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감정, 생각과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 중 하나이다. 눈물이 흐를 때 슬픔이나 감동을 나타내며 눈이 반짝이는 것은 기쁨이나 흥분을 나타낸다.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며 누군가의 눈빛이 차갑고 무관심하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멀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창이라는 은유는 분리된 두 공간을 전제하지만 그 두 공간은 창을 통해서 소통이 가능하다. 마음의 창인 눈은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눈을 통해서 외부의 것을 경험한다. 어떤 사건은 고통스러운 상처로 변환되어 창이 변형되거나 일부 닫히기도 하지만 또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치유가 일어난다면 창이 재건되고 열리기도 한다. 눈은 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발생학적으로 뇌와 같이 외배엽에서 분화되어 발생한다. 청각과 체감각이 관련되는 뇌피질이 전체 뇌피질의 3%와 11% 에 불과한데 비하여 시각정보처리에 관여하는 뇌피질은 전체의 55%를 차지한다, 12개의 뇌신경중 눈과 관련된 신경은 무려 4가지나 된다. 이쯤이면 눈은 뇌의 창이라고 불러도 될 법하다. 실제로 눈을 통해서 뇌에 저장된 기억과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눈을 매개로 한 치유법 중 트라우마치료에 효과적인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기법(Eye Movement Desentizition and Reprogressing; 이하 EMDR)이 있다. EMDR을 개발한 프란신 샤피로는 1987년 어느날 공원을 걷다가 계속 오래동안 반복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져서 놀란다. 이유를 찾다가 힘들게 하는 생각들이 마음속에 들어왔을 때 안구를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던 것을 알아차렸다. 이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EMDR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안구운동과 같은 양측성 자극을 주어 뇌의 정보처리시스템을 활성화시켜 기억의 처리가 다시 일어나도록 돕는다. 이 과정을 통해서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긍정적으로 통합되고 해결되어 증상을 완화된다. 또다른 트라우마 치료법인 브레인스포팅(Brain spotting)은 EMDR전문가 였던 미국의 데이비드 그랜드 박사에 의해 개발되었다. 2003년 어느날 아동기,외상 스포츠등 여러 트라우마가 있는 아이스 스케이트 선수였던 내담자에게 EMDR세션을 하고 있었는데 손가락을 이용해 수평 움직임을 유도 하던 중 그녀의 눈이 특정 지점에서 얼어붙었다. 말 그대로 얼어붙은 듯 바라보았고, 데이비드의 손 역시 움직일수 없어서 그 순간 그대로 10여 분간을 그 지점에 머물도록 하였다. 다음날 그녀는 그동안 계속 실패했던 트리플 루프를 아주 부드럽게 몇 번이고 성공했고 그녀를 오래된 수행불안에서 해방시켰다. 이로부터 발전된 브레인 스포팅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경험과 연관된 눈의 위치를 찾아 시선을 유지하고 집중 마음챙김하여 비언어적, 비인지적인 신경생리학적 변화의 과정을 유도하여 치료한다. 이러한 치료법들은 반드시 훈련 받은 전문가에 의해서 실시되어야 효과적이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일상에서의 눈을 통한 셀프회복법으로는 ‘멍때리기’ 가 좋다. 집중에서 해방되어 멍하게 있는 상태, 쫒기듯 바쁜 일상에서 잠시 ‘촛불멍’이든 ‘물멍’이든 편안한 곳을 바라보는 시선의 여유는 직관의 통찰과 뇌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된다.
경기도가 CJ라이브시티와의 계약 해지로 중지된 K-컬처밸리 사업 가운데 아레나를 비롯한 일부를 민간기업 공모로 다시 진행한다. 공모는 4월 초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이르면 올해 재착공해 2028년 준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K-컬처밸리는 경기도민들의 희망이었다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시작하는 이 사업이 날개를 달고 화려하게 비상하여 개발이 더딘 경기북부 부흥의 신호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김성중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21일 열린 K-컬처밸리 사업추진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경기도와 GH는 아레나를 포함한 T2부지 4만8000평을 우선 건립하고 운영할 민간기업 공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 부지사는 “K-pop 공연장 부족으로 미국 유명 여가수의 글로벌 투어에서 코리아패싱이 일어나고, 창동·잠실 등에서 아레나 시설 건립이 추진되고 있기에 신속한 착공이 필요하다. 도의회와 고양시 주민의 요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도의회는 앞서 ‘K-컬처밸리 사업협약 부당 해제 의혹 행정사무조사 특위’ 결과보고서를 통해 아레나를 건설·운영하는 민간기업 공모를 최우선하여 추진하고, 민간기업 참여를 촉진하는 공모지침을 마련하도록 경기도에 권고했다. 도는 고양시, GH, 민간전문가와 함께 K-컬처밸리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사업화 방안 수립 예비용역’을 통해 아레나 건립 방안과 사업 추진 방식을 논의해왔다. 도는 민간 투자 여건으로 공모가 어려울 경우 GH가 직접 주도해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덧붙였다. 민간 사업자는 17% 공정률의 아레나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되 나머지 2만 8000평가량의 부지에는 기존 스튜디오 말고 다른 사업을 제안해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부지사는 “민간이 K-컬처밸리 전체가 아닌 지금은 T2부지로 한정하고 공모 조건이 완화돼 사업자 부담이 줄어들었다. 다만 ‘아파트·오피스텔을 불허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민간 참여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용적률·건폐율 상향 제안, 구조물 장기 임대, 지체상금 상한 설정 등 공모 조건이 최대한 완화되도록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협약 해제 당사자인 CJ 측의 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는 “민간기업 공모는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CJ 측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해 유연한 입장을 밝혔다. 숙박시설, 상업용지가 들어설 예정인 T1부지와 A·C부지 등 나머지 4만4000평은 올해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뒤 GH 주관 공공개발로 사업을 진행한다. 도의회와 도민 의견을 적극 수렴해 K-컬처밸리 비전과 전략을 재수립한다는 구상이다. 김 부지사는 “K-컬처밸리와 그 주변 일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국내외 기업의 투자 여건이 개선되도록 노력하겠다. 6000억원 규모의 K-컬처밸리 도유 자산을 GH에 현물 출자해 K-컬처밸리 사업 추진의 재무적 기반을 확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K-컬처밸리 사업을 살려내기 위한 경기도의 노심초사는 이해가 간다. 당초 K-컬처밸리는 세계 문화 시장의 심볼 역할을 하도록 기획됐다. 원인이 뭐가 됐든지 간에,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계약 해지’라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도민들에게 준 실망의 그늘은 상당히 깊다. 경기도가 사업재개 계획을 발표하는 과정을 보면 민간 투자 여건의 한계로 공모가 어려울 경우까지 상정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추이를 좀처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게 이런 개발사업인 만큼 향후의 사업관리가 중요하다. 변수에 유연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설계도대로 공정 목표를 달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경기북부 부흥의 마중물 역할을 짊어진 종요로운 사업이라는 점에서 이번에는 절대 뒷말도 뒤탈도 없어야 할 것이다. 한차례 복잡한 낭패를 겪은 만큼, K-컬처밸리 사업이 더 이상 잡음이 없는 순탄한 사업으로 전개돼 나가기를 기대한다.
또다시 을사년(乙巳年)이다. 1785년 조선의 대기근, 1905년 대한제국 외교권 강탈,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수교 등 을사년마다 국가미래의 변곡점(inflection point)이 있었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21세기 첫을사년이 “을씨년스럽”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먼저 우리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한국사람이다. 태어난 때와 장소는 달라도 배달민족의 후예다. 부모와 성은 달라도 고유문화와 전통을 이어받은 역사적 존재다. 반만 년 전부터 동북아에 터 잡아 살면서 때로는 대륙으로 때로는 해양으로 들고나며 선진문물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자녀다.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에도 예의(禮義)를 잃지 않았고, 법(法)과 무(武)보다 덕(德)을 소중히 한 민족이다. 이런 토양에서 위민(爲民)·애민(愛民)·여민(與民)을 실천한 성군(聖君) 세종(世宗. 1397-1450)이 나왔다. 조상들은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 유목과 정착, 농경과 상업 등이 뒤섞이는 오묘한 땅에 나라를 건국했다. 이(異)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이(異)문화에 휩쓸린 때도 있었지만 독립국의 자유민으로 대대로 살았다. 3·1운동과 기미(己未)독립선언(1919) 이후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를 세워 왕정복고(王政復古) 대신 민주공화정(民主共和政)을 선택했다. 국호(대한민국)·국기(태극기)·국가(애국가)·국경일(삼일절·개천절) 등 피땀으로 지킨 법통(法統)과 유산(遺産)은 이승만정부 이후 역대 정부의 국가미래 목표 설정의 근거가 됐다. 2025년은 우리 겨레가 자유를 되찾은 지 80년, 우리 동포가 독립을 쟁취한 지 80년이다, 모두가 함께 기뻐해야 할 경사스러운 해다. 그렇지만 국토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남북은 UN 동시가입(1991) 이후 사실상 ‘1민족 2국가’가 됐다. 작년 연말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거대 야당의 탄핵 정국은 국민과 국론을 사분오열시켰다. 이대로 가다간 을사년의 악몽(惡夢)이 되살아날까 두렵다. 옛말에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라고 했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가 오히려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분열과 대립을 멈춰야 한다. 크든 작든 경영을 맡은 한국 정치·경제·사회·문화계 인사들은 국민의 가슴에서 피눈물이 나게 해서는 안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에 사사로움이나 거짓이 보이거든 당장 물러나는 것이 정도(正道)다. 역사는 진보하지만 반복되는 속성이 있다. 분열과 반목과 대립과 갈등은 망국(亡國)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트럼프(D. j. Trump) 2기 행정부가 내건 ‘미국제일주의(America First)’를 마냥 부러워하거나 비난할 일이 아니다. 국익(國益)은 국력에 기반한다. 국력은 국민의 지지와 목표 공유에 달렸다. 국민은 자아존중과 상호신뢰로 위대해진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처럼 통일은 절로 오지 않는다. 한민족의 미래는 화합과 이해와 신뢰와 단결과 상생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희망은 절망 다음에 온다. 앞으로 어떤 미래구상을 할 때 한반도와 그 주변국가에 다양한 유형의 한국인이 집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구촌 180여 개 나라에 700만 명 이상의 세계한인(Global Korean)이 흩어져 살고 있다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시대 한인동포사회의 확장성과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이 2045년 G-2 국가로 나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상수(常數)다. 매사에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다. 을사년처럼 양면의 경계가 분명해지는 때일수록 일희일비(一喜一悲),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마음은 더 중심 잡아야 하며, 말과 행동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매순간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하며,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앞으로 20년, 2045년, 해방과 광복 100년. 이때를 글로벌 한민족공동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원년(元年)으로 설정하자. 지금부터 우리가 가진 모든 가용자산과 역량, 인적·물적 자원과 과학기술, 빅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초연결(hyper-connect)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악법도 법이다.’와 같은 법언(法諺·법 관련 격언)만 해도 으스스한데, ‘법 위의 법’이라는 헌법(憲法)이 있단다. 계엄-탄핵 사태에 어문학적으로 헌법을 톺아보자. 요즘은 ‘군사경찰’이지만, 예전에 헌병(憲兵)이라면 높고 낮은 계급의 장병들이 괜히 떨었다. 물론 그 이름은 왜놈들 치하의 찌꺼기(잔재)였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에 울려 퍼진 선언, 국민과의 약속을 헌 신발짝 삼은 권력에게 저 위엄은 추상이었다. 그래서 또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다. 헌재는 헌법을 다룬다. 헌병의 ‘헌’도 그 憲자다. 썩었다 싶으면 가을 서릿발처럼 대통령도 패대기치는 ‘어마무시’한 헌재의 시간이 다시 왔다. 다음은 헌법의 (사전적) 의미다. - 국가 통치체제 기초에 관한 근본 법규의 총체. 국가의 법의 체계적 기초로서 국가 조직, 구성 및 작용에 관한 근본법이며 타 법률이나 명령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최고 법규다... 憲자의 고대로부터의 뜻은 ‘법규(法規)’ 보다는 보배우는(보고배우는) ‘모범’에 가까웠다. 배우고 따라야 할 ‘길의 이치’ 즉 도리(道理)의 개념으로 생성(生成)돼 쓰였다(고 본다). 오늘날 憲의 훈(訓)과 음(音)은 ‘법 헌’이다. 法의 한 가지, 즉 ‘어떠어떠한 법’의 의미로 현대사회에 뿌리내린 것이다. 훈음은 天을 ‘하늘 천’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풀이이다. 동아시아 처음으로 왜(倭 일본)가 제 몸을 열어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때 서양 국가의 바탕 법칙인 콘스티튜션(constitution)을 憲法이라고 번역했다. 憲이 法과 함께 새로운 정의(定義 definition)로 제도화(制度化)된 것이다. 왜로부터 이를 받아들여 개화기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서재필의 독립신문이 처음 헌법이란 어휘를 썼다. 헌병도 그 무렵에 들어왔고, 헌법에 따른 정치라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헌정(憲政)이란 말은 1907년에 처음 쓰였다. 세상이 변하며 그 말의 터전이 바뀐 것이다. 이제 憲이 본보기나 모범이었음을 짐작하는 이는 거의 없다. 허나 ‘본보기 법’ 또는 ‘법의 모범’과 같은 의미로 그 명맥이 살아있다. 집 면(宀) 예쁠 봉(丰) 눈 목(目) 마음 심(心) 등 멋진 글자들의 합체로 근엄한 뜻을 품는 것으로 보이지만, 원래 憲자의 첫 역사는 그림이었다. ‘상형문자의 의의이다. 높은 사람이 썼을 큰 투구 아래 가로로 눈(目)을 그렸다. 나중에 마음 그림(心)이 붙었다. 갑골문(甲骨文) 시대 저 그림의 ‘화가’인 황하(黃河) 유역 사람들은 제 화의(畫意·그림의 의도)를 안 남겼다. 해석이 분분한 까닭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도 같다. 문명의 고고학이다. 신비스런 점은, 알타미라는 이집트상형문자처럼 관광지로 살아남았고, 갑골문은 역사를 꿰뚫는 문명의 기호 즉 문자(한자)로 지금도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다. 한자사전 자원(字源) 풀이를 잘 보면 4천여 년 문자의 변천과 디자인화(化) 과정이 보인다. 인류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그림창고인 것이다. 지금도 뜻과 모양의 변화는 계속된다. 그래서 문해력은 저 그림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헌법을 제대로 아는 것의 바탕이기도 할 터다. 헌재는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읽고, 어떤 추상을 결단할까?
정부는 지난해 2월 6일 전국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증원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 등을 감안할 때 2035년까지 의사 수가 1만 5000명 부족할 것”이란 수급 전망을 토대로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3058명이었던 의대 입학정원은 5058명으로 늘어났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했고 전공의 9000여 명은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의대생들은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한 채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16일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가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지난 2월 이후 집행된 윤석열 정부의 의료정책들은 한마디로 ‘의료개혁을 빙자한 의료개악’, ‘사이비 의료개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재자의 절대변경 불가 ‘2000명 증원’ 한마디에 어떤 공무원도 반대 의견을 내놓지 못한 채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 업무개시명령 등의 불법적 조치가 내려졌고, 급기야 전공의 처단이라는 무시무시한 포고령까지 나온 것”이라고 날을 세워 비판했다. 의료계가 정책책임자의 경질과 사죄,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 의료개혁 중단 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이 “2026학년도 의대 적정 정원은 0명”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경기신문(21일자 7면, ‘의대협 “2026학년도 적정 정원은 0명” 주장’) 보도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얼마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급진적인 의대 증원 확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며 정부가 오직 의대생들의 복귀만을 위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26학년도에는 신입생을 뽑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오는 3월 새 학기에는 휴학생과 신입생을 합쳐 최대 7500명의 학생이 동시에 수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의비도 전기한 성명서를 통해 2025년도 의대 신입생은 3058명(기존 정원)에서 크게 줄이거나 아예 뽑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국회와 정부에 “윤석열의 ‘사이비 의료개혁’을 중지”시키고, 긴급히 총장, 의대학장, 교수들과 함께 논의해 대학별 수시·정시 모집 인원을 줄이는 등 ‘의대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현 사태를 수습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전의비의 일부 주장은 일리가 있다. 증원된 신입생을 가르칠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증원이 없는 의대조차 이대로 의대 신입생을 선발한다면, 내년부터는 올해 휴학한 24학번까지 최소한 기존 정원의 2배나 되는 학생들을 향후 6년간 함께 교육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란 전의비의 호소처럼 현실은 심각한 상황이다. “의학교육뿐 아니라 이들이 전공의 수련을 마치는 10년 이후까지도 비정상적 교육과 수련 상황은 지속될 것”이란 경고를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2026학년도 의대 적정 정원은 0명’이어야 한다는 의대협의 주장을 우려하는 국민들이 많다. 경기신문이 전한 시민들의 목소리 가운데 “의정갈등 초반과 달리 정부의 갑작스러운 증원 정책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막무가내식 주장은 오히려 국민들을 돌아서게 만들 것”이란 한 대학생의 말에 수긍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무슨 자격으로 수험생들의 기회를 뺏자는 주장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한 자영업자의 비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상 2026학년도 수험생들의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 의대생이기 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의정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실현가능성이 낮은 주장으로 혼란을 부르고 갈등을 촉발시킬 것이 아니라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말처럼 이런 주장은 의정(醫政)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국민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젠슨 황은 지난 1월 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AI) 로봇의 대중화가 챗GPT처럼 시작되었다”라면서 ‘피지컬 AI시대’를 선포하였으며 AI 로봇개발 플랫폼인 코스모스를 공개하여 관심을 끌었다. 엔비디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이 핵심기술로 부상하면서 AI 반도체 세계시장을 80% 이상 점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올해 1월 3일 시총은 3조 5,38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엔비디아는 한국 기업과도 밀접하다. SK하이닉스는 TSMC와 손잡고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와 똑같은 혁신가인 젠슨 황의 말 한마디 파괴력은 크다. 그는 산업변화 흐름을 잘 읽고 있다. 세상은 이미 로봇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AI 반도체도 챗GPT 중심에서 AI 로봇 시대로 이전되고 있다. 이는 AI 반도체 기술이 언어모델 중심에서 피지컬 기능 쪽으로 급속하게 발전한다는 뜻이다. 엔비디아는 AI 개발 프로그램인 쿠다(CUDA)를 오픈소스하여 AI 반도체 시장을 제패했으며 이제 코스모스 무료 제공을 통해 로봇 대중화를 앞당기려고 한다. 쿠다는 물론 코스모스를 활용하려면 엔비디아 반도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엔비디아의 핵심역량이다. 젠슨 황은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갖고 있다. 로봇, 자율주행차, 플라잉카를 중심으로 새로운 AI 모빌리티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론 머스크도 ‘위 로봇’(We, Robot) 행사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와 로보택시 사이버캡을 선보이고 로봇 사회를 예고했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빠른 속도로 진화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스크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미국 경제 혁신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향후 4년간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차 산업 발전이 가속화 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로봇 시대에서는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테슬라, 구글, 아마존,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빅테크들이 로봇산업과 자율주행차 산업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와 경쟁 관계인 현대차는 엔비디아와 손을 맞잡았다. 현대차는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플랫폼 아이작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생산에 활용할 것이며, 디지털 트윈 플랫폼 옴니버스를 자율주행차·전기차 공장에 접목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LG전자, 삼성전자, 네이버 등 대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번 CES 전시회에서 중국업체들의 로봇개발이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젠슨 황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때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러나 인텔은 모바일 시장변화와 AI 기술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최근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시장 환경변화에 대한 CEO의 통찰력이 부족하여 일어난 현상이다. 국내 기업들도 ‘피지컬 AI시대’와 로봇 패권경쟁이라는 산업변화 물결에 발 빠르게 대비하는 통찰력을 갖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이다.
지난 2024년은 유례없는 폭염, 가뭄, 홍수, 태풍 등 기상이변으로 인해 지구촌은 무척 힘든 한 해를 보냈다. 피해 규모도 커서 유엔기후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기금의 구체적 제도화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되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여름도 역대급의 폭염과 관측 이래 최장의 열대야로 기후 위기가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체로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한 관점은 갈등하는 상반된 두 가지 논쟁으로 설명해 볼 수 있겠다. 기후 위기론과 기후 음모론이 그것이다. 우선 기후 위기가 지구를 종말로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기후 위기론자들의 핵심 논리다. 이들은 경제발전보다 환경보호가 우선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산업 발전과는 대치점에 서 있다. 선진국에서도 다소의 논란이 있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죽느냐 사느냐’라고 하는 경계에 처해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대표되는 이산화탄소가 줄어들지 않는 한 지구는 금세기 안에 종말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21세기 접어들어 세계적인 흐름을 조성하며 UNFCCC를 통해 기후 위기를 둘러싼 세계 기구와 각국 정부의 정책을 주도하고 있어 기후 위기론은 기후변화에 대한 주도적 기세(氣勢)를 점하고 있다. 이에 반해 기후 음모론자들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어마어마한 위기를 불러온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대중 홍보 활동이 과장되게 퍼져있다. 환경 단체, 정부 기관, 심지어 언론마저 그런 불길한 뉴스를 전달하는데,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기후 위기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후 위기의 핵심 논리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강변(强辯)한다. 이들 간의 가장 큰 쟁점과 차이는 경제발전과 기후 위기에 있어서 서로 대립하는 요소 사이의 균형(trade-off)에 대한 효과적인 입장이다. 기후 위기론자들은 이제 세계는 경제발전보다 환경보호를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기후 음모론자들은 화석연료의 퇴출과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더욱 심각한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후변화 위기가 과연 다른 모든 중요한 사안을 잠재울 만큼 그렇게도 ‘절박한가’라고 반문한다. 현재 전 세계 인류는 빈곤 문제, 핵전쟁의 위협, 문화충돌 등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다른 하나는 기후 온난화의 주범은 바로 이산화탄소라고 하는 데 있다. 온실가스는 약 14C〫의 지구 평균 온도를 유지하는데 주요한 요소로서 인간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론자들은 기후 온난화로 인하여 해수면 상승, 폭염, 폭우, 가뭄 등 이상기후를 유발하고 있으며 산업혁명 이전보다 1.5C〫가 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후 음모론자들은 오히려 이상기후는 인간에 의한 이산화탄소 증가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특히 습도와 연관성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이산화탄소가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빙하기를 거쳐 기후 역사에서 기후 온난화는 산업활동 등 인간의 활동이 원인이 아니라 자연 현상에 불과하다는 관점이다. 여태까지는 어느 관점이 옳은지 정확한 팩트를 알 수 없다. AI의 발달과 수년 내에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양자컴퓨터를 활용한다면 기후변화의 정확한 모의실험을 통해서 잠재적 해답을 구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인과관계를 밝히면 문제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의 ‘워싱턴 정계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만에 화려하게 귀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새로운 미국 우선주의의 시대’를 선언했다. 가뜩이나 국내 정치 불안정이 깊어진 시점이다.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등장한 지구촌 최대 강골 지도자의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 앞에 우리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변해야 살아남는다. 급변하는 상황에 영리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2017년부터 4년간 제45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연방의회 의사당 로툰다(중앙 원형홀)에서 47대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미국의 황금기는 이제 시작”이라며 집권 1기 취임사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다시 국정 철학으로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우리는 세계에서 본 적 없는 가장 강력한 군대를 건설할 것”이라면서도 대외 군사개입을 자제하는 ‘트럼프판 신고립주의’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내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은 피스메이커(평화중재자)이자 통합자일 것”이라고도 했다. 백악관 개편된 홈페이지 첫 화면에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문구가 실렸다. 트럼프 정권이 제시한 6개의 정책 의제는 ‘인플레이션 종식 및 생활비 인하’, ‘미국 노동자를 위한 감세’, ‘국경 안전 강화’, ‘힘을 통한 평화 복원’, ‘에너지 패권’, ‘미국의 도시를 다시 안전하게 만들기’ 등이다. 지금 트럼프의 공화당은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대법원도 보수 우위다. 임기 초 세계 정치·경제·안보 지형을 뒤흔들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8년 전보다 더 거리낌 없이 밀어붙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 오벌어피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동안 취재진의 북핵 관련 질문에 “(북핵은 당시에) 엄청난 위협이었고 이제 그(김정은)는 핵보유국”이라고 말한 대목에 정신이 번쩍 든다. 트럼프가 명시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해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협상이 대두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은 바 있다. 헌정사에서 세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혼란 속에 놓인 우리는 다른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극도의 개인주의에 빠져 나라의 미래를 방관해온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각성이 절실해지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구촌 최강인 미국의 급변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의 생존에 결정적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안일한 태도로는 미국으로부터 시작되는 허리케인을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절체절명의 시대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현실을 진단하고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에 추호의 허점도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급변 앞에서 아무런 변화 없이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국가사회는 지구촌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국방과 경제에 있어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지도 모른다. 변화하고 적응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특단의 지혜가 절실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새롭게 떠오른다.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수한 외침과 간난을 처절한 의지로 극복해온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국민 각자가 더욱더 현명해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안온한 미래는 없다. ‘미국은 어디까지나 미국 편’이라는 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결정적인 일대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외생변수 앞에서 정치적 안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해졌다. 하루빨리 갈등과 혼란상을 정리하고 합심하여 폭풍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산다.
다들 여행을 간다. 침대에 편히 누워 세상 온갖 정보를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현시대에도, 여행 인구는 늘고 있다. 필자 또한 여행을 좋아한다. 길고 짧은 일정, 국내외 할 것 없이 떠나고 싶다는 갈망이 가슴속에 늘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갈망은 어김없이 여행지에서의 만족감으로 이어지며 여행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할까?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여행길로 이끄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의 행위일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또 다른 이유로는 낯선 환경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행은 해야 할 일을 잠시나마 하지 않아도 되는 ‘휴식’의 개념에서 사랑받는 것 같다. 여행이란, 결국 우리에게 ‘지금은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라고 다독여주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남들도 그러하듯(아마도) 좋아하는 만큼, 자주 가지는 못한다. 잘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행동과 그 행동을 하는 빈도수가 일치하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을 자주 할 테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술을 자주 마실 텐데,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한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기본적으로 여행이란 소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금전적인, 시간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다. 여행을 가려면 하던 일을 멈출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일종의 비일상적인 행위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상과 같은 셈이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기다림의 즐거움 그리고 위로다. 길게는 반년, 짧게는 한두 달 전에 여행 일정을 잡는다. 그러고서 마치 열매가 익길 기다리듯, 여행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친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때로, 너무 힘들었던 하루 끝에 예약된 비행기표를 확인하며 ‘이제 xx 일만 참으면 여행 갈 수 있다’라는 말 따위로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막상 여행을 간 것보다 가기 전의 설렘을 더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만약 인생의 모든 행복이 여행에만 달려 있다면, 이는 결코 건강한 삶이 아니다. 일상에서 행복을 누릴 줄 모른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여행지에서도 진정한 만족감을 얻기 어렵다. 일상에서의 행복과 여행으로부터의 행복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또 여행을 간다.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여행이 내 삶에서 중요한 쉼표와도 같다는 사실이다. 인생이라는 긴 문장을 쓰면서, 나는 여행이라는 쉼표를 찍는다. 이 작은 쉼표는 나로 하여금 다음 문장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써 내려가게 만든다. 내 삶에 잠깐의 멈춤을 제공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되찾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멈춤 덕분에 나는 일상에서도 조금 더 감사하고,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니 여행이란 우리 인생의 책에 단순한 페이지가 아니라, 다음 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숨 고르기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쉼표를 꿈꾸고 있는가? 오늘 당신의 일상에서도 그 쉼표를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설렘을 느끼는 순간, 당신의 삶도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한국의 정치상황에 가려서 그렇지 프랑스의 시국도 엄청나게 시끄러운 모양이다. 지난 해 마크 롱이 낙점한 중도 우파 성향의 미셸 바르니에 총리를 트로츠키 주의자 출신의 극좌 장 뤽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대표가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과 담합해 불신임안을 성사시켜 몰아 낸 것이다. 이들은 마크 롱 대통령의 퇴진까지 몰아 붙였지만 마크 롱은 다시 중도 우파인 프랑수아 바이루를 임명해 고비를 넘겼다. 나치즘을 옹호하는 마린 르 팽의 국민연합에 왜 사회주의자인 멜랑숑이 협조하는지, 이쯤되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상황이다. 정치는 늘, ‘앞단의 이야기들을 복잡하게 만들어’ 전체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프랑스 경제난이 대중들의 불만을 고조 시키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모두 이민자 탓, 자국의 노동권을 훼손시킨 탓이라는 식의 마린 르 팽의 주장은 ‘앞 단을 흐리게 하는’ 선동일 뿐이다. 프랑스 경제난의 본질은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 노선은 자국 우선주의로 강화되고 있으며 미국의 새 대통령 트럼프가 보란 듯이 그걸 실현하려 하고 있다. 이민자 억제, 계층 계급에 대한 차별적 경제 정책, 공공 복지의 약화, 부자 감세로 인한 자본의 양극화는 절대적으로 심화될 것이다. 독일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심지어 캐나다에서도 정국 현황이 심상치가 않다. 광기의 극우 정당들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한국의 법원에서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21년 1월, 당시 조 바이든 새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미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 경찰 1명이 죽었고 폭도 4명도 죽었다. 700명이 체포됐다. 전 세계 사람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트럼프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목소리를 얻는 현상에 대해 수심이 가득한 표정들이 됐다. 정확히 4년 후인 현재 한국의 한 지방법원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세계 민주공화주의자들은 똑 같은 심경이 될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험하구나, 세계가 다시 파시즘화가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이 됐을까. 왜 극우 시위대들은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 심지어 일장기까지 들고 나오는 것일까.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것은 1933년이고 1939년에 폴란드를 침공해 세계 전쟁을 일으켰으며 1945년 독일이 패망하기 까지 세계 인구 5000만 명 이상이 죽었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의 펠트헤른할렌의 비어홀(맥주집)에서 쿠테타를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체포된다. 구금된 히틀러를 놓고 그의 광신도들인 극우 자경단 페메(vëme)는 살인, 방화, 폭력, 난동이 서슴지 않았다. 꼭 지금의 우리 꼴이다. 이게 다 거짓말 같은가. 넷플릭스에 올라 있는 다큐멘터리 ‘히틀러 : 파시즘의 진화’나 6부작 ‘히틀러와 나치 : 심판대에 선 악마’에 다 나와 있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