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동탄성심병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스마트병실’을 개소했다. 본보(20일자 10면)는 지난 해 스마트병실 구축 국책사업을 통해 12월부터 시범운영 기간을 거친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이 국내 첫 스마트병실을 정식 개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10개 병실, 25개 병상에 스마트병실 시스템이 적용됐는데 병실에 스마트TV 또는 식탁형 태블릿이 설치돼 있어 스마트병실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병실 내에서 EMR(의료정보시스템)을 통한 검사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의료진과 원격 상담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투약, 검사, 회진 등 환자의 당일 치료일정 등 세부정보를 스마트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음성인식 병실 제어 및 응급콜도 된다. 주치의와 급한 상담이 필요할 때는 화상면담을 요청, 의료진과 스마트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어느 정도 예견된 행동이지만 근래 북한의 도발 행태가 심상치 않다. 18일의 ICBM시험발사에 이은 19일의 김여정부부장의 담화, 미국 B-1B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관련한 한미공군 연합호위 훈련 실시에 따른 20일 반발성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 안보 상황이 매우 불안하다. 이에 대해 독일에서 한ㆍ미ㆍ일 외무장관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가지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규탄성명, 우리 당국(국방부, 통일부)도 강도 높은 비난과 대항 결의를 다지고 있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를 생각한다. 김여정의 담화 내용의 메시지는 나름 분명하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시 정책의 전환 없는 대화 제의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한미연합훈련에서의 전략자산(B-1B 전략폭격기나 핵 항공모함 등) 전개에 대해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
역사학자 홉스 봄은 프랑스 혁명 이후 역사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구분해 서술하고,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규정했다. 21세기는 무슨 시대로 기록될까? ‘혼돈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중국이 띄운 풍선이 미국의 하늘에 나타나 소동을 빚었다. 지구 궤도에 무수히 많은 위성을 띄워 서로 속속들이 감시하고 있는 마당에 풍선까지 등장했다. 미국은 이 풍선을 전투기를 출동시켜 격추(?)시켰고, 미국 시민들은 환호했다. 기상관측용 풍선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은 미국 편을 든 한국에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의 쑨웨이둥 부부장이 2월 14일 정재호 주중 한국 대사를 만나 “한국 쪽이 시비곡직을 분명히 가려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공정한 판단을 내리길 희망한다”고 항의성 충고를 한 것이다. 시비곡직, 객관, 이성, 공정. 모두 철학적으로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하는 말들이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고 굽은 것과 곧은 것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객관, 이성, 공정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객관적이라는 것은 현상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본질(진실)을 밝히는 것이요, 이성적이라는 말은 감정을 걷어내고 합리적 판단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이란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려내는 것이다. 맹자가 말한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시비곡직을 가려내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의미다. 요즘 말로 하면 합리적 이성이다. 그러나 인간은 제한적으로만 합리적이며,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 그래서 세 번 생각하고 말을 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풍선 논란’과 관련해서 보자면, 미국이나 한국의 반응은 주관적이고 감정이 앞서 있는 모습이다. 쑨 부부장은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객관성과 이성과 공정성은 정삼각형처럼 하나로 연결된 개념들이다. 시비곡직까지 포함하면 정사면체가 되겠다. 감정이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배제한 이성적 사유를 지향할 때라야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 객관은 의지적으로 주관을 멀리함으로써 그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자세를 견지해야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경지에 이르면 시비곡직은 자연스럽게 가려질 것이다. 이 개념들은 각자의 경험으로 터득하기는 불가능하다. 경험은 주관의 영역이다. 주관적 판단에서 벗어나려면, 동서양 철학과 인지심리학, 뇌신경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습과 꾸준한 수련을 필요로 한다. 이 분야의 지식은 교양인의 필수덕목이 되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학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걸 공부했다. 리버럴 아츠는 요즘 말하는 좁은 의미의 인문학이 아니라 융합적 교양과목들이었다. 21세기가 혼돈과 고통의 시대가 되지 않도록 이성을 회복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들의 ‘차별 대우’ 인식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실시한 조사에서 외국인 주민들은 10명 중 7명이 재난회복 과정에서 한국인과의 차별적 처우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지방정부는 물론 지역민들이 ‘지구촌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거주 외국인들이 누구든지 건강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동등한 ‘삶의 질’을 누리도록 보장하는 게 옳다. 경기도 외국인인권지원센터는 지난해 6~7월 중국·러시아·베트남·나이지리아 등 27개국 출신 외국인 주민 430명을 대상으로 한 ‘2022 경기도 외국인 주민 재난안전시스템 구축을 위한 실태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재난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외국인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어려움(..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사안이 부딪히는 사회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자 이들의 욕망과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가 서로 엉켜 삶의 현장이 펼쳐지는 곳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욕망 속에 울고 웃는 삶의 현장은 종종 세속이란 말로 표현된다. 사회에서 이념이나 종교의 특정 가치를 위한 탈속적 삶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아무리 탈속적 가치를 추구한다 해도 그러한 가치의 최종적 구현은 결국 다시 세속 현장으로 돌아와 세상과 함께 하는 것이다. 세속이란 인간의 삶이 관념과 현실 속에 통합적으로 마무리되는 곳이다. 숭고한 이념이나 종교적 가치가 지식인의 엘리트주의나 종교인들의 비현실적 이상이 아니라 세속 현장에 구현되는 시도와 노력은 인간적 모습이다. 세속과 유사한 개념으로 통속이란 말이 있다, 간혹 탈속적 가치를 강조하는 종교 집단에서는 세속은 곧 통속이 되어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형태로 거론되지만, 통속은 세속의 자연스런 모습이자 흐름의 표현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은 세속적이지만, 동물적 욕망에 의해 펼쳐지는 것이 통속적이다. 예로부터 흔한 예를 든다면 배우자 선택에서 돈과 사랑 사이에서 돈을 선택한다면 통속적이다. 사랑이나 가치 보다는 편한 삶을 위한 자연스런 선택이기에 이는 인간이 근간하고 있는 생물학적 내지 동물적 모습이다. 세속적 삶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내지 집단에 대한 책무에 충실한 모습이 있고, 그런 주변에 대한 책무보다는 개인 욕망에 충실한 모습도 있다. 물론 사람에 있어서 어느 한 면만이 있다기보다는 어느 성향이 더 있느냐의 문제이기는 하나, 전자는 이웃과 주변에 대한 책무 수행에 가치를 두고, 후자는 최종적으로 개인의 말초적 만족과 즐거움이다. 전자는 가치나 이념을 위해 인내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으로, 후자는 개인의 편안함 추구 속에 게으름이나 욕망 만족을 위한 선택으로 삶을 만들어 간다. 우리 사회를 뜨겁게 만들고 있는 진보 보수라는 정치적 구도 역시 넓은 의미에서 이 안에 있지 않을까. 정치 현장에서 이웃과 함께 하며 책무를 다하려는 열린 성향이 진보를 이룬다면, 개인이나 자신 집단만의 편안함이나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위한 욕망 만족을 추구한다면 보수로 간다는 이는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보듯 아무리 오래 동안 함께 했건 나이든 수컷을 버리고 젊은 숫컷을 선택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되 그것은 통속적이요, 비록 나이들어 병든 부모를 방치하기보다는 모시고 함께 한다면 세속적이기는 하나 통속적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세속은 평범한 세상을 말하지만, 통속은 일반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 점에서 시대와 문화에 불문하고 변치 않는 것이 진실이되, 특정 시대나 문화에서 다수의 일반인들이 수용하는 가변적인 것이 사실이라는 구도와 다르지 않다. 인간사회는 사실로 움직이기 때문에 다수가 힘을 발휘하지만, 개인의 선택으로서 세속적으로 살면서도 동물과 달리 사람답게 사는 길을 고민하다면 통속적일 필요는 없다. 본인의 삶을 어느 위치에 두어 구현해 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지만, 속한 집단이나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 한다.
우리 국민들은 주인의식이 매우 높다. 뜨거운 피로 투표권을 얻어낸 민족이다. 밥이건 술이건 단골메뉴는 단연 정치다. 하지만 중앙이슈가 대부분이고 총선, 지선은 한참 못 미친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비중과 그로 인한 파급 때문만일까? 각종 투표에 대한 관심도는 투표율로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부터 보면 촛불대선이었던 2017년에 77.2%, 지난 3월 77.1%로 80%에 조금 모자란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국회의원 선거는 최근 세 번의 선거에서 각각 54.2%(2012), 58.0%(2016), 66.2%(2020)로 점점 높아지고는 있지만 대선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총선과 2년 터울로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어땠을까? 6회부터 8회까지 56.8%(2014), 60.2%(2018), 50.9%(2022)로 이번 경기도지사를 뽑을 때 100명 중 49명은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광역, 기초 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우리의 생활과 아이들의 교육에 너무나 중요한 선거이지만 관심도가 낮아도 너무 낮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국회의원 선거를 약 1년 남짓 앞둔 시점에서 곧 있을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교훈을 얻길 바란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조합장선거, 지난 2019년 투표율은 자그마치 80.7%이다. 대선보다도 3%P 높은 투표율이다. 게다가 첫회였던 2015년 80.2%에 비해 0.5%P가 높아진 수치이다. 지방선거와 무려 30%P의 차이... 조합장은 뽑았지만 경기도지사, 수원시장은 안 뽑은 사람이 10에 3은 된다면 심할까? 협동조합 구성원들이 특별히 선거참여가 높은 것일까? 만약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각급 선거 투표여부를 확인하는 연구결과가 없다면 사회과학분야 연구주제로 추천하고 싶다. 과연 비결이 무엇일까? 효능감이다. 나의 이익, 나의 소신과 직결된 이슈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합장선거의 높은 투표율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해할만하다는 반응이다. “돈이 걸려있잖아”, “조합장 권력이 어마어마하다던데”, “혜택이 많잖아”... 앞의 두가지 반응은 후보가 적극적인 이유일 것이고 마지막 반응은 유권자에 대한 이유일 것이다. 이 둘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조합장 후보가 되려는 사람들은 4년간 차근차근 준비하며 조합원이 누구인지 정보들을 차곡차곡 모은다. 꾸준하게 찾아가 인사하고,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며 얼굴을 알리고 친분을 쌓는다. 공직선거와 다르게 어느날 갑자기 당에서 공천장 받아서 나타날 수도 없고, 언론에 얼굴 알려서 될 일도 아니다. 한 명이라도 더 투표장으로 이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조합원들은 어떨까? 그냥 표를 주지 않는다. 제아무리 인사 잘하고 친한 척 해도 뒤돌아서 계산기를 꼼꼼히 두들긴다. 누가 연말에 기프트카드를 더 주는지, 건강검진을 해주는지, 배당을 더 해준다는지 말이다. 나에게 도움되는 후보에게 표 던지러 투표장에 가고야 만다. 3선에 도전하는 조합장의 이야기이다. 그간 쌓아온 인맥과 신뢰로 조합의 자산규모도 키우고 혜택도 늘렸다고 했다. 무이자자금과 정부지원으로 산지유통센터를 만들고 여기저기에서 벤치마킹 올 정도라 하여 여유있는 승리를 예상했지만 여론은 정반대라고 했다. 농산물을 무작정 받을 수 없어 납품 조합원을 늘리지 못하니 실제로는 불만이 더 많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낙수효과보다도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게 더 서운하여 농림부 장관이나 군수의 극찬도 소용이 없다는 고민이었다. 조합장 선거의 높은 투표율은 손익계산서를 통해 결정된, 결국 투표의 효능감 덕분인 것이다. 조합장선거는 구성원 고령화로 인해 의료 혜택, 복지 사각지대 보완, 배당 등 경제적 혜택과 건물 신축, 리모델링 등 이용 편의 개선 등에 대한 공약이 주를 이루다보니 나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기꺼이 투표장으로 나선다. 어려운 경제 지표 속에서 국민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는 정책들로 경쟁하는 선거가 된다면, 그래서 그 정책들로 내 삶이 나아진다면 투표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 않을지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특사경)은 도 청소년과 및 31개 시군,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등과 함께 최근 논란이 된 도내 룸카페 신·변종 업소에 대해 대대적인 특별단속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룸카페들이 밀폐된 공간 또는 칸막이에다가 침대 등을 두고 청소년들까지 무차별로 받아 신체접촉 또는 성행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뉴스는 경악을 부른다. 이런 변태 영업은 절대로 묵인돼선 안 된다. ‘특별단속’이 아닌 강력한 ‘상시 단속’ 시스템을 갖춰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 ‘청소년 출입·고용금지업소 결정 고시’는 밀폐된 공간 또는 칸막이 등으로 구획을 나누고 침대 등을 둔 영업시설 등은 청소년 출입·고용을 금지하고 있다. 또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의 출입과 고용 제한 내용을 표시하지 않은 업소는 지자체에서 시정명령을 내리고, 불이행 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규정에도 불구하고 ‘기는 법 위에 나는 범죄’가 설치듯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신·변종 청소년유해업소 ‘룸카페’는 우후죽순 번지고 있다. 24시간 운영 형식의 업소 입구에 ‘19세 미만 출입·고용 금지업소’라는 팻말을 붙이기는 하지만 허울뿐이다. 외양만으로 청소년 여부를 구분하기란 불가능한 시대에 일일이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는 한 제한 규정이란 한낱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침대와 화장실이 내부에 있는 ‘모텔형’이 아니라고 해도 성업 중인 룸카페는 대개 출입문 유리에 시트지를 붙여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밀실 형태로 돼 있다.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알 수가 없게 돼 있는 구조 자체가 이미 일탈을 유혹하는 무대장치다. 최소한 푹신한 매트와 담요, 쿠션 등을 구비하고 있어서 사실상 유사 숙박업소처럼 운영되고 있다. 대략 3.3㎡(1평) 정도 규모의 작은방으로 꾸며지는 만큼 웬만하면 룸이 수십 개씩이다. 혼자서 여러 개의 업소를 운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사용료도 매우 저렴하다. 1만 원 정도 하는 음료수 한 잔이면 3시간가량 이용할 수 있다.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변종 업소다. 종사자들은 노골적으로 “교복만 안 입으면 출입이 자유롭다”고 말한다. 룸카페는 신고나 허가 대상도 아니어서 ‘공간 임대업’이나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한 뒤 별다른 단속을 받지 않고 영업을 해왔다. 청소년들에게 무제한으로 열린 변칙 일탈 공간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는 없다. 온 세상에 널려있는 폭력물과 일그러진 성문화 속에서 날마다 시시각각 유혹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유희와 도락에 빠져 퇴폐 방탕한 습성에 물드는 현상을 방관한다면 우리 사회,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방책을 서둘러야 한다. 불법 영업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법을 엄격하게 정비하는 게 급선무다. 변칙 영업이 일체 불가능하도록 하는 강력한 ‘상시 단속’ 시스템도 구축해내야 한다. 논란이 일 때마다 찔끔 단속하는 척하다가 흐지부지하고 마는 대증 요법 정도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아이들이 비뚤어진 길로 빨려 들어가는 유혹의 블랙홀을 그냥 둔 채로 우리 사회의 미래가 멀쩡하길 바라는 어리석음은 타파돼야 한다. ‘청소년 모텔’이라니,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1. 정의연(정의기억연대) 관련 기부금 전용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속칭 윤미향 사건이다. 온 나라를 활활 불태운 마녀사냥, 그 불길이 사그라들고 팩트가 모습을 드러낸 게다. 늘 그러하듯 검찰이 장작에 기름을 붓고, 타오르는 광란의 불길 앞에서 언론이 칼춤을 췄다. 검찰은 보조금관리법 위반, 지방재정법 위반, 사기, 기부금품법 위반, 준사기, 업무상 배임, 업무상 횡령,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 8개 혐의에 대한 기소를 감행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부는 이 중 7개 혐의에 무죄를, 10년 동안 1700만원을 가져다 썼다는 업무상 횡령 혐의에만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살펴보면 유죄판결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다대하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지출 항목에서 영수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등 회계관리 부실이 이유였다. 일반 기업에 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 평가하면 할수록 그가 선 자리는 불안해지고, 반대로 자신을 낮추면 낮출수록 그가 선 자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강해지려면 물과 같이 되어야 한다. 물은 가로막는 것이 없으면 흐르고, 둑이 있으면 멈춘다. 그러다 둑이 터지면 다시 흐른다.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된다. 그처럼 부드럽고 막힘이 없는 유연함으로 인해 물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강한 것이 된다. (노자) 물이 높은 곳에 머물지 않고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듯, 선덕 또한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에게 머물지 않고 오직 겸허한 사람에게만 머문다. (탈무드) 사람은 내면을 깊이 성찰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이 하찮은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예지에 이르는 첫걸음이다. 현명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겸허해지자. 그러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채닝) 어진 사람은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이를 행할 힘이 부족한 것을 한탄할지언정,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거나 잘못된 비판에 대해 한탄하지 않는다. (중국 금언) 선량하고 총명한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자신은 아는 것이 조금밖에 없으며 자신보다 훨씬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남을 가르치기보다 남에게서 듣고 배우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지배하려 하려는 사람은 결코 잘 가르칠 수도 지배할 수도 없다. (존 러스킨)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알려고 애쓰라. 그리고 이를 과소평가할지언정 결코 과대평가하지 말라. 현대인의 한 특색은 그 양심이 대단히 안이해진 것입니다. 양심이라 말하면 곧 가책이란 말을 붙여 생각하게 되는데, 오늘날 사람에게는 가책이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옛날 사람으로 하면 부르르 떨 만한 일을 능히 태연한 맘으로 하고, 남이 하는 것을 보아도 별로 분개도 미워도 않고 안연(安然)히 보고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된 것입니다. 양심이 점점 더 예민해지는 것을 인류의 향상이라고 한다면 현대는 그 질적 진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퇴보의 시대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함석헌)/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남한산성 안에 있었던 여러 누정(樓亭)들이 모두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서 지수당(地水堂)과 관어정(觀魚亭)은 연못과 함께 있어서 다른 정자들과는 다른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사시에 성을 지키려면 무엇보다도 물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남한산성에는 여러 곳에 샘이 나오고 연못은 행궁 안에 한 곳, 지수당 옆으로 3개가 나란히 있었는데 지금은 행궁 안과 지수당 옆의 2개만 남아 있다. 정조 3년에 효종 임금 승하 120주년을 맞아 여주에 있는 영릉(寧陵)을 참배하러 오가는 길에 남한산성에 들렀는데, 이 해가 기해년(1779)이라 기해주필(己亥駐蹕)이라 부른다. 동문 밖 계곡에 좌의정 김종수의 글씨로 己亥駐蹕이라 새긴 바위가 있는데,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임금이 8월 7일 지수당에 행차해서 백성들이 고생스러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청취하였다. 임금이 이천에서부터 가마를 타고 경안역에 도착하여 쉬고, 남한산성의 좌익문(左翼門, 동문)에 이르러 갑옷으로 갈아 입었다. 임금이 행차하는 길가에는 사람들이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모여들어 길에 가득 찼는데, 심지어는 멀리 강원도에서 행차 구경을 온 사람도 있었다. 이어서 지수당에 나아가 말에서 내려 당(堂)에 올랐다. 임금이 "승지, 사관, 대신, 수어사만 입시하라."고 명하니, 영의정 김상철(金尙喆), 좌의정 서명선(徐命善), 수어사 서명응(徐命膺)이 나와서 엎드렸다. 임금이 이르기를, "경들은 말을 타고 달린 뒤끝에 연이어 탈이 없는가? 영상은 연세가 높으나 근력의 굳세고 튼튼함이 오히려 좌상보다 낫다." 하니, 김상철이 아뢰기를, "신들이 다행히 넘어짐을 면한 것은 모두 전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하고 임금의 컨디션은 어떠냐고 하니, 정조 임금이 "피곤한 줄 모르겠다."하였다. 이 때 김상철의 나이가 68세였고, 서명선은 51세였다. 기해주필이 끝나고 다음 달에 천둥이 치는 기상이변이 있어 둘 다 사임하게 되지만 서명선이 김상철의 후임으로 영의정이 되었다. 정조 임금이 지수당에 들른 것은 군사들이 잠시 휴식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임금이 이르기를 "이곳에 들른 것은 군병으로 하여금 잠시 휴식하게 하고자 한 것인데, 이 당(堂)은 사면이 지수(池水)로 둘러져 있어 군병들도 갈증을 풀기에 충분할 것이니 매우 다행이다." 하고 어느 해에 세운 것인지 물으니 수어사 서명응이 대답하기를 현종(顯宗) 13년(1672)에 부윤 이세화(李世華)가 세운 것이라고 하였다. 또 임금이 말하기를, "지수라는 이름은 ‘땅속의 물은 병중(兵衆)이다. 노성(老成)한 사람이라야 길하다.’라는 뜻에서 딴 것인가?"하매, 서명응이 "그렇습니다."하였다. 즉, 백성을 용납하고 무리를 기른다는 뜻이 담겼다. 지수당의 건축에 사용한 목재는 동문 밖 엄고개에 주정소(晝停所)를 새로 지으면서 나온 폐목재를 재활용한 것이다. 지수당 앞에 이세화 선정비가 있다. 정조 임금은 백성들이 늘 굶주림과 추위에 괴로운 걱정을 면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구중궁궐이 비록 깊숙하다고는 하나 백성들이 유랑하며 몹시 괴로운 상황을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편안하겠냐고 말하고, 산성 주민들의 부채탕감과 특별 과거시험 등을 치르는 일을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행행(行幸)’이라고 하는 것은 백성이 임금의 행차를 다행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임금이 이르는 곳은 반드시 백성에게 은택이 미치므로 백성들이 모두 이것을 다행으로 여겨서 그런 것이다. 이제 나의 가마가 이곳에 이르렀으니, 저 백성들이 어찌 바라는 마음이 없겠는가? 행행의 의미를 내가 실천한 뒤에야 스스로 마음에 부끄러움을 면하게 될 것이다."하고 백성들의 부채를 탕감해 준 것이다. 한편 지수당에 인접하여 관어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았다. 1804년(순조4)에 광주유수 김재찬(金載瓚)이 지었다. 흔히들 물고기 낚시를 즐기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제갈공명이 위나라 군사 10만 대군과 대치하였던 옛일과 관련이 있다.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제갈량은 정자에 앉아서 물고기 떼의 이동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비가 힐책하였더니 물고기들의 이동을 보며 적군의 이동을 생각하고 이길 수 있는 전략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뜻이 김재찬의 ‘관어정소지(觀魚亭小識)’에 언급돼 있다. 이 정자에 올라 ‘관어정’ 이름을 따라서 경계할 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관어정을 건축한 김재찬이 남긴 글을 통해서 연못은 기존에 3개로 알려진 것과 달리 4개인 것으로 기록돼있다. 네 연못 가운데에 지수당이 있고 곧바로 당의 서쪽 첫 번째 연못에 작은 섬이 있는데, 그 위에 한 정자를 세웠고, 단풍과 버들이 둘러 있었다. 위는 띠풀 지붕이고 아래에는 난간이 있으며, 지수당과 서로 마주하였다. 기둥이 6개라고 했으니 6각정이었다. 작은 거룻배를 두고 왕래하였다. 선선한 바람에 구름은 연못 속에서 흐르고, 잔잔한 물결 속에 물고기 떼 노닌다. 바람과 구름의 만남(風雲之會), 물과 물고기의 어울림(水魚之交), 모든 것이 제자리가 있으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각자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 평안한 세상이 될 것이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