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며 각 지자체들은 앞다퉈 자기 도시만의 정체성을 찾는데 전행정력을 동원했다. 지자체 마다 이색 축제를 유치한게 그렇고 ‘CI(이미지 통합)’ ‘BI’ 작업을 통한 혁신적 이미지를 구축한게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시흥시는 민선4기의 시대를 열었지만 아직 그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 ‘시흥’이란 ‘지명의 정체성’이 분산돼 혼선을 주기 때문이다. ‘뻗어가는 땅’을 의미하는 ‘시흥’은 그 이름에 걸맞게 영등포 구로 금천 관악 동작 서초구와 경기도의 안양 광명 과천 군포 의왕시를 분가시켰다. 그 종가답게 시흥은 이제사 발돋움의 힘찬 날개짓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흥’의 지명은 일찍이 분가한 서울 금천구에서 전철 역사인 ‘시흥’을 비롯, ‘시흥대로’ ‘시흥IC’ 등을 모두 사용하는 탓에 ‘경기도 시흥’은 잊혀졌다. 이 지명의 혼선은 숱한 ‘실수담’을 낳고 있다. 전철을 이용해 시흥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이 금천구 ‘시흥역’에 내려 헤매고, 자가 운전자들 역시 ‘시흥대로’ ‘시흥IC’에서 회차하기 일쑤다. 지난 79년 시흥군 공무원으로 임용됐던 모씨는 채 2년이 안돼 고향인 강원도 영월군으로 옮겨갔다. 모친이 ‘경기도 시흥’인 것을 알
북한의 10.9핵 실험 이후 미국의 한반도 개입이 너무 노골화 되고 있는 듯 하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 국방· 통일 장관이 줄줄이 사임하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 미국이 한국의 장관 인사 문제를 들고 나온 데서 이를 보게 된다. 미국의 압박은 그 동안 우리 입장에서는 가장 민감하고 심각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쉽게 표현하면 ‘북한 선박에 대한 검문· 검색’ 활동에 적극 동참하라는 선이었다. 이제는 장관마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채우라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워싱턴 발 보도에 따르면 지난 27일, 미 국무성 숀 맥코맥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장관 자리에 언제 누구를 앉힐지는 본질적으로 내정문제”라면서도 “각 부처에는 노련하고 강력한 전문가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 안보 관련 장관 인사 문제는 “심각하고 중요한 이슈인 만큼 최고위급에서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요지의 말을 했다. 이 같은 한 국무성 관리의 말은 우리에게는 ’내정 문제‘가 아닌 ’내정 간섭‘으로 들린다. 그가 말한 ’전문가 집단‘이란 표현은 미국에서 교육받은 ’친미파‘를 등용하라는 뜻일 것이고, ’최고위급‘이란 말은 ’대통령‘을
지난 주 언론에서는 최규하 전대통령과 김일 선수의 장례식을 크게 보도했다. 우선 최규하씨는 엄숙한 국민장으로 치러졌음에도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국민없는 국민장의 모습이었다. 이는 전직 대통령이었고 우리 외교사에 큰 업적을 남긴 공훈에도 불구하고 1979년 10.26사태 이후에서부터 이듬해 신군부가 집권하기까지 보여준 그의 행적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을 것이다. 아직도 아궁이를 연탄화덕으로 사용한다는 검소함이 거론되어도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연도를 지나는 시민들만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전직대통령의 장례행렬을 지켜보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우리들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그러나 토요일 장례식을 치른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는 거창하지도 않았고 유명인사의 명단이 줄줄이 채워져 있는 장례위원회도 없는 조촐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빈소에는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잇따랐고 영결식에는 마지막 그의 모습을 아쉬워하는 이들로 식장이 메워졌었다. 아마도 국민들 대부분 김일 선수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픔을 함께 했을 것이다. 그는 지난 6, 70년대 국민들을 흑백 TV 앞에 모여 목이 터지게 함성을 지르게 했던 주인공이었다. 아니 그는 언제나 역경을…
다양한 전문교육 늘려야 여성농민 지원책 뒤따라야 보조자에서 농업핵심 역할 DDA·FTA 등 개방화시대 파고에 모든 농촌지역이 어려운 것은 공통이지만. 그 실태는 지역별로 매우 다르다. 어떤 지역은 발전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 활력있는 지역사회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농촌여성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두드러 지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농업분야의 기간노동력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농촌여성은 농업의 유지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핵심 대상이 되고 있으며, 최근 다원적 기능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농업·농촌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고려되야할 대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통계를 보면 여성은 106만7천명(2004년 기준)으로 전체 농업 종사자의 53.0%를 차지한다. 2001년의 52.9%(120만4천명)보다 높아졌다. 인구 구조로 볼때 농업·농촌은 여성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농가인구의 감소로 농업노동력이 부족하고 영농형태도 논벼 위주에서 원예작목 중심으로 변화함에 따라 농촌여성의 농업 노동 기여도 역시 남성보다 높은 게 현실이다. 특히 여성 기여도가 높은 과수·원예·축산
인간에게는 자유가 소중한 만큼 평등 또한 소중하다. 이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때에 사회는 안정되고 개인은 행복하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경우에나 치우치기를 잘한다. 어떤 사회는 자유를 강조하다 평등에 손상을 입는가 하면 어떤 사회는 평등을 강조하다 자유가 침해를 당한다. 자유주의 내지 민주주의는 자유를 강조하다 평등이 손상을 입기 쉬운 사회이고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는 평등을 강조하다 자유가 손상되는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이 땅 한반도는 지난 반세기 동안에 북녘은 평등, 평등하다 자유를 잃어버린 사회가 되고 말았고 그 평등도 함께 굶주리는 평등에 이르고 말았다. 반면에 남녘은 자유를 추구하는 어느 정도의 자유는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평등에 손상을 가져와 빈부간에 격차가 많이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몇십년 전에 비하면 경제적인 수준은 전체적으로 많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비하여 상대적 빈곤감이 더욱 두드러져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옛날에 비하여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추구하고 나가야 할 대안(代案)이 무엇일까? 다름아니라 자유와 평등이 균형있게 어우러져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건설이다. 성경이 위대한 것
한반도의 ‘북핵 문제’를 남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가 늘 궁금하던 차에 가 28일자로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실었다. 필자의 서론은 길었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북한이다’라는 결론이다. 중동 지방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는 말이다. 중동 전쟁 때나 가끔 국내 언론에 소개되는 ‘알자지라’에서 카툰을 담당하는 슈자아트 알리의 동영상(10월 13일자 게재) 네 편이 뒤늦게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카툰 제목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North Korean Bomb Scare)’이다. 장면 1은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권위와 가치의 상징이다. 이 여신상이 땀을 흘린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장면 2는 여신상이 한 문서(그 안에는 CTBT와 NPT가 쓰여 있음)를 쥔 채 놀라고 있는 모습이다. 장면 3에서는 여신상이 ‘이제 그만(Oh! No! Please!)’하라며 떨고 있다. 네 번째 그림은 핵을 탑재한 미사일을 쥐고 웃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이다. 작가는 한반도의 핵 위기와 관련, 미국의 몸통을 움직이는 주체는 북한 김 정일 국방위원장이라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중동 사람들의 보
시민 반대 상동 요양원 지금은 ‘동네 효자’ 각종 혐오시설 근시적 반대 말았으면… 우리는 한 세대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세월의 변화를 겪으면서 살아갈까. 아마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살았더라면, 오늘이 내일 같고, 십년을 늘 그렇게 변화 없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변화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어린시절에 아무 우물에서나 물을 먹었다. 그 흔한 물을 돈 주고 사먹게 되거나, 몇년 전만 해도 북한산 정상에서 핸드폰을 누구나 마음대로 하게 될줄 그 누가 상상이나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과거에 귀하게 여겼던 것도 지금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많다. 젊었을 때 고급 만년필이 자랑순위 1순위이던 시절도 있었고, 어릴 때 동네 형들은 좋은 라이터 하나만으로도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런 물건들을 지금도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선물 품목이거나 자랑거리는 아니다. 공직에 입문한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지난 공직생활을 돌이켜보면 지방행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우리 부천에서도 퇴비를 각을 맞춰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대학사회에서 ‘선배니 후배’니 하는 호칭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배란 학문이나 덕행 또는 나이가 자기보다 앞서고 높은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선배 대신에 쓰는 ‘언니 또는 오빠’라는 말은 듣기에 민망스럽다. 학생들 가운데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면 후배라도 언니 또는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선배를 선배라 부르지 않고 이렇게 부르는 것은 대학사회의 선후배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세상이 편한 쪽으로만 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선배라고 해도 한 두 해 빠를 뿐이니 차라리 나이를 따져서 부르겠다는 생각이다. 유달리 재수생이 많은 어떤 교육대 학생은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다 같은 선생님인데, 나이는 적은 데도 선배라고 반말하면 기분이 나쁘다.”라며 선배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에게는 초면에는 ○○○씨라고 부르다가 친해지면 ‘언니 또는 오빠’로 고쳐 부른다. 80년대의 대학사회에서부터 이런 호칭 변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학생운동권에서는 다반사였다. 여자 후배가 운동권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불렀는데, 이는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남자처럼 열심히 따르겠다는 뜻으로 이해되
지방의회 현직 의원들은 지난 5.31지방선거 당시 지역주민들의 민의을 대변하고 집행부의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겠다며 한표를 부탁하며 당선됐다. 이후 당선자들은 시·군의회에 입성하고 분야별 상임위원회를 구성해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수원시의회는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2천500만원의 예산을 들여 강원도 속초의 한 호텔에서 실시키로 했던 의원연수 예산을 대폭 줄이고, 기간도 10일 하루동안으로 줄여 의회 건물 안에서 연수를 실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수원시의회가 갑자기 다음달 1일부터 9일까지 수천만원을 들여 중국과 뉴질랜드, 호주로 해외연수를 떠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의원 1인당 정해진 연수비용 130만원이 부족하다며 4개상임위가 2개상임위에 몰아주기식으로 합의하고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 1인당 200만원이상을 가지고 해외연수를 떠날 계획이다. 특히 다음달 2일부터 중국 주해시로 떠나는 상임위의 경우 수원시 우호도시 1곳을 방문해 벤치마킹하는데 1인당 260만원이 소요되는 일정표를 편성했다는 것이다. 물론 해외연수가 모두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관광성이 아닌 의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연구하기 위해 떠나는 연수라면 필요한 연수
어린이들이 상스런 욕을 예사로 해대는 사회는 분명히 병이 단단히 들어있다. 어린이들의 해맑은 동심은 거울에 비친 호수와 같아야 하거늘 그것이 사나운 이리를 닮았거나 드릴이 쏟아내는 날카로운 소음을 연상시킨다면 그 책임이 어디에 있으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입에서 떨어지는 욕설을 듣고 깜짝깜짝 놀란 경험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예 중 몇 가지만 들면 “야이, X쌔끼야 ”, “존나 꼴았어!”, “개새끼, 왜 지랄이야”, “야 이 씨팔놈아”, “저거 미친넘(뇬) 아이가”, “조까네”, “끽소리 함 아가릴 찢어버린다” 등은 어른들이 쓰기에도 비천하고 속된 표현들이다. 그러나 일부 어린이들이 여기서 더 나아가 시사성을 띤 조어 내지는 국적 없는 막말도 쏟아내므로 세상 돌아가는 데 상식이 없는 어른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븅신(병신)”, “애자(장애자)”, “찌질이(모자란 아이)”, “싸물어(입 다물어)”, ‘‘SSBA(쓰바 : 씨발을 연상시킴)”, “뻥치네(거짓말하네)”, “ㅈㄹ(지랄)”,“ㅅㅂ(시발)” 등이다. 이런 말을 쓰지 말라고 어른들이 충고하면 욕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