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경 잉글랜드 중부 코벤트리 지방의 영주 로오프릭이 농노들을 과도한 세금으로 갈취하여 악명이 높았다. 농노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그의 부인 고다이버조가 남편에게 세금을 낮추라고 충고했다. 남편은 “당신이 완전한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바퀴 돌면 세금감면을 고려하겠다”고 빈정댔다. 부인은 고민 끝에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알몸으로 말에 올라 영지를 돌았다. 그때 농노들은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에 커튼을 내렸다. 그러나 톰이란 사람이 문에 구멍을 내고 그녀의 알몸을 훔쳐보는 순간 눈이 멀고 말았다. ‘몰래 훔쳐보기(Peeping Tom)’란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승객들의 알몸까지 투시할 수 있는 X레이 검색기가 23일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스카이하버 국제공항에서 첫 시험가동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논란 속에 도입된 X레이 검색기는 스카이하버 공항에서 90일 동안 시범 적용한 뒤 존속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미국 교통안전국(TSA)은 올해 안에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과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도 이 기계를 도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주도하여 위험 무기를 가려내기 위해 도입하려는 알몸투시
88년 전 3월 1일 한반도는 독립만세의 함성으로 진동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부터 10여 년을 인고하던 전 민족이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함성의 무리에서는 신분, 연령, 남녀 차이도 없었고, 이념과 종교도 통합되어 있었다.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를 중심으로 운동의 대중화, 일원화(대동단결) 그리고 비폭력이라는 3대 원칙이 정해지고 기독교와 불교계가 동참했다. 종교계가 중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평화적 운동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을 기점으로 시작된 독립만세는 전국으로, 3월 말에는 만주, 시베리아, 미주 등 해외에서까지 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선언케 했다. 2만여 회에 걸친 시위에 동원된 인원이 500만 명을 넘었다. 투옥된 조선인이 4만7천여 명에 이르렀다. 특히 운동의 3대원칙 중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운동방식은 세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저항은 만세운동을 잔인하게 압살하던 일제를 무력감에 빠져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훗날 우리의 3·1운동 소식을 접한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 코리아, 그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라고 찬탄했다. 그 빛은 간디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운동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6일 수안보에서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쏟아낸 것은 발전하는 사회는 문제점을 생산적으로 토론하고 그것을 시정함으로써 완덕(完德)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490여 대의원 중 3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대회는 정진화 위원장 중심의 집행부가 구성된 이후 처음 열린 대의원 대회였다는 점에서 교육계 안팎의 이목을 끌었으며, 특히 정위원장과 내빈으로 참석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 대표의 발언에서 거듭나려는 전교조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이 개회사에서 “보수 진영의 전교조에 대한 이념적 공세 등으로 고립의 어려운 현실을 맞고 있다”고 상황을 진단한 뒤 “입시교육에서 학생들을 구해내고,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는 본래의 전교조 정신에 충실하자”고 발언했다. 한 마디로 교육계의 민주화와 화해 및 상생을 동시에 바라는 국민은 정 위원장의 이 발언을 환영한다. 그동안 전교조가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교육계의 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점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투쟁 일변도의 교사상을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국민은 이 점을 우려해왔다. 전교조 전 집행부의 정치 중심, 이념 선호 경
격한 감정을 가지고 화난 표정을 나타내는 행동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분노라고 한다. 그리고 좌, 우에 치우치지 않는 이성적 상태에서의 행동을 냉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 살아갈 때에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을 가끔 듣게 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냉정한 이성적 판단 하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분노를 참지 못하여 법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감정상태에서 완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가리켜 하는 말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여당과 야당에 몸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심한 몸싸움을 하거나, 때로는 단상을 점령하여 저지하는 등 분노의 모습이 가득찬 채 으르렁대고 있는 모습을 가끔 TV를 통해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국회의원들이 과연 ‘분노해야 할 때에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분노하지 않고 냉정해야 할 때에 분노하고 있지나 않은지 의아하게 생각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겉으로는 ‘국민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지만 내면적으로는 당리당략과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하여 분노를 나타내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리사욕이나 집단적 이기주의, 그리고
조국의 독립과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온 국민이 하나 되어 궐기했던 기미년 3·1독립운동이 88주년을 맞이하였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독립운동 당시 현장에서 순국한 인원은 7천609명, 부상당한 사람들만도 1만5천961명,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사람이 4만6천948명 등 총 7만518명에 이르며 교회당 47개소, 학교 2개소, 민가 715호가 불탔다고 되어 있다. 피해상황 집계만 봐도 그 당시 얼마나 대규모 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져갔을 지 짐작이 갈만 하다. 또한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전국 211개 부·군에서 1천542회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고 참가인원은 202만3천98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통계가 전문에 의한 최소한의 수치임을 감안하면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밖에도 의병, 애국계몽운동, 독립군, 의열투쟁, 광복군, 학생운동, 문화운동 등의 항일운동에서 활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기미년 3·1독립운동은 조국광복의 힘찬 예언이었고 그 위대한 정신은 건국 이후 국가발전을 이끌어 낸 원동력으로써 인도의 5·4운동에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우리 가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탈무드에 담겨 있는 명언 중 하나다. 정부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탈무드의 이 같은 명언을 곱씹어야 한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고용정책에 핵심이 되어야 할 지혜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장애인고용촉진법’을 통해 기관이나 기업에게 총 직원의 2%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화했다. 당연히 이를 어기는 기업은 모자라는 사람 수 당 50만원의 고용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정부기관도 이에 해당돼 이를 어기는 지자체나 정부기관은 기관평가 때 불이익을 받고 이 사실을 언론에 공포하는 방법으로 패널티를 주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을 채용하고 싶어도 능력과 자질 있는 장애인들이 없어 채용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 정책에서 기인한다.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이 전국 51개 대학의 교육지원 예산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장애인 교육지원 예산에 한푼도 투자하지 않은 대학은 10곳으로 20%에 달했다. 각 대학 교육예산 대비 1%도 안되는 학교도 48개교(96%)로 집계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애를 갖고 있는 대학생들의 휴학이나 자퇴가 속출했다. 지난 1
1980년대 말쯤이었던가? 한 그릇에 1만 원이나 한다는 일본 라면 집이 서울에 등장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 분식집에서 끓여 파는 라면 한 그릇에 1천원 정도할 때였다. 물론 한국 라면은 봉지에 들은 인스턴트 면이고 당시 문제가 된 일본 라면은 생면에다가 국물도 고기나 뼈를 삶아 우려낸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라면 집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야 했다. 우리 정서상 일본 라면이라는 점도 비판적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그 때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진 일본의 인상은 엄청나게 물가가 비싼 나라라는 것이었다. 그 후 문화유적 답사, 행사 참석, 취재 등 여러 가지 일로 자주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의 만 원짜리 일본 라면도 먹어 보고, 우동도 먹어봤다. 이런 음식들은 대략 1천 엔 안팎이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환율이 10배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돈을 쓰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날이 갈수록 한국물가와 일본 물가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거다. 오히려 어떤 품목의 가격은 역전 현상이 일고 있다. 엔저(円低)현상이 심화된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따라서 한국의 물가나 일본의…
김병종의 정열적인 생명의 노래 경기도 과천의 한 전철역 부근에 화가 김병종의 작업실이 있다. 조금 구불거리는 비탈길을 올라가면 약간 둥그런 인상적인 주차 공간과 함께 이국풍의 건물이 나타난다. 문을 열고 씩 웃으며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김병종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라북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화가 김병종의 어린 시절의 꿈은 문학 소년이었다.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으며 남다른 감수성과 순수함을 지닌 아이였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었죠. 거의 매일 매일 책 속에 묻혀 살았던 것 같아요. 아마추어 문인인 친구 누나나 형을 통해 아주 많은 책을 볼 수 있었어요.” 그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책 속에 묻혀서 보낸 것이다. 이때 그는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까라마조프 형제들’, ‘금병매’ 등과 같은 책들을 읽었으며 문학적 수준이 높았다. 그는 사춘기 무렵에 서울대 병실에 입원하고 싶어 했으며, 첫눈이 내릴 즈음 예쁜 소녀가 꽃을 들고 병실에 찾아오는 소설 같은 상상을 하곤 하였는데, 이러한 바람을 청년이 되어
지방의원 유급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보수 명예직의 폐해를 막고자 제정된 조례이다. 유급제가 시작되면 당연히 겸직을 금하고 영리제한범위가 정해져서 의원 고유의 순기능이 크게 확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의원들의 겸직 및 상임위원회 관련 영리행위 금지 등을 확대 추진하고 있고 서울시의 경우 올7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을 예고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역시 지난해 7월 제214회 2차 본회의에서 ‘경기도의회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한 바 있다. 이 조례는 도민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자 의원들이 자기 직업과 관련된 상임위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하는 근거로 만든 조례이다. 그러나 도의원들 스스로 이 조례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빈약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인지 이 조례를 지키고자 겸직을 버렸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지방의원의 겸직 논란은 ‘유급화’에서부터 발단이 되었다. 유급화되기 전에는 무보수 명예직이란 자긍심을 존중받았으나 실제로 생활에 필요한 경비는 다른 직업으로 충당해 나갔을 것이다. 따라서 겸직 논란은 아예 도마 위에 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급제가 본격 시행되고 수천억
정부가 26일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주재로 법무부 장관, 경찰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5대 폭력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오는 3월부터 학교폭력이 빈발한 학교에 비상주 전담 경찰관을 시범적으로 배치하고 학교폭력 피해 학생에게는 등하교 때 경호를 지원하며 가해학생은 기존 소년원 시설을 활용한 대안교육센터에서 위탁교육을 받게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한 것은 학교 폭력이 교육계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도를 넘어 위험수위에 도달했음을 웅변한다. 정부의 비상 대책 발표가 있기 하루 전날 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못한 여중생 2명이 일산경찰서를 찾아 신변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을 괴롭힌 여학생은 일산의 모 여중 1학년생 2명으로 드러났다. 가출한 이들은 친구인 피해자 2명을 수시로 불러내 주먹을 휘두르고 인터넷에서 알게 된 10대 남학생들로부터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 피해자들을 남학생들에게 소개해 강제로 성관계를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 TV와 신문에 보도되자 전국의 학부모들에게서 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량한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학교폭력이란 상대방의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