을 조성키로 한 것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1943년 4월 8일 이곳에 심은 제주산 왕벚나무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이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폴 더글러스 당시 아메리칸대 총장과 함께 한국 독립을 염원하는 지성
멀쩡한 사람이 이런저런 핑계로 군에 입대하지 않고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특히 연예인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우람한 체격에 씩스팩을 자랑하며 상의를 훌훌 벗어 던지던 한 연예인의 군 면제사유가 허리 디스크 였다고 한다.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자였다가 군대 면제받고 정상인으로 돌아와 멀쩡히 활동하는 예도 있다. 이렇듯 연예인들의 알듯 모를 듯한 병역 면제 사유를 보면 병무행정의 기준이 무엇인지 또 병역의무를 다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배우 현빈은 참 멋진 연예인이다. 해병대 복장을 한 배우 현빈(본명 김태평)이 23일 경북 포항시에서 7주간의 산병교육을 마치고 꿈과 같은 4박5일간의 휴가를 얻어 집에 도착하는 사진이 일제히 보도됐다. 군에 입대할 나이치고는 고령에 해당하는 29살 나이에 군에서 힘들기로 유명한 해병대에 자원 입대해 전국민의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현빈은 포항시에서 신병교육을 마친 뒤 22일 인천에 도착, 중구에 있는 도서파견대에서 신고식을 하고 4박5일간 휴가를 떠났다. 오전 8시께 군 동기 50여명과 함께 4열 종대로 줄지어 부대 정문을 빠져나왔다. 햇빛에
언제부터인가 길거리 간판에 외국어가 등장하더니 요즘은 무척 많아졌다. 처음엔 우리나라 말과 글 주변에 작은 글씨로 외국어를 표기하더니 점점 더 커져서는 주객이 전도됐다가, 이젠 아예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간판이 드물지 않다. 회사명, 사업체명을 외국어로만 만들고 표기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이다. 최근 어느 한 자동차 업체도 외국어만으로 된 간판을 전국적으로 달았고 은행, 주유소, 빵집, 커피전문점 등도 외국어로 만든 사명에 그 언어로 된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외래어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외래어는 부족한 고유어의 표현력을 보충하고 의사소통을 더욱 원활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말 체계 속에 토착화된 한자와 한자어는 우리말의 표현력과 조어력, 의사전달력을 많이 향상시켰음은 누구나 안다. 더욱이 최근에는 라디오, 온라인, 인터넷 등과 같은 영어가 우리말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는 일 또한 외래어 수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언어란 한 사회의 문화와 사고 체계를 규정한다. 우리말이 외래어나 외국어로 대체됐을 때 우리의 문화와 사고 체계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경기도가 3년째 진척이 없는 고양 한류월드 조성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2008년 5월 착공한 이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금난에 허덕이며 3년째 제자리걸음인 1구역 테마파크 조성사업을 정상 추진하기 위한 자금확보 방안을 강구중으로 이달말께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도가 추진중인 한류월드 조성사업은 5조9천400억원(공공 1조440억원, 민간 4조8천960억원)을 들여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일대 99만4천여㎡를 1~3구역으로 나눠 ‘한류(韓流)’를 테마로 한 복합문화관광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1구역과 2구역 모두 사업자가 토지매입비 중도금을 제때 내지 못해 계약 해지를 당했거나 당할 처지에 놓이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그나마 숙박시설과 공공시설이 들어서는 3구역만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고 있다. 한류월드 사업이 난항을 겪게 된 것은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은행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이 막히면서다. 1구역 사업자인 한류우드㈜는 2006년 5월 테마파크(24만㎡)와 상업시설(4만2천㎡) 28만2천㎡를 1천888억원에 공급받기로 계약을 체결한 뒤 1천449억원을 납부하고 2009년 9월부터 중도금 381억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문 밖에 형성된 상가들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젊은이나 중·장년층 할 것 없이 저녁나절 모임을 갖거나 삼삼오오 만나 한잔할 때는 으레 이곳에 약속 장소를 잡았다. 당시 장안문 일대는 수원상권의 중심지였다. 그러다가 상권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면서 이 지역은 사양길로 접어들고 시민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거북시장이라고 불리는 상가의 상인들이 상권의 부활을 외치며 일어섰다. 상인회를 구성하고 각종 축제를 열면서 손님 끌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북시장 일대의 원래 지명은 ‘새술막거리’였다. 약 220여년전 정조대왕의 명에 의해 화성축성공사가 벌어질 때 건축현장의 인부들과 감독관들을 위해 생긴 주막거리였던 것이다. 화성축성 책임자가 모자라는 화성 축성비용에 보태기 위해 예쁜 주모들을 채용해 인부들의 노임을 노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물론 ‘전설’이기는 하지만 새술막거리는 그처럼 흥청거렸다. 여기에 인근에 영화역이 있고 장용외영 훈련장도 있었으니 주막은 물론 음식점과 시장도 들어섰던 것이다. 이곳에서 지난 23일 ‘새술막거리 술축제’가 열렸다. (사)거북시장 상인회(회장 차한규)가
어릴 적 경안천은 참 맑았다. 경안천 냇가에서 자란 나는 그 곳이 주요 놀이터였다. 방학이나 휴일은 늘 냇가에 가서 살았다. 여름에는 멱을 감고 겨울에는 썰매를 탔다. 봄볕이 흙 속으로 녹아 들 무렵이면 하루 종일 강변을 돌아다녔다. 모래사장과 자갈밭 사이에 물떼새의 알이 놓여 있어 새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급한 우리들은 물고기를 잡고 다슬기와 말조개를 주웠다. 물 밑의 돌을 들추면 징거미새우, 미꾸라지, 모래무지 등 ‘물반 고기반’이었다. 맨손으로 움켜 잡았다. 장마철 홍수가 나고 사나흘 지나면 사납게 소용돌이 치며 흘러내리던 냇물의 흙탕물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해가 뒷산에서 두 뼘 정도 올라오면 우리들은 개울가에 모여 강물을 헤엄쳐 건넜다. 센 물살 때문에 물도 몇 모금씩 들이키면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강 건너기를 몇 번 하고 나면 하루해가 저물었다. 강 건너 넓은 들에는 이른 봄부터 기름종이를 고깔처럼 씌워 가꾼 수박 참외가 끝없이 줄지어 익어 갔다. 겨울이 되면 손을 호호 불면서도 냇물이 얼었다 싶으면 재빨리 썰매를 메고 나왔다. 날카로운 날을 박아 넣고 선 자세로 타는 외발썰매는 대단한 속도를 자랑했다. 한참 달리다가 목적지에 다 왔을 땐…
이순의 나이에도 피붙이 가족 빼놓고, 좋은 것 하나 고르라면 서슴없이 정겨운 친구를 고르겠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함께 뒹굴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어릴 적 친구도 있고, 사회 초년병 시절 만난 친구,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 나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따라서 꼬맹이 친구들과는 우정을 쌓을 수 없었고 스물이 갓 넘어 우연히 만난 필연의 친구들이 꽤 많다. 60년대 후반 연기학원을 다녔다. 영화배우가 아닌 연극연출이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다. 이 때 故 하길종 감독의 처녀작 ‘화분’이라는 영화에 출연했고, 70년 초에는 당시 김동훈, 오현경, 김순철, 이낙훈, 이순재, 최불암 등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들이 있는 실험극장이라는 극단에 들어가 기초를 다졌다. 그 후 외국인이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에 입사하면서 연출의 꿈은 접었지만 그 꿈은 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어느 날 잘 가던 단골다방에서 모 예술학교 출신들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나리오 작가와 연극배우 등을 만나 그들과 의기투합해 우정을 키워 나갔다. 그중 시나리오를 쓰던 친구는 당대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던 고 유현목 감독이 제작하고, 얄개
‘변화를 만드는 날(Make a difference day)’. 1992년 2월 29일 미국 유에스에이 위크엔드가 일일 자원봉사 경연대회를 처음 개최했을 때 신문은 그 날을 이렇게 명명했다. 바로 시민들의 자원봉사를 새로운 변화 창출의 활동으로 본 것이다. 오늘날의 선진국가는 이렇게 사회변화의 원동력을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에서 찾고 있다.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지에서 벗어나 시민 스스로가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매년 10월 1일 공동모금켐페인이 시작되면 일본 각지에서 20만 명의 민생위원들을 비롯,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선다. 모두가 시민 자원봉사자들인 이들은 1주일간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사랑의 깃털’을 팔면서 가두 자원봉사를 벌인다. 일본 왕세자비도 이날만은 시민들과 함께 모금행사에 참가해 자원봉사를 한다. 홍콩에서는 불우이웃돕기만이 아닌 지역사회 자원봉사 활동을 권유해 해마다 ‘옷 벗는 날’을 정한다. 이날엔 모든 홍콩 시민들이 외출복을 벗고, 구두를 벗고, 자원봉사에 나서보자는 것이다. 볼런티어(volunteer)라는 말은 라틴어로 ‘내가 시작하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vol(volo)은 이처럼 자발적인 의지를 나타
나는 평생을 고향을 지키며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낙후된 고향의 현실을 바라보며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개인봉사만으로는 지역에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한계가 있어 지방의원이 돼 제대로 해보고자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 출마, 제6대 양주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1년 가까이 지난 오늘 그저 평범했던 한 가정의 가장이자 농업인이 이제는 20만 양주시민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봉사의 정신을 실천한다는 것이 그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을 섬기는 자세로 주민들이 바라는 의원이 되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의정활동을 하려 주변에서 많은 조언과 당부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처음 등원하는 날 의회에서 선서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항상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의원으로서의 지난 1년 여 가까운 시간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새 신발을 신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발에 맞지 않아 어색하고 약간은 힘든 것처럼…. 그러나 정신없이 뛰고 다니는 동안 의정과 시정의 흐름을 알게 돼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 졌다. 의원이 아닐 땐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것들
이명박 대통령이 ‘제31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찾아간 서울 금천의 한 장애인 고용 우수기업 아름다운사람㈜은 지난 1998년 문을 연 신사복 제조업체로 전체 근로자 183명 중 여성장애인 33명을 포함해 44%(80명)가 장애인이라고 한다. 이가운데 청각·언어 장애인이 46명, 지적 장애인이 12명, 지체 장애 8명, 간질 등 기타장애인이 14명이다. 장애인의 날에 이 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장애인들의 어려움과 특성을 이해하려는 이 회사 김창환 대표(54)의 남다른 장애인에 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넉넉지 않은 회사 살림에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높낮이 조절용 작업대, 저층용 엘리베이터 등 다양한 장애인 편의시설들을 설치했다. 신사복 제조업체인 이회사는 연 매출이 70억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신사복 제조업체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007년 매출 72억원을 기록한 이후 4년간 70억원대를 유지해오고 있다. 올해는 8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납품처도 (주)LG패션, 세계물산, SK네트웍스, (주)크레동 등 국내외 고급 신사복 메이커들이 고객이다. 이 대통령이 ‘특별한 회사’를 찾아 사업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