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간도 짧다.” 작년 연말에 오랜 친구가 보내 온 박노해의 詩 ‘동그란 길로 가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누구도 산 정상에 오래 머물 수 없듯이 골짜기에도 오래 있을 수 없으며, 괴롭다고 너무 좌절하지도 말고 좋다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 것이며, 인생이란 동그란 길로 돌아나가듯이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듯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시인은 위로하고 있다. 연말연시에 누구나 한번쯤 음미해 볼 만한 詩라고 생각했다. 성장률 올라가도 체감경기 비슷 2013년 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눈도 많이 내리고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는 매서운 추위를 선보이고 있다. 춥다보니 올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처럼 길고 추운 겨울도 곧 지나갈 것이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고 했던 시인의 말처럼 곧 따스한 봄이 오고 화사한 봄꽃들이 선보일 것이다. 2013년 우리 경제는 이처럼 추운 겨울의 꼭대기에 서 있는 것과 같고,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 내려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은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지 않고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되지만, 그렇게 절망하
미역국 끓는 소리 /문성해 방에 누워 부엌에서 미역국 끓는 소리를 듣는다 비릿한 미역줄기들이 커튼처럼 우리 집 창틀에 매달리는 걸 본다 그 속에 미역줄기 같은 머리를 감고 죽은 앵두집 아이도 보인다 그 아이의 심하게 접힌 다리가 이상하게도 펴져 있었다 저수지에 빠져 죽은 그 아이 그곳에선 앉은뱅이 다리가 쉽게 풀리더라고 부러진 의자들도 수초처럼 물결에 흔들리며 서 있다고 그곳에선 모든 것이 펄펄 끓는 춤이더라고 방안에서 듣는 미역국 끓는 소리는 다급하게 누군가 우리 집 지붕을 열려고 들썩거리는 소리 같다 장롱 속 이불들이 들썩거리고 옷장 속 개어진 옷들이 천천히 일어서고 저수지 아래 가라앉은 내 노래가 서서히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를 때 출처-시집 자라/2005년 창비 누군가 세상에 첫 울음 소리를 들여놓은 날을 기억하기 위해 미역국 끓이는 아침. 시인은 기억 속의 ‘저수지’로 걸음을 옮긴다. 그곳에는 어떤 비밀들이 있어서 모든 것을 풀어놓는지…. 아이의 심하게 접힌 다리가 풀리고, 부러진 의자들도 흔들리며 서 있다. 미역국을 끓이는 시인의 방안은 갑자기 들썩거리고 장롱 속의 이불과 옷들이 천천히 일어선다. 오래된 미역줄기처럼
프로야구 10번째 구단을 유치하려는 수원시와 전라북도 간 총성 없는 전쟁이 절정이다. ‘수원-KT’, ‘전북-부영’으로 짜인 승부는 이르면 오는 11일에 결판난다. 양측의 장단점은 이미 언론을 통해 상세히 알려졌다. 다만 수원시가 10구단을 유치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혹은 가장 절실한 이유가 묻혀 아쉽다. 1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경기도의 거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역사창조를 위해 프로야구팀이 필요하다. 행정구역 단위가 아닌 진정한 경기도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도민들의 유대의식이 절실하고, 유대감 형성에는 확실한 연고의식이 뿌리내린 프로야구팀만한 게 없다. 한 번이라도 야구장을 찾은 이들은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동류의식이 주는 찐한 감정에 놀라게 된다. 눈인사를 나눈 옆자리 관객이 자신과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더 이상 좌석이 비좁지 않다. 3~4회 동안 응원할라치면 김밥을 나누고, 음료가 오간다. 5~6회가 지나면 은근히 맥주잔이 건네지고, 오징어를 씹으며 편파적 해설에 의기투합한다. 7~8회가 되면 파도타기응원에 이어 어깨동무를 한 채 목청껏 응원가를 함께한다. 그러다 9회 말, 끝내기 안타로 응원팀이 승리하면 이산가족 상봉과…
최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면서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특히 저출산이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 사랑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조차 지키지 못하는 무기력함에 직업을 떠나 두 딸의 아버지로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경찰에서 실종아동 등 사회적 약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7월부터 서울 포함 전국 6대 도시를 대상으로 시행해오던 ‘아동지문 등 사전등록제’를 올해부터는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7월 구축된 ‘아동지문 등 사전등록제’는 시행 2개월여 만에 등록인구가 30만을 넘어서는 등 국민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제도가 서울과 부산 등 7대 도시에서 전국 단위로 확대될 경우 보다 신속하게 실종아동 및 장애인, 노약자 등을 발견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동지문 등 사전등록제’란 아동 등이 실종되었을 때를 대비해 보호자의 신청(동의)을 받아 경찰에 아동 등의 지문, 얼굴사진, 신상정보를 미리 등록, 실제로 실종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등록된 신원 자
지난달 동생이 이은미의 송별 콘서트에 갔다. 눈이 내리는 토요일. 이화여대 대강당 넓은 홀이 가득 찼다. 그 많은 사람들을 녹여내는 이은미의 열창! 노래 한 곡을 불러도 온 힘을 다해, 다음 곡을 어떻게 부르려나 걱정이 들 정도로 가슴이 터지게 노래한다. 이런 뜨거움, 이런 진정성이 이은미 팬을 만드는 것이겠지. 이은미의 <너는 아름답다>를 들으며 머리에 맴도는 것이 있었다. 내 자신이 정치인(의원을 정치인이 아니라 하는 것은 정치를 폄하하는 의식 때문이다)이기에 그 ‘치열함’을 자신에게 대비해보게 되었다. 현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당당히 맞서야하는 것, 그것도 ‘치열’하게 맞서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화려한 조명이 흔들릴 때마다 떠올려졌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의정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아껴주고 격려해주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판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 기간 동안 내게 쏟아진 공통적인 표현은 이것이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야” “왜 혼자 욕먹어.” 그렇다. 욕도 많이
‘100% 대한민국’은 100% 가짜다. 순금 순도도 99.9%가 최고다. 하물며 복잡다단한 인간사에서 100%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언어란 참 매력 있다. ‘100% 대한민국’에 공명하는 국민이 절반 넘는다. ‘멘붕’에 빠졌다는 나머지 48%도 사실 저 슬로건의 매력을 완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 감동이든 조금 감동이든, 감동이 있는 이유는 그것이 원대한 비전이기 때문이다. 건국 이래, 아니 단군 이래 그 비전은 끊임없이 다른 버전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았던가? 알면서도 속고, 몰라서 속는 게 정치의 언어이고, 정치의 비전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그 마음을 콕 찍는 데 일단 성공했다. 박 당선인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도 굳혔다. ‘100% 대한민국’이라는 엄청난 약속을 그가 제대로 지키고 싶어 하리라는 걸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도 정치인이므로 완벽한 100%는 불가능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단지 100%에 가깝게, 100%를 향하여 확고히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일…
원로시인 김지하가 39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유신시절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정치인, 장군, 재벌 등을 풍자한 ‘오적(五賊)’을 발표하고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까지 받은 그였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에 대학에 다니던 이들은 딱히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김지하를 안다. 당시 김지하라는 이름은 금기어이자 불온한 이름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각 대학에서는 김지하의 저항시를 등사기로 복사해 읽으며 그의 시대정신에 몰입하는 ‘지하의 밤’ 행사가 줄 이었다. 김지하의 시는 시원했다. 똥을 똥이라고 하고, 된장을 된장이라고 말했다. 숱한 고초를 겪으며 그의 시는 날 선 저항의식을 넘어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상징이 됐다. 우리사회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김지하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 갔다. 간혹 생명사상에 심취한 그의 글이 언론에 비치기는 했지만 대중적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했다. 박 당선인을 지지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색안경을 통해 보는 이들이 없으리라는 안도감에 이야기하건만 김지하의 박근혜 지지는 당혹스러웠다. 건강한 보수와 유능한 진보를 원하는 중립지대의 백면서생이 보더라도 이상
겨울 북천 /임동확 더 이상 거슬러 가지 못해 밑으로만 뻗어가는 강바닥 알고 보면 모두들 낱낱일 뿐인 모래알들이, 자갈들이, 갈대들이 별다른 회의도 없이 저마다 군락群落을 이룬 채 뒤엉켜 있다 그렇게 집단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겨울 북천 몸통 잘려나간 채 머리만 남은 명태들이 겨우내 말라가고, 방한防寒의 옷가지라곤 날카론 촉수의 가시뿐인 호랑가시나무 한그루 오래 춥고 굶주릴수록 더욱 사나운 야성野性의 한겨울을 홀로 견디고 있다 -시집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솔 압록강 지류의 북천인지 경북 경주 토함산을 발원으로 하는 북천인지 알 수 없으나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경북의 북천은 우기 외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겨울 북천은 메말라 있을 것이다. 북천으로 모여든 모든 것들도 덩달아 메말라있을 것이다. 푸른 잎 무성했던 나무가 여름내 걸쳤던 잎들을 서서히 버리듯이 수분을 버리는 일은 저마다 한겨울 야성의 추위를 꼿꼿이 견디는 방식이다. ‘몸통 잘려나간 명태들’도 ‘가시뿐인 호랑가시나무 한그루’도 수분을 몸에서 다 빼내는 방식으로 한때를 견뎌내고 있다. ‘알고 보면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