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는 예전부터 서민에게 친숙한 이름이었다. 값이 싸면서도 맛이 좋고, 그리고 영양가가 풍부해 일반 사람들이 청어를 즐겨 먹어서다. 가난한 선비들이 잘 먹는 물고기라 하여 ‘비유어(肥儒魚)’라고 불릴 정도였다. 청어는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많이 잡혀 동해안에선 ‘등어’, 전남에선 ‘고심청어’, 경북에선 ‘눈 검쟁이’ ‘푸주치’라고 불렸다. ‘동국여지승람’엔 이러한 청어가 겨울철 영일만 하구에서 가장 먼저 잡힌다고 기록돼 있다. 경북 포항지역 어민들은 이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었다. 과메기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그중 청어의 눈을 꼬챙이에 꿰어 바닷바람에 말려 먹기 시작해 그 어원이 관목(貫目)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목’을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해 ‘관메기’라고 하다가 ‘과메기’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영일만 근해에서 많이 잡히던 청어의 어획량이 1960년대 후반 급격히 줄어들고 그나마 잡히는 고기마저 일본으로 수출되자 꽁치가 청어의 자리를 대신했다. 꽁치는 과메기로 만드는 기간이 열흘 이상이던 청어보다 살의 두께가 얇아 사나흘이면 충분할 뿐만 아니라 비린 맛도 거의 없어 일찍부터 일반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비꽃 꽃잎 속 /김명리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어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내 몸을 휩싸는 폭죽 같은 봄의 무게여 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이것들이 혹여라도 구름 그림자라고는 말하지 말아라 네가 울 때, 너는 네 안의 수분을 다하여 울었으니 숨 타는 꽃잎 속 흐드러진 암향이여 우리 이대로 반공중에 더 납작 엎드리자 휘몰아치는 봄의 무게에 대적광전 기우뚱한 추녀 또한 뱃고동 소리로 운다 - 김명리시집 ‘제비꽃 꽃잎 속’ / 서정시학 이 지극한 세계를 두고 무슨 말을 하리요. 시집 첫머리에 쓴 시인의 말을 발췌해 대신한다. “늙고 죽고 슬퍼하고 고통에 시달리고 절망에 빠지는 존재인 인간은 아름다운 것과 친교를 맺음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는 구절, 언젠가 책을 읽다가 적바림해 놓은, 부처가 제자 아난에게 말했다는 구절에 새삼 가슴이 먹먹해진다. 수 없이 찢고 지우고 다시 써내려가는 한 줄의 문장, 잠든 혼을 일깨워 쓰는 한 편의 시가
얼마 전 가을비 내리는 날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빗방울처럼 나뭇잎이 무리를 지어 떨어진다. 낙엽을 바라보며 빗길을 걷고 있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과의 동행이라 나도 마음이 쓰였다. 감기라도 걸리면 혼자 고생할까봐 우산을 받쳐 주었다. 그런데 그 쪽에서는 비를 맞는 것보다 낙엽이 지는 모습이 마음이 쓰이는지 아직은 나무에 매달려 있어도 좋은데 하며 나무로 시선을 건넨다. 여기저기 바라보며 걷다보니 자꾸 우산 속에서 빠져나간다. 내가 걸음이 느려서 그런가 하고 열심히 따라가도 여전히 꽃으로 나무로 쫓아가고 우산 속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내가 혹시 불편하게 하고 있나 생각을 해도 그 때는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쳐 우산을 접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구름이 만드는 귀여운 토끼가 달아날까봐 없는 솜씨에 서둘러 사진을 찍는다. 나뭇가지를 흔들어 빗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미처 피하지 못해 얼굴이랑 옷이 젖기도 하고 마른 풀 틈에 핀 씀바귀 꽃을 보며 꽃보다 쓸쓸하게 웃는 그녀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모처럼 실컷 웃었다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답답하게 가슴을 짓누르던 게 뻥 뚫린 기분이라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한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갈
유대인만큼 아이들 교육에 체벌을 적극 활용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들은 아이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면 신체에 고통을 주는 체벌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벌주는 일을 주저하다가 나쁜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보다는 체벌이 더 교육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의 체벌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지혜의 원천인 머리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아이들을 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도 도구 사용은 절대 금기 사항이다. ‘오른손으로 벌하고 왼손으로 안아주라’는 격언도 철저히 이행한다. 또 대게 아버지가 체벌을 가하는 ‘악역’을 맡고 어머니는 자애로운 손길과 다정한 말로써 기분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지혜로움이 묻어나는 훈육방법이 아닐 수 없다. 율곡이 쓴 학교모범(學校模範) 이란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잘못을 처음 저지른 학생에게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린다. 두 번 잘못을 하면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꾸짖고 세 번 잘못을 범했을 땐 출세에 영향을 주는 원부에 기록한다. 예부터 체벌을 교육의 기본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체벌은 가정에서도 자녀의 잘잘못을 일깨워 주는 교육적인 기능으로 존재해 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래서…
붉은 눈 /종정순 던져준 생선이 엉뚱한 데 떨어졌다 느슨하던 목줄이 당겨진다 길게 뺀 혓바닥이 닿을 듯 말 듯 애타는 발길질에 흙바닥이 파인다 헐떡거리는 숨, 흰털을 붉게 적시는 찢긴 발톱, 먹이에서 떼지 못하는 붉은 눈 묶인 말뚝을 빙빙 돌다 그 앞에 주저앉는다 잠들 때까지는 목줄도 혀도 붉은 눈도 궁리가 많다 - 시집 ‘뱀의 가족사’ 붉다, 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단순히 색상을 가리키는 형용사지만 정열의 상징이기도 하고 때로는 불온한 사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의 붉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처절한 생의 본능이 느껴진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가장 원초적 본능인 식욕 충족을 위해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약육강식이 횡행하고 있지 않은가. 먹이에 닿지 않는 개에게 목줄은 영원한 굴레인 것이다. 그리하여 몸의 온갖 기관을 동원하여 닿으려 하는 저 몸짓에는 단순히 눈의 충혈을 넘어선 어떤 생존의 몸부림 같은 붉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목줄도 혀도 붉은 눈도 궁리가 많은 그런 날 시인은 저 개와 다를 바 없는 삶의 편린을 읽은 것이다. /이정원 시인
가맹법·유통업법·대리점업법 등 ‘유통 3법’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추진된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 관련법 위반으로 처벌이 필요할 경우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관련 기관이나 단체 등 누구라도 요청할 경우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검찰 등에 고발해야 한다. 불공정거래 피해구제가 훨씬 강화되는 것이다. 다만 공정거래법·하도급법·표시광고법 등에 관한 전속고발권 폐지 여부는 결론 나지 않았다. 대신 피해자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불공정거래행위 중단을 법원에 직접 청구하는 ‘사인의 금지 청구제’가 도입된다. 지금까지는 공정위에 신고하는 것 말고는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었으나 새로운 피해구제 수단이 생기는 셈이다. 공정위는 몇일전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의 중간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보고서는 지금까지 TF 성과를 담은 것이다. TF에서 의견일치를 본 것은 그대로 추진하고, 복수 의견이 나온 부분에 대해선 추후 하나를 선택하거나, 절충안을 마련해 국회에 참고자료로 넘긴다고 한다. 전속고발권을 ‘유통 3법’에서 먼저 폐지키로 한 것은, 위법성을 가릴 때 고도의 경쟁제한 분석이
15일 오후 2시29분 경북 포항에서 역대 두 번째 규모인 5.4 강진이후 잇따라 여진이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크다. 수십명의 부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고 주택, 상가, 공장, 차량 등이 부서졌다. 도로와 상수도, 철도, 항만 등 공공시설도 피해를 입었다. 16일 실시할 예정이었던 대학 수능 시험도 일주일 연기해 23일에 치르기로 했다. 여진으로 인한 안전문제, 시험 시행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은 있겠지만 잘한 결정이다. 불안에 떨며 시험을 보는 것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공부해온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옳다. 여진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참사를 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16일 아침 9시2분경에도 규모 3.6의 지진이 발생했으니 수험생들의 안전을 위한 정부 조치는 매우 타당했다. 이 정부가 칭찬받을 일은 또 있다.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것이다. 기상청은 지진발생 직후 신속하게 포항에서 강진이 발생했으니 여진 등 안전에 주의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를 국민들에게 보냈다. 이로 인해 포항에서 거리가 먼 수도권 주민들은 지진보다 먼저 문자를 받았다. ‘와 학교에서 강의 듣고 있었는데 갑자
지난 11월 9~10일 호치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와 연계행사로 호치민에서 개최된 제3차 세계실크로드대학연맹 총회 및 실크로드학회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후학과 함께 ‘호치민 코리아타운 연구와 위키백과 구축’을 주제로 발표했는데, 호치민의 한인집거지 세 곳을 직접 탐방할 수 있었다. 먼저 대형쇼핑센터 슈퍼볼 지역으로 통하는 초기 한인들의 중심지인인 팜반하이와 탄롱 거리, 그리고 푸미홍과 안푸 등 아직도 신도시 개발이 진행 중인 두 지역이다. 슈퍼볼 지역은 이미 ‘역사’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주로 상사주재원들의 거주지인 안푸 지역은 아직은 ‘미래’였다. 지난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한인들이 모여들어 LA 코리아타운 다음으로 큰 규모가 된 푸미흥 지역만이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현재’의 코리아타운이자 ‘미래’도 희망적으로 보였다. 푸미흥은 호치민시와 대만계 부동산 개발회사 ‘푸미흥(福美興)’이 외국인을 겨냥해 늪지대인 호치민시 남부 지역을 개발한 신도시이다. 처음부터 대만, 일본, 한국, 프랑스, 캐나다 등 국제학교를 유치했다. 호치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사건에 이어 충남 아산과 강릉에서 10대 청소년들이 무차별 폭행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온 국민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SNS로 범행을 과시하듯 사진을 올리고 공론화된 후에도 반성하는 모습이 없었다.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청소년의 괴롭힘에 대해 연구해온 올베우스 박사의 견해를 빌리면 가해자들은 공통적으로 ‘공감인지능력’이 매우 떨어진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공감인지능력이 요즘 들어 더욱 떨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 사회와 학교의 폭력적인 문화가 학생들의 공감인지능력을 저하시킨다. 우리 사회가 성과만을 추구하는 비인격적 문화를 가진 데다 개인의 특성을 인정하기보다 획일화하는 폭력적 측면까지 가지고 있어서 학교문화조차 이런 사회를 반영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싶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들이 폭력적인 사회문화와 질서를 습득하고 내면화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는 평범한 아이들도 사회와 학교의 폭력적 문화를 반복적으로 내면화할 때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공감인지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둘째, 가
“할머니가 막내인 남동생을 아끼는 환경에서 자라나,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당연히 남자는 1번이 되는 학급 번호를 거친다. 남자부터 시작하는 학급 번호, 자연스럽게 남자부터 급식을 먹는다.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괴롭힘에 고통 받는다. 그 후엔 자신을 좋아한다 착각한 남자의 스토킹으로 남자 공포증을 겪기도 한다. 여성에게 가혹한 취업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면접 질문을 받고 광고홍보대행사에 입사한다. 남성을 중심회사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지만, 아이를 가진 후 바로 퇴사한다.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맘충’소리를 듣는 그녀는 결국 정신병에 걸리고, 그녀 주변의 여성들에게 빙의하는 증상을 겪는다.” 38만부가 팔려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줄거리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지영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너무나 흔한 여성이다. 작가는 평범한 30대 여성인 이 인물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호평을 받았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여성 독자들에게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6월엔 노회찬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엊그제 한국노동사회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