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감정을 가지고 화난 표정을 나타내는 행동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분노라고 한다. 그리고 좌, 우에 치우치지 않는 이성적 상태에서의 행동을 냉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 살아갈 때에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을 가끔 듣게 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냉정한 이성적 판단 하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분노를 참지 못하여 법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감정상태에서 완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가리켜 하는 말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여당과 야당에 몸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심한 몸싸움을 하거나, 때로는 단상을 점령하여 저지하는 등 분노의 모습이 가득찬 채 으르렁대고 있는 모습을 가끔 TV를 통해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국회의원들이 과연 ‘분노해야 할 때에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분노하지 않고 냉정해야 할 때에 분노하고 있지나 않은지 의아하게 생각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겉으로는 ‘국민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지만 내면적으로는 당리당략과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하여 분노를 나타내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리사욕이나 집단적 이기주의, 그리고
조국의 독립과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온 국민이 하나 되어 궐기했던 기미년 3·1독립운동이 88주년을 맞이하였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독립운동 당시 현장에서 순국한 인원은 7천609명, 부상당한 사람들만도 1만5천961명,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사람이 4만6천948명 등 총 7만518명에 이르며 교회당 47개소, 학교 2개소, 민가 715호가 불탔다고 되어 있다. 피해상황 집계만 봐도 그 당시 얼마나 대규모 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져갔을 지 짐작이 갈만 하다. 또한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전국 211개 부·군에서 1천542회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고 참가인원은 202만3천98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통계가 전문에 의한 최소한의 수치임을 감안하면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밖에도 의병, 애국계몽운동, 독립군, 의열투쟁, 광복군, 학생운동, 문화운동 등의 항일운동에서 활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기미년 3·1독립운동은 조국광복의 힘찬 예언이었고 그 위대한 정신은 건국 이후 국가발전을 이끌어 낸 원동력으로써 인도의 5·4운동에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우리 가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탈무드에 담겨 있는 명언 중 하나다. 정부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탈무드의 이 같은 명언을 곱씹어야 한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고용정책에 핵심이 되어야 할 지혜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장애인고용촉진법’을 통해 기관이나 기업에게 총 직원의 2%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화했다. 당연히 이를 어기는 기업은 모자라는 사람 수 당 50만원의 고용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정부기관도 이에 해당돼 이를 어기는 지자체나 정부기관은 기관평가 때 불이익을 받고 이 사실을 언론에 공포하는 방법으로 패널티를 주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을 채용하고 싶어도 능력과 자질 있는 장애인들이 없어 채용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 정책에서 기인한다.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이 전국 51개 대학의 교육지원 예산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장애인 교육지원 예산에 한푼도 투자하지 않은 대학은 10곳으로 20%에 달했다. 각 대학 교육예산 대비 1%도 안되는 학교도 48개교(96%)로 집계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애를 갖고 있는 대학생들의 휴학이나 자퇴가 속출했다. 지난 1
1980년대 말쯤이었던가? 한 그릇에 1만 원이나 한다는 일본 라면 집이 서울에 등장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 분식집에서 끓여 파는 라면 한 그릇에 1천원 정도할 때였다. 물론 한국 라면은 봉지에 들은 인스턴트 면이고 당시 문제가 된 일본 라면은 생면에다가 국물도 고기나 뼈를 삶아 우려낸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라면 집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야 했다. 우리 정서상 일본 라면이라는 점도 비판적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그 때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진 일본의 인상은 엄청나게 물가가 비싼 나라라는 것이었다. 그 후 문화유적 답사, 행사 참석, 취재 등 여러 가지 일로 자주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의 만 원짜리 일본 라면도 먹어 보고, 우동도 먹어봤다. 이런 음식들은 대략 1천 엔 안팎이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환율이 10배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돈을 쓰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날이 갈수록 한국물가와 일본 물가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거다. 오히려 어떤 품목의 가격은 역전 현상이 일고 있다. 엔저(円低)현상이 심화된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따라서 한국의 물가나 일본의…
3월이 시작되는 때에는 늘 봄의 기운을 만끽한다. 그러나 모든 봄이 늘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8년 전, 우리는 빼앗긴 봄을 되찾기 위해 다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해마다 삼월이면 3.1절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이 열리지만, 의무적이고 형식적인 행사 속에서 진정한 3.1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깨닫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3.1절의 기본정신은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의 단결을 굳게 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자’ 이다. ‘민족’이라든지 ‘애국심’이라든지 언제 들어도 중요하고 가치 있는 말이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쉽게 와 닿기보다는 조금 어렵고 거창한 말처럼 들리기 쉽다. 또한 형식적인 행사의 연설문 속에서 우리민족의 독립정신을 되찾자고 다짐하게 되기란 쉽지가 않다. 진정한 3.1절 정신의 계승이란, 결코 어려운 것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다채로운 3.1절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3.1절을 맞아 마라톤대회가 열리거나, 광화문에 모여 꼭짓점 댄스를 추는 등 예전의 경직된 행사가 아닌 시민의 참여가 이뤄지는 행사 등이 많이 열리고 있다. 이런 행사들의 특징은 기존의 폐쇄적인 행사를 벗어나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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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택시를 탔다가 새삼 놀란 적이 있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기본요금에 몇 푼(?) 보태면 될 금액이 두 배 이상 뛰어오른 것이다. 2~3천 원이면 되겠거니 했는데 5천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내야할 정도니 택시값만 해도 벌써 몇년 전과 비교해 두 세배 가량 오른셈이다. 자가용을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그저 기름값 오르는 걱정만 했는데 대중교통 요금이 뛰어오른 것을 보니 앞으로 사는게 더욱 녹녹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새해 들어 공공요금 인상이 살포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경기도는 성인을 기준으로 일반버스 요금(교통카드)을 800원에서 900원으로, 좌석버스(교통카드)는 1천300원에서 1천500원으로 인상하는 등 일반버스, 좌석버스 등을 비롯한 각종 버스 요금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아마 버스 요금이 오르면서 여타 생활 필수품들도 조금씩 오를 것이다. 이미 구정 즈음에 찜질방에서도 수도요금이 올랐다며 입장료를 1천원 씩이나 올려 공지도 없이 무턱대고 올리기만 하면 되냐고 손님들과 주인이 입시름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일은 이미 조금씩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공공요금이 오르면 더 힘들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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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 유급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보수 명예직의 폐해를 막고자 제정된 조례이다. 유급제가 시작되면 당연히 겸직을 금하고 영리제한범위가 정해져서 의원 고유의 순기능이 크게 확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의원들의 겸직 및 상임위원회 관련 영리행위 금지 등을 확대 추진하고 있고 서울시의 경우 올7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을 예고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역시 지난해 7월 제214회 2차 본회의에서 ‘경기도의회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한 바 있다. 이 조례는 도민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자 의원들이 자기 직업과 관련된 상임위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하는 근거로 만든 조례이다. 그러나 도의원들 스스로 이 조례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빈약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인지 이 조례를 지키고자 겸직을 버렸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지방의원의 겸직 논란은 ‘유급화’에서부터 발단이 되었다. 유급화되기 전에는 무보수 명예직이란 자긍심을 존중받았으나 실제로 생활에 필요한 경비는 다른 직업으로 충당해 나갔을 것이다. 따라서 겸직 논란은 아예 도마 위에 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급제가 본격 시행되고 수천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