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란 옛 부터 특정 지역에서 전승돼온 민중 문학의 한 형태로 역사성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성들의 지혜를 결집시키기 위해 유래, 설화, 민담 등을 토대로 지역 특색에 맞게 전해 오고 있어 문화적 가치가 높다. 김포는 흥미와 신비감으로 많은 전설들이 전해오고 있는데 애기봉, 투금포의 전설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생 애기와 평양감사의 사랑은 애절하다 못해 처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당시 오랑캐의 침략으로 변란이 일어나자 평양감사는 뒤따라 가기로 약속 하고 애기를 먼저 피난길에 오르게 해 이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연약한 몸으로 수천리를 걸어야 하는 일이 힘겨웠지만 이를 참고 견디며 도착했으나 평양감사는 포로로 잡혀 정반대인 북쪽으로 가게 되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애기는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이곳에 올라와 님 오기를 고대 하지만 올 리가 만무였다. 애절한 그리움이 한으로 맺혀 죽음에 이르게 되자 이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애기봉 되었다는 전설이다. 지금도 북한 땅이 한 눈에 보이는 애기봉 정상은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는 망향의 동산이 돼 평일에도 많은 인파가 찾아오고 있다. 천둥고개의 전설도 많은 이로 부터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지금
요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두가 시사평론가요, 사회비평가들 뿐이다. 그만큼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인데, ‘팩트(fact)’를 읽는 시각의 다양성과 수준에 적잖이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일어난 일본 동북부 지방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原電)의 방사능 유출사고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해석은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이 등장하는가 하면 중국 산샤(三峽)댐 건설이 원인이라는 이들까지. 들어보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대화가 오간다. 이런 가운데 심각한 것은 방사능 유출에 대한 문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전국 곳곳에서 요오드와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잇따라 나오면서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검출된 방사성 물질이 극히 적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정부의 설명도 아랑곳 없다. ‘인재(人災)는 분란을 낳고 천재(天災)는 단합을 가져온다’는 말이 있다. 일본 대재앙의 경우 이 말은 대체로 들어맞는다. 지진과 쓰나미가 천재라면 원전사고는 인재에 해당한다. 처음 엄청난 지진과 쓰나미가 닥쳤을 때 매뉴얼에 충실한 일본인들답게 놀라우리만치 침착하게 재난에 대처
지난 2002년 세상을 떠난 故 사운 이종학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가 회피해 온 독도문제에 자신의 사재를 들여가며 자료를 찾고 연구하는 등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맞선 재야 서지학자였다. 그분은 1980년부터 일본을 50여 차례 드나들며 일본 국회 도서관, 고서점 등에서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증거가 담긴 지도와 자료들을 끈질기게 찾아냈다. 이 자료들로 인해 울릉도의 명물인 독도 박물관이 생겼고 이종학 선생은 독도박물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3년만에 스스로 사표를 던졌다. 정부의 미온적인 독도정책에 분노했던 것이다. 그가 수집해 기증한 독도 박물관 전시 자료들은 일본 스스로가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확실히 기록했던 역사적 증거품들이었다. 이처럼 확실한 증거 자료가 있음에도 우리 정부는 일본의 독도발언과 행위에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다. 특히 1999년 발효된 新한일어업협정에 따라 대한민국과 일본의 독도에 대한 권리는 대등해졌다. 독도주위의 해역을 ‘공동관리수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이 집요하게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는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무대응이 전가의 보도인양 침묵하고 있다.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를 갖지 못하는 실효적 지배를
초·중·고등학교 주변 자동차도로 건널목에서 흔히 목격되는 장면은 놀랍다. 학생들이 차도를 건너갈 수 있는 녹색신호등이 점멸하고 붉은 신호등으로 바뀌어도 학생들은 줄을 이어 건너간다. 일단의 무리들이 모두 건너갈때 까지 신호등은 아예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신호등을 지킨다는 것은 설령 학교에서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청소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기초적인 규범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초질서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다양한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에서 한국 청소년이 세계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국제교육협의회(IEA)의 2009년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ICCS)’ 자료를 토대로 세계 36개국 청소년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을 분석한 결과다. ICCS 자료는 해당국 중학교 2학년생 14만여명을 설문 조사한 것인데, 한국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는 0.31점(1점 만점)으로 35위에 그쳤다. 세계화, 다문화 시대의 주역이 돼야 할 우리 청소년들의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이처럼 취약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 청소년들의 정부와 학교에 대
“넌 왜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안 하니?” “……” “난 정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어” 정색을 한 아빠가 어린 딸을 세워놓고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 대견한 그 모습에 ‘가정교육, 예절교육이 실종됐다지만 잘만 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될 텐데….’ 그런 생각까지 해봤다. 극한상황에서도 질서를 지킨다는 일본의 국민성이 세계를 놀라게 한 이달 중순 어느 날이었다. 우리가 일본의 대지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선 인간의 과학기술과 그것으로 이룩한 문명은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거의 장난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배도 건물도 자동차도, 인간이 애써 만들어놓은 온갖 것들이 바닷물에 뒤엉켜 밀려오는 현장의 공포가 ‘생중계’된 것도 충격이었지만, 더 끔찍한 것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파손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으로 직결되는 줄 알았던 문명이 오히려 대재앙의 원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위안을 느끼게 하는 장면도 없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휴머니즘의 발휘가
얼마 전 갓 결혼한 막내아들 부부가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공항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돌아서서 배웅하였다. 삼십이 넘도록 밥상머리에서 생선뼈 발라주며 품어온 자식을 멀리 보내는, 서운함을 추스르지 못하여 밤안개 가득한 공항도로에 눈물을 뿌렸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자식, 그 ‘자식사랑’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 ‘흉년에 어른은 배고파 죽고 아이는 배 터져 죽는다’는 말과 같이 자신은 굶어도 자식은 먹여야 하는 것이 부모이다. 부모는 자식을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고, 더 좋은 교육을 위하여 어떤 어려움이나 희생도 마다 않는다. 몇 해 전, 북한 황강 댐의 무단방류로 임진강 물이 갑자기 불어났을 때 낚시하던 젊은이가 아들을 먼저 보트에 태워 보내고 자신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한 패륜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법에 호소하는 부모도 있다. 부모에게 자식은 언제나,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보다도 먼저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된다는 것은 신(神)의 뜻,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신은 인간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충실하게 보전(保全)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식을 낳아, 그 자식이 짝
취득세 50% 감면을 골자로 한 정부의 3.22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지난 28일 성남을 포함한 고양, 광명 등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의 모임인 경기도민주당시장협의회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개정안 통과시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거부의사를 밝혔다. 경기도 역시 도와 도의회는 간만에 하나의 목소리로 정부의 방침에 대해 비난하고 나섰다. 취득세는 부동산·차량 등 자산의 취득에 대해 부과하는 조세로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세수다. 경기도는 취득세를 걷어 55%를 사용하고 40%는 시·군, 5%는 도교육청에 분배한다. 취득세 50% 인하가 광역지자체는 물론이고 일선 시군과 교육 사업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긴축재정에 들어간 성남시의 경우는 심각한 재정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취득세 50% 인하 계획에 따른 지방세수 보전방안을 내달 국회가 취득세 인하 법안을 심의하기 전까지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득세가 주민세나 자동차세 처럼 정기적으로 걷는 세목이 아니라 거래발생 즉시 들어오는 수입원으로 정부가 연말에 사후보전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기…
우리나라에 비행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을 한 후 10년 뒤인 1913년이다. 당시 일본 해군중위 출신인 나라하라(奈良原三次)가 용산 연병장에서 비행대회를 열었고, 나라하라의 조수인 시라토(白戶榮之助)가 ‘오토리(鳳)’호에 타고 6만 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 상공을 날았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 기록이다. 용산이 첫 번째 비행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여의도는 본격적인 비행장의 역할이 시작된 곳이다. 1916년 당시 경기도 시흥군이었던 여의도에 일본군이 간이비행장을 만든 이후 1924년부터 군과 민간의 공동 비행장으로, 그러다가 해방 후인 1948년부터 민간비행장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1922년 12월 한국인 최초로 안창남이 비행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민항사(KNA) 취항도 바로 이 여의도 비행장에서 이뤄졌다. ‘누구시든지 자유로 타실 수 있는 빠르고 안전한 태극기 그린 우리나라 비행기를 이용하십시오.’ 1958년에 나온 KNA의 상업광고 문구다. 밑에는 서울에서 대구 1시간 5분, 공주 1시간 20분, 부산 1시간 10분, 제주 2시간, 강릉 1시간으로 나와 있어 국내 5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의정칼럼을 쓰다니…. 의정칼럼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니 내 처지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사실 난 주부로서 심학산지킴이와 생태교실, 생활협동조합 운동, 작은도서관운동, 독서모임 등을 하면서 바쁘게 행복하게 살고 있었기에 내가 의원이 된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정치에 무심하게 살다가 지인을 통해 의원권고가 들어왔다. 당연히 나는 거절했다. “지금도 바쁘고, 해야할 일이 많고, 계획이 다 잡혀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그러다가 남편이 주위의 의견이라도 들어보라는 강권에 못이겨 나를 이사장으로 추천하던 두레생협이사들에게 물어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권하는 것이다. 잘할 거라며…. 그후 이런 저런 모임에서 얘기를 나누고 결정을 하였다. 이게 지난 해 2월의 일이었으니…. 이렇게 세 아이의 엄마로서, 주부로서, 생활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세우며 살아왔던 나였기에 의정활동도 생활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분석한다. 간디도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하면서 물레를 돌렸고, 노벨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유누스도 작은 마을에서 소액신용
얼마전 조정래 작가의 소설 ‘허수아비춤’이라는 책을 읽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을 주로 써왔던 조정래 작가가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집필한 이 책에는 권력층과 재벌의 비리가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기업의 비자금 조성과 전방위 로비, 편법상속 등 권력층과 재벌들의 비리와 탈법은 물론 로비를 위한 스카우트 전쟁, 로비를 성공시킨 부하직원에 대한 스톡욥션, 비자금 상납, 편법·불법 상속, 차명계좌 등 가진 자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 비자금 조성과 로비 등으로 받은 돈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명품 시계나 가방 등을 스스럼없이 구입하는 소위 상류층의 돈놀이도 노골적으로 적시했다. 이 책은 출간 50여일 만에 18만부가 찍힐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 지난해 한 예매 전문 사이트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본과 분배의 원칙이 올바로 지켜지는 경제민주화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책 제목을 허수아비춤으로 정한 것은 기업 집단의 만행이 ‘허수아비춤&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