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18세기말 국가적 사업으로 개발된 신도시이다. 원래 수원은 화성의 송산 인근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의 백성을 팔달산 자락으로 이주시켜 형성된 도시가 오늘날 수원인 것이다. 송산에서 팔달산 자락으로 옮긴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정조(正祖)의 지극한 효심에 기인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묏자리인 영우원(永祐園, 서울 전농동)이 탁월한 길지가 아닌 초라한 형색이기에 정조는 늘 가슴 아파했었고, 당대 명당으로 손꼽히던 송산으로 천장(遷葬)을 결행했던 것이다. 그 결과 송산에 살던 백성들은 소개(疏開)되어 팔달산 인근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전제 군주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역시 지극한 효심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다. 수원을 옮기게 된 보다 중요한 이유는 당시 정치, 경제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송산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군사 요충지였다. 하지만 새로이 요구되는 삼남으로의 교통 중심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다소 규모가 작았다. 또 험준한 지세로 접근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정조는 한양 중심의 권세가를 견제하거나 대체할 새로운 세력의 형성을 희망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요구에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수원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
2009년 한 해가 시작된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한 해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서 1년 열 두달 365일이 되는 것을 의미하거나, 또는 날이 밝아서 어두워질 때 까지를 의미하는데 그것을 일몰(日沒)이라고도 표현한다. 즉, 일몰은 해가 생명을 다한 것으로서, 사회과학에서는 이러한 일몰의 의미를 바탕으로 일몰제(日沒制: Sunset)라는 제도가 있다. 일몰제는 특정한 정부사업이나 공공기관에 부여한 권한을 일정 기간만 부여하고, 부여된 권한 기간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그 권한이 폐지되도록 함으로써 행정의 능률성과 효과성을 향상시키는 제도이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2009년도 업무보고서에서 지금의 경제난국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의 걸림돌이 되고있는 각종 규제를 자동적으로 정리하는 ‘규제일몰제’를 확대 실시하겠다고 이명박 대통령께 보고하였다. 일몰제도는 1976년 미국 콜로라도주가 자원난 시대를 대비하여 자원의 절약과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 처음으로 도입하였으며, 현재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규제일몰법(Regulatory Sunset Act)’ 등을 제정하여 낭비
서동요는 신라 26대 진평왕 때 백제 30대 임금인 무왕이 지었다는 4구체로 된 국문학사상 최초의 향가이다. 이 노래는 향가 중 유일한 동요로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무왕(武王)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해지는데 이 설화에 의하면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서동설화에 따르면 서동은 익산 지역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마를 캐며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삶을 살았었는데 ≪삼국사기≫에는 서동에 대해 법왕의 아들로 위풍이 뛰어나고 지기가 호걸했다고 적혀 있다. 사실 왕자신분인 그가 왜 마를 캐어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야 했는지 서동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삼국 통일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던 백제의 왕과 신라의 왕이 사돈관계를 맺는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는 지금껏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다. 이 러브스토리의 하이라이트는 익산 미륵사의 창건으로 이어진다. 미륵사는 서동왕자가 선화공주를 위
최근 경기도는 국토해양부의 경인운하 건설사업 발표에 맞춰 한강하구 일대를 관광·물류 등 복합기능을 갖춘 친수공간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세부적인 계획은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자유로 이산포 나들목 인근에 ‘이산포 물류터미널’을 설치해 킨텍스·한류우드와 연계해 관광 및 전시산업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물론 그동안 경인운하 사업에 소외돼 있던 경기 서북부 지역으로서는 도의 계획으로 수혜지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의 이런 갑작스런 계획 발표에 고양·파주지역 여론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경기도가 청와대에서 열린 경인운하 관련 관계부처 회의에서 경기도의 입장을 건의하던 지난 20일 김포시는 고양시에 공문을 보내 ‘현재 신곡수중보를 이산포터미널 예정부지보다 하류인 하성대교 예정지 인근으로 옮길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사실 김포시는 경인운하 개발계획이 지금처럼 공론화되기 이전부터 이같은 계획들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중보 이전 계획도 지난해 연구용역에 착수해 이미 그 결과가 나온 상태다. 환
요즈음 연말정산 기간을 맞아 세금환급과 관련한 ARS전화가 걸려 오면 신종 보이스 피싱으로 의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000에서 연말정산에 필요한 세금환급과 관련하여 오납된 요금을 되돌려 드리니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를 알려 주세요”라는 ARS전화 멘트가 나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전화를 끊고 이런 내용의 보이스 피싱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을 관할 경찰관서에 신고를 해주어야 한다. 최근 ARS 음성메시지로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빼내가는 신종 보이스 피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연말정산 기간을 맞아 세금 환급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겨냥한 신종 보이스 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이스 피싱은 주로 한국말이 서툰 중국 등 외국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 개인정보를 캐내는 수법이었지만 최근의 ARS자동음성메시지 수법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해 피해가 늘고 있다. 우선 피해를 막기 위해 시민들이 알아둬야 할 점은 모든 행정 기관 등 에서는 세금환급과 관련하여 일체의 ARS음성메시지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에 과·오납된 요금이나 세금이 있으면 해당 내역을 반드시 우편물로 보내거나 시·도·구청·우체국…
학습지도 원리대로라면 학생은 당연히 개별로 배워야 할 과제를 갖고 그것을 가르쳐줄 -사실은 배우도록 안내해줄- 교사를 찾아가게 해주는 것이 ‘교육행정’이다. 다만 우리는 수많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모아 ‘한꺼번에’ 가르치고 배우는데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을 몇 개의 수준으로 나누어 가르치자’는 수준별 지도는, 교육의 공급면에서는 매우 친절한 교육을 베푸는 양하지만 학생들의 개별 특성을 감안하면 결코 절대적인 친절은 아니다. ‘획일적 전체지도보다는 친절한’ 차선의 방안일 뿐이다. 즉 어느 학생이 “여러 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학습에 지장이 많아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항변한다면, “학생 수가 많기 때문에 친절한 개별지도를 해주지 못했다”고 해명하겠지만 그 해명이 떳떳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획일적 강의식이나 소집단을 대상으로 한 수준별 지도를 넘어 이제는 개인별 맞춤형 수업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육선진국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관점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현장
공교육의 경쟁력이 사교육의 경쟁력을 능가할 수 있을까? 이는 공기업의 경쟁력이 사기업의 경쟁력을 능가하는게 가능하냐는 물음과 동일하다.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공교육의 본질자체가 경쟁력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평등과 평준화는 조금은 다른 의미이지만 교육은 국민의 의무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에 공교육의 서열화 또는 차등화는 가장 경계해야 할 민주교육의 조건이 될 터이다. 지난해 교육계에 큰 파장이 일었던 국제중학교와 자사고확대 등 경쟁력강화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정책들이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엔 외국인 학교의 내국인 학생정원을 50%까지 허용한다는 방침도 그것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또 입학자격도 외국거주 5년 이상에서 3년으로 완화된다고 한다. 기가 막힌 교육 경쟁력 강화정책이다. 공교육이건 사교육이건 모든 교육을 경쟁과 특혜로만 끌고 간다면 더 이상의 평등 교육은 기대할 수 없다.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크게는 15번, 작은 변화까지 합치면 30번이나 바뀌었다. 그때마다 극약처방에 다름없는 입시제도들을 쏟아냈다. 모두 다 실패한 정책으로 사라져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당국의 정책들이 지향하는 목표와 목적이…
직장을 잃으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음식점이다. 개업을 하고 장사를 시작하면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서슬퍼런 구조조정의 희생양이된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직장을 떠나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 섰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음식점이 도심지에서 시골마을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공급과잉이 수없이 지적되어 왔지만 정부나 당사자들 모두 이렇다할 묘책이 없는 상황에서 자영업자의 거품은 사그러들줄 몰랐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 2005년 자영업자 수가 617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06년 614만명, 2007년 605만명 등으로 하향곡선을 그린 것은 공급 과잉에 따른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진 영향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최근들어서는 세계적으로 몰아 닥치고 있는 전대미문의 경기침체라는 대형 악재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나라 음식점 1개 점포당 차지하는 인구는 85명으로 일본의 177명과 큰 차이를 이룬다. 택시 1대당 인구는 한국이 165명인데 일본은 296명이었다. 이렇다 보니 수익구조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늘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