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외유, 꼭 국민세금으로 가야 하나?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가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해외연수 자체가 부정적으로 비춰져서는 곤란하다. 지방의원들은 선진 외국의 관공서와 복지기관 등을 돌아보고 행정과 복지 선진국의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시민들의 뜻을 시정이나 도정, 군정에 반영해야 하는 지방의원들인 만큼 지구촌 곳곳을 살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이는 지방의원뿐 아니라 일선 현장의 지방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돼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의회 스페인 친선연맹의 외유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강진이 발생한 터키로 관광성 외유를 추진 중이라는 것이다. 도의회에 따르면 도의회 스페인 친선연맹은 오는 17일부터 23일까지 5박7일 일정으로 터키 이스탄불주와의 우호교류 체결을 위해 현지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본보 5일자 5면)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스페인친선연맹이 왜 터키와 우호교류를 체결하기 위해 현지로 가는가? 그것도 강진 피해로 온 나라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와중에... 참 이해 못할 일이 아닌가? 보도에 의하면 스페인과 친
‘나는 꼼수다’의 준말인 ‘나꼼수’는 이제 우리사회의 보통명사가 됐다. 일부 정치세력과 특정 계층, 한정된 세대의 기호라고 폄하하기에는 그 파괴력이 엄청나다. 창룡문 역시 정파적 색채를 배제하기 위해 그동안 애써 ‘나꼼수’를 다루지 않으려 했지만 대중성 확보에 이은 대안언론으로서의 가능성으로 인해 한번은 거르고자 한다. 젊은층의 열광을 받고 있는 ‘나꼼수’는 세계적 권위의 뉴욕타임스가 보도한데 이어 중동지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알자지라 방송까지 나서 한국의 대표적 정치풍자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면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나꼼수’는 지상파 방송도 아니고 종편 혹은 케이블방송도 아닌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이라는 한계를 갖고 출발했으면서도 아슬아슬할 정도의 신랄한 풍자와 보수언론이 꿈꾸지 못하는 도발적 혜안으로 주가를 높여 가고 있다. 2011년 4월 시작된 ‘나꼼수’의 출범 동기는 통칭 ‘가카(각하)’로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검증(?)이어서 때에 따라서는 “국가원수에게 저럴수 있나&rdqu
얼마 전부터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게시판에 시·군 통합을 주장하는 전단지가 붙어 있다. 살펴보니, 시·군 통합이 되면 학군이 재조정돼 교육환경이 좋아질 것이고, 아파트 값도 올라갈 것이고, 행정비용이 절감돼 예산이 절약되며, 중앙정부의 지원이 확대되는 등의 주장들이 적혀 있다. 벌써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간 찬반이 나눠 논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2년 전 광풍처럼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던 시·군 통합의 바람이 다시 불어올 모양이다. 대통령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는 2011년 12월까지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또는 주민 2% 이상이 통합을 건의하면 추진위원회에서 2012년 6월까지 통합안을 만들고, 그 이후 통합 권고 및 통합 의사 확인을 거쳐 2014년 제6대 지방선거에서는 통합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 구역개편 논의는 1980년대부터 정치권과 학계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됐다. 1994년에는 내무부 주도로, 2001년에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주도로, 2005년에는 여야 합의에 의한 정치권의 주도로, 2009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추진됐다. 2009년 당시 행정안전부는 통합을 유도하기 위해 통합지자체에는
요즘 걷는데 재미를 붙였다. 퇴근 후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아연 거리는 활기를 띄지만 양지가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 노점상 부부들의 대화에도 무언가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네들은 지금부터 무엇을 할까? ‘불편한 진실’ 요즈음 코미디 프로의 가장 인기 있는 개콘(개그 콘서트)의 코너 제목이다. 왜 진실이 불편해야만 하는가? 진실의 반대말은 가식, 거짓 등등이 있다. 그쪽 길로 생각하면 편할까? 불편한 진실이란 잘못 알고 있는 진실이 점점 상식으로 자리 잡아 가면 그건 아닌데... 식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흔히들 쌍둥이 중에 먼저 나오는 사람을 형(兄)으로 부르는데, 생명체로 먼저 잉태된 형이 늦게 나오는 법이다. 이것도 대단히 불편한 진실이다. 요즘 걷는데 재미를 붙였다. 벌써 두 달 가까워온다. 멋있게 표현하자면 산책이랄 수도 있는데, 그 경지는 아니고 무작정 걷는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그냥 빈둥대는 것 보다는 나을 듯해서 택했다. 혹시 아는 사람 만나면 길에 즐비한 꼼장어 구이 집에 소주라도 한 잔, 유혹당할까봐 벙거지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보면 거울에 비추는 내 자신의 모습도 다른 이처럼 느껴진다. 코스를 정하
지난 11월 23일 국무총리실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내놓았다. 지난 6월 형사소송법 개정 취지와 달리 경찰 내사 단계부터 검찰의 지휘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혹자는 “이번 발표 내용은 수사권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을 검찰의 노예로 만드는 내용이다”라고 평을 한다. 향응, 성접대 의혹 스폰서검사, 금품수수의혹의 대구지검장, 그랜져 검사 사건 등 세간의 이목을 주목시킨 검찰 비위가 드러나지만 어느 누구도 법정에서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검찰은 내부감찰이나 특별검사 등을 통해 수사한다고 법석을 떨지만 결국 그 결과는 하나같이 솜방망이 처벌에만 그칠 뿐이다. 최근에는 벤츠 여검사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에서는 특임검사까지 선임해 수사한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지켜볼 일이다.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다른 공직자는 10만원의 뇌물만 받아도 파면당하고 구속되는 세상에 유일한 성역이 바로 검찰인 것이다. 이런 검찰의 노예가 되라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 검찰은 자신들의 성역을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 경찰 내사 범위를 축소시켜 경찰의 반발을 유도하고 수사권 조정의 모든 관심을 내사에 집중시키고
베이비 부머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여론과 학계에서 많은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 베이비 붐 세대는 1955~1963년에 출생한 49~57세의 사람들로, 그들은 전 인구의 14.5%를 차지하는 695만명의 인구거대집단이다. 이들은 5.16군사 쿠데타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지나온 사람들이며,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의 주춧돌이 됐던 산업일꾼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지방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의 공장이나 서비스 업종에 취직하기 위해 대규모 이동을 주도했던 세대이며, 소수의 사람들은 대학에 진학해 학생운동 등 반체제 운동에 가담하면서 대학 문화를 형성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핵심에 있었으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 외환외기,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했던 세대이다. 이들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주동력으로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동안 정작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할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여력이 없었던 상태로 은퇴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족관계, 여가활용, 노동에 대한 태도, 노후소득, 건강상태, 가치관 등에서 현 노인 세대와는 많은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이들의 욕구에
화재현장에서 진화작업을 벌이던 소방관 두 명이 순직했다. 이재만(40) 소방위와 한상윤(32) 소방장은 지난 3일 평택 가구전시장에서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야간근무 교대를 30분 앞두고 있던 이들은 불이 나자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다. 동료 소방관 3명과 함께 불이 난 전시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열기가 너무 세 일단 철수하기로 하고 빠져나오다 변을 당한 것이다. 베테랑인 이들은 불 속에서 대원들을 먼저 대피시키느라 시기를 놓쳐 숨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상윤 소방장의 부인은 빈소에서 “쌍둥이 아들과 막내는 어떡하라고 바보야”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한 소방장은 4살짜리 쌍둥이 아들과 아내 배 속에 5개월된 아이를 두고 있었다. 언제나 가정적이던 한 소방장이 숨지고 3시간쯤 지난뒤 그가 주문했던 캠핑용 테이블이 배달돼 동료들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함께 순직한 이재만 소방위는 형제 소방관이다. “아비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할테니 너희는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 이달희 목사의 말에 따라 소방관이 됐다고 한다. 그는 최근까지 경기도 소방학교 화재현장팀 전임교관으로 신임 119대원의 교육을 맡아온 베테랑이었다
이제 수원천 전 구간이 시민의 산책로로 개방된다는 기쁜 소식이다. 이렇게 되면 광교산부터 비롯되는 하천을 따라 세류대교 공군비행장까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로 달릴 수 있다. 수원천은 고(故) 심재덕 시장과 당시 시민운동을 주도했던 현 염태영 시장이 앞장서 수원천 살리기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덕분에 죽음의 하천에서 생명이 숨쉬는 자연형 하천으로 되살아났다. 서울 청계천이 시멘트 덩어리인 인공적인 하천으로 조성됐다면 수원천은 흙과 수초, 우리 들풀과 꽃, 물고기 등 생태계가 살아있는 옛 시절의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것이다. 수원천은 1994년 매교~지동교 780m 구간이 도심 교통난 해소를 명분으로 콘크리트로 복개됐다. 그나마 화홍문 앞까지 복개하려던 시의 움직임이 시민운동으로 중단된 것이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 구간 역시 수원의 역사와 환경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뜻에 따라 지난 2009년 7월 철거공사에 들어갔다. 이달 중순이면 복개구간을 뜯어내고 도심속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마무리 된단다. 이에 앞서 10일 경 그동안 복개와 복원공사로 막혀있던 산책로가 일반시민들에게 개방된다는 것이다. 체증이 뚫리는 것처럼 속이 다 시원하다. 지난 2009년 7월 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