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택중 공동주택(아파트) 가구 비율은 50%를 넘었으며, 서울은 60%에 이르고 있다. 아파트를 비롯한 전체 공동주택의 비율이 2019년 기준으로 80%에 육박한다. 가구비율의 증가에 따른 공동주택의 분쟁은 다른 어떤 사안보다도 그 문제가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부분이다. 이러한 분쟁의 증가는 층간소음 등 세부적인 갈등까지 고려하면 공동주택의 수 만큼이나 발생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급증하는 공동주택하자분쟁의 효율적인 해결을 위해 2018년에 하자분쟁조정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위원회조정안을 당사자가 수용할 경우 합의의 효력이 발생하지만 거부하면 조정이 중단되고 당사자 소송으로 이어진다. 분쟁조정 절차는 당사자 모두의 의사가 합치해야만 조정이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리고 조정 기일이 여러 차례 열리는 등 수개월의 시간을 조정성립을 위해 노력하지만, 사업주체 혹은 입주자가 최종적으로 조정안을 거부하게 되면 지나온 시간과 절차는 모두 무용지물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분쟁에 있어서의 해결책도 장기간이 소요되고, 분쟁대상이 명확하지도 못하며 그 해결책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동주택하자분쟁의 증가는 무엇보다 관련법들의
식탁이었다. 큰 꽃잎 문양이 수놓아진 식탁보 한가운데 해바라기와 이름 모를 꽃들로 장식된 화병이 놓였다. 냅킨이 곱게 접혀있었고 은색 숟가락과 포크가 놓여있었다. 큰 접시들에는 구운 오리고기와 오믈렛과 샐러드, 미군들이 먹는다는 햄과 베이컨과 ‘에그 프라이’가 그득했다. 선교사님이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이모와 사촌 형, 누나들이 자리에 앉자 선교사님이 기도를 했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이모님이 나를 위한 기도를 특별히 하셨다. 이모는 나를 부를 때 ‘미스터 고’ 라고 했다. “미스터 고가 주님의 은총으로 명문 ㅇㅇ대의 법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주님의 종으로 크게 쓰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모의 기도는 밝고 높은 톤이었다. 특히 법대라는 대목에 강한 악센트를 주셨다. 이모는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 조카의 앞날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선교사님과 이모는 영어로 대화를 나눴고 누나들도 가끔씩 영어로 농담을 했다. 그들은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손짓을 했는데 나는 몇 마디 단어를 알아들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아이 언더스탠드’ 라고 겨우 대답했다. 그러나 덕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이모의 충고가 시작되었다. 이모는 한국의 모든 것이
봄놀이 /양선희 그 사람이 왔다 화분을 안고 화분과 화분에서 핀 꽃 방금 온 바람결 그 사람이 화분을 내려놓은 곳 속속 꽃 돋아난다 꽃이 빛을 끌어당긴다 죽은 색도 살린다 꽃의 생기로 그 사람과 나 찰랑댄다 내 몸 꽃 천지 ■ 양선희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해 1987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시로 등단,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 『일기를 구기다』, 『인연에 울다』를 펴냈으며 에세이집 『엄마냄새』, 『힐링커피』, 『커피비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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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서울시청앞 광장, 광화문, 종로, 남대문시장, 명동을 가득 메운 함성으로 전두환 독재정권의 ‘6·29 항복선언’을 받아낸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이 (구)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렸다. 6·10민주항쟁은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공안경찰의 거짓수사 발표로 우리들 뇌리에 남아있는 부산 출신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본부가 강력한 반독재 저항을 전개하면서 시작됐다. 광주출신 연세대생 이한열군 최루탄직격 사망사건은 국민적 저항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게 되었고,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길에 위치한 경찰청 산하의 대공수사기관으로 5층에 취조와 고문이 이뤄졌던 15개 조사실이 있었고, 박종철 열사는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509호에서 사망했다. 경찰청 인권센터를 거쳐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관리이관되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이름 지어졌고, 2022년 정식 개관이 예정되어 있다. 전 세계인이 함께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감동을 느낄 민주주의의 기념비
미국이 난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사회혼란을 겪고 있다. 방송에서는 상점을 약탈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시위대의 자정 노력에 의해 약탈 행위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약탈자가 대부분 흑인 중심의 유색인종이라는 것이고, 여기에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보였던 미국이라는 국가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인종차별주의가 2020년에 다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종차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노예제 폐지를 두고 격돌했던 남북전쟁 이후에 인종차별이 더 공고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인 원인이 있었다.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남부의 7개 주는 미연방에서 탈퇴하였지만, 테네시주의 앤드류 존슨은 링컨을 지지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남북전쟁 중이던 1864년 링컨이 재선에 도전하였고 민주당의 앤드류 존슨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발탁해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1865년 4월 링컨이 존 윌크스 부스에게 저격을 당해…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 되똥되똥 걸어와 후다닥 헛간 볏짚 위에 오른다 /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다 /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다시 일 나간다” 이시영 시인의 「당숙모」라는 작품이다. 당숙모는 종숙모라고 부르는 5촌으로 시골에서는 흔히 ‘아지매’라 부르기도 했다. 새끼를 여러 마리 품고 있는 암탉의 사진들을 종종 보듯 여기 ‘당숙모’는 그런 암탉으로 그려져 있다. 암탉이 집밖에 나갔다가 꼬꼬댁거리며 집안에 들어오듯 밭일을 나갔다가 당숙모가 집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난장판을 벌이며 놀고 있다. “이놈 새끼들아 제발 좀 어지르지 말고 치우면서 놀아라.” 구시렁거리면서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따뜻한 밥을 차려 내온다. 집안에 할머니에게도 차려주고 애들도 먹고 자신도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다시 일을 나간다. “싸우지 말아라. 흙 장난질 치다 옷 버리지 말고…” 또 구시렁대며 밭일을 간다.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미주알은 항문을 이르는 말이니 정말 우스꽝스럽지 아니한가. 다소 수다스럽지만 생활력이 강한 푹 퍼진 아지매의 뒷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몸배바지를 입고 뒤똥거리며 일 나가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송해를 볼 때마다 아련한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란 제목으로 1972년에 시작했다가 1977년 4월까지 진행했다. 1980년에 ‘전국노래자랑’으로 재탄생한 뒤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5년 11개월 동안 맡다가 몇 개월 다른 사람이 맡던 것을 1994년 10월부터 다시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뒤에 맡은 기간 만도 26년, 그 전까지 합치면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얼마전 그만 둔 강석, 김혜영은 각각 36년, 33년 동안 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진행자의 재능 여부를 떠나서 특정인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는 ‘가요무대’가 있다. 1985년 11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사회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맡고 있다. 2대째인 1985년 11월부터 2003년 6월을 진행한 뒤 다시 2010년부터 4대째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4대만 본다면 10년, 2대 9년까지 더하면 19년을 같은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해당 프로그램의 상징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바뀌면서도 장수하는 경우도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백련재 문학의집에서 입주 작가를 공모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작가선정도 입주도 늦어졌다. 아버님의 병환도 살피고, 시나리오작업도 촉박해서 신청했는데 선정소식과 더불어 아버님은 그사이 병마가 호흡기에서 췌장암으로 판명되면서 소천하셨다. 아버님이 참 그립다. 병상에서 통증을 호소하시던 아버님 생각이 일어날 때면 눈방울이 떨어진 채로 책장을 넘기곤 한다. 산그늘이 조석으로 백련재를 덮는다. 대흥사 산사와는 떨어진 거리지만 그윽한 고요함을 만끽한다. 신록의 푸르름이 펼쳐진데다 산새소리와 자연을 감흥하며 홀로 지내자니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새삼 사람들과의 관계, 아픔, 상처, 나는 세상과 별리를 오래전 준비해 왔던 셈이다. 절실하게 고민하고, 사유하는 동안 섬마을들을 훔쳤다. 외진 섬을 돌며,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많아졌다. 막연한 세월은 아니었지만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들을 재생하면서 지금의 나를 더 격려하는 시간들을, 다시 백련재에서 찾았다. 짧은 삶을 어떻게 살까? 소유물이 있다면 어떻게 나눌까? 방충망에 울어대는 나방도, 짙게 내려앉은 구름도, 소슬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귀하고 아름답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