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장에는 활동이 필요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육체도 정신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이 요즈음 나를 감싸고 있다. 여러가지 어지러운 9월의 일상 속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상을 보았다. 책상 위에는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신문 스크랩들이 쌓여있고, 컴퓨터에 연결된 어답터와 전선들이 어지러워 오랜만에 정리를 했다. 정리를 하면서 유독 내 눈에 띄는 한권의 책이 들어왔다. 고인이 되신 정주영 전 현대그룹명예회장이 쓰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자서전이다. 가끔씩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면서,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싶어 레포트 과제로도 냈던 책이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명예회장은 우리나라 경제를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인물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 노동으로 재화를 생산해 내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 당신의 생각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인 기업 ‘현대그룹’을 일구기까지 그가 겪었던 삶과 이상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이 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사뿐만 아니라 정주영 회장의 신념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내 몸과 영혼을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져 주었던 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은 한가위의 풍성을 한 마디로 요약한 우리 속담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의 우리네 사정을 잘 묘사한 말이다. 이제 한가위를 맞아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추석 차례와 조상 성묘를 위함이다. 차례라는 말에 쓰이는 茶라는 한자는 두 가지 발음이 있다. 차 또는 다. 둘다 같은 뜻이다. 차나무가 무성했다는 중국 어느 두 지방의 발음이 서로 다른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 茶禮라 쓰고 다례라 읽으면 문자 그대로 다를 행할 때의 예의범절인 바, 궁중의 다례나 불교의 다례 등을 뜻하고, 차례라 읽으면 명절에 지내는 속절제(俗節祭)를 가르키는데, 대개 정월 초하룻날과 추석에만 지내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차례는 몇 가지 점에서 제사와 다르다. 차례는 아침 해가 뜰 무렵 모시는 것이고, 제사는 밤에 모신다. 차례는 단작무축(單酌無祝)이다. 즉 술은 초헌 시 한 잔만 따르며 축을 읽지 않는다. 제사 때는 메라 하여 밥을 지어 올리지만 차례 때는 햇곡식으로 만든 송편을 올린다. 또 집안을 다스린다는 성주신에게도 성주상을 차려서 따로 대접한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전부터 추석을 쇠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선 학교에서의 체벌이 여전하고 도내 학교에서의 체벌민원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체벌은 ‘신체에 직접 고통을 주며 벌하는 것’이다. 체벌이 행해지면 행해질수록 학생이나 교사 모두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게 된다. 체벌에 무감각해진 학생에게 교사의 체벌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체벌이 심화되면 본래의 교육적 의미는 사라지고 폭력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 대부분의 체벌은 교사가 화가 났을때 이뤄지거나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체벌은 비이성적일 수 있고 당연히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특히 체벌의 가장 큰 문제는 체벌이 잘못 행해졌을 때 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체벌을 가한 교사와 맞은 학생 사이에 입은 심리적, 신체적 상처는 되돌리기 힘들다. 교사도 학생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다. 물론 오랜 연륜과 인생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식견에 있어 교사가 학생을 능가하겠지만 교사도 인간이기에 그릇된 판단이나 오해로 체벌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교사에게 교권이 있지만 그 교권에 절대성이 있어서는 안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화와 조언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 방안이겠지만 각양각색의 학생들을 오로
매일 지나는 길에 보던 학교지만 막상 전근을 하게 되니 설렘과 함께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이라는 부담이 약간의 스트레스를 주었다. 주로 고학년을 하다가 3학년을 맡게 된 것도 걱정인데, 내가 맡은 반에는 2명의 도움반 아이가 있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통합학급 담임을 하게 된 것이다. 동현이 첫인상은 걱정과 달리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잘 생기고 약간 통통하고 장난기가 보이는 게 겉으로만 봐서는 도움반 아이처럼 보이지 않아 먼저 편견을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동현이는 아침에 학교에 오면 “선생님, 저 왔어요!”하고 크게 인사를 하기 때문에 혹시 결석이라도 하게 되면 금방 알 수가 있다. 동현이와의 생활은 생각했던 대로 쉽지 않았다. 모둠 안에서 친구들을 건드려서 서로 싸우느라 큰소리가 매일 온 교실을 울렸다. 나는 우선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며 아이의 관심을 끌기로 했다. 그 결과 이제 동현이는 보디가드라도 된 냥 점심시간이면 나를 이끌고 급식실로 간다. 급식실로 가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이제는 내 목에 팔도 두르고 내 목걸이에 관심을 가진다. 어느새 동현이와의 서먹함이 사라지고 작은 사랑이 통해서일까 행동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시도 때도 없이 아
벽돌테러
21세기가 도래하면서 20세기 산업화시대에 확립된 절대가치인 대기업이라든지 은행은 절대 안전하고, 관료는 공공성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기존 ‘질서’들의 ‘절대성’은 붕괴되어 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계화의 물결속에 지구적 기준이 제시돼 이를 지키도록 강요받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번영을 주도해 왔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나 백화점식 기업운영은 한계에 부딪혀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위기를 타계해 나갈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의 재구축은 우리의 긴급한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참여민주주의의 실천적 장으로서의 지역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지방화’가 주요기준의 하나가 되고 있음은 지금 이 시대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세계화·지방화·정보화라는 역사의 흐름은 이제 어느 개별 국가나 개인의 힘만으로는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세계사적인 커다란 물결이 돼 버린 것이다. 구한말 시대적 흐름에 주체적으로 적응하지 못해 국권의 상실과 민족적 아픔을 가져온 역사적 교훈을 거울 삼아 세계사적인 흐름의 하나인 ‘지방화’라는 거대한 물결에 적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반 시스템을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범지구적 흐름이 되고 있는 민
우리가 기업 경영이나 인간관계에서 성공을 이루려면 먼저 기본으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 기본이 무엇일까? 성경에서는 그 기본을 간결하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원리이다. 장사나 기업 경영에서 많은 이익을 내려면 먼저 고객 만족을 잘 실천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사업 경영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성공을 위한 기본 원리는 이렇게 단순하며 어렵지 않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만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 따름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기본은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거나 남을 비판하는 데 정력을 허비하고 있다. 요즘에는 ‘윈-윈’이란 말을 많이 쓴다. 기업 경영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좋은 관계를 오래도록 이어가려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give and take’의 기본 원리에 충실해야 함을 뜻한다. 이를 ‘상생(相生)의 원리’라고도 한다. 회사는 고객이 기대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고객은 그 대가로 회사에 수익을 안겨 주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편에만 유익을 주면 얼마 안 가 균형이 깨어져 잘 나가던 사업
좌와우, 개혁과 보수, 진보와 중도 논쟁 속에 한해의 3/4의 지났다. 한해의 결실을 기뻐하며 한가위를 준비하는 국민들의 마음속은 허전하다. 26일 세계 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지수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조사대상국 125개 중에서 작년 19위에서 24위로 떨어졌다. 5단계 하락한 것은 시장 효율성 저하와 제도 분야 (공공부문의 효율성)의 낙후가 주원인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 이용된 9개 기본 항목 중에서 7개 항목이 퇴보한 결과이다. 가장 크게 밀려난 부분이 시장 효율성, 노사관계, 각종 법과 규제 체계 등이 작년 32위에서 43위로 11계단이나 떨어졌다. 시장효율성이 하위항목인 노사협력관계 악화가 큰 이유이며 노사 협력 관계는 81위에서 114위로 악화되었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민간 및 공공기관의 제도를 개선하고 농업정책의 개선과 유연한 고용 및 해고 관행의 도입, 금융시장과 은행의 개혁을 통해 시장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의지에 달려있다. 냉전시대 이후 세계는 이념논쟁을 중단하고 경제 번영과 국익을 위한 노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리민복을 위한 무한경쟁의 고속도로에서 철저하게 승자만이 살아남는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 지 여러 해가…
평화기원 등불을 켜며 막을 올렸던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의 ‘세계평화축전’ 행사가 도민들에게 어려운 답을 요구하고 있는 듯 하다. 평화라는 추상적 의미를 도민들의 마음에 되새기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성공했나, 실패했나라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질문인 만큼 답도 애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게 중심은 자꾸 과제만 남긴 행사라는 쪽으로 기운다. 행사 예산은 지난 해 80억원의 8분의 1 수준인 10억여원, 행사 기간도 지난해 40일의 10분의 1인 단 4일이었다. 턱 없이 부족한 예산과 행사 기간이 작년에 비해 적었던 것도 성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산과 기간이 적었다하더라도 축제의 기본 취지와 의미를 깊이있게 전달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먼저 여타 행사들과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 세계평화축전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한 마디로 ‘평화’를 떠올릴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얘기다. 예산이 적다는 이유로 지난 해 많은 관심을 모았던 강연회와 토론회 등의 학술회의는 찾을 길이 없었고, 그만큼 깊이있는 고민과 미래계획의 장도 볼 수 없었다. 굳이 차별성을 찾으라면 실향민과 외국인 등 신
오늘도 역시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겨본다. 어른들보다 한 옥타브는 족히 넘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외치며 뛰어와 안길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니 히죽이 웃음까지 난다. 마냥 즐겁기만 한 출근길, ‘교사가 체질이구나’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발령을 받아 첫 출근한 학교는 그야말로 전쟁통과 다를 게 없었다. 5~6시간의 수업은 기본이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온갖 잡무와 쉴 틈 없이 날아드는 공문들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람 정신을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으며 하루를 36시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괴성을 지르게 만드는 곳, 그런 곳이 바로 학교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살이 학교생활도 어느덧 적응되었을 무렵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조금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에 교사만큼 바쁜 사람이 또 있으랴? 다들 학급 경영이다 뭐다 해서 눈뜨고 있는 동안은 연신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는가? 마치 멀티머신처럼 말이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선배 교사들을 쫓아다니며 귀찮으리만큼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밤늦도록 온갖 교육 사이트를 검색해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