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구성되는 저녁 /이정란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공기 알갱이 속에서 새어 나와 날개를 찾아 단다 부스러진 햇살 조각들은 일찍 문 닫은 갤러리 유리문 앞에서 없는 귓바퀴를 만지고 있다 나는 직립을 버리고 그림자를 뒤적인다, 달의 생각이 명료해질 때까지 방금 뒤집힌 모래시계 안에서 사막이 깊어지고 있다 사막은 이 저녁에 닿기 위해 건너야 했던 나와 당신 그 속으로 손을 찔러 넣으면 따뜻하고 말랑한 심장이 만져진다 -이정란 시집 ‘눈사람 라라’ / 천년의 시작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바쁘고 불안한 시간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어스름과 함께 시작되는 저녁은 직립을 버리는 시간이다. 햇빛 아래 고단했던 직립의 몸들을 수평으로 누이는 저녁은 느리고 차분하게 온다. 종일 따라 다닌 자신의 그림자 속에 파묻히는 느낌으로, 바쁜 하루를 되짚어가는 반추의 시간으로 저녁은 우리를 안내한다. 이 명료한 저녁에 닿기 위해 나와 당신이라는 지리멸렬한 사막을 건너왔다. 직립을 버리면 아직 따뜻하고 말랑한 자신의 심장이 만져진다. /이미산 시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자신이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죽음의 장사꾼, 숨지다(The merchant of death is dead)’라는 제목의 이 부고기사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자신을,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가로 부자가 된 ‘죽음의 장사꾼’으로 비하하고 있었다. 노벨은 자신의 지식을 축적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아까운 생명들을 죽이는 살상무기가 된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자신의 전 재산을 노벨재단의 전신인 스웨덴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함으로써 노벨상이 탄생했다. 노벨상은 무엇보다 자신의 지식으로 세상에 유익을 끼친 ‘지혜로운 지식인’을 기리고 격려하는 상으로 지금까지 내려온다.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지혜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 데 반해 지식은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 또는 정보 그 자체이다. 그러니 지혜는 타인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피
무인기 시대는 1960년대 베트남전 개전과 함께 본격 개막했다. 윙윙거리는 수벌을 의미하는 ‘드론(drone)’이라는 애칭도 이때 붙여졌다. 이후 미국을 비롯 선진 각국은 경쟁적으로 드론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한 드론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영국군은 4인치 크기의 나노 드론을 공개하기도 했다. ‘검은 말벌’이라는 이름의 이 나노 드론은 길이 10cm, 너비 2.5.cm, 무게 16g의 초소형이다. 하지만 소형카메라를 탑재하고 있어 전장의 중요한 정보를 실시간 동영상이나 스틸사진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현재 160대가 분쟁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드론은 애초 개발 목적이 군사용이었다. 그런 만큼 정찰과 정밀폭격 등 군사작전에 주로 이용됐다. 은밀한 작전이 가능해지면서 ‘하늘의 유령’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붙었다. 전장에서는 벌써부터 ‘빅 브라더’라 부르기도 했다.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한 미국이 이를 십분 활용했다. 미 국방부는 현재 7천여기의 각종 드론을 보유해 세계 최고다. 10년 전 50대 미만에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증가다. 군사용으
서수원은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됐던 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 BT, NT 등 기술 집약 산업을 육성하는 30만㎡ 규모의 수원 R&D 사이언스 파크가 조성된다는 소식이다. 이는 지금까지 상대적 박탈감을 갖고 있던 지역 주민들에게 희소식이다. 수원을 동·서로 양분한 경부선 철도가 개설된 이래 서수원 지역은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 평동·오목천동·서둔동 등은 공군비행장 소음문제와 개발제한 등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았다. 또 서울대 농대가 이전하고 농촌진흥청과 산하 연구시설들도 이전될 계획이어서 상실감은 더해갔다. 그러나 최근 수원시와 주민들의 노력으로 비행장 이전 문제가 구체화되고 수인선 지하화 확정, 농업연수원(3만1천㎡)과 축산과학원(22만3천㎡) 부지 주거용지 공급, 탑동 국립원예특작과학원(8만7천㎡)과 권선행정타운 배후단지(6만1천㎡) 중심상업용지 지정 등 활기가 느껴진다. 여기에 수원 R&D 사이언스 파크가 조성된다면 시너지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사이언스파크는 연구개발(R&D)시설과 교육연구센터, 지원센터 등의 고부가 연구와 개발시설로 집중화하고 근린생활시설과 주거시설, 상업시설을 배치해 단지 내 자족기능을 갖게 된다. 시
복잡하고 경쟁이 심한 도시생활의 어려움을 접고 인정 넘치는 자연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귀농귀촌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귀농은 농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에 대한 전문지식과 철저한 관리가 수반되어야 한다. 생활관습과 문화가 다른 농촌이주와 영농활동에는 많은 어려움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귀농귀촌에 따른 철저한 사전교육과 체험이 선행되어야한다. 전원생활에 꿈과 영농의 현실적인 괴리감을 슬기롭게 극복해 갈 때에 귀촌귀농에 성공할 수 있다. 최근에는 베이비붐세대가 은퇴하는 시기로 이들 중 일부가 활기찬 노후를 향유할 목적으로 귀촌하여 귀농을 시도한다. 물론 이중에는 성공한 사람도 있으나 실패하여 다시 도시로 떠나가는 사람도 많다. 지난해 귀농가구는 1만923가구에 가족이 1만8천825명이다. 이에 비해 귀촌가구는 2만1천501가구에 3만2천424명으로 36.2%가 증가하였다.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꿈꾸면서 귀농을 시도했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도시로 되돌아가는 사람을 방지하기 위해서 관련기관의 효율적인 관리가 절실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귀농귀촌을 돕기 위한 정책의 비현실성과 형식적인 관리가 문제이다. 농림수산부와 지자체가 주관하여 귀농교육을 3주 이상(100시간
지난 3월19일 경기도사회복지사협회가 주최한 제8회 사회복지사의 날 기념 및 제10회 경기도사회복지사대회는 사회복지사들에게 단합을 위한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특별히 매년 3월30일은 사회복지사의 날로, 사회복지사에 대한 국민 인식향상과 사회복지사들의 권익증진 및 자긍심 향상을 위해 2007년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제정됐다. 8번째를 맞이하는 사회복지사의 날에 실천현장에서 아직도 열악하고 부당한 현실 속에 처해있는 사회복지사의 복지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특히, 사회복지사들의 권익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된 사회복지사협회는 사회복지사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됐는지, 사회복지사의 권익향상과 처우개선의 중심에서 그 기능과 역할에 충실했는지, 이번 행사가 사회복지사들만의 축제는 아니었는지 되묻고 싶다. 사회복지사 60만 또는 70만이라는 사회복지사 홍수의 시대를 맞이하며 사회복지사가 전문가인지에 대한 사회적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일부 정치인 중에 전 국민이 사회복지사가 돼야 한다는 말에 쓴웃음을 짓게도 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사회복지사의 복지를 논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는 국민의 행복 중심에 있는 전문가이다. 지난 3월27일 정
‘집’이란 무엇인가? 집은 생존에 필요한 생활공간이기도 하지만 ‘영혼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보던 날 필자의 시집 『해남 가는 길』을 떠올렸다. 필자에게 해남은 고향이고 영혼의 안식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도연이 주연을 맡은 <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은 동정 없는 세상에 사는 가난한 이웃들과 공무원들의 안일한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외로운 사람들의 희망찬 얼굴을 그리는 이 영화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남미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보석 원석(原石)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가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검거된 한 주부의 실화를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주부는 외교부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의 부주의와 무관심 때문에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대서양의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765일 만에 돌아온다. 오래 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로도 소개되어 꽤 알려진 이 이야기를 영화로 또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흥행스타 전도연의 민낯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눈가와 입가의 잔주름 하나라도 그냥 못 보고 넘기는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봄은 왔지만 여전히 새벽잠을 설친다.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렇다. 어제도 그랬다. 이럴 땐 항상 머릿속이 복잡하다. 올해 부쩍 제멋대로 피는 봄꽃마냥 생각도 뒤죽박죽이다. 그러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이어지기라도 하면 답답함은 더 큰 무게로 마음을 짓누른다. 아- 나도 나이가 들었나? 이처럼 불안함과 처량함, 서글픔이 교차되니. 그리고 곤한 새벽잠을 자는 집사람이 갤까 더듬더듬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을 찾았다. 며칠 전 친구가 보내온 메시지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였다. 액정이 밝아지며 문자가 뜬다.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의미’ 심심할 때 읽어보라며 보낸 글이다. ‘1세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18세 입시 스트레스로 치를 떠는 나이. 29세 아무리 변장을 해도 진짜 물 좋은 곳에는 못가는 나이. 34세 꾸준히 민방위 훈련을 받을 나이. 41세 가끔은 주책바가지 짓을 해서 남을 웃기는 나이. 52세 ‘거 참 이상하다’라는 대사를 중얼거리는 나이. 65세 긴 편지는 두 번을 읽어야 이해가 가는 나이. 100세 인생의 과제를 다 하고 그냥 노는 나이 등등.’ 인터넷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