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 /이경호 비 그친 흙탕물이 하루가 지나 깨끗하게 떠올랐다 떠돌던 흙이 그 아래 곱게 가라앉았다 한세상 분탕질로 살았던 사람들 죽을 땐 저렇게 맑게 가라앉는다지 파란 하늘이 그 위에 스며들 만큼 깨끗해진다지 그 웅덩이 속 첨벙대는 사람 하나 곱게 떠오를 수 있을까 -시집 <비탈>(애지, 2014)에서 삶은 흙탕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수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엄습하여 애가 탑니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을까 번민하다 한순간 못된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세상은 시궁창과 같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삶을 추구해도 쉽사리 불결한 지경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때 악마처럼 속삭이는 소리는 포기의 목소리입니다. 정작 물러나 손 놓고 엎드려 쥐죽은 듯 고요해야 할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들은 압니다. 자신들이 저질로 놓은 일들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 진창에 밀어 넣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보다 겸손해지고 자숙하는 때 우리 모두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첨벙대며 불안에 떨기보다 차분히 세상을 응시한 채 보다 낮게 가라앉아야 합니다. 낮아지면…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감정을 능동적 감정과 수동적 감정, 곧 행동과 격정으로 구별했다. 능동적 감정을 나타낼 때 인간은 자유롭고 자기감정의 주인이 되지만 수동적 감정을 나타낼 땐 인간은 쫓기고 자기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동기에 의해 움직여지는 대상이 된다고도 했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기쁨·슬픔·사랑·욕망·분노·미움·시기·연민 등 48가지로 분류한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스피노자의 주장대로 우리는 48가지 감정을 공유하지만, 구체적 현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서로 다르게 표출한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와 출신지역, 학벌, 가문, 종교, 취미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의 정서적 원인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복잡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기와 조금이라도 생각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금방 동류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생각이 통하지 않으면 곧바로 적대의식을 가지며 감정을 제대로 섞지 못한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통속적인 발상을 시작으로 심지어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집단을 향한 거부와 공격으로 빈번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인 주민운동으로 출발한 사회적 기업이 활발하게 육성될 때에 서민경제는 나아질 수 있다. 1990년대 초에 건설과 봉제 분야에서 시작된 사회적기업은 1999년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의 제정으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오고 있다. 일자리를 찾고 있는 많은 구직자를 위해서도 사회적기업의 확충 육성이 필요하다. 일자리창출사업으로 예비(인증)사회적 기업에 인건비와 4대 보험료를 지원하는 제도로 경기도의 경우 102곳에 총 33억원이 지원된다. 이들 기업에는 현재 고령자와 저소득층, 장애인 등 취약계층 403명이 근무 중이다. 경기도는 예비 사회적기업 254곳에 일자리 창출과 기술개발비로 56억원을 지원한다. 사회적기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신제품을 생산하는 창조기업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예비 사회적기업은 시제품 개발, 기술 개발, 기업 홍보, 마케팅 등의 사업개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한다. 여기에는 철저한 기준에 의해 30개 업체를 선정하였다. 이로써 경기도내에는 416곳의 예비 사회적기업이 늘어났다. 예비 사회적기업은 도가,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가 각각 지정하는데, 예비 사회적기업은
꽃들이 만발한 오월이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계절이 온 것이다. 화려한 외출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아름다운 이 봄 속에 서있을 나를 상상하게 되고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선다. 주름이 잡혀오는 얼굴엔 나를 지켜온 굳은 근육들이 근심스런 모습으로 나를 향해 서 있다.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 과묵하게 변형된 얼굴을 보면서 가랑잎만 봐도 깔깔거리던 시절을 떠올린다. 부딪쳐오는 모든 것들이 왜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웠던지. 매일 만나는 친구들 얼굴만 봐도 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는지, 힘들고 어려운 시절, 양말 뒤꿈치가 터져 하얗게 살이 나온 걸 보면서도 왜 그렇게 우스웠던지, 종일 동무들과 놀다가 코 묻은 얼굴로 먼지투성이가 되어 대문을 들어서는 아이를 보면서 배를 쥐고 얼마나 웃었던지. 아이를 등에 업고 한 손엔 큰아이 손을 잡고 새참을 머리에 이고 논밭을 가며 아이들과 웃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된다. 참으로 웃음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것도 없는 지금, 크게 맘껏 웃어 본 날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언젠가의 일이다. 운전을 하다가 피곤이 몰려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인 일이 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세월호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전국이 온통 선거다. 카네이션을 건네줄 제자도, 받아줄 스승도 없는 이런 비극적인 스승의 날은 두번 다시 없어야 한다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6·4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 등록 첫날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직도 팽목항에서 기약 없는 아들과 딸,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고 있고, ‘적막의 도시’로 변한 안산은 언제 깨어날지 쉽사리 기약하기 어렵다. 국민을, 그리고 그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대한민국을 꿈꾼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던가. 전 세계를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은 그 파렴치함과 뻔뻔함으로 점철된 잔인한 ‘인재(人災)’ 세월호 참사 속에 5천만 국민들이 한줄기 희망에 의지해 그 많은 밤들을 뜬눈으로 지새울 때 또다시 찾아든 사람이 만든 재앙들은 그저 몸서리를 치게 할 뿐이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가 노래가사에서 현실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4일간이나 계속된 그들의 태만이 지하철사고로 소스라치게 하더니 14일에 벌어진 수원 도심 한복판을 관통하는 원천리천의 범람 역시 인재라는 사실만 새삼스레 기억될 뿐이
힘든 일을 하여도 대접받지 못하는 노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화’가 치밀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한자가 ‘화’를 의미하는 노(怒)라고 한다. 종을 이르는 노(奴)와 마음(心)이 합쳐졌으니 분(忿·성질)이 나지 않았겠는가. ‘화내는 것’을 다른 말로 분노(憤怒·忿怒)라고도 하는 이유다. ‘화나다’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부아가 나다’라는 말이 있다. 부아란 순수 우리말로 허파를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옳지 못하다고 느꼈을 때 분노한다. 때문에 분노 표출은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는 매우 정당한 행위라고 믿곤 한다.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한 이후에 감정적으로 후련함을 느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할 일을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 속 분노를 모두 분출하면 신경증이 좋아진다고 하여 한때 ‘카타르시스 치료법’이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상사 목조르기(Choking Strangler Boss)’라는 장난감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사람모양 인형인 이 장난감은 왼손을 누르면 ‘아파도 야근을 해야 해!’라는 비아냥거리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목을 조르면 두 눈이 튀어나오고 팔 다리를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우리들의 양식」 민음사 1974년 9월 그렇게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한없이 메마른 가지는 물기라고는 흔적조차 없이 겨울을 지키며 숨죽여 있다가 언 눈물 녹여 마신 물기를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보송보송한 솜털로 제 몸을 감추고 있던 목련이 드디어 입을 여는 구나 알아보자. 성급하게 커다란 이파리를 바람에 툭툭 제 무릎 아래로 내려놓고 있다. 연분홍 진달래 점점이 박히고 개나리 종알종알 지저귀는 봄, 그래 봄은 왔다. 팍팍하고 물기 없어 메마른 삶, 무거운 어깨 떨치고 가라고 환한 빛을 켜 칙칙한 발 앞을 비춰주는 봄이다. 연초록 싱그러운…
학교폭력 사건이 접수돼 가해 학생을 조사하는 과정에 학생 부모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우리 애에게 전과가 남는 건가요”라는 질문이다. 또 있다. 학교폭력 사건 피해 학생에게 피해 내용의 진술을 듣고 나면 피해학생의 부모로부터도 들여오는 소리도 있다. “우리 애에게 난 상처는 어떻게 해요.” 여기서 일컫는 상처는 신체적인 상처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상처도 포괄되는 질문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들이 함께하는 가정의 달, 5월이어서 그럴까. 어느 때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더 뼈아프게 느껴진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가슴 저미는 일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시간이 되돌려진다면 무엇을 먼저 하게 될까. 우선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폭력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 모두가 불행해진다. 피해학생에게는 씻을 수 없는 심신의 상처가 남게 되고 그 부모와 가족도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가해학생에게는 수사경력
최근 각종 미디어에서는 소방관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나면서 기존 이미지에 더욱 친근해진 ‘소방’이 되고 있다. 그러한 결과 ‘모세의 기적’이란 캠페인을 통해 어느 정도 ‘소방차 길 비켜주기’가 기존보다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먼저 주택가 골목길에서 현장 활동을 할 때 정차되어 있는 소방차가 보이면 우회하길 당부한다. 여유가 있다면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차량을 정차하고 싶지만, 주·정차량 사이로 소방차 한대 겨우 지나다니는 그 곳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긴급 활동 중에 차 빼달라고 경적을 울리며 험한 말까지 일삼는 일부 시민들이 있다. 활동 중에 다시 나가 차량을 이동시키고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음으로는 소화전 인근에 주·정차를 삼가주길 바란다. 소화전 주변 5m 이내에 주·정차를 하면 단속 대상이 되고 실제로 각 소방서에서 주기적으로 단속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시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면 제한된 수량으로 방수작업을 한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