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많은 사람들이 각국의 명승지 여행을 즐기고 있다.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나 이화원에 간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나 영국 런던 테임즈 강변의 런던 탑, 대영박물관,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포함된다. 공을 많이 들인 탓에 아직도 세상에 남아 그들의 혼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서울에서 외국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화려한 빌딩보다는 조선시대의 건축물과 역사적 유물일 것이다.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된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가 아무리 가치 있다고 해도 현재는 우리 서울의 조선시대 건축물만 하겠는가? 이유는 브라질리아의 역사가 겨우 50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가끔 표현하기도 한다. 조선인들이 사용하던 사발이 왜구들에게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개밥그릇도 일본에서는 보물이었다. 그래서 많은 도공들이 사로잡혀갔고 그들이 전수한 것이 오늘날 일본의 도자기이다. 고려청자가 일본의 도자기 보다 가치가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계에서 하나뿐인 독창적이고 오래된 물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시골은 높은 산과 넓은 들,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강 과 계곡사이의 촌락들로 구성돼 있다. 봄이
최근 생맥주집과 고기집, 호텔, 칵테일 바에서도 막걸리가 팔리고 있다. 한마디로 요즘은 막걸리가 대세다. 막걸리는 소주나 맥주, 양주, 고량주 등에 비해 덜 해로운 술이다. 우선 알콜 농도수가 약한데다 쌀이나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출출할 때 시장기를 메우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농부들이 새참으로 즐겨 먹었기 때문에 농주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특히 최근 남아도는 우리나라 쌀을 이용해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업체가 점점 늘어나는 등 쌀 소비를 촉진시키는 효자 술이기도 하다.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대기업들마저 막걸리 시장에 가세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이 막걸리를 만든다고 해서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또 대기업의 우수한 연구진이 품질을 업그레이드 시킨 막걸리를 만들어 내고 해외 마케팅을 통해 수출을 하게 된다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다. 그런데 이전에도 본란을 통해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지만 대기업이 우리나라 막걸리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전통은 있지만 영세한 지방의 양조장들이 문을 닫게 된다. 이래서 지역 주민이나, 사회단체, 특히 지방정부에서 지역 막걸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키워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만드는 막
요즘 공무원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다름없다. 조직내에서 튀지 않고 잘 버티기만 하면 인생 황혼무렵까지는 그야말로 대접 받으며 살아 갈 수 있다. 공무원이 일약 특권계층으로 떠오른것은 경제환란 이후부터다. 퇴임까지 별무리가 없는한 신분과 경제가 보장되는 인기직종으로 부각된 것이다. 한 때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의 딸 특혜채용이 언론의 도마위에 오르면서 장관직을 잃는 등 큰 홍역을 치렀다. 어린 딸이 외교통상부 내에서 어느정도의 능력을 발휘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거의 장관급의 예우를 받았으리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다. 오랜동안 굳어져 내려온 공직의 습성을 가늠해 보더라도 그것은 예측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공직 우월주의가 팽배해 지면서 관청의 문턱을 넘기 위한 공무원 특채 비리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이러한 공직 가족들의 특채는 철저하게 비밀주의에 부쳐저 채용과정을 선점해 조직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사실에 교육기관이 이래도 되는가 하는 배신감마져 들 정도다. 경기도교육청에도 5급 이상 공무원의 친인척 602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본보 10월 12일자 보도) 이는 도교육청내에 근무하고 있는 5급이상 직원 482
조용하고 아름다운 전원에서 살겠다는 꿈을 가진지 30년, 광주에 와서 잠시나마 이뤄지는 듯 보였던 그 꿈은 마을에 닥친 여러 일들로 잠잘 시간과 밥을 못 먹으며 뛰는 생활로 바뀌어 버린 지가 2년이 됐다. 이제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시의원이 돼, 쉬겠다는 생각마저 사치가 돼 버렸다. 광주시의회의 의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민의를 수렴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나 또한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공부하다보니, 휴식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속초에서 의정연수를 한다기에 새삼 반가웠다. 공교롭게도 의정연수를 떠나는 날, 막내아들의 군 입대 때문에 논산을 들렀다가 속초로 향하는 바람에 뒤늦게 연수 장소에 도착했다. 첫날 강의를 듣지 못한 나는 동료 의원들에게 강의 내용을 물었더니 들을 것도 없고 지루했다고 말해 강의를 듣지 못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 하면서도 한편 실망도 됐다. 다음 날 오전 강의장에 들어갔으나 구태의연한 강의내용에 도중 강의장을 박차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하는 것이 더 낫겠다’던 동료 시의원의 말이 실감됐다. 이번 연수가 어떻게 준비됐는지 관계자에게 물으니, “한 의정연수 컨설팅 업체가 일정과 강사 등 모든 일정을 계획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사회적 기업이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수익창출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일반적인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나,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 제공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즉 사회적 기업은 재화·서비스·생산 등 영업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다시 사회에 재투자하는 따뜻한 희망나눔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장애인 고령자 등 취약계층 6천명을 포함해 1만1천177명을 고용, 2만여 명의 취약계층에게 가사간병 등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협력 등 다양한 사회적 기업 860여 개도 활동 중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은 증가되고 있으나, 지자체의 의지와 재정자립도 등에 따라 지역별 편차가 크다. 현재 사회적 기업은 돌봄·환경·문화 분야 등에서 320개가 있다. 그 중 서울은 73개로 가장 많다. 그 뒤로는 경기 56개, 강원 21개 등이다. 하지만 충남 지역은 불과 6개의 사회적 기업만이 활동하고 있다. 인증 사회적 기업이 353곳에 달하지만 정부의 관심이 4대강 사업과 미소금융 등으로 쏠리면서 초기의 열기가 다소 식은 감이 없지 않다. 정부는 오는 2012년까지 사회적기업 1
가을철을 맞아 도내 도심지 인근의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또한 약수터 등지에도 새벽시간대 및 저녁시간대에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도내 공원 및 인근 공터 등에 설치된 각종 운동기구들의 사용 역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용객의 증가에 따른 공용 시설물들이 손상되는 사례가 곳곳에서 확인되면서 이용객들의 불편 역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도내 공원이나 공터 등에 마련된 농구장에 설치된 그물의 경우 새벽시간 등에 임의로 훼손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설치 후 다시 떼어가는 경우도 많아 유지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약수터와 같은 많은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원 등지에 설치된 각종 운동기기들 역시 파손이 심한데다 주변에 담배꽁초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공원을 이용하던 한 시민은 “수명이 다 한 것도 아닌데 공원을 찾을 때마다 그물이 찢어져 있다”고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설물의 설치 및 보수비용은 모두 시민들 세금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라 할 지라도 수시로 교체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해당 지자체 관계자들은 설
우리나라 근대스포츠의 형성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곳이 외국어학교다. 1895년 5월에 설립된 외국어학교 교사인 허치슨, 헬리팩스, 마르텔 등이 중심이 돼 서양의 각종 근대 스포츠를 도입했다. 이 학교가 1896년 5월 2일 동소문 밖 삼선평(三仙坪, 현 삼선교 부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회를 열었다. △오늘날과 같은 운동회라기 보다는 일종의 야유회(당시는 화류회(花柳會)라 불렀다)같은 것으로 좁은 교실을 벗어나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 독립신문에 실린 기사가 재미있다. ‘외국어학교 교사와 학도들이 이튿날 동소문 밖으로 화류를 갔나니, 오래 학교 속에서 공부하다가 좋은 일기에 경치 좋은 데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운동을 하는 것은 진실로 마땅한 일이니…’ △허치슨은 1897년 6월 16일에 외국어학교 대운동회를 주선했는데 이는 오늘날 육상경기대회의 효시가 됐다. 우리나라 근대 축구역사는 1882년 6월 제물포에 입항한 영국군함의 수병들이 축구를 하고난 뒤 공을 주고 간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공식적인 첫 선은 1897년 외국어학교 교사들에 의해서였다. 야구는 이보다 늦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에 의해 보급이 됐고, 농구 역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로 꼽힌 황장엽(87)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지난 10일 타계했다. 황씨는 13년 전 북한을 탈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망영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당시 노동당의 국제담당 비서를 지냈던 굵직한 인사였다. 29세의 나이로 김일성대 철학과 교수가 됐고, 1959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거쳐 39세 때인 1962년에는 김일성대 총장 자리에 오르기도 한 북한의 최고 엘리트로서 김정일 위원장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런 그가 남한으로 탈출했을 때 우리도 놀랐지만 북한 측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북한은 황씨의 망명 직후 남한이 납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이어 “민족 파멸의 전쟁 불씨를 퍼뜨리는 노망한 자의 망발이며, 황 역적을 반드시 황천객으로 만들 것”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의 죽음에 대해 한나라당은 “많은 위협에도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 회복, 민족의 평화를 위한 고인의 용기 있는 행동을 높이 평가 한다”고 밝혔다. 야당은 “황장엽 선생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세운 학자이면서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갖고 있었으며 이렇게 급격히 사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