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북관계는 굳은 빗장으로 닫혀 있다. 2023년 12월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가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 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1991년 노태우 정부와 북한(김일성)이 체결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모두 동결되었고 군사적 충돌위험 마저도 상존하였다.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시작된 이재명 정부는 어떻게 남북관계의 물꼬를 열어야 할 것인가? 1990년 10월 3일 동서독 통일 이후, 1991년 12월 13일 노태우 정부는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전문, 25개조)를 채택하였다. 합의서는 그 이후 남북관계의 기준이 되어왔으나 국회의 인준을 얻지 못해 법적 근거를 갖지 못하였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관계는 곤두박질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쌓아올린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 와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촛불혁명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남북관계는 윤석열 정부에서 허물어졌다. 마치 ‘널뛰기’ 하듯이 남북관계는 요동하였다. 그러므로 남북간 합의사항에 대한 법적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북관계를 단계적이고 실효적으로 정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동서독은 1972년 12월 21일 동서독기본조약(전문, 10개조)을 체결했다. 조약은 10개의 조문에 불과하고 그 내용 또한 추상적이며 원칙적인 합의에 그치지만,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를 밟았다. 야당의 반대가 있었으나 비준법률안은 연방회의(하원)에서 통과되어 법률의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후 기본조약은 정권 교체후에도 동서독 관계 및 통일정책의 법적 기준이 되었고, 동서독 통일을 가속화하고 상호 신뢰회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독일의 기본조약과 우리의 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합의서는 2000년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일종의 ‘공동성명’, ‘신사협정’에 불과하여 헌법 제6조의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조약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남북합의서’에서 설정한 ‘잠정적 특수관계’가 가지는 이원적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데에 연유한다. 남북합의서는 서문에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명시하였다. 이것이 동서독조약과 다른 점이다. 남북간의 경제 및 물자교류 등의 추진을 민족 내부교류로 규정(제15조)한 것은 남북간 특수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 하였지만 유엔헌장상의 의무준수조항의 채택을 유보한 것도 남북간 특수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UN 동시가입을 빌미로 남북관계를 국가간의 관계로 기정사실화하여 분단을 고착화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수관계의 설정은 통일의 포기가 아닌 강력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잠정적 특수관계를 인정하고 단계적이고 실효적인 남북관계를 이루자면 남북기본합의서의 국회인준이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남북간 신뢰가 회복되고 단계적인 남북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국회의 성찰을 촉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현재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해양수산부를 12월 말까지 부산으로 이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국정기획위원회도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신속추진과제’로 채택했다. 별도의 법·제도 개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다가 더불어민주당도 해수부 이전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나섰다. 이로써 해수부 연내 이전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해수부와 부산시는 벌써 임시청사를 찾고 있다고 한다. 부산시는 지원 부서를 구성하는 등 해수부 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해수부 부산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북극항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부산을 전초기지로 삼아야 하며 이 사업을 전체적으로 견인할 해수부 역시 부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운 회사인 HMM의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시키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북극항로가 해양강국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상승으로 영구결빙 상태였던 북극 해빙(海氷)이 급속하게 녹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20년대 후반~2030년대부터는 늦여름마다 북극해 해빙이 녹아 주요 항로가 완전히 열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북극항로는 유럽과 아시아 간 운송 시간을 최대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 부산항에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가려면 약 2만2000㎞나 되는 바닷길을 가야한다. 그런데 북극항로를 이용하게 되면 1만3000∼1만5000㎞로 줄어든다. 거리가 약 30∼40%나 단축되는 것이다. 따라서 운송 기간은 최대 절반, 10일 이상 단축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우리나라 역시 북극항로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3년 해수부는 ‘북극 종합정책 추진 계획’에 이어 2018년엔 ‘북극활동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북극항로가 열리게 되면 부산은 동북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거점 항만이 되어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극항로는 단순히 새로운 항로가 아닌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는 말도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해수부는 북극항로 개발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북극항로 상업화와 관련 산업 발전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당연히 ‘해수부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1일 “새 정부는 앞으로 부산을 해양 강국의 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고, 부산시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수부 이전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부산지역 의원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동구·영도구·강서구·중구·남구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자신의 지역이 최적지라며 적극적으로 유치전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현재 해수부가 있는 충청권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충청권 주민들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해수부 부산 이전을 반대한다며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김태흠 충남지사 등 국민의힘 소속 충청권 광역단체장들도 해수부 부산 이전 방침에 반대 뜻을 밝혔다. 국민의힘 인천시의원들도 지난 30일 정부에 해수부 부산 이전 즉각 철회와 인천 이전을 강력히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일자 14면, ‘국힘 시의원들 “해수부 부산 이전 즉각 철회해야”’) 인천항은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며, 인천항, 인천국제공항, 경인 산업벨트를 포함한 핵심 물류 기반을 갖추고 있는데다 평택 삼성전자, 이천 SK하이닉스, 파수 LG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조업체들의 수출입 관문으로 연결돼 해수부 입지로 최적이라는 주장이다. 충청권이나 인천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정부는 전체적인 안목으로 해수부 이전문제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일까지 열리는 ‘서울시 중장년일자리 박람회’에 재취업을 원하는 중장년층의 열기가 뜨겁다는 소식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취업난이라는 요즘, 이같은 자리는 재취업을 열렬히 희망하는 이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개최한 만큼 아직 전국적 규모의 행사는 아니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마다 중장년층을 위한 재취업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면 좋을 듯하다. 새 정부가 정년 연장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긴 했으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퇴직연령은 49.4세다. 조기퇴직자가 정년퇴직자보다 많은 것이다. ‘60세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전쟁터 같은 회사를 나와 지옥 같은 삶을 맞닥뜨리는 이들의 현실은 상상만으로도 암담하다. 이번 박람회에는 현대홈쇼핑, LG하이케어솔루션 등 120여개 기업이 참여해 총 1600여명 규모의 채용을 진행한다고 한다. 구직자 1600명이 경력을 살려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희망적인 소식은 또 있다.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가 6개월 동안 60세 이상 시니어 433명의 일자리를 찾아줬다는 것이다. 일할 의지와 역량은 있지만 정년을 넘은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발굴하고 취업을 도왔다는 내용. 이는 전국 지자체의 주요 사업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초고령 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확보하는 것은 점점 중요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의 규모가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중장년층의 일자리 확대와 기회 보장은 점점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에서도 의미있는 행보가 있었다. 지난달 19일 전국 최초로 ‘주4.5일제’ 시범사업을 본격 시행하게 된 것이다.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는 4.5일제를 시행함으로써 노동자의 워라밸을 보장하고 지속가능한 노동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기업 여건에 따라 ▲주4.5일제(요일 자율선택) ▲주35시간제 ▲격주 주4일제 등으로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다. 경기도는 참여기업에 노동자 1인당 월 최대 26만원의 임금보전 장려금과 기업당 최대 2000만원의 컨설팅 및 근태관리 시스템 구축비를 지원한다. 오는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 후 성과를 분석한 뒤 전국 확대 여부를 검토한다고 한다. 3~4년 후에는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들이 주4.5일제를 운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할 뿐이다. 이처럼 노동환경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리진 못하고 있다. 중장년층은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지만, 노동시장의 현실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년 연장과 주4.5일제 도입 등을 계기로 이제는 노동자의 나이 제한에 대해서도 유연성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60세는 말할 것도 없고 4050마저도 일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일할 수 있으며 일하길 원한다. 이젠 사회가 합당한 답을 내놔야 한다.
“내년에는 전담을 맡으면 좋겠어요.” 최근 몇 년 사이, 교사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다. 학급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덧 교육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담임을 맡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예외나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되어버린 것이다. 담임 기피 현상이 이토록 뚜렷해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행정 업무의 과중함이 있다. 공문과 회의, 수시로 바뀌는 지침에 따라 정리해야 하는 각종 문서들, 여기에 학부모 상담과 학생 생활지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보다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원’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교사들의 목소리 중엔 수업이 쉬는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라는 자조도 있다. 교육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하루의 대부분을 서류 처리에 소진하는 구조가 담임 교사를 소모시키고 있다. 둘째는 학부모와의 갈등이다. 일부 학부모는 교사 개인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 늦은 밤이나 주말에 연락하고, 학급 운영 전반에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과도한 민원을 제기한다. 교사의 모든 말과 행동이 기록되고 감시되는 듯한 압박 속에서, 교사는 불안과 긴장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야 한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민원은 담임 교사의 심리적 부담을 키운다. 셋째는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사회적 기준 변화다. 예전엔 훈육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던 언행이 이제는 쉽게 인권침해로 오인된다. 물론 시대 변화에 따라 교사의 지도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훈육이고 어디까지가 아동학대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애매한 잣대는 교사를 위축시키고, 결국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담임을 맡지 않겠다는 선택은 합리적인 자기 보호일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선택이 개별 교사의 몫을 넘어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일반교사들이 기피하는 담임 교사 자리는 기간제 교사처럼 선택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넘어간다. 구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떠맡는 경우가 생긴다. 답답한 건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행정업무를 줄이고, 교사의 권위를 회복시키며, 학부모와의 소통을 조율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말은 교육계에서 오래전부터 나오던 이야기다. 하지만 변화는 더디고, 될 수 있으면 담임은 피하자는 현상은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로 굳어졌다. 교사는 단지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정서를 돌보고, 관계를 이끌며, 삶의 이정표를 함께 그려가는 사람이다. 그 중심에 담임 교사가 있다. 담임 기피가 확산될수록, 학교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조금씩 힘들어지는 구조가 된다. 지금 우리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동기부여와 사명감을 교사에게 불어 넣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교사가 존중받고, 담임을 맡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 반을 책임진다는 것이 교사의 용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날을 다시 기대할 수 있을까. 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늦었지만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25년 6월 23일이 이재명 대통령은 장관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다. 안규백(국방부)·정동영(통일부)·조현(외교부) 등 12명의 장관(국무조정실장 포함) 후보자를 지명했다. 이번 인사는 정치권, 관료 출신, 민간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포진시킨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역별로 수도권 2명, 호남 4명, 대구·경북 2명, 부산·경남 2명, 충청권 1명, 강원권 1명으로 균형을 고려한 점과 특정 대학에 치우치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번 새 정부의 인사를 조선시대 인사원칙과 비교하면 어떨까? 이번 인사는 국회의원 출신이 6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우며, 정무직 역량을 중시한 구성이다. 동시에 LG AI 연구원장이었던 배경훈, 네이버 대표 출신인 한성숙, 노동계에서 활동한 김영훈 등 사회 각계 전문가를 발탁해 실무 능력도 함께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시대 인사제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과거제 합격자와 함께 ‘천거제(薦擧制)’를 통해 덕성과 실력이 뛰어난 인재를 관직에 기용했던 조선시대의 전통과 유사하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전관(前官)의 평판과 근무 성적을 중시했는데, 이번에도 다수의 전직 관료와 공직 경험자를 중심으로 인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그 당시에도 특정 지역 출신의 관직 독점을 막기 위해 ‘지역 안배’ 원칙을 두었다. 이번 인사 역시 전국 주요 권역을 고르게 안배해, 전통적인 인사 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국방, 통일, 외교 등 민감한 부서에 정치권과 관료가 적절히 배치되었고, 보훈부에는 야당 출신 인사(권오을 전의원)와 전 정부의 국무위원(송미령)을 다시 기용해 정치적 포용의 메시지도 보인다. 다만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의 비중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될 경우 도덕성과 자질 검증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을 하였던 사례가 있었다. 1519년 중종 14년 현량과(賢良科) 제도였다. 이는 대사헌 조광조가 주도하여 덕망과 인품, 도덕성과 학문이 뛰어난 인재들을 중앙정계에 진입시키기 위한 추천(推薦) 기반의 인재등용 통로였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삼사(三司)와 지방 유림이 천거한 인물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하였으며, 철저히 능력과 인격 중심으로 선발하였다. 이 현량과를 통해 선발된 28명의 인물 중에 다수가 훗날 조선중기 사림정치를 이끈 핵심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혁적인 인재 등용은 훈구세력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되었으며, 훈구파의 탄핵과 모함으로 기묘사화가 발생하였다. 현량과는 단 한 차례의 시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 제도가 지향하였던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단순한 시험 성적이 아닌 도덕성과 책임감, 전문성과 공익성을 고루 갖춘 인물을 공직에 등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시대는 현량과와 같은 이상적 제도를 다시 한번 시도할 용기가 있는가?” 최근에 이재명 정부는 국민추천제를 통해 공직 후보자를 추천받는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개방적이며 공평한 공무원 채용제도가 확고하게 제도화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개혁적이며 책임감이 투철한 전문가가 등용이 되어 대한민국을 보다 민주화된 복지사회로 발전시켜 주기를 모든 국민이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의 부족이나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립·은둔 청년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데도 이들을 위한 정부 및 각 지자체의 지원 프로그램이 크게 미흡하다는 비판이다. 청년의 고립·은둔으로 인한 사회 경제 활동 저하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7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은둔·고립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속적인 관심과 라포 형성 지원을 위한 인프라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전국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2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국무조정실이 공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집에만 있는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5.2%로 집계됐는데 이는 2022년 조사(2.4%)보다 2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고립 은둔 청년 발생의 주요 사유로는 취업이나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이 꼽혔다. 경기복지재단의 지난해 경기도 고립·은둔 청년실태조사의 경우도 도 전체 고립 비율은 2019년 5.3%, 2021년 6.3%, 2023년 6.8%로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문제는 도를 비롯해 전국의 고립·은둔 청년이 증가하면서 정부 및 각 지자체, 민간단체가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초기 발굴에 집중돼 있어 장기적인 효과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시, 수원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고립·은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위해 대인관계 형성, 조직 적응력 향상, 일 경험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사례관리를 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 동행 힐링 여행 등 다양한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작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속적인 관심과 라포 형성 지원을 위한 인프라는 태부족한 실정이다. 도내 한 지자체 청년 복지 관계자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경우도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수준으로서 상담 인력마저도 충분하지 않다고 실토했다. 고립 청년이란 외출 빈도가 낮고 사회활동이 현저히 줄어든 상태로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힘든 상태인 이들을 말한다. 이 중에서도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제한된 공간에 가둔 이들을 은둔 청년이라고 한다. 최근 공개된 2024년 고립·은둔 청년 비율 5.2%,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비율 0.9%를 우리나라 19~34세 청년 인구 약 1000만 명에 적용하면 고립·은둔 청년이 50만 명을 넘어선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고립·은둔은 대부분 청소년기부터 일찌감치 시작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4년 전국 9~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2139명 중 72.3%가 18세 이하에 고립·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초등학생 때 고립·은둔 상태가 되는 경우도 무려 17%에 달했다. 재고립 문제도 심각하다. 고립된 청소년 중 71.7%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 절반 이상이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다시 고립으로 돌아간 경험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응답자의 43.5%는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응답해, 이들이 여전히 사회적 지원 사각지대레 놓인 현실을 입증했다. 현재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은 선제적 예방보다 문제 발생 후 임기응변 중심인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아동·청소년 단계에서 전수조사와 위험군 발굴, 학교·청소년기관 중심 조기 개입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관련 법률·조례를 강화해 실효성 있는 보호·지원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고립·은둔 청년 대책 중에서 ‘지속 가능한 지원’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청년이 급속히 늘어나는 국가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나. 고립·은둔 청년 발생의 예방·개입·회복 전 과정에 걸친 사회 안전망 전면 재설계가 시급하다.
지난 5월 지역균형 발전 사업 평가 위원으로 경기 북부 ‘삼천(동두천, 포천, 연천)’을 방문하였다. 프리미티브한 대자연이 펼쳐진 이곳에 발을 디디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손상되지 않은 자연, 신선한 공기, 풍부한 먹거리, 사람이 살기에 이 보다 좋은 곳은 없으리라.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큰 병원과 문화시설이 빈약하다는 것. 이 점만 잘 보완하면 ‘삼천’은 지상낙원이라 할 수 있다. 부족한 의료 시설은 원격 진료센터를 설치하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저밀도 지역의 부족한 의료시설을 원격 진료센터 설치로 보완 중이다. 프랑스는 2001년부터 이 방식을 추진해 왔지만 사회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2018년 오메디스(Omedys)라는 회사가 설립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두 전직 응급의학과 의사가 원격 상담 전용 진료실 두 곳을 오픈한 것이다. 금상첨화로 이해 9월부터 원격 진료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고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바야흐로 원격 의료의 시대가 시작됐다. 원격 의료는 병원 응급실의 부담을 덜어주고 특히 시골, 교외 등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 의사와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여 준다. 또한 환자와 의사의 진료 시간을 재창조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동부 샹파뉴 아르덴과 같은 의료 사막지역은 원격 상담실 수를 대폭 늘리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인구 대비 의사 밀도가 전국 평균보다 30% 낮은 지역을 의료 사막으로 간주한다. 현재 아르덴 지역에서는 보건소, 약국, 양로원, 이주민 접수 센터, 장애인 시설 등에 약 100여 개의 원격 상담실을 설치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의료 자원의 지역적 분포는 도시와 지방 간의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한다. 좋은 의료 인프라와 우수한 의사는 수도권에 모두 집중되어 있다. 그 결과, 농촌 지역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의료 사막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에 대처할 방법은 원격 진료의 활성화가 아닐까? 원격 상담 또는 원격 진료는 환자나 의료 전문가가 이동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의사가 특정 지역에 없거나 환자가 이동하기 어려운 경우에 특히 유용하다. 인터넷 연결, 마이크, 스피커, 웹캠이 장착된 컴퓨터, 디지털 태블릿 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의사는 환자가 제공하는 시각적 정보와 세부 정보를 통해 진단을 내리고 치료 과정을 계획할 수 있다. 원격 전문 의료의 진단 또는 치료 전략은 최소 두 명의 의사 간의 교환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형태의 원격 진료는 심장학, 산부인과, 피부과의 1차 진료 또는 응급 진료에 적합하다. 데이터(심전도, 초음파 스캔, 피부 병변 사진 등)는 전문의에게 전송되어 동료가 적절한 치료를 진단하고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처럼 원격 의료는 의사 부족과 농촌 인구의 지리적 고립이라는 문제에 대응하여 하나의 해결책으로 아주 좋다. 또한 의사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여 집에 머물면서 대도시 외곽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유념할 사항이 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원격 의료를 지나치게 남용하고 사업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원격 진료에는 분명 한계가 따르고, 또한 원격 의료는 비즈니스가 아닌 윤리가 핵심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모든 화두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AI가 아닌 그 무엇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여유조차 쉽지 않다. 쏟아지는 새로운 개념, 기술, 서비스 등을 쫓아가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이나 크기는 가늠조차 어렵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가 전망이 며칠 사이 겸연쩍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언급이 잦은 소버린(sovereign) AI는 한동안 우리 AI 산업 전반의 가늠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네이버에 따르면 “소버린 AI는 각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해 그 국가나 지역의 제도, 문화, 역사, 가치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AI”다. 이를 판단하는 합리적 기준은 “기술적 자립 여부보다는 해당 국가가 사용하는 AI에 자국의 가치관과 윤리, 문화적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해당 국가의 이익과 존속을 지켜낼 수 있는지”다. 잘 알려진 것처럼 현재 AI 분야의 세계 패권은 미국과 중국이 가지고 있다. 이들의 AI 시장 점유율, 투자 및 인프라 비율, 특허 비율은 절대적이다. 이들이 어떤 국가, 어떤 언어를 중심으로 데이터 학습을 했는지는 뻔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자신만의 AI 기술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산업이나 경제만 국한되지 않는다. 몇 개 국가가 독점하는, 한정되거나 편향된 AI가 가져올 국가 및 문화 정체성 혼란이 우려된다. 급기야 시장은 물론 문화 종속까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AI 산업에서 자주와 주권의 강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러한 소버린 AI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뉴스라는 콘텐츠를 다시 보게 만든다. 뉴스는 한 사회의 일기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사회적 의미를 가진 이슈가 정리되고 평가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고 장기간에 걸쳐 생산되기에 한 사회의 역사로서 축적된다. 한 이슈에 대해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각양각색의 시각을 접할 수 있기에 사회적 다양성이 확보된다. 물론 우리 뉴스에 대한 비판과 한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제도, 문화, 역사, 가치관 등을 이해하는 AI 개발을 위한 데이터의 핵심 원천 중 하나는 뉴스 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뉴스 콘텐츠는 양질의 데이터로서 AI 모델의 학습과 검증에 최적화돼 있다. 단어의 연결과 언어적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필수다. 특히 신문의 뉴스 콘텐츠는 이미 체계적이고 정제돼 있는 전형적인 정형 데이터다. 그리고 지역신문의 뉴스 콘텐츠는 AI 시대에 자칫 흔들릴 수 있는 해당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굳건하게 만들 수 있는 근간이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역이 모여 우리 사회가 구축된다. 우리나라 소버린 AI 전략에서 지역신문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안타까운 점은 뉴스 저작권을 둘러싼 우리 언론사와 빅테크 기업의 갈등이다. 언론사는 저작권 침해를, 빅테크 기업은 공정 이용(fair use)을 각각 주장한다. 양측이 주장이 첨예해 쉽사리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 현재 저작권 전반은 특정 국가에만 한정해 주장하기 어렵기에 해외 사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뉴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해외 판결이나 합의에 양측의 희비가 엇갈린다.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법이나 제도의 맹점을 파고드는 해외 빅테크 기업의 공세다. 법과 제도의 미비는 우리 소버린 AI 전략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이제 우리 언론사와 빅테크 기업이 머리를 맞대 합의를 도출해야 할 때다.
안타깝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마약 범죄가 급증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됐다. 최근에도 태국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5억 원 상당의 마약을 들여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 16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으로 필로폰 6㎏과 대마 5.2㎏을 밀반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3년 1월엔 말레이시아 국적 피의자들이 필로폰 약 74㎏ 밀수 범행을 저지르다가 검거됐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경찰·관세청 고위 간부 등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 10일 경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과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합동수사팀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대검찰청이 펴낸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2년 마약류 사범 검거 인원은 1만 8395명이었는데 2023년엔 2만 7611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젊은 층에서 마약 범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20∼30대가 전체의 50% 이상이다. 청소년들의 마약 범죄도 심각하다. 10대 마약류사범은 2021년 450명에서 2023년 1477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청소년·청년층에서 마약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SNS 등을 통해 유통이 쉬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아울러 전자담배 형태의 마약류가 증가한 것도 마약확산의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의뢰된 마약류 감정 건수는 6년 사이 약 3배 늘어났는데 이 가운데 눈으로 봐서는 마약임을 눈치 채기 힘든 전자담배 형태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민들을 경악케 한 마약 범죄가 발생했다. 지난 4월 강릉 옥계항에 입항한 외국 화물선에서 마약의 한 종류인 코카인 1.7톤이 적발됐다. 이는 국내에서 적발된 역대 최대 규모로 570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마약 조직이 페루 공해 상에서 화물선에 코카인을 실은 뒤 한국과 일본, 중국 해역에서 이른바 ‘해상 던지기’ 수법으로 밀반입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달 10일에도 마약조직이 선박을 이용, 남미에서 부산항으로 코카인 720kg 밀반입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바 있다. 최근 5년 사이 해경에 적발된 해상 밀수만 연평균 600건 이상이란다. 선박을 이용한 해상밀수를 선호하는 이유는 항공기보다 검색이 덜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항공편을 이용한 마약 밀반입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경기신문(5월 30일자 7면, ‘로션 둔갑한 마약…밀반입 일당 철창 행’)에 따르면 경찰이 야산에서 마약을 던지기 수법으로 거래한다는 첩보를 입수, 현장에 잠복해 있다가 중 마약을 찾으러 온 중국인 2명을 검거해 필로폰 1kg을 압수했다고 한다. 수사를 통해 국내 판매책(태국 국적)을 검거하고, 보관 중이던 필로폰 300g과 야산에 숨긴 필로폰 3kg을 찾아냈다. 수사가 계속됐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려던 밀수책을 체포했다. 일행의 수하물에서는 필로폰 15.6kg가 담긴 바디로션 통 37개가 발견됐다. 이어 태국 마약통제청 등과 공조 수사를 통해 태국 현지에서 마약 7.6kg을 추가로 압수하고 보관자를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이 태국에서도 마약을 보관하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현지에 파견된 경찰 협력관을 통해 태국 마약통제청 등과 공조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태국 현지에서 마약 7.6kg을 추가로 압수하고 이를 보관하던 피의자를 붙잡았다. 압수한 필로폰은 총 27.5kg(110억 원 상당)인데 91만 7000여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관계 당국은 전담 인력 등을 투입해 마약 밀반입 차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마약 조직의 밀수 수법 역시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의 말처럼 “마약류 밀반입 수법에 대한 첩보 수집 활동을 강화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마약 공급 차단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점점 교묘해지는 마약범죄는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마약 사범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하라. 아울러 치료와 재활을 병행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 역시 마련하기 바란다.
‘막말’이란 말의 의미 정체(正體)는 무엇일까. ‘막’이란 접두어는 ‘함부로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막가파’, ‘막가자는 거냐?’, ‘막되어 먹은 놈’ 등의 ‘막’이 바로 그것이다. ‘막’에는 ‘거칠다’라는 뜻도 있다. 막걸리는 ‘막’(거칠게)과 ‘거르다’가 합성된 말로, ‘거칠게 걸러낸 술’이라는 뜻이다. 막말은 함부로 거칠게 해 대는 말이다. 나쁜 말, 맞다. 또 ‘막’은 ‘밑바닥’, ‘낮은’ 등의 뜻도 있다. ‘막장 인생’이 ‘밑바닥 인생’으로, ‘막노동’이 ‘별다른 기술 없이 몸으로 감당하는 밑바닥 등급의 노동’으로 통하는 데서, ‘막도장’이란 말이 ‘임시변통의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만든 값싼 도장’이었던 데서, 막말의 숨은 의미소를 볼 수 있다. 막말은 말의 품격으로서는 밑바닥 수준의 말이다. 나쁜 말, 맞다. ‘막’은 ‘끝’, ‘마지막’ 등의 뜻도 있다. ‘막차’란 말이 ‘마지막 차’를 일컫는 데서, ‘막내’가 ‘맨끝의 자식’을 뜻하는 데서, ‘막판’이 ‘마지막 판’임을 나타내는 데서, ‘막다른 길’이 ‘길이 끝나는 곳’임을 뜻하는 데서 ‘막’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막’에는 심리적으로 ‘마지막 의식’이 숨어 있다. ‘마지막 의식’이란 무엇이겠는가. 역사와 인간에 대한 특별한 성찰이 있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의식이 비장한 가치로 승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의식, 즉 허무나 퇴폐의 감정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막말은 심리적으로 마지막의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까짓것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내지르는 말이다. 마지막이니, 지금 이후라는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럴 때의 막말이란 어떤 극언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허무와 분노와 좌절감이 막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생테도 엄연히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점이다. 즉 별생각 없이 막말 쓰는 습관을 쌓아 나가다 보면, 나의 심리적 지향에 허무와 분노, 불만과 좌절, 원망과 저주 등의 악령이 들어어 살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급전직하(急轉直下) 추락하여 신음하고 있는 나의 불쌍한 자존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점이야말로 우리의 가정·사회 교육이 유념해야 하는 대목이다. 언어에는 마성(魔性)이 있다. 언어는 자신을 사용하는 주체(인간)의 의식을 잠식하듯 지배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막말은 이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막말을 듣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화적 양심으로 거르지 않고 내지르는, 감정의 해방구가 된 SNS 공간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SNS의 생태가 나의 일상 언어 영역으로 세차게 들어왔다. 아니, 그런 SNS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태를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막말이 일상적 언어생태가 되어 버렸다. SNS 생태에서의 막말 현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언어문화로 옮겨 오게 마련이다. 자기 욕망의 좌절을 남 탓으로 몰아가려는 심리가 막말을 전방위로 투사한다. 어떤 SNS에서 내 나름대로 합리적인 답글을 올려놓았는데, 누군가 무작정 나를 망가뜨리는 막말 댓글로 자기감정을 배설한다. 나는 내 답글을 조용히 내린다. 세상은 막말을 그냥 자극적으로 소비하며 즐기는 듯하다. 자극성 강한, 돌직구 막말들에 감정적 후련함을 따라가는 사이, 그 후련함의 몇 배쯤 되는 해독을 너나없이 모두 나누어 가지고 사는 세상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