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어스 클레이는 미국의 복서였다. 흑인가의 가난한 소년이었던 그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 라이트 헤비급 미국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미국의 영웅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햄버거를 사려고 들어간 가게의 백인에게 그는 여전히 흑인일 뿐이었다. “검둥이에게 팔 햄버거는 없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았고,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그는 흑인을 멸시하는 백인들의 미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싸우는 프로선수가 되기로 했다. 아마추어 전적 100승 5패를 기록한 그는 프로로 전향했다. 프로권투에서도 그의 주먹은 막강했다. 그는 약관 21세에 소니 리스턴을 7회 TKO로 물리치고 WBA와 WBC 헤비급 세계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대 최고의 복서인 챔피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했을 때 모든 전문가가 캐시어스 클..
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제일 선망하는 고등학교는 과학고가 아니라 영재학교다. 모두 8개의 고교과정 영재학교가 학교당 평균 100명, 총 800여 명의 신입생을 뽑아 총재학생이 2500명에 달한다. 압도적으로 남학생이 많아서 현재 7대 1이다.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서울대학교의 1인당 교육비보다 많고 명문대 진학실적도 과학고를 능가한다. 당연히 입학경쟁이 뜨겁다. 그동안 평균경쟁률이 10대 1을 넘었으나 금년부터 1인1교만 지원 가능하게 규정을 바꿔서 6대 1로 줄었다. 머지않아 5000명 지원자 중 3단계 선발과정(서류전형-영재성검사-캠프생활)을 모두 통과한 800여 명이 합격의 영예를 얻고 수학과학 영재로 공인될 것이다. 문제는 현실의 영재학교에는 ‘타고난 영재’들이 아니라 ‘만들어진 준재’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가장 확실하고도 충격..
1. 광고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핵심적 사회제도라고 말하면 놀라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이 내용을 가장 명확히 설명한 것이 천재적 카피라이터 어네스트 엘모 컬킨스의 소비자 공학(consumer engineering) 개념입니다. 1920년대는 거품경제라 불릴 만큼 미국의 산업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입니다. 문제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 때문에 상품은 시장에 쏟아져 나왔지만 노동자계급의 가처분소득이 크게 부족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수요를 초과하는 과잉생산은 제품가격 하락과 소비부진을 일으켰고 미증유의 디플레이션이 이빨을 드러냅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소비자 공학입니다. 시장의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광고라는 도구를 통해 소비자 마음속에 이미 구입해서 사용 중인 제품에 대한 ‘의도적 혹은 계획적 진부화(artificial or planned obsolescence)’를 촉발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가지고 있는 물건에 싫증이 나게 만드는 거지요.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욕구를 무기로 끊임없이 신제품을 구입하도록 부추기는 것.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시켜주는 광고의 마법입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사이클 반복을 가능케 해주는 가장 강력한 사회제도, 그것이 광고인 겁니다. 2. 시인이자 문화사가인 하루야마 유키오(春山行夫)는 1660년 11월 영국 신문 <메르쿠리우스 폴리티쿠스(Mercurius Politicus)>에 게재된 정제(錠劑)약 광고를 신문매체에 노출된 최초의 허위과장광고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카피가 나옵니다. “이 약은 폐결핵, 기침, 천식, 구취, 감기 등에 좋고 폐에 관계된 어떤 병도 낫게 합니다. 또한 각종 유행병, 전염병, 위장 장애, 간 해독에도 좋습니다.” 이런 광고가 나쁜 광고입니다.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가 결핵 병원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최초로 발견해서 학회에 보고한 것이 1883년입니다. 해당 광고가 나온 지 무려 223년이 지나서 말이지요. 원인균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이 치명적인 전염병을 치료해준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세상을 속이는 터무니없는 허위과장인 거지요. 광고의 도덕성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요즘 대세로 부상 중인 타기팅 광고(targeting advertising)가 그렇습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최근 검색했거나 개인적 관심 가진 제품 광고가 꼭 집어낸 듯 튀어나오는 것에 놀란 경험 있으시지요? 슈퍼컴퓨터와 AI를 통해 온라인 접속자의 빅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다음,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딱 맞춘 광고를 노출시키는 방식입니다. 거대 IT기업들이 동의도 받지 않은 소비자 정보를 이렇게 마음대로 가공해서 이윤을 취하는 행동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걸까요? 광고는 지난 수백 년 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탐욕의 용병’이 되어 세상에 해를 끼치는 존재는 아닐까요? 저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광고가 세상을 더욱 좋게 바꾸는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사례들이 증거입니다. 3. 2015년 집행되어 세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고, 거의 모든 국제광고제를 휩쓴 것이 <자유를 위한 홀로그램(Hologram for Freedom)> 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은 광고회사 DDB스페인이 여러 방송사 및 스튜디오와 힘을 합쳐 진행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당국은 의회 및 기타 정부 건물 근처에서 모든 시위를 금지시켰습니다. 심지어 시위 내용의 문서 전달이나 온라인 게시에 대해서까지 최대 60만 유로의 벌금을 매기는 법을 통과시켰지요. 악법 중의 악법 ‘시민안전법’이었습니다. 이 조치에 저항하여 DDB스페인의 크리에이터들은 역사상 최초의 홀로그램 시위를 조직합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펼치고 이에 따라 응모된 수천 개 콘텐츠를 편집하여 디지털 홀로그램으로 만든 겁니다. 그리고 마드리드 의회 건물 앞에서 상영한 거지요. 이 홀로그램 시위방식은 직접 사람이 모이지 않았으니 시민안전법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독창성과 파괴력에서 물리적 시위 이상의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세계 주요 언론이 대대적으로 시위를 보도했고 결국 법안 폐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광고가 디지털이라는 신무기를 사용하여 거대한 사회적 순기능을 실천한 거지요. 이 캠페인은 첨단 기술과 공공적 가치의 결합 차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세상을 건강하게 바꾸는 광고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 ‘룩앳미(Look at me)’ 캠페인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룩앳미'는 자폐 아동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치료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자폐아들은 타인과 눈을 맞추는 면대면(面對面) 커뮤니케이션을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와는 쉽게 친해지는 점을 착안한 거지요. 의사, 교수, UX디자이너 등이 힘을 합쳐 2015년 개발한 이 앱은, 사용 후 8주 만에 참여 아동의 60퍼센트가 눈 맞춤을 시작하고 상대방 표정 이해 능력이 크게 높아지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룩앳미 캠페인’은 이 같은 앱의 개발과 활용, 드라마틱한 결과에 대한 스토리를 찬찬히 기록한 다음 그것을 콘텐츠로 만든 것입니다. 해당 기업의 기술력과 사회적 책임, 나아가 마음을 울리는 감동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둔 거지요. 4. 과연 21세기의 광고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지난 수백 년간 퍼부어진 비판처럼, 그저 물건만 팔아먹으면 그만인 판매지상주의의 노예 역할을 벗어나지 못할까요. 아니면 방금 보여드린 사례처럼 사회적 공공선(公共善)에 도움을 주는 ‘착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수행할까요. 주목할 것은 정치, 경제, 교육, 법률, 복지 등 모든 사회제도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는 겁니다. 광고도 마찬가지고요.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의사가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강도가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광고를 만드는 주체들 뿐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시민들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광고의 가치중립적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그 유연한 힘을 활용하여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과업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이윤 창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의 교묘한 광고 설득에 무기력하게 세뇌당하지 않는 일. 거꾸로 환경 감시자 역할을 통해 광고의 사회적 기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압박이 그것입니다. 현대광고가 태어난 미국의 경우 이미 1891년에 최초의 소비자운동단체가 태어났지요. 그리고 1899년 광고 폐해, 부당가격, 품질불량 문제를 비판하고 사회적 공공성을 촉구하는 전국소비자연맹(The National Consumer‘s League)이 결성되어 1세기 이상 성과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민운동이 존재합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지향이 좀 더 체계화되고 좀 더 강력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는 몰랐다. 민주화가 어쩌고 선진국 진입이 저쩌고 하더니만 대한민국의 검찰행정이 정말 이만큼 진화했는지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국민들 위에 군림하던 검찰이 국민편의를 위해 고발장까지 대신 써주고 “빈칸에 이름만 적어오면 나머진 저희들이 알아서 할께요”하고 고소고발 원스톱서비스로 안내한다는데.. 사실이라면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나는 궁금했다. 세상 똑똑한 검사님들이 자기관련 사건만 접하면 기억력이 증발되어 버리는 이유를.. 김웅 의원은 “내가 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한 걸수도 있는데..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분명한 건 제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라고 해명했다. 검찰출신은 정의뿐만 아니라 기억력조차 철저하게 선택적인가? 그는 자신의 책 ‘검사내전’에서 "사람들이 인식의 오작동을 낳는 것은 그보다 재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직 당시 검찰이 야당에 여권 인사 등의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지난 2일 제기된 이후 갈수록 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국민의 피로감도 쌓여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루빨리 강제 수사로 전환하는 방법밖에 없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의 키맨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계속해서 말 바꾸기와 모호한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추가로 사주고발 의혹이 드러나는 등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직전 김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총선 후보)이 대검찰청 간부한테서 받아 당에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된 고발장이 실제 고발장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의혹을 받고 있는 두 개의 고발장 가운데 지난해 8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고..
오늘(9일)부터 14일까지 경기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전도민재난지원금 지급 예산이 담긴 추경을 심의, 전 도민 지급여부를 결정한다. 지난달 13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380만 경기도민 중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원대상에서 빠진 상위 12% 도민에게도 1인당 25만 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경기도민은 12%가 아니라 18%나 된다. 따라서 추가경정 예산안도 2190억 원이 증액된 6000억여 원이 됐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예산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집행부의 계산 착오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전 도민 지급 문제를 두고 도의회 내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경기도의회 제354회 임시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원들 간의 공방에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허원 의원(국민의힘·비례..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아버지' 맹자. 대표 시 '대장부의 노래'와 함께 실로 큰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시편이 있다. 선생은 당시 특급 정치컨설턴트이면서 큰 시인이었다. 그 위대한 문장 원문 그대로 옮겨보자. 天將降'大任'於斯人也(천장강'대임'어사인야) 必先勞其心志(필선노기심지) 苦其筋骨(고기근골) 餓其體膚(아기체부) 窮乏其身行(궁핍기신행) 拂亂其所爲(불란기소위) 是故動心忍性(시고동심인성) 增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고달프고 우울하게 한다. 몸은 죽도록 힘들게 하고, 온 가족이 함께 굶어 죽을 만큼 가난뱅이로 추락시킨다. 뿐만 아니다. 하는 일마다 어그러지고, 어지럽혀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이는 '그 사람'의 마음을 크고 깊고 높이 움직여, 태풍 앞에서나 불판 위..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곧 다가온다. 올 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 간의 대규모 모임을 하기는 어려워서 왁자지껄하게 정을 나누던 코로나 이전의 추석 풍경이 아쉽다. 다들 들떠있을 명절에 유독 쓸쓸한 우리들의 이웃이 있다. 21세기는 실시간으로 지구의 반대쪽 사람들과도 영상 통화가 가능한 정보통신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일천만 이산가족들은 그리운 혈육의 생존도 알지 못하고 어렵사리 생존을 확인했지만 선물을 보내거나 정겨운 대화도 나눌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서 추석명절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북한은 우리가 실향민이라고 하는 이산가족을 자신들의 체제에 반대해서 북한지역을 떠나간 적대적인 월남인이라고 하면서 인도주의적 접근보다는 정치적 접근 자세를 보여왔다. 56년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적 우위 상황에서 월북인들의 재..
뜨더국은 남쪽 언어로 수제비를 말한다. 고향에서는 수제비라고도 하지만 뜨더국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더운 여름보다는 찬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초가을이나 겨울에 얼큰하게 해 먹는 뜨더국을 고향에서는 국수만큼이나 좋아하고 자주 먹었던 음식이다. 배고픈 시절에는 옥수수나 콩이 여물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간절함이 있으면 곡식이 크는 소리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옥수수가 이삭을 업기 시작해서 통통해지고 작은 알갱이가 누렇게 되면 그때부터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초가을부터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국수, 풋 강냉이 지짐, 꼬장떡 등 먹거리가 풍성해진다. 어려운 시기에는 강냉이(옥수수) 알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먹었다. 여물기 전의 옥수수는 초당 옥수수 맛과 비슷하다. 영양분도 적어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면하지 못함에도 가난한 시절에는 밭에 옥수수가 어서 빨리 여물기만을 기다렸다. 뜨더국은 밀가루로 만들어야 제 맛이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호박이나 풋고추를 넣고 끓이다가 쭉쭉 늘려 뜯어서 넣으면 된다. 밀가루로 만든 뜨더국은 쫄깃하고 맛있다. 겨울에는 김치를 넣기도 하고, 여름에는 나물국에 넣기도 한다. 밀가루가 흔하지 않은 시기에는 옥수수가루를 섞기도 한다. 순수 옥수수 가루는 밀가루와 달리 탄성이 적어 늘리지 못하고 뚝뚝 뜯어 넣는다. 국물이 세게 끓을 때 넣어야지 덩어리가 풀어지는 경우도 있다. 고향에서는 뜨더국 재료로 밀가루보다는 옥수수 가루로 많이 만들었다. 초가을 햇 옥수수를 잘게 분쇄하여 굵은 것은 밥으로 만들고 나머지 가루는 보드랍게 채를 쳐서 음식을 만든다. 엄마 손이 분주한 가을에 뜨더국은 하루 세끼 먹거리 근심을 덜었다. 뜨더국은 밥과 국, 찬으로 구색을 갖추는 것이 아니어서 번거롭지도 않다. 끓고 있는 국 가마에 가루 반죽을 뜯어 넣으면 된다. 주식과 부식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 간편하고 맛도 좋다. 배고픈 시절에는 맹물에 나물을 넣고 수제비 조각이 몇 개만 있어도 허기를 채울 수 있어 좋았다. 엄마는 쉽고 간편한 뜨더국을 자주 해 주었다. 뜨더국 반죽할 때 생기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물에 반죽을 넣은 수제비를 호르륵 맛있게 먹었던 그 시절 남쪽에도 뜨더국(수제비) 맛 집이 있다. 넉넉하게 넣은 수제비 재료에 해물까지 얼큰하게도 담백하게도 만든다.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 비교할 수 없이 맛있다. 그럼에도 배고픈 시절에 엄마가 만들었던 뜨더국이 그리울 때가 있다. 요즘 가을비가 자주 내린다. 더위가 언제 있었는가 싶게 바람도 제법 차가워졌다. 코로나19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여름도 휘딱 지나갔다. 바람이 차갑다고 느낄 때, 나무에 맺힌 빗방울이 눈물처럼 느껴질 때면 엄마가 만들어준 뜨더국이 생각난다. 뜨더국은 가난을 기억하게 하는 고마운 추억이다.
뉴스를 통해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상황은 처참하다 못해 끔찍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공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여객기로 올라서는 탑승 계단은 몰려든 인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휘면서 내려앉았다. 계단이 부서지는 상황에서 올라 서 있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언가를 붙잡는 일이었다. 필사적으로 난간을 붙잡아보지만 이내 바닥으로 떨어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탈레반이 아프간의 수도 카불을 장악한 이후 그 땅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절박한 모습이 언론에 자주 보였다. 목숨 건 탈출 행렬이 이어진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믿기 힘든 장면이었지만 하늘로 날기 시작한 수송기에서 사람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했다. 철조망 사이로 손을 뻗은 군인에게 기저귀를 찬 아이를 밀어 올리는 애타는 장면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