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가 흐르고 계단 위에 한 사람이 정갈히 손을 포개고 앉아 있다. 우리의 소녀상을 흡사 닮았다. 단지 이 주인공은 콧수염을 가진 사나이다. 슈바이처 박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주가 그를 기리기 위해 생 토마 광장에 만든 청동상이다. 알베르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행동하는 인간이자 인도적 지원의 파이오니아였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다 끝내 그곳에 묻혔다. 그는 ‘생명에 대한 외경(Respect de la vie)’을 중시했고 이 윤리를 잊으면 인류문화는 안녕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살았다. 이를 높이 평가한 스톡홀름은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거룩한 휴머니스트는 1875년 1월 프랑스 동부 카이제르베르(Kaysersberg)에서 태어났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6개월 된 그를 안고 발령지인 뮌스테르의 귄스바흐(Gunsbach)로 갔다. 거기서 세 명의 누나,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이 선물을 슈바이처는 자연스런 권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스러워했다. 조숙하고 사려 깊었던 꼬맹이 슈바이처. 또래 아이들과 많이 달랐다. 그의 감성은 남과 다른 특별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자연은 그의 우주였고 이는 그의 전 인생을 지배했다. 그의 소심함과 단호함은 어머니를 닮았고 활기 넘침은 아버지를 닮았다. 슈바이처의 꿈은 음악가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의사를 꿈꾸지 않았다.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다. 이런 그에게 아버지는 피아노와 오르간을 가르쳤다. 어느 날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가 사고로 부재하자 그가 대타로 연주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슈바이처의 나이 아홉 살이었다. 그가 피아노와 파이프 오르간을 정식으로 교육받은 건 열네 살 때. 외젠 뮌흐(Eugène Munch)의 사사를 받으면서부터다. 2년 후 그는 스승을 대신해 종교행사의 연주자가 됐고 열일곱 살 때는 첫 콘서트를 열어 브람스의 레퀴엠을 연주했다. 슈바이처가 음악을 사랑하고 낙천적 비전을 갖는데 큰 영향을 미친 건 그의 삼촌 루이와 숙모 소피, 스승 뮌흐였다. 그는 성장하면서 의심의 여지없이 음악, 신학, 철학을 함께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알자스 지방인 귄스바흐와 밀루즈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이러한 꿈을 꾸준히 키워 나갔다. 그러던 중 잠시 집을 떠나 외지인 파리에 갔다. 거기서 그는 진정한 음악세계를 발견했다. 스트라스부르로 다시 돌아와 그는 목가적인 음악을 공부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알자스-로렌은 리히치 독일로 합병됐다. 슈바이처는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프랑스 고전 책들을 소장한 방대한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 슈바이처는 열심히 책을 읽고 독일과 프랑스 양쪽 문화를 모두 익혔다. 그 덕분에 그는 스물네 살 때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가 됐고, 곧이어 신학박사까지 됐다. 생 니콜라(St Nicolas)를 설파하는 신학자로 활동하면서 오르가니스트이자 바흐 작품을 전문으로 연주하고 가르치는 매우 존경받는 음악학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거의 완벽한 삶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문했다. 서른 살에 인생의 반전을 맞은 슈바이처 분명 그는 다른 삶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을 바치고자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었다. 어느 날 집에 도착한 그는 탁자위에서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아프리카 가봉에 의사로 갈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눈이 뻔쩍 뜨였다. 인생의 미션을 바야흐로 찾게 된 것이다. 서른 살인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들어가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인턴과정을 마치고 열대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와 베를린에서 몇 개월간 머물렀다. 이때 가봉에 병원을 만들기 위해 5000달러를 모금했다. 이 돈은 아프리카에서 2년간 병원활동을 하기에 충분했다. 함께 떠나기 위해 엘렌느 브레슬로(Hélène Bresslau)와 결혼도 했다. 1913년 성금요일, 서른여덟 살의 슈바이처는 귄스바흐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보르도로 떠나 가봉행 배를 탔다. 오고우에(Ogooué) 강을 타고 마침내 랑바레네(Lambaréné)에 도착한 그는 부랴부랴 병원을 짓고 수많은 나병환자를 치료했다. 생명에 대한 외경을 손수 실천하였고 결국 그곳에서 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슈바이처가 1952년 노벨평화상을 받자 그의 유년의 고향 귄스바흐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프랑스 알자스 오랭(Haut-Rhin: 라인강 위쪽) 지역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은 1278년 탄생했다. ‘귄스바흐’의 의미는 명확치 않다. 늪지의 개울 혹은 귀노(Guno)라는 사람의 개울이라는 설이 있다. 13세기 프픽스부르(Pflixbourg) 성이 있는 왕국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9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뮌스테르 계곡에 펼쳐져 조용하고 평화롭고 녹색의 자연 경치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콜마르(colmar) 마을 역시 너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즐겨 온다. 슈바이처가 태어난 카이제르베르 역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의 문화예술 고장으로 2017년 프랑스 최고의 도시로 선정됐다. 슈바이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뮌스테르와 귄스바흐를 방문하고 이곳 일대를 돌아보면 환상의 여행코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귄스바흐. 슈바이처 마을답게 그를 추억케 하는 것이 수없이 많다. 슈바이처 메종과 기념관, 슈바이처 오솔길, 아프리카 박물관, 물의 산책 등등. 슈바이처가 유년에 살았던 집은 지금 대중에게 오픈되고 있고, 그 옆에 슈바이처의 부모님과 그의 동생이 잠들어 있다.
세계사의 3대 거짓말을 꼽으라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빵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죠!’, ‘노예해방을 위해 시작한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말을 들고 싶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18세기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바레티의 창작물에 나온 부분이지 갈릴레이가 실제 한 말이 아니며, ‘빵 없으면 케이크를.....’도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나온 글로 앙트와네트의 무개념을 드러내기 위해 누군가 지어 퍼뜨린 말이다. 미 남북전쟁은 미 연방을 탈퇴한 남부에 대한 응징에서 시작된, ‘미연방수호’가 목적이었던 전쟁이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남부를 이기기 위해,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노예제도를 뒤흔들기 위한 것이었다. 링컨이 노예해방론자이긴 했지만 그것이 그의 전 생애의 주제는 아니었다. ‘노예 해방’을 위해 생을 던진 이는 따로 있다. 미 육군 대령이었던 존 브라운( John Brown 1800-1859)이 대표적이다. 1856년, 브라운은 캔자스 동부의 포타와타미에의 고립된 오두막에서 다섯 명의 노예제도 찬성론자를 살해해 지명수배자가 된다.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브라운은 공공연히 ‘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남부인들과의 평화적 협상은 불가능하다. 노예제도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폭력혁명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노예해방론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투신하게 된 브라운은 자식들도 투사로 만들었다. 두 번 결혼해 스무 명의 자식들을 두었는데(첫 번째 부인으로부터 7명, 둘째 부인으로부터 13명) 아들들 대부분이 아버지를 따랐다. 포타와타미에 오두막 살인사건으로 지명 수배를 받던 브라운은 본격적인 노예해방 운동을 결심한다. 노예 등 지지자, 약 5000명을 무장투쟁전사로 만들기로 결심, 이에 필요한 무기를 연방정부의 하퍼스 페이 무기고에서 탈취하려한다. 그러나 1859년 10월 결행된 그의 거사는 곧바로 달려온 지역 농장주들과 민병대, 연방군에 의해 좌초된다. 그 자리에서 생포된 브라운은 버지니아 주정부에서 반역죄, 포타와타미 오두막에서의 살인죄, 노예반란 선동죄 등으로 재판받은 끝에 교수형으로 처형된다. 미국인들은 존 브라운의 노예해방운동과 처형이, 1861년에 일어나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 남북전쟁의 단초였다고 생각한다. 남북 전쟁 중 북군의 진군가로 불리웠던 노래가 있다. 제목하여 ‘ 존 브라운의 시체(John Brown’s body)’ 존 브라운의 몸은 무덤에 누워 썩어가지만/ 그의 영은 진군하고 있다네/ 하늘의 별들은 따뜻하게 죽어간 존 브라운의 무덤을 비추고 있네/ 영광 영광 헬레루야.....후략......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며 단박에 알 것이다. 학교 교가로, 찬송가로 익히 귀에 익은 리듬이다. 이 진군가는 전쟁 후, 가사가 바뀌어 미국 개신교의 찬성가로 불렸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이 그들이 세운 학교의 교가로 쓰면서 퍼져나갔다. 대의와 타인의 존엄을 위해 생을 바친 존 브라운의 삶을 떠올리면서, 존 바에즈와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어보시길.
빼돌린 정보로 부정부패를 일삼는 무리들은 탈세에도 능하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고액·상습체납자는 56,085명으로 총 체납액수는 51조1천억 원에 달한다. 2019년을 기준한 자료인 만큼, 상습체납자의 실제 규모와 체납액은 훨씬 많을 것이다. 지난 3월, 국세청은 암호화폐에 재산을 은닉한 상습 고액체납자 2,416명을 적발하고 체납세금 366억 원을 징수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고의로 세금을 체납한 사람들에 대해 국세청이 강제 징수한 것일 뿐, 들키지 않고 자행되는 불법탈세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여전하다. 페이퍼컴퍼니, 해외재산은닉, 역외탈세, 편법증여, 차명계좌, 다운계약서 등 수법 또한 다양한데, 최근에는 죽은 사람과 거래한 것처럼 속여 돈을 빼돌리는 신종수법까지 등장하였다. 대다수 국민들의 세금은 근로소득을 통해 원천징수한다. 그런 만큼..
국회 차원에서 부동산 하락 등에 따른 관련 세부담 완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가운데 2013∼2019년 주택 가격이 100% 상승할 때 출생아 수가 0.1∼0.29명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지방 이전 공공기관 종사자 3004명을 상대로 해당 기간 평균 출산율과 실제 출생아 수, 주택 소유 여부 등의 변수를 놓고 주택가격 상승률을 가정해 분석한 내용이다. 특히 무주택자의 경우 같은 기간 출생아 수 감소 폭이 0.15∼0.45명으로 더욱 컸다. 모집단이 지방이전 특정 직군으로 한정돼 있고,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주는 직간접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 조사 결과를 전 국민으로 일반화하는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또 한국의 집값상승이 인구감소(결혼‧출산율 하락)와 관련돼 있다는 지적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
모든 일에 때가 있음을 알고 행함은 지혜의 근본이라 할 것이다.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이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할 때라 생각한다. 딸을 대동하고 ICBM 발사장에 나타난 김정은 위원장의 행태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지만, 내 생각엔 ‘자신들의 핵미사일개발 보유 목적이 자신들과 후계세대들의 생존을 위해 절박한 선택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보인다. 당신들도 자식들을 위해 더 이상 적대행위를 하지 말라. 피차 강 대 강의 대결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멸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간절한 절규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30년 세월에 걸쳐 완성한 핵미사일을 제재가 무서워서 포기할 북한이 아님은 북한체제를 조금만 이해해도 잘 알 수가 있다. 핵포기를 전제로 한‘담대한 구상’을 얘기하는 남한정부가 북한의 입장에선 한심..
교사는 자기 교실을 챙겨야 해서 다른 교사의 수업을 보거나 들을 기회가 자주 있는 편이 아니다. 학교 안에서 1년에 몇 번 정도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하는 걸 보고 소감을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시정표를 조정해서 전체 교원의 수업을 모두가 보게 짜여 있는데 흔한 일이 아니다.) 이런 방식의 수업 공개는 수업의 흐름 중 1시간만 보여주면 끝이라서 단편적인 수업 내용을 보게 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있었다. 얼마 전에 고양시 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하는 지역 연계 프로젝트 수업 사례 나눔 콘퍼런스가 있었다. 지역 연계 프로젝트는 고양시 교육청이 고양시와 MOU를 맺어서 따온 시 교육 예산 중의 일부를 수업을 재구성하고 싶은 교사들의 신청을 받아서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학급, 학년 단위에서 수업 계획서를 작성해서 예산을 신청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교 예산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업 예산을 사용하면서 지켜야 할 점이 고양시 지역 내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뿐인 것도 또 다른 장점이다. 1년 동안 우리 학년에서 진행해 온 넷볼, 풋살, 등산, 배드민턴 등이 모두 지역 연계 프로젝트 안에서 이루어졌다. 예산을 배부한 지 1년이 지나고 수업을 진행한 교사들의 사례 나눔이 ‘지역 연계 프로젝트 콘퍼런스’였다. 30개의 수업 사례 중에 원하는 4가지 사례를 골라서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우리 학년 선생님은 사례 발표자이자 청중으로 참석했다. 수업이 끝나고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시작 시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빈자리가 안 보였다. 일단 비어 있는 곳에 가서 앉았는데 덕양중학교의 사례 발표를 듣는 자리였다. 처음 콘퍼런스 시간표를 봤을 때부터 덕양중이 눈에 띄어서 궁금하던 참이었다. 덕양중은 특이하게 교사가 아니라 주무관님이 사례 발표를 한다고 적혀있었다. 행정실에서 회계 관련 교육 행정 업무를 도맡아 하는 그 주무관님이 분명했다. 행정실은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교육 실무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은 터라 우연히 앉은 자리에서 궁금증을 해결할 좋은 기회였다. 덕양중 주무관님의 발표는 ppt 140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다른 학교에서 30~40장 내외의 ppt로 사례 나눔을 진행한 데 반해, 양에서부터 압도적이었다. 내용 또한 밀도와 의미, 둘 다 있었다. 덕양중의 프로젝트는 경의선 화전역 근방의 마을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이었다. 다른 고양시 지역이 개발되고 있는 것에 반해 화전역 부근은 날이 갈수록 쇠락해가고 있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마을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어 보였다. 마을 주변을 탐방하며 지도를 만들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만나고, 아카이빙 전문가에게 작업 방법을 듣고, 결과물을 책자와 그림책으로 만드는, 6개 교과가 재구성된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였다. 과정 하나하나 속에서 아이들이 웃으며 몰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무관님은 아이들의 전반적인 수업 활동 모습을 촬영하는 것과 더불어 아이들에게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수업해주셨다고 했다. 1학년 전체 교사와 다른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례를 듣는 내내 내년에 마을 아카이빙 수업을 꼭 해봐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콘퍼런스가 모두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데 다들 비슷하게 이야기 했다. “수업을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들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고,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 지역 연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예산이 내년에도 유지되어서 학교에서 멋진 수업들이 이루어지고 연말에 사례를 듣는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12월 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 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이 단독으로 정보통신방송 소위원회에서 통과시킨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요청했다. 국민의힘은 해당 법 개정안들을 소위에서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것처럼, 전체 회의에서도 민주당이 다수결로 해당 안건을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요청한 것이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는 6명으로 꾸려지고 제1당이 3명, 나머지는 “제1교섭 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3명으로 구성된다. 이는 이견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하라는 안건조정위원회의 설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국회법 제57조의 2에..
해양수산부는 권역별 해양 특색에 맞는 해양레저관광 인프라 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다. 전국을 7개 권역으로 나눠 누구나 집에서 2시간 내의 거리에서 다양한 해양레저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도내 시흥시를 포함한 5개 지방정부를 사업시행자로 선정했다. 시흥시에는 2024년까지 총 90선석의 계류시설과 3층 규모의 클럽하우스를 갖춘 마리나항만이 시화호 거북섬에 들어선다. 여기에 드는 전체 사업비 336억 원 가운데 절반인 168억 원을 해수부가 지원하며 도비 51억 원, 시비 117억 원이 투입된다. 시흥시는 이 사업이 완료되면 인근의 아쿠아펫랜드, 해양생태과학관, 거북섬 복합리조트, 스트리트몰2 등의 관광자원과 함께 지역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해양레저관광 집적지(클러스터)가 조성된다면..
인간은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는 존재이다. 처해있는 상황이 제각기 다른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발생한 사건은 부풀리거나 축소되는 등 각색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를 라쇼몽 효과라고 하는데 일본의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유래했다. 『라쇼몽』은 무사(사무라이) 부부가 산길을 가다 산적에게 붙잡혀 벌어진 일을 저마다 다르게 진술하는 단순한 영화다. 그러나 사실이 미궁에 빠져 인식에 어떤 까닭이 있어선 지를 묻는 심오한 영화이기도 하다. 산적은 당당하게 결투를 벌여 무사를 죽였다고 진술한다. 반면 무사 아내는 산적에게 겁탈 당한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남편을 죽였다고 말한다, 죽임 당한 무사는 무당의 말을 통해 (수치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한다. 무사의 죽음만이 팩트인 것이다. 라쇼몽은 팩트를 주관적으로 비트는 인간의 심리를 잘 포착해 낸 영화다. 하지만 우리는 라쇼몽을 비웃기라도 하듯 없는 사실을 마치 있는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는 '팩트 가공' 시대에 살고 있다. 우스꽝스런 이 가공은 비이성 그 자체이지만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아 가히 주술적이다.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는 팩트 가공과 관련해 상징적 사건이다. 사회학·심리학·언론학적으로 많은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 사건은 간단하다. 첼리스트가 동거하는 남자친구와 통화를 한다. 자신이 새벽 3시에 청담동 술집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김앤장 소속 변호사 30여 명이 술을 마셨다. 윤 대통령이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불렀고 자신이 첼로 반주를 넣었다. 통화 내용을 녹취한 남자 친구는 신생 뉴스 유튜브에 제보했고 육성 녹취가 그대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기자는 현장에 있었다는 첼리스트와 통화조차 한 적 없었다. 기사의 구성 요소인 육하원칙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그야말로 팩트 제로인 상태에서 청담동 술자리는 사실로 둔갑되었다. 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을 비롯 정치권부터 지식인, 시민에 이르기까지 영락없는 사실로 받아들였다. 포털 사이트 관련 기사에는 사실을 확신하는 댓글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첼리스트가 서울 서초경찰서에 출두해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고 진술해 사건은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녹취록의 주인공이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담동 술자리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경찰의 협박 때문에 첼리스트가 어쩔 수 없이 거짓 진술을 했다고 확신한다. 이쯤이면 주술 말고는 그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라쇼몽 효과나 확증편향도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검찰이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하듯이 언론이 팩트를 제시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제 아무리 개연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팩트를 확보하지 못하면 기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작금 팩트를 거리낌 없이 가공해 내고, 그것을 의심하거나 검증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믿기까지 한다. 실로 주술 사회가 깊어지고 고착화 하지 않을까 두렵다.
조선시대 사색당파를 적폐로만 보는 시각은 ‘식민사관’의 악영향이라는 주장이 있어요. 선조에서 영조까지 180년간의 당파 간 논의를 정리한 이건창의 ‘당의통략(黨議通略)’엔 순수하게 당쟁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은 79명뿐이라고 적고도 있죠. 그러나 걸핏하면 상대 당파 유력자의 죄목을 들어 “목을 끊어야 한다”고 악악대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은 참으로 짜증 나는 장면들이죠.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안을 놓고 잡음이 커지고 있네요. 현재 9명(MBC)·11명(KBS)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21인 규모의 운영위원회로 개편하고, 100명 정수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한 대목이 눈에 띄네요.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해요.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임명 제청할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