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각급 학교에서는 입학식을 갖고 신입생을 맞았다. 새로운 출발에는 항상 설렘이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학생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또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된다. 올 3월에는 새 학기 증후군, 교실 없는 개교 등 매년 반복되는 뉴스와 함께 무상급식 문제, 거주형태에 따른 차별금지법안 발의 등이 교육계 이슈로 등장했다. ‘촌지수수 동영상’에 대한 논란도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부모의 참여와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새 학기, 그 역할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자녀가 입학하면 교육기관과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학부모라는 호칭이 붙고 역할도 주어진다. 교육기본법 제13조 1항에, 보호자는 “자녀 또는 아동이 바른 인성을 가지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할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라고 하였고, 2항에는 “자녀 또는 아동의 교육에 관하여 학교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학교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1항은 부모로서의 기본적 역할이고, 2항은 학부모와 학교의 관계를 밝힌 것이다. 둘 다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최근 강원도 횡성 중앙고속도로 43중 연쇄추돌 사고와 인천 영종대교에서 106중 추돌사고 원인 중 하나가 짙은 안개다. 도로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안개 낀 날 교통사고 치사율은 맑은 날의 3.7배라고 한다. 봄철인 요즘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해 안개가 잘 끼는 계절이며 산간지방이나 국도, 강변도로 등은 지형과 강과 저수지의 안개가 특히 심하다. 이에 짙은 안개길 안전운행 방법에 대해 몇 가지 알아보자. 첫째, 안개등을 켜야 한다. 운전자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안개등을 켜야 하며 안개등이 없을 경우 전조등을 하향으로 선택하고 비추면서 달려야 한다. 전조등을 상향으로 하면 미세한 안개입자에 의해 불빛이 난반사되어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둘째, 저속으로 운행해야 한다. 특히 시정거리가 100m 이하인 짙은 안개 발생 시에는 주행속도의 50%까지 감속해야 한다. 셋째, 차간의 거리는 2배를 넓히고 2차로로 주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앞 차와의 거리는 차체가 보이는 정도나 미등의 불빛이 눈에 들어오는 정도가 바람직하고 마주 오는 차량과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가급적 1차로를 피해 2차로로 주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마지막으로 주행시 앞차의 미등을 기준
불은 ‘등’이나 ‘전기’ 따위를 이용하여 어둠을 밝히는 물체로서 등불은 등에 켜놓은 불이며 손전등은 전구에 전력을 공급하여 빛을 내는 등으로 전지를 장치하여 손에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간편한 전등이다. 또한 불과 손전등은 안에서 밖으로 빛을 발한다. 그러나 등불은 내향적이다. 등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빛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밝힌 등불이다. 세상이 지혜가 부족하므로 그들이 실족할까봐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닌다. 그만큼 지혜를 사랑하는 헬라인다운 면모다. 반면에 손전등은 외향적이다. 손전등을 가진 사람이 외부를 향해 빛을 비추기 때문에 외향에 빛이 반사된다. 그리하여 상대 혹은 대상이 확인된다. 손전등은 21세기 과학발명품으로 인기가 있다. 등불은 자기를 밝히는 자아성찰을 의미한다.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 타인들이 그에게로 접근할 수 있다. 내향적이다. 그러므로 자아성찰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자기를 밝히므로 자신의 온갖 죄(罪)의 유무를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손전등은 편리한 현대발명품의 이기(利器)이다. 이것의 특징은 자기는
리더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아무도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리더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리더는 항상 ‘따르는 사람들’의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 나폴레옹은 한발 더 나아가 이런 말을 했다. ‘지도자는 희망의 상인이다.’ 리더십에 관한 수많은 말 중에 가장 멋진 말로 기록되고 있는데,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제(23일) 91세로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바로 이런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리 전 총리는 ‘희망’ 말고도 ‘변화’라는 생존법도 국민들에게 심어준 것으로 유명하다. 작은 섬 싱가포르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앞서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변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하다’며 이끌고 나가서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지금도 리 전 총리를 ‘변화의 리더십’을 갖춘 국부라 부르는 이유다. 1959년 싱가포르 정부 첫 출범 이후 리 전 총리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깨끗한 정부, 부패 없는 정부’는 지금도 싱가포르의 상징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리 전 총리의 ‘결단의 리더십’이라 불리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이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청렴지수 세계
꽃의 門 /김다희 밑씨가 은밀한 비밀의 문을 여는 시간 어둠을 하늘로 밀어올리는 꽃대 고독한 것은 스스로 빛나는 문장이다 도르르 말린 꽃잎 속에 詩자 한 자 새겨서 하늘이 잠시 잠깐 잠드는 사이 하얀 접시꽃 한 송이 제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김다희 시집 〈봄의 시퀀스〉에서 싹이 돋아 제 몸을 한껏 키운 꽃은 마침내 꽃봉오리를 만들어낸다. 그 꽃봉오리 활짝 열어 꽃을 토해내는 것을 지켜보면 가히 신비경이다. 거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향기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생명과 우주의 불가사의한 조화이다. 詩가 과연 그 세계와 어울릴까 싶기도 하지만, 고독한 싸움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가는 점에 있어서는 비슷한 부분이 있을 성도 싶다. 모든 생명들이 자신을 비밀스러운 문을 한껏 열어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오는 계절이 왔다. /장종권 시인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사회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사회 역시 양극화 문제가 우려할 수준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중간계층이 줄어들고 상위계층과 하위계층만 늘어나거나, 상위계층은 점점 형편이 좋아지고 하위계층은 점점 형편이 나빠지는 사회적 양극화 현상은 더 이상 시장원리에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노동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88세대’라는 자조적인 말이 등장한지도 이미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그 이후 노동시장의 고용상황이나 여건이 개선되었는가? 오히려 일자리 부족으로 고용상황은 더 나빠졌고, 비정규직은 고용행태의 하나로 굳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률 70% 로드맵’을 핵심국정과제로 수립·추진, 2014년 기준 역대 최초로 고용률 65%를 돌파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시장에서 전반적인 고용개선의 추세에도 불구, 국민들은 그 변화의 온기를 실질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국민들이 그 온기를 실질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맞닥뜨리게…
“동그라미를 그리세요.” “그 밑으로 몸통을 그리세요.” “아니, 아니 더 아래로 내려와서” “아니 조금만,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눈을 가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손끝으로 가늠해보는 위치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꾸 실수를 한다. 오직 옆에서 설명해주는 사람의 설명과 나의 감각에만 의존하여 그려보는 그림. 설명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자신의 감각을 차분하게 믿는 정도에 따라 그림의 완성도는 달라진다. 워크샵에서 두 사람이 짝이 되어 한 게임이다. 한 사람은 눈을 가리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릴 대상을 설명 해주는 게임. 안대를 풀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해괴한 그림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 그럴 줄 알았다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 등등. 원본 그림에 가장 가깝게 그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말은 옆 사람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서로가 힘이 되어 함께 해야 완성도가 높아지는 작품. 참, 사람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결코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그래서 그
미국 뉴멕시코는 ‘아나사지’ 인디언들만이 살던 땅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서북부 챠코계곡에 모여 살면서 챠코문명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다. 또한 1500년경에는 캐나다 지역에서 살던 ‘나바호’와 ‘아파치’ 인디언이 이주해 내려왔다. 지금도 이들의 후손 3만여명은 자신들만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비록 인디언 텐트라 불리던 당시의 거주 형태인 티피(Tepee)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지만 풍습도 잘 보존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내 3대 인디언 보호구역 중 한곳도 여기에 있다. 서부영화에서 인디언들의 주거형태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티피라는 텐트다. 원추형으로 세운 여러개의 나무위에 물소 가죽을 덮어 만든다. 과거 아메리카인디언들은 거의가 이런 형태의 텐트에서 생활했다. 1990년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 이라는 영화에선 티피 텐트에서 생활하는 인디언들의 모습과 그 생활 터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랑, 개척자들과의 전쟁 그리고 살육 등이 리얼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특히 영화에선 일부대사를 출연 인디언 ‘수’족(族)의 언어인 ‘라코타’어로 처리했고 현대화된 티피에서 생활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직접 연기했다고 해서 더욱 유명했었다. 티
꿈꾸는 선묘 /박태일 선묘 앉은 귀밑볼 아침이슬 반짝입니다 선묘 앉은 돌부리 패랭이꽃 절로 핍니다 선묘 마음 속 간날 한 그리움 섰다 무너지면 선묘 저는 부석 물가 으뜸 빛좋은 곱돌입니다 손을 주셔요 산허리 빗발 들고 젊어 헤픈 님 사랑 무에 쓰나요 손을 주셔요 멈칫멈칫 님 떠나고 고개 돌려 님 떠나고 가릴 수 없는 그 한 자리 그리움 풍기 순흥 흔한 삼밭 삼꽃처럼 붉게 젖을 때 선묘 이제 발바닥으로 님 사랑 느끼며 선묘 이제 목젖으로 님 사랑 참으며 선묘 흘러 남도 바다에 서겠습니다 님 마을 언저리 배고픈 풀꾹새 되어 풀꾹풀꾹 한낮 온 밤에 저 그리움 남겨두고 가다가다 밤바다 첫물길을 놓치겠습니다. 신라에서 공부하러 건너온 젊은 의상스님을 연모해, 어머니 나라를 버리고 멀리 신라 땅까지 의상을 따라 건너왔다던, 당나라 처녀 선묘 옛이야기를 시로 풀어낸 듯 하다. 경북 북쪽 영주 부석사다. 가슴시린 일은 사랑하는 님 흔한 기억 속에서도 깃들지 못한 채 질경이 꽃처럼 철따라 피었다 지고 있을 이 땅 한 많은 여자들 속 앓는 사랑놀이다. 사랑은 사람이 이루는 일이나 사람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 가운데 가장 큰 일이기도 하니 그럴 듯한 꿈꾸는 선묘의 자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