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점에서 / 임병호 잃어버린 내 안경들 어디에 있을까 술집에서, 喪家에서 택시 안에서 기억 없는 곳에서 나와 헤어진 안경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어두운 세상 밝게 보려던 흐려진 가슴 맑게 보려던 내 안경들은 지금 도시 어디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산 속 어디서 새소리 바라보고 있을까 이승 어디서 저승을 바라보고 있을까 늙었는가, 옛날 옛일이 자꾸 생각나는데 나를 떠난 추억들이 분신처럼 그리워진다. 절묘한 아픔들이 시인의 생의 이면들로 가득하다. 그 아픔들의 회상은 숨기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이승과 저승을 먼저 불러놓고 기억하다니… 분명 시인의 기쁨이 곡주 한 잔의 맑은 샘이 아니다. 잃어버린 몇 개의 고독한 시를 담았을까. 시인의 뒷모습, 강산은 유수하게 지났건만 시인은 여전히 소년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고독의 향수와 냉정한 바람 속 그리움이거나 변주곡 같은 사념들이 밀려온다. 번지 없는 주막에서 시절을 불러내고, 울고 넘는 박달재의 서곡은 애절한 추억들을 내놓은 깊은 밤, 시인의 미소에 어느 날 보니 주름이 깊게 지고 천진난만한 동심의 사연들은 그리움들로 반전된다. 긴 대화가 어느 길에서 끊어지고 차창 밖으로 기대선 시인의 꿈은 어디로 갔
꽃 소식이 빠르게 북상한다.남녘에 만개한 벚꽃이며 매화가 TV 화면을 환하게 밝히는 가운데 북한은 우리를 긴장케 한다. 개성공단 철폐며 통신두절, 핵, 미사일 등 안보를 위협하는 뉴스를 접하는 것이 두려운 요즘이다. 조카가 며칠 전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터라 가족들의 긴장과 불안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하필 이럴 때 자원해서 군대를 꼭 가야겠느냐는 염려에 스물한 살의 청년은 당차고 믿음직스럽다. 대한민국의 사내로 태어났으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럴 때일수록 나라를 잘 지켜야 가족과 국민이 편안히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며 본인은 걱정 말고 건강이 안 좋은 아버지를 부탁한다며 눈시울이 젖어들던 모습이 선하다.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철부지인 줄 알았는데 언제 저 녀석이 저렇게 의젓해졌나 싶다. 자유분방함을 벗어나 제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두렵고 긴장되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당당히 나서는 것을 보면서 굳건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해병대에 자원하는 젊은이가 많아졌다고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위협을 무릅쓰고 나서는 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간혹 고위층이나 인기에 영합한 일부의 병역비리 문제가
홍준표 경상남도지사가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향해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놓았다.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진주의료원 문제 처리에 전력해도 모자랄 경남도지사가 엉뚱하게 경기도지사에게 화풀이를 하는 격이라 어이가 없다. 홍 지사는 지난 6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김 지사에 대해 “그러니까 경기도 살림이 엉망이지. 도 살림이나 잘 하라 그러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 해도 막말에 가깝다. 홍 지사로서는 김 지사가 지난 2일 한양대 최고경영자과정 특강에서 “도민 설문조사를 해서 1%만이라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의료원을 유지하겠다”고 한 점이 고까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백이 그런 감정 하나 여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볼썽사납다. 의료원 운영 문제는 설전으로 맞설 일이 아니다. 각자의 관점과 해법대로 대처해서 어느 쪽이 진정 도민을 위한 선택인가 판단 받으면 될 문제다. 두 사람이 모두 차기 대권에서 유력한 여당 후보로 점쳐지는 만큼 지금부터 의료문제, 노동문제 등이 얽힌 지방의료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선의의 정책경쟁을 벌이면 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남짓한 이 시점에서 벌써부터 라이벌 의식만 도드라지는 경솔한 언쟁을 벌일…
‘짜장스님’은 국가 지정 보물 제422호인 철불좌상이 모셔진 남원 선원사 주지 운천 스님의 별칭이다. 자신도 이 별칭을 기꺼워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운천 스님은 자신이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서 소외되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 무료로 먹인다. 군인들과 장애인, 노인, 노숙자 등 부르는 곳이 있으면 마다않고 달려가 현장에서 직접 면을 뽑고 짜장을 볶아 대접한다. 100여명부터 2천명에 달하는 많은 인원에게 한꺼번에 급식을 하려면 원가만 해도 만만치 않다. 스님은 ‘국우차’ 판매수익금으로 비용을 마련한다. 국우차는 돼지감자차다. 남원 가까운 지리산 자락에서 야생하는 돼지감자를 채취해 씻어 말리고 덖어서 당뇨병과 고혈압 치료에 좋다는 차를 만들어 불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찰 인근 밭에서 선원사 신도들과 손수 유기농 농사를 지어 짜장면 재료를 조달해왔다. 그런데 경제사정이 팍팍해지면서 국우차 판매도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짜장봉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스님의 속가 고향인 수원에서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율천동 노인들을 위한 짜장봉사 도중 면을 뽑는 기계에 손가락 세개가 빨려 들어가 으깨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
최근 서울시가 개최하는 청책회의 사회를 보는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정책회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알았으나, public hearing을 공청회라 하지 않고 정책(策)을 듣는다(聽)고 하여 청책회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이번의 주제는 공공 구매 및 계약과 관련하여 업계의 이야기를 듣자고 하는 쉽지 않은 모임이었다. 을의 위치로 항상 약자에 있는 업계 대표들이 제대로 이야기를 할 것인지 사회를 맡으면서 걱정이었다. 지방계약법 제6조(계약의 원칙)에 의하면 계약은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하도록 하고 있고,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건설공사에 관한 도급계약의 원칙)에 따르면 건설공사에 관한 도급계약의 당사자는 ‘대등한 입장’에서 ‘합의’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모두가 ‘대등’과 ‘합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1월 잡 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당한 대우로 ‘정해진 일 외의 다른 일도 요구(47.6%), 반말(25.4%)과 무시(25.1%), 선물이나 향응요구(14.1%)&rs
1919년 조국의 자주독립을 되찾기 위해 온 겨레가 분연히 일어났던 3·1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그동안 국내와 해외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던 민족지도자들이 속속 중국 상하이로 모여들어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논의를 본격화한다. 같은 해 4월 상하이에서 드디어 국가를 세우고 정부를 만들었다. 비록 빼앗긴 나라로 인해 우리 국토 안에서 세우지는 못했지만 나라 밖에서 새 나라를 세운 것이다. 먼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정치체제는 군주제를 떠나 ‘민주공화제’를 채택했으며 대한민국의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중심제의 정부를 만들었다. 초대 내각에 참여한 분들의 면면을 보면 대통령은 이승만, 국무총리는 이동휘, 내무총장은 안창호, 경무국장은 김구 등이었고,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 의장은 이동녕이 맡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된 이후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했다. 만주의 독립군투쟁을 지휘했고 국내의 비밀결사활동을 지원했다. 또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윤 의사의 의거는 그때까지 주저하던 중국 국민당정부의
“이천을 떠나는 기업을 잡기 위해서는 규제개선이 시급합니다.” 조병돈 이천시장이 지난 2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불합리한 수도권규제 정책과 법령 등의 조속한 개정 또는 조정’을 간곡하게 요청하는 건의문의 요지다. 이천시는 현재 자연보전권역과 수질오염총량제 등 중첩된 규제를 푸는 것이 그야말로 발등의 불이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중견기업들이 공장 증설을 못해 속속 지방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사이 이천시를 떠나거나 떠날 예정인 근로자 100인 이상 주요기업이 6곳이나 된다. 지역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정권 출범 시기마다 ‘뜨거운 감자’였던 수도권 규제완화가 박근혜 정부 들어 또다시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수도권 규제의 족쇄는 참여정부 시절 가장 강하게 옥죄었다. 이전 정부에서 조금씩 긍정적 조짐을 보여 온 규제완화 정책들이 참여정부의 수도권 비대화 억제 및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가로 막힌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무산을 들 수 있다.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당시 정부의 핵심과제였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방
동안에 /한영옥 네 얼굴에 먹구름 흘러가기를 순하게 기다리는 동안에 네 얼굴이 말갛게 드러나기를 천천히 기다리는 동안에 많은 것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때를 놓친 것은 아니다 지나갈 것들 지나갔을 뿐이다 잡아뒀으면 까마중 열매라도 됐을까 네 참 얼굴을 기다리는 동안에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출처- 시와시 <2012년 겨울호> 푸른사상 어린 시절 시냇가에서 샘을 파보면 흙탕물이 흘러나온다. 나중엔 모래들이 걸쭉하게 흘러나온다. 그러나 파던 손을 멈추고 잠시 앉아있으면 흘러갈 것들은 다 흘러가고 맑은 조약돌 반짝이는 작은 시내가 또 하나 생긴다. 그 물에 손을 씻고, 얼굴을 씻고, 한 모금 떠 마시고 그리고도 아까워 차마 두고 돌아서지 못했던 기억, ‘지나갈 것들 지나갔을 뿐이다.’ 그것은 기다려 본 사람의 말이다. 보낼 것은 보내고 잊을 것은 잊어본 사람의 말이다. 삶을 통틀어 재단해본 사람의 말이다. ‘아무 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단언할 수 있는 시인의 성숙함을 까마득히 올려다본다.
세계는 가까워졌다. 통신과 이동장비 등의 발달이 가져온 변화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 집안까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마음만 먹으면 70일이 아니라 단 하루 만에 세계를 돌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세계를 ‘지구촌(村)’으로 부른다. 세상이 촌락이라면 당연히 어른도 있을법하다. 팔뚝의 힘을 자랑하지 않고, 주머니 속 엽전을 내보이지 않아도 좌장으로 인정받는 어른 말이다. 현재 지구촌에서는 단연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어른다운 어른으로 꼽힌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노벨평화상 수상과 퇴임 후에 더욱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평등 선거 실시 후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는 평생 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서 투쟁하다가 반역죄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 받는 등 죽음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만델라의 첫 작품은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통한 ‘용서와 화해’였다. 본인이 백인정권의 피해자였음에도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면 사면하고, 후에 경제적 보상까지 실시했다. 그래서 만델라는 그냥 남아공 대통령이 아니라 지구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