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포 지역에서는 문둥이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한하운(본명 태영) 시인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지난 1975년에 작고한 시인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 지역에서 회자되는 것은 그의 유택이 김포시 장릉묘원에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다보니 수양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는가 하면 모 씨는 ‘시인 한하운 기념사업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임의로 유영록 김포시장을 이 단체의 고문으로 추대하고 여기저기 후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포 문인들 사이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한하운 선생에 대해 어떠한 방식에서든 추모관을 만들자는 논의가 이어져 왔다. 이 즈음 모 문학잡지사와 지역문인이 결탁해 ‘한하운 문학상’ 제정해 추진하고 시상도 했다. 당시 이 문학상을 빌미로 여기저기 후원금을 요청하고 문학상 심사기준과 달리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이 발견돼 기사화 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한바탕 홍역을 치루고 난 후 한하운 선생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잠잠 했었는데 다시금 선생의 이름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행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안타깝다. 선생의 ‘보리피리’ 시의 구절처럼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닐리리/’ 마치 한하운 시인이 구
그가 한지(韓紙)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열일곱, 6.25 한국전쟁이 나던 해였다. 선친이 조부의 대를 이어 한지 만드는 일을 했는데 어깨너머로 배우며 재미를 붙인 것인 것이 평생의 업이 됐다. 선친의 뒤를 이어 전북 전주와 임실 등지에서 ‘신일한지’라는 이름으로 한지를 만들었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이 손 종이는 창호지라고 불렀다. 한지는 서양 종이인 양지(洋紙)와 구별하기 위한 말이다. 양지가 들어오기 전에는 한지가 우리나라의 유일한 종이였다. “6.25가 끝나고 전쟁 통에 불타버린 문서들을 다시 만들면서 한지 수요가 엄청났어요. 그 때는 돈도 제법 벌었지요. 하지만 그도 잠시 뿐이고, 양지가 대량 생산되면서 힘들어졌습니다. 한지 만들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갔고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6호인 지장(紙匠) 장용훈 선생의 얘기다. 그가 지금의 가평으로 들어 온 것은 1977년이다. ‘가평 닥’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서 였다. 실제로 ‘가평 닥’은 예로부터 유명세를 탈 만큼 질이 좋았다. 그가 들어올 당시만 해도 수십여 농가에서 가내수공업으로 한지를 만들고 있었다.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란 말이 있다. 비단이 오백년을 간다면 한지는 그 배인 천…
모처럼 친구들과 소주라도 한잔 하는 자리에선 인생의 행복, 즐거움을 이야기 하기 보단 어렵고 힘들다는 한탄의 소리만 나온다. 비단 친구들만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이는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최근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생활물가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같다. 언제부터인가 자기 자신을 너무 비관적으로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20~30대는 취업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40대 후반에 접어든 직장인들은 언제 회사를 떠나야만 하는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공부에 매달리며 힘들어 하고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어려움을, 아직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세가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오륙도’(오십대 육십대에 계속 회사에서 근무하면 도둑놈) ‘사오정’(사십대 오십대 정년퇴직), ‘삼팔선’(직장에서 삼십팔세를 넘기지 마라),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다). 우리 주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은어(隱語)다. 이를 반영 하듯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40개 국의 2011년도 경제,…
양평군 하면 수려한 자연경관을 떠 올린다. 사람이 살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 들어 군락을 이루고 경제규모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도시적인 요건들을 갖춰야 한다. 주민들의 삶이 팍팍하지 않으려면 단체장은 재정수요를 늘려 자립도를 높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양평군의 재정자립도는 고작해야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52.2%다. 도내 시·군의 경우 동두천시(24.2%), 양평군(24.4%), 가평군(26.9%), 연천군(27.0%) 등이 하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양평군이 예산 750억원이 투입되는 양평 종합운동장 건립사업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군은 2008년부터 양평읍 도곡리 16만6천㎡에 군비 40억원을 포함해 750억원이 투입되는 종합운동장 건립을 추진해 왔다. 사업부지의 절반인 8만3천㎡를 매입한 군은 올해 안에 토지매입을 끝낼 예정이다. 초라한 재정자립도를 유지하고 있는 군이 무리하게 종합운동장을 추진하자 먼저 제동을 건 쪽은 군의회다. 의회는 “공유재산 관리계획을 승인받지 않고 ‘단체장 치적쌓기용’으로 불법적인 사업절차를 진행하고…
동춘서커스단은 1925년 박동춘 씨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서커스단이다. 이후 여러 유랑극단이 생겼으나 다 사라지고 지금은 동춘서커스단만 홀로 남았다. 동춘서커스는 볼거리가 없던 그 시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국민을 사로잡았던 최고의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동춘이 배출한 당대의 스타들도 많았다. 허장강, 서영춘, 배삼룡, 이주일, 이봉조 등이 동춘을 거쳐 갔고, 이후 남철, 남성남, 장항선 등도 동춘 출신 연예인으로 방송과 쇼무대를 빛냈다. 그러나 세월의 흐르면서 서커스의 인기는 급락했다. 제일 큰 원인은 텔레비전의 보급이었다. 지난해 어느 매체에 실린 현 단장 박세환 대표의 인터뷰에 따르면 1972년 4월 3일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TV 드라마 '여로'가 인기를 끌면서 동춘서커스단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TV의 힘이 그만큼 무서웠다는 것이다. 1972년~1975년 사이에 서커스단 18개 중에 서너 개만 남고 모두 망했다고 한다. 박 단장은 당시 주연배우이자 사회자였는데 그도 결국 1975년 서커스단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단장을 맡았다. 그러나 서커스의 인기는 갈수록 하락했다. 게다가 2003년에는 태풍
온갖 만물이 생동하는 3월은 희망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지금 교육현장인 학교는 입학 시즌으로 새 식구들을 맞아 새내기 교육이 한창이다. 지난 42년간 교육현장에 몸 담았던 나도 외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가슴뿌듯한 설레임을 느낀다. 처음으로 학부모가 된 큰 딸아이의 심정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해 보면서 몇 가지 교육에 대한 단상(斷想)을 적어 본다.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위대한 과업이며 인간을 창조하는 행위이고 사람으로서의 바탕과 모습, 습관이나 사고 마음의 자세와 가치관, 그리고 제반 능력과 기능을 싹트게 하고 자라게 하는 성스러운 임무임에 틀림없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교육학에선느 어렸을 때의 교육의 가치를 중요시 하며, 어렸을 때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여타의 교육은 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교육은 학교에서만 전담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참다운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며 그 중요성은 한층 크다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교육은 80%가 어렸을 때 완성 된다. 따라서 교육의 80%는 어머니와 가정환경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세살 버릇이
‘오해’와 ‘이해’의 공통점은 문자적 의미로 ‘풀이한다, 해설한다.’의 뜻이다. 목적어를 연결시키면 ‘무엇을 해설한다. 혹은 무엇을 풀이한다.’ 뜻이다. 문법에서 대상과 서술어만 있으면 의미론상이나 문장론상이나 별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허전하다. 따라서 ‘오해’의 ‘오(誤)’와 ‘이해’의 ‘이(理)’는 매우 중요한 매김씨의 역할을 한다. ‘오(誤)’는 ‘그릇됨’이요, ‘이(理)’는 ‘이치에 합당한’란 의미로 접근하면 의미파악에 별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즉 ‘오해’는 ‘잘못 이해한 것’이요 ‘이해’는 ‘오해가 없는 것’으로 새겨보니 그럴 듯하다. 우리는 수많은 오해와 이해의 혼돈 속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저기를 보라 계수나무가 있잖나?’했더니 맞장구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계수나무는커녕 손금만 가득하다는 사람도 있다. 계수나무를 본 사람은 가리키는 사람의 생각까지 따라가는 수동적인 사람일 것이요, 손금을 본 사람은 가리키는 사람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손금만 본 근시안(近視眼)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는 얼마든지 현실에서도 오해와 이해가 상충할 수 있다는 인간의 심리작용임에 분명하다. 대학원 석사과정 이
완벽을 추구해도 모자랄 판인 TV 뉴스 방송사고는 뉴스의 질적 수준을 의심케 한다. 스튜디오에서 앵커가 현장 리포트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기자를 수차례에 걸쳐 불러도 현장의 기자는 딴청을 한다. 앵커는 몸둘바를 몰라하지만 정작 몸이 다는 것은 오히려 시청자다. 지난 8일 KBS-1TV ‘뉴스 9’에서는 음향사고가 발생했다. 방송 끝에 날씨를 전하기 위해 등장한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갑자기 메아리처럼 10여초 울렸다. 앵커들은 별다른 사과없이 뉴스를 끝맺었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동굴 속 메아리 방송이다”며 비난했다. MBC ‘뉴스데스크’의 이정민(34) 아나운서는 뉴스를 진행하던 중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는 것을 모르고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된 적도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을 본 후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을 한 그의 능청스러운 모습은 한동안 화제가 됐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19일 방송된 MBC ‘주말 뉴스데스크’에서 엉뚱한 오디오가 겹치는 방송사고가 났다. 일본 지진을 위해 성금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소개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작게 들렸고 최일구 앵커가 다른 말을 하는 목소리가 잡혔다. 방송사고는 수 초 간 이어졌고 곧
드라마 시청률은 매우 중요하다. 광고 수입과 밀접한 관계도 있다. 공중파 방송에서 가장 즐겨 다루는 사극의 주인공으로 장희빈, 연산대군 등이 있지만 조광조(趙光祖)도 빠질 수 없다. 굴곡(屈曲) 많은 삶을 사신 분이다. 삶이 너무나 극적이기 때문이다. 반전(反轉)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다음 회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서 시청자 들은 TV 앞에 바싹 다가앉는다. 지나친 시청률 경쟁 때문에 속상할 때가 많다 야사(野史)에 논픽션을 가미시켜 역사를 소설화한다. 아이들은 이것을 역사로 배운다. 어찌됐던 조광조(趙光祖)선생에 대해 아직까지 말들이 많다. 이미 굳을 대로 굳어버려 규격화 되어버린 이 씨 왕조의 틀을 혁명적인 방법 외에 어떤 충격으로 부수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런 흠모도 있지만 학문과 경륜이 완숙되기 전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개혁하려는 것은 무리, 실패한 쿠데타는 가치가 없다. 이렇게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 시대에는 마을의 헌법 향약(鄕約)이란 것이 있다. 그 분의 정치적 공과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아름다운 향약을 제도화 한 분이다. 상부상조(相扶相助)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규약, 이렇게 사전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여러모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영역이다.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인 헤겔은 그리스를 서구인의 고향으로 묘사함으로써 서구 문화에서 고대 그리스가 차지하는 위치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정치 질서로 널리 인정받게 된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도 고대 그리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록 20세 이상의 아테네 자유 시민인 성인 남성만이 시민권을 향유했을 뿐이고 노예와 여성은 그런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을 정도로 제한적이었으나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방자치에서 법적으로 평등한 주민들의 총의에 의해 자치단체의 의사가 결정되고 지방자치가 운영되는 이른바 직접민주제가 이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방자치에서 그 구역과 주민수 등에 비춰 기술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민대표기관으로서 의회를 구성하는 이른바 대의제가 보편화되고 있다. 지방의회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최전방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민의의 산실이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지방의정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해 의정활동 수행에 많은 제약과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으며 중앙정치권의 부도덕함과 선거제도의 모순 등으로 발생되는 문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