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겪는 일이어서 이제 무디어질만도 하건만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늘상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공약을 내걸고 치열한 표심잡기속에 승리의 환희를 함께 나눈다 해도 ‘당선증’을 받아드는 순간 가장 앞머리에 오는 관심사는 여전히 ‘인사’다. 사람은 물론 안전이니 공동체니 정의니 하는 선거기간 내내 우리에게 찾아 들던 그 숱한 단어들은 다시 허공에 뜨고, ‘자리’를 둘러싼 각종 구설과 잡음이 뒤섞인 이전투구와 밀어내기가 볼쌍사납게 빈틈을 채운다. 두번째 당선증을 받아든 ‘위너(winner)’의 사람들도 4년간의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리소문없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드는데 세번째 당선증을 받는 사람과 그의 측근들의 컴백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그게 다 ‘정치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매번 첫 당선인과 그의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우스꽝스러운 촌스러움때문일 지도 모른다. 다시 선거는 끝났고, 4년만에 한번씩 힘센 유권자란 짧은 ‘갑’의 자리를 누리던 호사도 어느 틈엔가
허물어지는 벽 /김숙경 변화하는 도심 속 담장 없는 마을은 삶의 모습도 풍요로운 방향으로 가꾸어 주는 듯하다. 예전처럼 흙 담이나 탱자나무 울타리, 사철나무 울타리를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담장이라고 금을 긋듯이 하나둘 심겨진 나무나 잔디가 깔린 땅을 대신 보게 된다면 그마저도 우리에게는 얼마나 아름다운 눈요기이고 호사일 것인가. -중략- 노란 열매를 매단 교회 앞의 탱자나무, 옆집 돌 박힌 황토 흙 담의 아련한 정서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꿈을 꾸어본다. 아파트 앞 놀이터 사철나무 울타리가 정겹다. 파란 잔디가 심겨진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함박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담장이 허물어진 그 세계 속에서 미소 짓는 미래도 보인다. 담장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이자 집과 집을 나누는 경계로도 작용한다. 담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건축물로 세워졌던 것이다. 이러한 담장은 전쟁 등의 위기가 닥칠 때에 방어 기능을 생사하던 성곽처럼 우리의 안위를 지켜주기는 하지만 사람 간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이 산문은 수필가의 이러한 담장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담장이 사라진 뒤 그 옛날처럼 탱자나무가 심어진 풍경으로 회
바나나가 17세기 처음으로 유럽에 전래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담의 무화과(Adam’s fig)’ 라 불렸다. 그리고 하와가 따 먹은 선악과는 무화과가 아니라 바나나며, 아담이 몸을 가린 것도 작은 무화과 잎이 아니라 그보다 큰 바나나 잎이었다는 웃지못할 소문도 성행했다. 모두가 바나나의 달콤함이 빚어낸 애피소드로 밝혀졌지만 오랫동안 유럽인들에게 회자됐었다. 지금도 열대 지방에서는 수많은 바나나 품종이 자라고 있다. 그중 세계 최고의 바나나로 치는 것은 필리핀이 원산인 ‘라카탄’ 바나나다. 향이 매우 달콤하고 단단한 살은 생으로 먹어도, 구워 먹어도 똑같은 맛이다. 완전히 익으면 황금빛 오렌지색으로 변하는게 특징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바나나하면 노란색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빨간 바나나도 있다. 미국인들은 노란 바나나보다 빨간 바나나를 최고로 친다, 가격도 보통 바나나의 두 배다. 하지만 워낙 금방 상하고 다루기도 까다로워서 산지인 카리브해와 동남 아시아 현지에서 주로 소비된다. 이밖에 오렌지색부터 붉은빛을 띤 갈색, 고동색, 심지어 보라색까지 다양하며 어떤 것은 얼룩지거나 줄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은…
현대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현대사회는 자기 PR시대로 트위터·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SNS가 유행 하면서 누구나 자신에 대해 홍보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토론하며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는 시대서 꿈의 세계를 펼쳐보기 위해 뛰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 실제로 최근 A양은 말싸움을 한 친구의 카카오스토리 댓글란에 친구를 모욕하는 글과 허위사실을 기재,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은 몹씨 억울한 부분이 있어 댓글을 달았고 이러한 행위가 처벌이 되는지 몰랐다고 하소연 한다. A양의 행위는 형법 제311조(모욕)에 의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법률’ 제72조 제1항 또는 2항에 따라 3년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또는 7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A양은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고소인에게 합의 의사를 밝혀 고소인에게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져 고소 취하가 돼 처벌은 면했지만 A양이…
‘유치원교사는 초·중등 교사에 비해 지나친 행정 업무(학비 지원 정산, 유치원 정보 공시, 인사 채용 계약 및 서류 작성 등)가 많다. 유아들의 교육연구에 시간과 노력을 쏟고 싶은데 이런 식의 현장평가가 진정한 유치원 교육내실화를 방해한다. 유아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경기유아교육을 원하신다면 현장평가를 폐지하고 초등학교처럼 자체평가로 개선해 달라’ 경기도교육청 산하 경기도유아교육진흥원 홈페이지에 쏟아지고 있는 유치원교사들의 항의 글 가운데 하나다. 도교육청이 시행하는 유치원 현장평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초·중등학교에서는 이미 서면 평가로 대체해 실시하는 학교 평가를 유치원에서만 현장 평가의 형태로 실시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일선 유치원교사들의 일치된 호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와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경기교총)도 합세했다. 유치원 평가 중 현장평가는 수업과 생활지도, 행정업무까지 맡은 유치원 교원의 업무를 가중시켜 결국 유아교육의 교육력을 낮추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며 즉각 폐지를 촉구한 것이다(본보 24일자 22면). 대신 부담 경감 차원에서 자체평가서로 대체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평가의 취지는 공감하나 평
경제사정의 악화와 경쟁력의 감소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 미래의 가능성이 보이면서 충분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찾기가 날이 갈수록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취업자들은 보수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 취업자의 1%정도만이 대기업에 취업할 뿐 나머지는 중소기업에 취직할 뿐이다. 젊은이들의 올바른 직업의식과 부모의 과보호문제도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최근 취업자의 분석에 따르면 30대 취업자는 6천명이나 감소하고 있는 반면에 50대는 35만7천명이나 취업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부나 지자체도 젊은이들의 취업기회 확충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학부모들도 서구사회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소질과 취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교육을 강화시켜가야 할 때다. 남경필 도지사는 지난 선거 때에 70만개 일자리창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제 취업이 숫자놀이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일자리로 정착되어 가야 한다. 특히 남 지사는 맞춤형 취업 무한지원서비스와 지식산업육성, 빅파이 프로젝트 등 7개 분야
한때는 껌과 초콜릿을 달라며 죽어라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자랑스러울 것 없는 과거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때 껌과 초콜릿은 구원과 행복의 상징이었다. 누구는 그걸 얻으려 교회에 나가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몸을 팔기도 했다. 몸을 팔아서라도 껌과 초콜릿이 물처럼 넘쳐나는 나라를 갈 수만 있다면 좋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떠나기도 했다. 어릴 적 내 고향엔 캠프 페이지라는 미군 부대가 있었다. 당연히 미군을 끼고 생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물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어서, 몰래 시장에 흘러나오면 바로 유통이 되곤 했다. 불법이지만 사람들은 거기서 잼과 햄을 사고, 옷과 물품을 샀다. 정식 명칭은 따로 있었지만 그 물건이 나오는 시장을 우리 동네에서는 양키 시장이라고 불렀다. 그나마 내 유년의 1970년대만 하더라도 극빈을 벗어났을 때였다. 그런데도 양키 시장은 우리에겐 선망의 장소였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 물질적 궁핍 때문에 악착같이 살았다. 궁핍을 벗어나고자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고,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어느덧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는 삶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장관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TV에서 우연찮게 볼 수 있었다. 각종 의혹에 대한 의원들의 추궁과 질문에 곤혹스러워 하던 표정이 생중계된 화면을 통해 비추어졌다. 추궁에 대해 하나 같이 나오는 답변은 ‘관행(慣行)이다’라는 말뿐이며 ‘오래전부터 해오는 대로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라는 것이다. 관행(慣行)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고착화 되어버린 관행이, 청렴(淸廉)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자리매김 하고 접근해야 하는지 구분조차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낡은 의식과 관행이란 이름으로 크고 작은 부정에 노출되어 있었던 공직 사회에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공직자의 자세를 재정비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의 뒤 무대에 가려진 청렴철학을 배울 필요가 있다. 독일 철학자 칸트(1724~1804)는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의지에 주어지는 모든 명령을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정언명령은 아무런 목적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내면의 순수 이성에 의해 선하다고 판단한 보편적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며 그에 반해 윤리자체가 목적이 아닌 그 이외
불가사의(不可思議). 생각하고 의논함이 불가능하다, 즉 사람의 판단력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불교 경전중 하나인 화엄경에 ‘부처의 지혜는 허공처럼 끝이 없고 그 법(法)인 몸은 불가사의하다’는 말이 나온다. 또 이 경전의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에 부처에게는 정원(淨願),출세(出世), 법신(法身), 음성, 지혜, 해탈 등등 열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고 한다. 부처의 몸이나 지혜·가르침은 불가사의하여 일반인들은 몸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 한자 문화권에선 불가사의를 수의 단위로도 사용한다. 세상에서 사용되는 수의 단위 중 그 값이 두 번째인 불가사의의 수리적 수는 10에 0이 64개나 붙는다. 이 보다 더 큰 수는 무량대수(無量大數)로 10에 0이 68개가 더해진다. 10개의 0이 붙는 억(億) 단위를 비롯 바로 위인 조(兆) 경(京)을 수의 최고개념으로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은 상상이 가질 않으며 비교불가다. 불가사의와 약간 다르긴 해도 도저히 설명이 안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 야릇한 일, 또는 현상을 ‘미스테리’라 한다. 현상으로서 대표적인게 ‘미스테리 서클(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