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봄비 내리고 나는 출근을 한다. 팍팍한 도심의 도로를 피해 내리천 둑방길따라 봄을 품어보는 시간. 넉넉한 품으로 대지의 뒤엉킨 가슴팍 묵묵히 녹여낼 줄 아는 봄 앞에, 양팔 벌려 그 봄 맞으려는 내 모양새가 어설픈 어리광인 줄 알면서도 해마다 4월이면 하게 되는 나만의 봄맞이, 꽃놀이 행사가 되었다. 평택에서 팽성 방향 넓은 도로를 달리다 근내리 한적한 길로 접어들 때쯤이면 벚꽃들의 미소가 드문드문 번지기 시작한다. 바람조차 느리게 거니는 한적한 시골의 정서만으로도 그 길은 시속 60㎞의 제한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동창리와 대추리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아기자기한 장식이 어울리는 다리하나를 건널 때쯤이면 도로가 환해지기 시작한다. 내리천을 왼쪽으로 끼고 추억처럼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도로. 도로는 벚나무 가지마다 벚꽃 잎 흐드러지게 피우고 하늘을 양껏 열어놓았다. 술렁이는 봄바람에 떼를 지어 오르내리는 물 오른 분홍꽃잎들의 날갯짓. 파닥이며 연거푸 바람을 타는 저 벚꽃들의 한껏 풀어진 자유라니. 그야말로 봄날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봄은 언제나 색깔 달라짐에서 시작되었다. 겨우내 물고 있던 목련의 털복숭이 겨울눈이…
1970년대의 어느 봄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쑥스럽고도 감개무량했다. 가족들에게 학교에서 본 공문 내용을 전했다. “대학 가기도 좋아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자랑스러웠다. 아내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때도 대학진학은 지난하였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심해서 마침내 그대로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교육개혁운동 같은 것이 전개되었거나 대입제도 개선방향이 발표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그 ‘선언’은 허사(虛辭)였다. 내가 직접 관여한 양 호언장담한 ‘청사진’은 흐지부지 되어 12년 후 그 애가 겪은 대입전형 역시 유례없이 치열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지만 ‘마음껏’ 공부하기는커녕 우선 가고 싶은 대학에 호락호락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 상처는 중년을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그 아이를 따라다니는 괴물이 되고 있다. 대입전형제도가 또 바뀐다고 한다.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광복 후 9년간 대학별로 입학시험을 실시하던 것을 바꾸어 1954년부터는 대학입학 연합
태풍도 때로는 어리숙하다 /장철문 이번 태풍은 달이나 세수시키고 갔다 착해빠져서 육지에는 발도 올려놓지 못하고 피도를 시켜서 방파제나 몇 번 때리고 갔다 그냥가기는 서운해서 어미 손으로 싹 훔쳐낸 아이 얼굴처럼 달이나 세수시켜 놓고 갔다 - 현대시학 / 2017년 1월호 역대급 태풍을 기억하시는지요? ‘매미’나 ‘루사’, ‘사라’처럼 청순한 여인네 같은 이름임에도 이 땅을 할퀸 상처와 인명, 재산 피해는 엄청났지요. 연례행사인 듯 덮치는 태풍의 위력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 가공할 만한 태풍이 어리숙하다니요. 흡사 간절히 태풍을 기다린 듯한 이 싯귀는 우리들의 통상적 인식을 단번에 뒤집습니다. 정말 착해빠지군요. 달이나 세수시키고 방파제나 몇 번 때리고 가다니, 도저히 태풍에 걸맞지 않는 이런 발상의 시선은 혹 패러독스기법일까요. 아니면 태풍의 순기능이 그립기도 해서일까요? 수자원확보나 해수 및 대기 정화와 지구위도상의 고른 열평형의 기여 등. 태풍은 인간에게는 위협적이지만 우주적으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자연현상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추진하고 있음에도 고용시장은 최악 수준으로 얼어붙고 있다. 통계청이 엊그제 발표한 ‘2018년 3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1만2천 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증가 수가 2010년 1월 이후 8년여 만에 최소였던 2월의 10만4천 명에 이어 다시 10만 명대에 머물면서 ‘고용 쇼크’ 상황이 두 달째 이어졌다. 3월 실업자 수 역시 125만7천 명으로 1월부터 3개월 연속 100만 명대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정부의 일자리 지원 정책과 지표상 경기회복에도 우리 경제의 고용창출력이악화하는 것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것 같다. 고용상황 악화의 원인으로는 건설경기 부진과 최저임금인상이 우선 꼽힌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로 건설 부문 투자가 급감해 지난해 일자리 증가세의 3분의 1을 떠받쳐온 건설업 고용이 갈수록 부진했다. 통계청의 설명도 비슷하다. 실제로 올해 들어 석 달간 전년 동월 대비 건설업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월 9만9천 명, 2월 6만4천 명, 3월 4만4천 명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또 영세 자영업자 상인이 다수 포함된 도·소매업에서 3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짜뉴스와 공천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11일자 본보 보도에 의하면 성남지역 시의원 출마자들과 지역위원장들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여·야 할 것 없다. 출마자들이 지역위원장을 공개 비난하고 탄원서를 제출하는가 하면, 집단탈당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성남시의회 2선 의원으로서 행정교육체육위원회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덕술의원은 “공천서류 준비 중인데 공천자를 공표했다”며 “유신시절, 5공 시절보다 더 한 짓거리”라고 자유한국당 성남수정구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거칠게 비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으로 인해 입당했던 당원들에게 탈당을 권유하고 있다 또 지지자들은 탄원서 서명을 받고 있는데 현재 1천3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비슷하다. 차상도 시의원 예비후보는 국회의원인 민주당 분당갑지역위원장을 비판했다. 출마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출마지역을 변경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지역에 들인 공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성남지역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처럼 지역위원장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한 공천 잡음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천잡음을 없애고 공정하게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늘 행사가 있어 준비도 하고 조금 일찍 서둘러 나왔습니다. 약속한 회장님 사무실로 갔더니 불을 켜 있는데 문은 잠겨 있어 전화를 드렸더니 신축현장에 계시다면서 빨리 오시겠다고 합니다. 참 기분이 묘한 게 그동안 자주 드나들면서 못 느끼던 감정이 스칩니다. 다른 때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출입을 했는데 이른 아침에 주인 없는 사무실 앞에 서 있자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무슨 여자가 왜 남의 사무실 앞에 서있을까 하는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의 생각이지요.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내가 서있던 앉아 있던 누가 쳐다보기나 한다고 이런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길 건너에서 웃으며 다가오십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기가 무섭게 서둘러 컴퓨터를 켜시고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면서 꽃 이름을 물어보십니다. 한 번에 알려드려도 좋겠지만 조금 시간을 끌다 꽃 이름을 알려드립니다. 그것도 새로 바뀐 현재의 이름만 알려드리는데 손님이 오십니다. 그분들끼리 뭔가 중요한 사업상의 대화로 진지한 분위기입니다. 사실 자신 있게 꽃 이름을 말하기가 난처했던 이유가 그 꽃 이름은
또 다시 4월이 왔다. 터져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까운 꽃잎들이 비와 바람으로 흩날리는 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생명들은 어쩌면 저리도 연약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오늘은 모네의 1879년작 <카미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한다. 카미유는 모네의 부인이자, 어려웠던 시절 그의 곁을 지켜준 동료였고, 또 그의 모델이기도 했다. 32세의 여인은 깊은 한숨처럼 꺼져버렸고 그의 눈꺼풀과 입술도 죽음의 기운으로 눌러 앉았다. 회색과 보라와 노란빛들이, 날아다니는 꽃잎처럼 휘날리며 그녀를 감싸고 있다. 죽음조차 찬연한 빛으로 묘사한 모네다. 먼 훗날 모네는 카미유의 죽음이 찾아 온 순간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색채의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했다고 회고했다. “내게 너무도 소중했던 한 여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1928) 빛이 얼마 들지도 않았을 것 같은 깜깜한 방 안에서 모네는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화가라는 천직은 그로 하여금 사랑하는 여인이 죽어가는…
모래지치 /진란 네게로 흐르는 것을 멎기 위하여 말을 닫고, 바람과 바람 사이로 섬과 섬 사이로 사람과 사람 사이로 멀리 떠돌았던 것이다 모래도 지쳐서 쌓이는 곳 바닷내음 다 날려버리고 그리움의 알갱이끼리 쌓이고 뭉친 곳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익숙한 네 눈동자가 설핏 보였던가 뜨거운 입술만 타투처럼 남아 신두리 사구에 뿌리 깊게 묻혔던가 심장 속에 싸그락거리는 모래꽃 같은 봄을 만끽하고 있을 때 시인의 잃어버린 시를 만난다. 홍진에 열꽃 뿜듯, 꽃으로 쏟아내어 소리없이 봄을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태안반도 신두리에 가면 거대한 사구가 있다. 시인은 뿌리 내리기도 힘들어 보이는 모래 틈에 자리를 잡고 피어있는 작은 모래지치 꽃을 보며 그리운 무엇을 생각하며 마음이 뭉클했나보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끝나지 않은 것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 떠돌다 바다에 가면 그리워지는 무언가가 또 있을 것이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를 간절하게 사랑한 기억 같은 것도 만나게 된다. 사람들에게는 지성과 의지 고뇌와 갈등을 빚는 계절에서 이 잔인한 사월의 봄날이 화사한 바깥으로 오늘 안부를 나누는 인사를 전해보
동양철학의 대성현인 공자의 사상을 정리한 논어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學·而·時·習·之, 不·易·悅·好. 하지만 어딘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배우고 익히면 기쁘다’는 것은 공부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배우고 익히는 삶은 어떻습니까. 기쁘지 않습니다. 입사위주의 서열 정하기,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교육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의 본성인 협동하는 공동체의 삶보다는 ‘일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어느 광고의 카피라이터처럼 성과주의와 개인주의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승자만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패자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일류만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이류와 삼류가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알아가는 배움과 즐거움이 있는 학습이길 바랍니다. 사회복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목련이 피었는데 죄나 지을까 /손현숙 하필이면 당신 방 창문 앞에 펑, 폭탄처럼 귀신처럼 허공을 말아 쥐는 나의 몰입 그것은 유혹이 아니라 발정이다 얌전하게 입술 다물어 발음하는 봄 따위, 난간 위를 걷는 고양이 걸음으로 한바탕 미치면 미치는 거다, 뭐 오늘이 세상 끝나는 날이다 몸을 열어 한순간에 숨통 끊어져라 하얗게 할퀴는 꽃, 곱게 미쳐서 맨발로 뛰어내리는데 모가지가 허공에 줄을 맨다 - 손현숙 시집 ‘일부의 사생활’ 중에서 봄의 전령은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아하게 피어나는 목련이다. 화자는 왜 목련이 피었는데 죄 지을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죄의 유형도 여러 가지인데 어떤 죄목인지 자못 궁금하다. 시속에 등장하는 시어 ‘몰입’과 ‘발정’은 어쩌면 독자들로 하여금 야한 생각을 하게 하는 함정일 수 있다. 봄의 상징인 꽃을 끌어내고 꽃의 상징인 어떤 에로틱함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봄은 그만큼 마음이 흐트러지고 몸과 마음이 열리는 계절인 것이다. 화자는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me-too의 계절, 봄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사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