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세계화 시대에서 인터넷은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인터넷 보급률이 최대인 만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나 의견을 공유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은 익명, 또는 실명으로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며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남을 비방하거나 욕설이 담긴 글로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최근 연예인이 자살한 사건의 경우도 고인의 죽음에 대해서 인터넷상의 댓글과 악의적인 말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 실명제의 필요성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의 가장 큰 효과는 악의적인 글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비판이나 비난의 글은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글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재미를 위해 악의적인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거의 병적이기까지 해서 계속해서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며, 익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된다면, 자신의 실명을 걸고 남에게 욕설을 퍼부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자동차를 운전하면 참 편리하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타인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뉴스를 듣거나 음악을 들으며 나름의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고, 시간에 구애 없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 출근 시간대에는 만원 버스에서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특히 짐이 많을 경우에는 자가 운전자처럼 편한 것도 없다. 편리한 만큼 운전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편리함 때문에 ‘보행자 우선’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안을 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건널목을 건널 경우에는 차의 속력을 줄여 보행자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운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돼 예전만큼 경우없이 운전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얌채 운전자들은 도로를 활보하고 있다. 특히 과거에 비해 경보음을 울리는 운전자들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운전방향을 막는다고 경보음을 마구 울려대는 운전자들을 보면 지나치는 차를 걷어차고 싶은 생각이 든다. 차내에서는 경보음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 밖에서 보행중에 듣는 경보음은 순간적으로 보행자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은 차량에서 나는 경보음과 아주 밀접한 위치에서 보행을 하고 있다. 무심코 울리
히아신스 꽃은 기억과 슬픈 사랑으로 만들어진 그윽하고 은은한 향기가 매우 감미로운 꽃이다. 스파르타 근처의 아미클라이라는 도시의 유서 깊은 집안에서 태어나 태양신 아폴론의 총애를 받았다. 휘아킨토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년 이였다. 아폴론은 휘아킨토스라는 소년을 남달리 많은 사랑을 했고 아폴론의 하루 생활 속에 휘아킨토스를 빼놓지 않았다. 어느 날 둘은 들판에서 원반던지기를 했다. 아폴론이 던진 원반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방향을 바꿔 휘아킨토스의 이마를 치고 땅에 떨어졌는데, 원반을 맞은 휘아킨토스는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졌다.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히아킨토스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던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가 질투한 나머지 세찬 바람을 불게 했기 때문이었다. 달려간 아폴론은 죽어가는 휘아킨토스를 부둥켜안고 안타까워하며 슬픔으로 흐느끼며 부르짖었다.“너로 하여금 내 탄식을 아로새긴 꽃이 되게 하리” 신들이 마시는 넥타르와 휘아킨토스의 피는 하나가 되어고 아폴론의 말은 휘아킨토스를 발밑부터, 백합과 흡사하나 색은 자주빛 으로 피어난 이 꽃은 히아신스이다. 우정보다는 애정에 더 가까운 사랑, 우리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을 가까이 두고 가르치
제2기 신도시를 대표하는 동탄신도시 입주가 1월31부터 현대, 포스코, 롯데/대동 아파트 등을 시작으로 ’09년까지 총 4만여 세대가 순차적으로 입주할 예정이다. ’01.4 지구지정, ’03.3 공사착공, ’04.6 시범단지 아파트 분양을 거쳐 입주 대이동의 서막이 전개되고 있다. 옛부터 우리 민족에게 토지가 갖는 의미는 특별했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토지는 우리의 어머니요, 생활의 근본 터전으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우리조상들에겐 토지에 대한 단순한 소유의식을 넘어 어떤 의미의 ‘한’도 지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엔 토지가 투자의 상징으로 변한 듯하다. 인구 증가, 산업 발달, 인구의 도시집중 등으로 단순한 재산증식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토지를 정당한 공익적 개념이 아닌 한몫 잡기식의 투기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이제는 토지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하여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유한한 공간과 자원을 가지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 세대만이 토지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며 삶의 기반으로서의 토지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다음 세대의 지속 가능성은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오늘의 세대와 후손들에게 삶
바쁜 일로 정신없는 상태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유선방송인데 예전에 공지해 드렸던 사항을 확인하려고 전화했다며 지금 시청하고 있는 채널에서 스포츠나 영화 채널등 20여개 채널을 시청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유선방송 상담자 말이 낮시간 때에는 주부들이 선호하는 드라마를, 저녁시간 때에는 이승엽 야구나 골프 등 아빠들이 좋하하는 프로를 볼려면 3천원을 더 내라는 것이다. 한달에 3천원이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작을 수도 클 수도 있는 금액이다.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거절을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생각해보니 유선방송사의 횡포라는 생각이 들어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유선방송을 시청하면서 그나마 정규방송 외에는 영화 채널을 보는게 전부인데 얼마전 유선방송사 마음대로 채널을 편성해 뒷 번호로 인기채널을 이동시키더니 결국 시청자들에게 돈을 더 받을려고 잔머리를 굴렸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편하게 보여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중독시켜서는 안보게 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고는 돈을 더 받아내려는 속셈인것 같았다. 현재 3천원을 지불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방송에는 OCN과 CGV 등 영화채널은 물론 방송 3사의 드라마넷, 스포츠 채널 등 꽤나 인기있는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갓길에 주차된 차량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떤 날은 한 번 출근길에 3대정도 발견하기도 하고, 심지어 고속도로 합류도로의 굽은 도로변에 세워놓은 차량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갓길은 긴급 자동차 및 자동차 고장 등 극히 비상시 후방에 안전장구를 설치한 후에만 주차할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운전자들이 갓길을 휴식 및 주·정차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도로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차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갓길은 매우 좁은 장소다. 고속으로 주행하다가 핸들을 약간만 잘못 움직여도 차량이 갓길로 침범하게 된다. 졸음운전 차량이라도 지나간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고장차량을 도와주기 위해 갓길에 정차했다가 함께 사망한 가슴 아픈 사고 또한 종종 접한다. 그렇다면 고속도로 주행 중 졸음이 오거나, 차가 갑자기 고장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운전 중 졸음이 몰려올 때 여행을 계속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가장 가까운 휴게소나 요금소 옆에 있는 도로공사 영업소 주차장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해야 한다. 주행 중 차량 고장이나 사고가 난다면 먼저 비상 점멸등을 켜고 좌우 후방의 주행 차량들을 주의하면서 갓길로 이동
방송의 힘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다. SBS에서 방영한 ‘노예할아버지’ 경우만 봐도 해당 지역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노인복지문제와 실태를 제조명하면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켜 우리에게 다시금 노인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어줬다. 그러나 무분별한 선정성과 폭력성, 검증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 난무하는 곳도 바로 방송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주몽이 누구냐 물을 때 일부 학생들 입에서는 ‘송일국’이라는 대답이 나오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 만은 아니다. 유치원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겪는다. 애들이 유명 연예인을 따라하기도 하고 개그맨들을 흉내내기도 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얼마전 아이들 무리가 “죽어라. 죽어라”하면서 배를 치고 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소리 하면 못쓴다며 아이들을 나무라자 “선생님, 코붕이 놀이 하는 거에요”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것이다. 알고보니 모 방송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개그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어른들이야 한번 웃자 할 수 있다. 스트레스도 풀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 입에서 죽으라는 말은 왠지 섬뜩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죽어라’는 말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새삼스러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지만 당할(?) 때마다 ‘왜 우리는 안될까’ 라는 허탈함이 생긴다. 행정기관에서 하는 공사건, 개인적으로 하는 공사던 멀쩡한 땅을 파 놓은 후에는 제대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멀쩡한 곳을 두동강이 내놓고는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대충 마무리를 해놔 그곳을 지나다닐 때는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어디라고 지칭할 것도 없다. 큰 공사이건 작은 공사이건 왜 우리나라는 도로를 파헤치고는 제대로 일을 마무리 하지 않는 것일까. 10년전 일본을 다녀왔을 때 다른건 몰라도 기억에 또렷이 남는게 있다. 밤중에 지하철 공사를 위해 도로 공사를 한창 하고 있는데 내일 아침이면 무진장 막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는 그냥 지나쳤다. 스치듯 ‘여기도 우리나라 처럼 공사하는 곳이 많다. 내일 이 부근도 교통지옥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깜짝 놀랐다. 수십명이 오가며 공사를 하던 곳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밤과 새벽을 이용해 공사를 하고 낮에는 지나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공사 구간을 덮어 둔다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게 하면 공사기간도 길어지겠지만 그 곳을 지나는 이용자들을 위한 배려가 보여 우리나라도 그러면 얼마나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 날아라 날아 태권 브이…중략…” 30여년 전, 자치기와 구슬치기를 하다가도 이 노래만 나올 때면 TV를 보기 위해 달려가던 아이들. 만화영화 로버트 태권 V는 그시절 아이들의 꿈이자 영웅이었다. 유년시절 나의 영웅 로보트 태권 V를 얼마전 두 아들과 함께 보게 됐다. 포스터에는 ‘30년 만에 돌아온 우리의 꿈, 우리의 영웅! 로봇 태권 V!’라 적혀있었다. 사실이다. 정의를 세우고, 약자를 보호해주고, 심지어는 지구를 지키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내심 우리 아들들에게 로보트 태권V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향수와 함께 ‘아빠의 추억을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야! 아들! 영화 재미있었어!’라고 물었는데 아들 표정은 영 아니다. 허기사 요즘 TV를 보면 우리시대의 영웅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원시적인 로보트가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보훈업무를 하다보면 생존 애국지사 분들이나 역전의 용사들을 가끔 만난다. 자신의 꿈과 미래를 포기하고, 조국의 독립, 자유와 평화를 위해 자신의 꿈을 접었던 영웅들. 우리 큰아들이 시시하게 생각하는 그 당시의 나의 영웅인 로보트 태권 브이를 과소평가
몇일 전 회사후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소설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후배가 이야기를 꺼낸 것은 감성적인 일본 여성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었다. 최근 일본출신 미국인 작가의 소설이 신문지면상에서 이슈거리가 되고 있다. 그 책은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사마가 쓴 ‘요코 이야기’이다. 작품은 일제말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폭행하는 내용의 왜곡된 얘기를 담고 있기에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소설보다 자전기록에 가까워 보이는데도 한국측 출판사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범주영역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결국 한국측 출판사는 책판매를 당분간 중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침략기라는 시대를 거친 우리로서는 관계회복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이지’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이 책이 미국 역사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문학작품이란 현실의 반영 또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변형형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요코 이야기’에서는 문학의 재현적인 기능에서 도덕적인 면을 무시한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다소 다른 부분일 수 있겠지만 아픔이라는 감정을 글로 승화시킨다는 점은 긍정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