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는 나라가 망할 징조 즉, ‘망징(亡徵)’을 48개로 정리하여 경고했다. 한비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수많은 나라가 망해가던 시기였는데, 그래서 그는 망징들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많았다. 망징 중 상당수의 징조를 이명박근혜 정권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갖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15년 가을 ‘두뇌사용설명서’라는 책을 쓰면서 박근혜정권이 수많은 망징을 갖고 있다고 진단하고 101쪽에 정리한 바 있다. 한비자가 지적한 망징 48개 중 25개는 대한민국과 관련되어 있음을 2년 전 필자가 한국에서 직접 발견했거나 전해듣고 정리하였다. 참고로 이번 칼럼을 쓴 시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지난 3월 10일 벗들과 저녁에 만나 막걸리를 마시기 직전에 썼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한국이 갖고 있는 망징 25개는 이렇다. ▲법이 고르게 적용되지 않는다(유전무죄) ▲법을 깔보고 모략으로 법을 곡해한다(지록위마) ▲리더들이 논쟁만 즐긴다(고시 출신들의 탁상공론) ▲상인들이 사내 유보금을 쌓으며 국민은 곤궁해진다(한국의 대기업) ▲종교에 너무 빠진다(이명박박근혜) ▲왕이 많은 신하와 소통하지 않고 한 사람의 말을…
모든 새의 으뜸이라는 봉황. 비록 상상속의 동물이지만, 순자(荀子)가 ‘애공편(哀公篇)’에서 ‘왕의 정치가 삶을 사랑하고 죽임을 미워하면 봉이 나무에 줄지어 나타난다’고 했을 정도로 예부터 신령(神靈)의 상징으로 여겼다. 중국 전한시대 서적‘회남자(淮南子)’ 에는 봉황을 ‘조류의 왕이고 하늘의 사상을 본뜬 웅대한 새’라 적고 있다. 명나라 때의 백과사전 삼재도회(三才圖會)에는 신조(神鳥)로서 온 세상의 일을 다 알고 치란(治亂)이 일어나는 것을 어느 새보다 먼저 알았으며, 밝고 어진 임금이 나타나 천하가 태평해지면 그 모습을 나타내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천자(天子), 즉 ‘왕’을 상징하는 귀한 새로 적고 있다. 봉황은 수컷을 봉(鳳)이라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여 자웅이 있지만 서로 의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지었다는 ‘봉구황곡(鳳求凰曲)’이 사랑을 구하는 악곡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사랑하는 남녀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속담에 ‘봉 가는 데 황(凰)이 간다.’, ‘봉이 나매 황이 난다.’라는 말도 사랑하는 남녀관계나 천정연분을 의미한다. 봉황은 중국 뿐 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상당히 비중 있는 상상의 동물로 자리하고 있
꽃의 지옥 /고영 끈꽃주걱* 화려한 꽃잎 위에 부전나비가 앉아 있다 끈끈이주걱 흔들리는 만큼 부전나비 흔들린다 부전나비 날갯짓만큼 끈끈이주걱 흔들린다 어쩌다 너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꽃의 지옥이라도 좋다! 끈끈이주걱 아가리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기꺼이 날개 접는다 *식충식물 -시집 ‘딸꾹질의 사이학’ 극한의 경험은 개별적 정서를 낳는다. 시인은 끈끈이주걱에 앉아 있는 부전나비를 통해 자신의 심상을 투영하고자 한다. 누가 사랑을 환희라 하는가. 특히나 에로스적 사랑의 뒤끝은 서로에의 탐닉만큼 쓰다. 그래도 그 달콤한 독을 향해 장렬히 투신하는 것이 생명의 원초적 본질이라면 지옥이라도 좋은 것! 서로가 서로에게 꽂혀서 흔들리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빠져들어 헤어나기 힘든 지경을 시인은 얼마나 처절하게 겪어냈을까. 테드 휴즈의 ‘까마귀의 첫수업’이란 시가 떠오른다. 신은 숭고한 사랑을 가르치려 하지만 까마귀로 상징된 인간의 내부에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튀어나와 반항을 시도한다. 결국 하느님은 애욕에 바다에 빠져 드잡이하는 두 남녀를 ‘떼어놓으려 애쓰다가, 욕하다가 울음을 떠뜨렸다’는. 태초에…
며칠째 마음이 무겁다. 예측했던 결과라고는 해도 막상 탄핵이라는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무언가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은 잠시였고 지고 있던 짐보다 더 큰 무게가 들어앉는다. 대치정국은 그들의 해법대로 각각의 주장을 하고 광장의 민심도 선명한 대조를 보인다. 그리고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고 협치를 바라는 언론과 각계의 말이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갈라진 마음을 봉합하려는 노력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탄핵 반대 집회현장에서 사상자가 나오는 불행한 사태가 생겨나고 있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요즈음의 심경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강요당한 절망의 겨울을 지내면서 보여주는 사물의 모습들은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처럼 겨울을 건너는 나무도 있고, 눈보라 속에서도 푸른 잎을 거느리고 겨울과 맞서는 침엽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생존의 방법일 뿐 누구도 옳고 그르거나 우열을 다투지 않는다. 다들 저마다의 삶에 충실한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협동보다는 경쟁을, 격려보다 시기를 보이는 생명체는 사람의 무리가 아닌가 싶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해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기의 주장
오늘 11시에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탄핵 결의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 작년 말에 최순실씨의 태블릿 pc가 공개되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로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 이제 오늘 마무리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현재의 정치상황을 만든 것은 본인의 잘못이 크다고 하겠다.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를 만들어 국가기밀 사항을 여과없이 전달하였고, 삼성 그룹의 상속승계를 위하여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정부 차원의 특혜를 준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여기에 더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지원을 금지한 것은 평등을 지향하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이 없어 국가위기 상황에서 국가통수권자로서의 역할을 올바르게 하지 못한 것과 관료와 국민들간의 소통 부족으로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탄핵을 주도한 핵심내용이고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주된 내용이다. 그 결과가 오늘 최종 결정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우려스러운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수원시는 광교상수원보호구역 해제 전까지 지정 목적이 확보되도록 보호구역내 등산객과 행락객 유입을 전면 차단해 비점오염원 관리를 철저히 해야할 것이다” 이 주장은 환경단체가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광교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주장해 온 광교산 주민들이 7일 열린 ‘광교비상취수원 변경 전문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역설적 불만이다. 즉 상수원보호를 명분으로 해제를 하지 않겠다면 아예 등산객과 행락객 출입을 막으라는 것이다. 광교저수지 인근 장안구 상·하광교동 일대는 1971년부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상수원보호구역은 말 그대로 우리가 먹는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水源池)여서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보호구역에 살거나 토지를 갖고 있는 주민들의 불편과 재산상의 피해는 컸다. 지난해 10월 본란에서도 이 문제를 다룬 바 있지만 주민들은 내 땅에 집 한 채 마음대로 지을 수 없었다. 광교산의 명물인 보리밥집 등 식당들은 영업허가를 받지 못해 불법영업행위로 수시 고발당해 ‘세금처럼 벌금을 내는’ 일이 매년 되풀이돼왔다. 주민들의 숙원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였다. 상수원 보호는 중요하다. 지역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생존권도 중요하다. 주민
세계문화인의 시선이 올해 유럽으로 몰려있다. 2007년 이후 10년만에 동시에 2년 주기 이탈리아 57회 베니스비엔날레(5.13~11.26), 5년 주기 독일 14회 카셀도쿠멘타(4.8~7.16-그리스 아테네, 6.10~9.17-카셀), 10년 주기 독일 5회 뮌스터조각프로젝트(6.10~10.1), 2년 주기 14회 프랑스 리옹비엔나레(9.20~12.31)가 열린다. 이 동시대미술현장에서는 인문학적 영역의 역할이 커져가는 정치, 사회, 역사이슈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지식인과 예술가 집단이 가장 설득력 있고 전위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관점을 표현한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국가간의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문화전쟁의 또다른 차원으로 평가된다.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는 프랑스 국립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의 크리스틴 마셀 선임큐레이터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맡는다. 비엔날레의 주제는 예술 만세라는 뜻의 ‘비바 아르테 비바’이며 전세계 51개국에서 초대된 120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가 있다. 1955년부터 독일 중부도시 카셀에서 개최되는 카셀도큐멘타는 현대미술의 미래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의 많은 영웅 중 헤라클레스가 있다. 그의 모험 중에 ‘축사 청소’가 있다. 축사 청소라는 밋밋해 보이는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 속 영웅담이 된 이유가 궁금하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헤라클레스는 엘리스라는 나라의 왕 아우게이아스의 엄청나고 크고 더러운 축사를 청소하라는 과업을 받고 하루 만에 그 과업을 완수하였으나, 아우게이아스와 축사 청소에 관련된 보수를 흥정하였음을 이유로 그 과업을 인정받지 못했다. 괴물 또는 악당과의 한판 승부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헤라클레스가 엘리스를 쳐들어가 점령한 후 약속을 어긴 아우게이아스와 그의 아들들을 죽이는 후반부 장면이 관심을 끌 법하다. 그런데 헤라클레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우게이아스의 죽음이 이야기의 결론은 아니다. 이야기는 헤라클레스가 헤라여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과업수행의 일환으로 축사를 치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우게이아스와 보수를 흥정한 뒤에 일을 마쳤으므로 순수한 과업수행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부패와 악의 화신인 아우게이아스에 대한 응징이 주요 뼈대가 되었다면 영웅의 모험담 수준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신이 헤라클레스가 내린 과업은 축사 청소였
새벽녘, 먹빛 수평선 위에 무겁게 앉아 있는 구름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존귀한 의미로써 곧 세상을 온통 덮을 것 같이 보이지만, 곧 해가 뜨고 대기가 마르기 시작하면 구름은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구름 안에 내포된 무거움과 가벼움이 예리한 층을 이루며 바다 위에 묵직하게 드리어져 있다. 무언가가, 너무나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감동에 벅차오르다가도 그것은 결국 오리무중의 안개일 뿐이라는 좌절에 부딪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09년 작 ‘해변의 수도승’이라는 그림이다. 이 압도적인 대기와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 수도승은 고작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자연이 우리보다 훨씬 광활하고 압도적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과연 그 안에서 삶의 이유까지 포착해낼 수 있을 것인가. 프리드리히는 죽음과 맞닿아 있던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로 그는 이 시기 낭만주의 회화작가로서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다. 예술사에서 낭만주의가 도래한 이후 한 인간의 불행과 공포 그리고 우울은 고귀한 예술적 소재로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가 일생 치러야했던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예수는 처형되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기념하는 최후의 만찬을 했다. 그리고 유다의 배반으로 이튿날 아침 일찍 예수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았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매질을 가한 다음 골고다라는 곳에서 강도 두 명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성금요일(Good Friday)’은 ‘비탄’이라는 의미의 옛 독일어 ‘chara’에 ‘금요일’을 덧붙인 말로 예수의 이러한 재판과 처형을 기리는 날이라는 뜻이다. 교황은 1년에 한 번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리는 성 금요일,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평신도들의 고백을 듣는다. 지은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신도에게 신을 대신해 용서하고 충고를 주기 위해서다. 서양인들은 이런 이유로 금요일을 불길하게 여겨왔다. 특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이 금요일이고, 전날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사람이 13명이었다며 이 두 개가 합쳐진 ‘13일의 금요일’을 가장 공포스런 날로 친다. 유독 비극적인 사건 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필립 4세 왕이 이단을 숭배한다는 죄를 씌워 3000여 명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인 날이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이다. 최근엔 2015년 11월 13일의 금요일에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