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한 대형마트 회장이 현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깎아내리며 정부에 각을 세우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대형마트 회장은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경영운동’ 행사장에서 정부정책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정부의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정책에 대한 비난이었다. 정부는 심화되는 양극화 추세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소상공인이나 중소제조업체, 전통시장을 돕기 위해 상생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정부의 의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정책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도 없는 정책’이라며 정면으로 반발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국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들과 SSM으로 인해 수많은 골목 영세업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마당에 그의 발언은 적절하지 못했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친재벌, 친대기업 정책을 펼쳐왔다. 이런 정책은 골목 상권을 위협했다. 많은 영세 상인들이 도산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정부가 나선 것이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이라는 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대형마트들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일제 도입은…
‘코리아 엔젤’이라는 말이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독일로 취업이민을 가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던 어린 간호사들을 현지 언론이 부르던 말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수천 명의 광부와 간호사를 독일로 보내야 했고, 가난했던 대한민국은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삼아 경제발전에 필요한 차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채 지나지 않은 2011년 겨울, 대한민국은 부산에서 OECD와 공동으로 세계개발원조 총회를 개최했다. ‘두 손으로 주는 따뜻한 원조’를 핵심으로 하는 부산선언을 이끌어 내며, 경제원조가 실질적인 경제개발로 이어지도록 정책 방향을 바꿀 것을 강조했다. 도움을 주는 나라의 입장 뿐만 아니라, 원조를 받는 나라의 절박한 심정까지도 헤아리는 우리나라의 역할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원조를 받아본 경험이 있기에 개발도상국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받기를 원하는 개발도상국들이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계속 늘어나는 이유도 이런 동류의식(同類意識)이 근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발도상국가들의 빈곤과 기아해결을 위해 이제 우리나라가 나설 때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농업·농촌 개발 경험과 기술은 이들…
한 가정에서 가장이 실직하거나 급여가 줄었다면 그 가정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앞날을 걱정하며 살아갈까? 생각만 해도 막막하고 황당한 일인데 한 가정도 아닌 인구 7만2천명이 속해 있는 도시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암담한 일이다. 2011년 과천시 예산은 2천127억원이다. 이중 45%에 달하는 959억원(징수교부금 90억 포함)이 레저세로 과천시 재정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과천이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이유가 레저세 등으로 확보된 세수를 각종 복지예산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과천의 윤택한 복지와 풍부한 문화혜택은 레저세가 없으면 결코 이뤄질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과천’이라는 슬로건에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레저세를 절반으로 줄이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의문 부호를 갖게 된다. 지난해 8월1일 민주당 김영록 의원 등 13명의 의원들이 경마에 대한 레저세율을 현행 10%에서 5%로 낮추는 내용의 ‘지방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과천시의 레저세 수입이 연간 960억원에서 480억원 가량 축소돼 재정파탄마저 우려되
그동안 필자는 참으로 많은 아트센터를 벤치마킹했다. 벌써 이 일을 시작한 지, 20년. 그러나 아직도 아트센터에 대한 갈증이 깊다. 생각해 보면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아트센터는 지방재정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는 관계로 제대로 그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하나의 커다란 애물단지 건물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해 질 것이다. 최근 지방 문예회관 관계자들이 필자가 근무하는 아트센터를 방문했다. 그들을 만났을 때 너무나 놀랐던 것은 전혀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예회관 공정을 다 마무리하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공사가 다 끝난 지금에야 자문해달라고 한다. 이래서는 지역에서 지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트센터의 공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책임자급 2명(기획, 기술)은 최소한 필요한 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건설에 관련된 경비도 줄일 수 있고, 향후 운영하는 데 있어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행정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필자가 지적한 이 부분을 받아들인 지방의 문예회관에서 전문가급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창룡문’은 여야가 선거구 획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게리맨더링’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었다. 우려의 근거는 상식이다. 선수인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뛸 경기의 규칙을 스스로 정하겠고 나선 것이 원죄(原罪)다. 또 정당간 극심한 갈등이 뻔히 예상되는 선거구 조정을 선거가 코앞에 닥친 시점에 시도한 무능한 정치일정도 문제다. 여기에 끝도 없는 정치인의 탐욕이 국민을 우롱하는 하는 결과를 낳았다. 덧붙여 ‘국익과 품위’라는 선진적 관례를 기대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자질도 누더기 선거구를 만드는데 한몫 거들었다. 불량 정치인들의 사생아라 할 ‘누더기 선거구’가 가장 극심한 곳은 경기도다. 게리맨더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식과 여론이 무시됐다. 여주는 생활권인 이천에서 떨어져 종단거리 104㎞, 차량이동시간 3시간여인 가평·양평 선거구로 붙었다. 용인은 기흥구인 동백동과 마북동을 이웃한 처인구로 합치고, 수지구인 상현2동만을 빼내 기흥구로 붙여 그야말로 너덜너덜한 선거구가 탄생했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수원시의 선거구 조정이다. 권선구청이 위치한 서둔동을 권선구에서 뽑아내 팔달구에 더하는 기형아를 만들어냈다. 당연히 지역의 반발이
93년 전 3·1절은 당시 온 국민이 하나 돼 조국 독립을 기뻐하며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던 날이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주살하시고 붙잡히면서 태극기를 꺼내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또한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든 오른팔이 일본 군인이 내리치는 칼에 떨어져 나가자 엎드려 왼팔로 태극기를 주워들고 돌진해 나갔다. 격앙된 일병(日兵)들은 왼팔마저 잘라버렸으나 끝내 독립만세를 외치며 저들의 칼 끝에 비통한 최후를 마친 선열들도 있었다. 이렇듯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태극기가 곧 조국이었다. 우리의 선열들은 태극기와 목숨을 바꾸면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는 그날의 뜻을 새기는 행사에 도민 모두 참여하고 애국의 마음으로 태극기를 빠짐없이 달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국가 상징물은 5종이 있다. 국기인 태극기와 국가인 애국가, 국화인 무궁화 그리고 옥쇄(대한민국 인장)와 나라문장(여권 등 외교문서에 사용하는 문양)이다. 지난날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형 태극기가 경기장 마다 휘날리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공정(Fairness)은 결코 녹록치 않다. 우리 사회에 ‘정의 신드롬’을 낳았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 하버드 대학 교수는 공정 또는 불공정을 나누는 기준을 ‘소득, 명예, 사회적 지위 등 가치 있는 파이를 어떻게 나눠 갖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공정을 분배의 문제로 본 것이다. 어느 골프대회에 10억원의 상금이 걸렸는데 1등을 한 선수에게 8억원을 주고 나머지 2억원은 대회에 참여한 50명의 선수들에게 성적에 따라 상금을 분배했다면 과연 공정한 분배인가?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 중·고등학교 때 장학금을 놓쳐 본 일이 없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을 가 우수한 성적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고, 유명대학의 교수로 취직했다. 그리고 연봉 1억원을 받고 있다. 또 한 친구는 중고등학교 때 놀 것 다 놀고 온갖 말썽만 피우다 지방의 단과 대학을 겨우 졸업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임원으로 일하면서 연봉 2억원을 받고 있다. 이런 경우는 공정한가 불공정한가? 위 사례가 얼핏 불공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를 불공정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
국민들이 고대해온 가정상비약의 약국외 판매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는 지난 27일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었으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약사법 개정안 등 일부 안건의 통과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감기약 등 편의점 판매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약사법 개정안은 표류가 불가피해졌다. 법사위 측은 3월 초에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어 법안을 차질없이 통과시키겠노라고 했지만 이 또한 가봐야 알 일이다. 설사 법사위를 통과해도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면 만사휴의이기 때문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시원치 않은 18대 국회의 자화상이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국회는 너무 심하다. 엊그제 법사위 무산은 소속 의원들이 ‘지역 일정’을 이유로 들어 법안 심사 자리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되지 않았던가. 입으로는 국리민복을 외치지만 몸으로는 자기안위를 도모하기 급급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동안 약사법 개정안 상정에 마뜩지 않은 듯 미적지근한 자세를 취해오던 의원들이 애초부터 처리할 뜻이 없었던 것 같다는 의심과 푸념은 그래서 나온다. 누차 강조하거니와 국회는 국민의 의사와 이익, 편의를 무엇보다 우선해 고려해야 한다. 민의존중이 첫 번째라는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안다. 한국의 화장실문화를 바꾸고 수원을 세계화장실문화운동의 메카로 만든 ‘세계 화장실 문화의 대부’ ‘미스터 토일렛’ 고 심재덕 수원시장이 왜 세상을 떠나게 됐는지. 건강했던 그는 한참 일할 수 있는 70세의 나이에 전립선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하지만 그의 생명을 앗아간 전립선암은 초기에 발견됐었고 치료만 제대로 받았으면 충분히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치료시기를 놓쳤다. 바로 세계화장실협회 창립 때문이었다.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을 주도했던 그는 본부를 한국에 설치하고자 동분서주,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녔고 이 과정에서 그만 실기를 해버린 것이다. 그의 생명과 바꾼 세계화장실협회는 2007년 11월 한국에 본부가 설치됐다. 그리고 그의 생존 시에는 활발하게 운영됐지만 2009년 1월 세상을 떠난 후에 현 회장인 조용이씨가 이어받았다. 이후 예산부족으로 운영난을 겪어오다가 지난해부터는 활동이 전면중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직원들도 지난해 1월1일자로 전원이 퇴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조용이 회장 취임 이후 해외 화장실 지원사업을 비롯해 국제 연수사업과 국제기구 및 민간 협력사업 등 주요 과제들이 모두 무산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