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태양이 뜨겁다고 하지만 광복 77주년을 맞이하는 열기만 하겠는가. 독립운동의 가치와 의미를 나누는 각종 기념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렸다. 해방이 가져온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에게 해방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기념해야 하지.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은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북쪽의 반발은 거세다. 쏟아내는 막말은 거칠고 수위를 넘는다. 분단이 가져온 불신과 몰이해는 지켜보는 사람조차 숨가쁘게 한다. 유일하게 남북은 8월15일을 해방의 날로 인식하고 기념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정책 구상도 이날 제시한다. 남쪽에는 해방과 분단을 자각할 수 있게 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각종 기념행사가 많다. 기억하건데 북쪽에서의 8월 15일은 남쪽에서 열리는 행사만큼 요란하지 않다. 북쪽은 1995년부터 8월 25일을 선군절로 기념한다. 8월 25일은 선군정치 시작을 기념하는 국가적 명절이자 휴일이다. 그 시기 나는 고향을 떠났고 북쪽에서는 군(軍)을 우선하는 정치를 했다. 이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넜다. 그렇게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수는 파악하기도 어렵고 여러 경로를 거쳐 대한민국에 입국한 사람은 3만명을 훌쩍 넘는다. 이산가족은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실향민만이 아니다. 1990년대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이들의 아픔도 이야기되어야 할 때이다. 진정한 광복은 분단으로 아프고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돌아갈 고향조차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읽어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정말로 아픈 사람은 말을 할 수가 없다. 너무 아파서 그 아픔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적당한 표현조차도 없다. 분단이라는 괴물은 불신과 몰이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아니면 지각하지 못하게 한다. 북쪽 김여정의 말처럼 의식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볼거리 먹을거리 풍성한 곳에서 뼈를 깎는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분단, 통일, 광복이라는 단어가 멀어져 구경꾼이 되어가는 내 모습도 보게 된다. 이제는 아픔도 무뎌져 간다. 생명을 갉아먹는 아픔 따위는 흘려보내고 선선한 바람으로 익어가는 가을을 기다려 볼 일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하루에 의미를 두고 기대하고 희망하기에 시간은 너무 빨리도 흐른다. 뒷산에 도토리는 몇 년에 한 번씩 풍작이다. 떨어지는 도토리를 보니 올해 많이 내릴 것 같다. 파들거리는 파동이 감동을 몰아오던 고향 도토리 묵 한 그릇이 생각난다.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는 삼십 년을 살아온 나의 고향이다. 진정한 광복이란 용인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점심에는 북쪽 고향에서 도토리 묵 한 그릇 먹고 저녁에는 두만강을 건너 아들을 잉태했던 곳까지 돌아보고 오는 것이다. 시간의 토막을 이어주어야 해방이고 기념일이라 생각한다.
윤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큰 기대는 안했지만 어려운 국내 정국을 감안할 때 나름 획기적인 대북정책 관련 대북제의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를 했었다. 식량지원을 포함 발전, 항만, 농업기술, 의료, 국제투자 금융지원 프로그램 등 그간 북한에게 제의했고 또한 북한이 원하는 모든 내용이 포함된 그야말로 ‘담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조건이다.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 준다면’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참 답답한 것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한 것은 ‘90년대 초 핵문제가 대두된 후 수 십 차례는 될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계속해서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해 왔으나 지난 2018년 판문점, 평양남북정상회담과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그들의 진성성을 확실하게 확인한바 있다. 남한의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국민 앞에서 직접, 자유롭게 연설을 하도록 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같은 조건을 제시하며 ’담대한 구상‘을 얘기 하니 북한이 발끈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현 정부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북한관련 문제를 정쟁화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전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한반도 핵문제를 우리가 해결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으로 전 정부의 실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처한다면 성공하는 정부로 인정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말이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문제나 연금, 노동, 교육개혁 등이 모두 난제임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 어려운 문제에 몰입해도 부족할 시간과 정력을 잘못된 길에 낭비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북한을 바로 볼 수 있는 관점의 전환과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높고 넓은 마음을 갖는다면 새 정부를 선택한 우리 국민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윤 대통령께서 2018년의 일련의 남북정상회담 과정과 북미 1차 싱가포르회담의 경과를 정확하게 분석을 하고 이듬해 하노이 2차 북미회담 결렬의 근본 원인을 파악한다면 북한 핵문제 나아가 남북관계 재개와 발전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통령 취임시에 했던 선서를 잊지 않길 바란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노력은 지금 안고 있는 북한핵문제 해결 노력이라는 사실 명심하시길 바란다. 문제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전 정부가 평양회담에서 약속했던 일들을 내가 실천 하겠다는 결단만 하면 된다. 북한 핵미사일 실험의 모라토리엄과 제재완화를 동시에 추진하자는 뜻을 미국측에 전하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초대함이 어떨까. 일단 대화를 시작함이 중요하고 시급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나름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 생각된다. 평화 가치의 최 우선성, 그리고 북한이란 존재의 이중성, 지금은 적이지만 다시 함께 살아야 할 형제라는, ’우린 원래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1. 불세출의 평론가 김현 제자 중에 정과리가 있다. 정 교수가 사십 초입일 때, 스승에게 요즘 논어를 읽고 있노라고 말했다. 김현은 그래? 하면서 말꼬리를 올렸는데, 눈치 없는 제자는 이어 말했다.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었어요. 내가 이 에피소드를 읽은 건 서른 초반이었다. 논어를 읽으면서 무척 행복하다는 제자의 진술에 스승인 김현이 마뜩잖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공자님 말씀을 읽으면서 세상 행복하다는 말이 기껍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도록 께름한 게 남았다. 사십 중반에 들어 스승 밑에서 논어를 읽으면서 비로소 정 교수의 행복을 공감했다. 옳게 된 선생님 지도 아래 읽는 논어 말씀은 그 자체로 천국이었다. 성현의 가르침이란 일점일획도 틀림없어서, 읽는 도중에 자꾸 눈물이 났다. 하근기인 내가 공부자 말씀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바로 태평성대로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논어를 읽고, 대학과 중용도 읽고, 노장에 주역도 얼추 떠들어 보았지만, 성현의 말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20대 초반에 알게 모르게 맑시즘 세례를 받았던 세대로 불의한 군사정권을 타도하고, 혁명을 통한 만민 평등을 부르짖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말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공자의 말은 옳고 바르므로 세상의 악을 광정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것은 간절한 개인이 모이고 모여서 비로소 거대한 흐름이 되고, 들불이 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치를 깨닫고 나니, 김현이 왜 제자의 독서에 혀끌탕을 쳤는지 알겠다. 제자가 성현의 말씀 대신 한국문학 텍스트를 더 파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의 나이 갓 서른에 발표한 ‘민중문학의 의식구조’에서 민중문학의 한계와 방향성을 예리하게 짚어냈던 것처럼, 더 높은 성취를 낼 수 있는 제자가 논어를 읽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때, 스승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다. 물론 그가 행하는 인사와 정책,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멋진 말씀들 덕분이다. 당선 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그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개인 능력도 부족하거니와 사람 보는 눈도 가관이다. 그러니 그의 치세에서 우리가 어떤 희망을 걸겠는가. 그와 국민의 힘 인사들 입에서 아무리 훌륭한 말씀들이 쏟아진다고 해도, 논어 말씀 한 줄에도 미치지 못할 터다. 그러니 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3. 이 글을 쓰는 8월 23일은 처서다. 더위가 그치는 날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노염은 한참 동안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그러니 처서란 절기로 오늘을 기억하지 말고, 21년 전, 2001년 오늘에 우리가 예정보다 3년 먼저 IMF 차관을 상환한 날로 기억하자. 1945년 8월 15일에 나라를 되찾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광복할 것이 많다. 나라 빚도 갚아야 했고, 자주국방도 되찾아야 하며, 남북통일도 기어이 이뤄야 할 일이다. 통일이 너무 멀다 싶으면, 저 허영청한 대통령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리해보거나.
김 훈의 '하얼빈'을 단숨에 읽었다. 먼저 우리 애들과 그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요즈음 기쁜 일이라고는 없는 또래들에게 한 나절을 투자하여 이보다 더 짭짤한 소득은 없을 거라면서 권하고 싶다. 남녀노소 두루 읽으면 좋겠다. 자신있게 권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잘 모르던 안중근이 지금 하얼빈에서 이토를 정조준하고 있다. 요즈음 부쩍 안중근 의사를 많이 생각했다. 일본이 최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등 한일관계의 오랜 쟁점사안들을 놓고 마치 조폭행태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누가 보더라도 일본의 그 더러운 전략에 말려들고 있다. 걱정이 태산이다. 이 나라가 석 달만에 풍전등화 신세가 된 거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리고 싶으면 길은 순순히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와 그저 따르면 된다. 그러면 '열복'(기쁠 悅, 복福)을 받는다." 이토 히로부미의 신념이었다. 그는 그 잘못된 믿음으로 그렇게 간거다. 이토는 동아시아전역에 '열복'을 파는 장사치였고, 사기꾼이었으며, 제거해야 마땅한 악마의 수괴였다. 정치는 시공을 초월하여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임계치를 넘으면 솥뚜껑이 비행한다. '열복'! 육십 평생 첨 접하는 어휘다. 나쁜 놈이 좋은 언어를 선점하는 것이 또 하나의 정치기술이다. 이 기술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만큼 위력적이다. 대표적으로 전두환의 정의, 이명박의 정직 따위가 정치의 그 파렴치한 속성의 증거들이다. 그 말장난은 다양한 비유와 웅변으로 진실의 옷을 입는다. 악마가 '열복타령'을 하면 이처럼 우습고 역겨운 당근이 된다. 이토는 그 미끼를 흔들면서 한편에서는 보란듯이 늙은이, 어린이, 임산부, 불구자, 개, 고양이, 말, 당나귀까지 닥치는대로 죽였다. 민가로 도망쳤다가 잡힌 군인들은 그 자리에서 파리처럼 죽였다. 순종의 군대해산 조치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난 군인들과 협조한 시민들의 시체들을 모아 방벽을 쌓아놓고, 그 더미 뒤에 기관총좌를 앉혔다. 이것이 이토 히로부미와 일제가 구상했던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의 실체였다. "안중근은 일본검사의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을 '포수'라 했다. 재판 때는 판사에게 '무직'이라고 말했다. 그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 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주었다." 작가의 말이다. 명함 큰 놈들은 대개 탐욕적이다. 이토의 저 악마성을 에너지로 쓰면서 거들먹거리며 활보하다가 끝내 하얼빈에서 막을 내린다. 이 시대 일본 주류의 회의실 정중앙에는 이토가 앉아있다. 이 정부는 이토를 상관으로 여기고 맘껏 저자세를 취한다. 망국의 조짐이 보이면, 항상 포수와 담배팔이와 허다한 무직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저항하며 구국의 전사가 된다. 큰 법칙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53·사법연수원 27기)를 현정부의 첫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했다. 언론보도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한동훈 장관과 함께 윤석열 사단의 핵심’이란 언급은 거의 모든 언론이 같이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 후보자와 한 장관은 좌천성 인사도 같이 당했다’는 표현은 신문마다 조금씩 달랐다. 조선일보는 19일자 지면에서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는 2017년 7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바로 곁에서 보좌했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던 두 사람은 문재인 정권의 핍박을 같이 받으며 동병상련을 느낀 것으로 안다”는 한 검찰 간부의 말을 익명으로 인용했다. 이 후보자가 대검 기획조정부장에서 수원 고검 차장으로 2020년 1월 ‘좌천’ 됐고, 1년 6개월 후인 지난해 6월에는 제주지검장으로 한 차례 더 ‘좌천성’ 인사발령을 받은 뒤 윤대통령 취임 이후 검찰총장 직무대리(대검 차장)로 복귀 했다는 내용도 상세하게 전했다. 동아일보도 ‘윤석열 사단’ ‘좌천’같은 표현을 기사에 담았다. 다만, 전 정권 수사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을 강조했다. 중앙 역시 ‘좌천’이란 표현은 썼지만,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장악 시도를 그렇게 비판했던 윤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 이어 검찰총장까지 최측근 특수통 검사로 채운 건 결국 내로남불”이라는 취재원 말을 인용했다. 세 보수신문 중 상반된 입장의 취재원 발언을 유일하게 인용했다. 한국, 국민, 세계일보는 편중인사 극복과 정치적 중립성이 과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겨레는 “검찰 총장도 ‘윤핵검’···검찰 직할체제 마지막 퍼즐 완성”이란 제목의 해설기사에서 ‘예상대로’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원석,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밀을 법원행정처에 유출 의혹”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접근방식이 돋보였다. 언론이 ‘좌천’이란 말을 너무 쉽게 쓴다. ‘지역=좌천’이라는 표현은 서울 중심, 검찰내 황금보직이 있다 말이다. 이 후보자가, 서울에서 수원, 수원에서 제주지검장으로 전보 된 것이 좌천이라면, 좌천된 자리는 검찰 직급을 낮추는 게 맞다. 언론은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감시해야 한다. 신문마다 특색 있는 보도를 했지만, 일부 언론은 정파적 시각을 극복하지 못했다. 한편, 동아일보는 “검찰 內 이원석 선배 동기-18명, 거취 주목”이란 제목의 보도에서 인사후폭풍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검찰총장 인사 때마다 반복되는 관행보도다. ‘용퇴’라는 이름으로 퇴임을 부추긴다. ‘조직안정을 위해서 남아달라’는 입에 발린 소리가 기사 말미에 꼭 뒤따른다. 오늘날 어떤 조직이 기수(입사)를 따지는가? 더 능력있다고 평가 받는 후배를 상사로 모시는 건 모든 조직의 일상사다. 검찰 조직이 신뢰가 낮은 건 이런 ‘전근대 문화’를 버리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관행 타파가 개혁이다. 언론이 검찰 관행의 조력자 역할을 해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때다.
나와 마주한 그녀에게 말한다. “수면시간이. 새벽 두 시에 잠들어서 8-9시에 일어나시는 거지요?. 아침에 일어날 때는 항상 피곤하다고 되어 있고요. 지금 과로로 소진된 상태에 몸의 에너지를 돕는 한약을 지어드릴 텐데요. 수면시간을 변화를 주면 회복이 훨씬 빨라질 거예요. 늦어도 밤 12시 정도 잠이 들면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빨라져요." 여러 연구결과를 이어 설명한다. 진료실에서 반복되는 일상이다. 나의 작은 습관 하나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타인에게 습관을 바꿀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만큼 기본이기도 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한의학에서는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에 큰 영향을 받는 존재이며 자연의 변화 리듬에 맞추어 일상을 꾸려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 하루 변화의 양상을 12..
코로나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3일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5만258명 늘었다고 집계했다. 이 중 수도권이 7만944명으로 52.9%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1만 명 이하이던 하루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셈이다. 느슨해진 경각심을 파고드는 감염 곡선이 날로 가팔라지는 추세다. 전국인구의 절반인 2589만여 명이 모여 사는 수도권의 방역 대책에 대한 정밀 점검이 긴급하다. 전문가들은 방역 당국에 신고되지 않은 숨은 감염자를 고려하면 이미 일 평균 30만 명가량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란 계산을 내놓는다. 지난봄 대유행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확진 규모에도 위중증 및 사망자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사실상 다시 대유행기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위중증 환..
요즘 쓰는 글에 오자와 탈자, 비문이 많아져 걱정이다. 이게 다 의존증 때문인데 한창 글을 쓸 때 편집국 혹은 편집부에 교열부가 존재했었고 내가 잘못 쓰면 한번 걸러주겠지 하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인 요즘엔 교열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수 언론사에서도 교열부나 교정부를 없앴을 가능성이 높다. 교열기자에 대한 기억과 로망은 이병주의 소설 『행복어사전』에 나오는 주인공 서재필 정도에 머물 것이다. 이런 얘기도 젊은 기자나 글 쓰는 사람들에게 공룡시대 취급을 받을 것이다. 되려 이병주가 누구냐, 혹시 삼성 창업주 이병철 이름을 잘못 쓴 거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어쨌든 이 칼럼에도 늘 상당수 오자가 있는데 조사의 ‘은는이가’가 잘못 붙어 있는 경우는 다반사요, 고유명사나 이름을 틀리는 경우까지 있다. 띄어쓰기의 잘못은 물론이다. 온라인 판에서는 스스로 발견하거나 독자의 지적을 받거나 해서 바로 수정을 하지만 지면 판에서는 이미 윤전기에서 돌아간 후라 고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날은 마치 밥을 먹은 후 뭐가 얹힌 듯 하루 종일 찝찝하게 지낸다. 창피하고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다. 숱한 오자에도 불구하고 ‘2틀’이나 ‘4흘’ 같은 오자를 내지는 않는다. ‘사귄다’의 명령어를 ‘사기라’로 쓰지도 않는다. 더더군다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의 말을 부적절하게 사용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적도 없다. 심심의 한자를 ‘深甚’이라고 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읽을 줄은 안다. 5060 세대는 마지막 한자 세대여서 고등학교 시절 입시 필수가 아니어서 그랬지 매주 1교시의 한문 수업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한문 수업은 대개 국어 선생님이 가르치셨다. 한자어를 알면 사람이 유식해진다. 인식이 폭넓어진다. 한자는 마치 와인이나 영화 같아서 어디 가서 얘기를 할 때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언급을 하면 사람을 살짝 교양 있게 보이게 한다. 한자를 공부하는 것은 결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보통 새벽 4시~아침 8시 사이에 글을 쓰는데 그때의 내 뇌 상태가 가장 명징하기 때문이다. 명징은 ‘明澄’인데 ‘깨끗하고 맑다’란 뜻이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의 밝기 같은 것인데 그 순간의 빛이 가장 깨끗하고 맑다란 의미이다. 이런 단어는 보통 사람들 간 대화에서는 흔히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종종 쓰는 단어이다. 일상의 대화와 글의 단어는 때론 약간의 간격이 벌어진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구어체와 문어체로 나누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사람이 구어를 무시하면 안 되지만 문어를 모르고 살면 안 된다. 그건 마치 구상과 비구상 혹은 구체와 추상과 같은 것이다. 구체는 추상을 규정하고 추상은 구체를 규정한다. 구체를 모르면 개념을 정립할 수 없고 개념을 잊으면 모든 사안의 구체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생과 세상사, 모두 변증법이다. 대학에서 잠깐 교편을 잡았을 때 1, 2학년 저학년 학생들이 매카시즘이란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아니 세계사를 안 배웠어,라고 물었을 때 당연한 어투로 안 배웠는데요, 라는 대답을 듣고는 더 충격을 받았었다. 당시에 국사는 입시필수지만 세계사는 입시선택이라 배우더라도 공부는 따로 안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의 역사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로나19 시대에 한 대학의 대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 학생들이 니카라과를 처음 들어 본 나라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매카시즘, 조셉 매카시를 모른다는 건, 극우의 문제점을 모른다는 것이다. 1950년대 조셉 매카시가 반미활동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많은 선량한 사람들, 지식인들, 예술가들을 공산당, 빨갱이로 몰아 감옥을 보내고 죽임을 당하게 만들었는지를 모르면 극우 파시즘의 광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 가를 알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친구들이 대개 ‘일베’가 된다. 니카라과도 마찬가지이다. 니카라과를 모르는 데 어떻게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투쟁을 가르치고, 그 투쟁이 소모사 정권의 46년 독재 끝에 나온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가르치겠으며, 그걸 모르는데 레이건 전 대통령 때의 최대 정치부패 스캔들인 ‘이란-콘트라’ 사건을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이 모든 얘기가 다 영화로 나와 있는데 이걸 모르면 대체 영화를 어떻게 보겠는가. 그저 재미있느냐 없느냐로 영화를 가름할 뿐일 것이다. 가장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우려스러운 것은 이 모든 사고의 부진이 기자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런 말은 그래서, 매우 적절해 보인다. ‘요즘 직장인 중에서 가장 지적능력이 떨어짐에도 자기들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집단이 기자들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나라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그 일단을 짐작하게 한다. 진실로 자성할 일이다. 오늘만큼은 오자와 탈자, 비문이 없어야 할 텐데 만약 또 한 글자라도 발견된다면 미리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아오리 사과를 드린다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은, 파란 사과가 꼭지를 따서 매장에 진열돼 있음에도 반말로 ‘이게 나중에 빨개지는 거지?’라고 하는 대통령 때문에 다 알게 됐다. 무식을 무식으로서 증명하는 세상은 웃긴 게 아니라 무서운 것이다. 자, 어쩔 것인 가. 어떻게 할 것인 가. 걱정이 구만리다.
친구는 11년 전 첫 발령 때 만났던 학생 A를 종종 본다고 했다. A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연락만 주고받았는데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만나서 밥도 먹고 사진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 둘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니 누가 선생님이고 학생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 보이는 성인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조그마했던 초등학생이 어느새 자라서 친구보다 키도 컸다. 둘 사이에 별일이 없으면 평생 만나는 사이가 될 것 같았다. 제자와 계속 만남을 갖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나의 선생님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기회가 닿는다면 만나고 싶은 선생님이 몇 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40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체벌이 미덕처럼 난무하던 시기에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수업도 재밌어..
대통령실의 직제와 참모진의 일부 개편이 21일 이뤄졌다. 부처간 정책 조율 등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정책기획수석실을 신설하고 홍보수석을 교체해 대국민 소통기능을 강화했다. 김은혜 전 국민의힘 의원이 새 홍보수석으로, 신설된 정책기획수석비서관엔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이 발탁됐다. 정책기획수석의 신설로 대통령실 직제는 기존 ‘2실(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5수석(정무, 경제, 사회, 홍보, 시민사회)’ 체제에서 ‘2실 6수석’ 체제로 변경된다. 20%대까지 내려갔던 대통령 지지율과 국정동력 상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권 안팎에서 비서실장을 비롯해 정무 인사 홍보 등 전면적인 인적 변화를 요구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실 개편을 놓고 ‘땜질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인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