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온라인 장터의 대파 한 단 가격은 1kg에 2320원. 동네 대형 슈퍼마켓은 한 단에 2980원이었다. 계산대 직원에게 물었다. “대파 한 단에 1000원짜리는 없나요?” 직원은 “저희는 세일해서 2980원인데, 그런 곳도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윤 대통령의 ‘875원 대파 값’ 발언이 일파만파인 가운데, 고단한 점원의 답변엔 시사(時事)에 대한 무관심이 듬뿍 묻어났다. 일부의 사회지도층이 민생과 괴리돼 있다면, 일부의 서민층도 정치 현장과는 격리돼 있다는 것. 유레카! 민생은 생각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했다.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개인의 삶이 영위되려면 제도와 정책이 국민의 형통을 위해 진보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년의 연장, 휴무제 확대 등이 빠른 시일 내에 검토돼야 한다. 또한 농민, 대중소기업인,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해선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도록 정부의 보조금·지원금 지급 등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민생 해결을 위해서다. 이런 점에서 물가 관리는 국민 행복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 과제다. 필자는 작년 8월, “물가상승, 민생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간 집권여당과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과일
지난 3월 8일부터 일주일간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는 열린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2024에서 ‘특이점이 온다’(2005)의 저자인 세계적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수준의 지능에 도달할 것이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즈 행사에서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의 발언도 유사한 맥락이었다. AI업계의 큰 손들은 이제 5년내 인공일반지능(AGI) 시대의 출현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른바 ‘특이점 시대’의 도래이다. 지난해 주목받던 생성형 AI에 관한 관심이 올해는 콘텐츠형 AI로 옮겨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전에 AI가 세상에 미칠 파급력을 예측하고 대응플랜을 짰다면 오후에는 플랜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특이점을 상상키도 전에 AI업계는 우리 일상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채비를 마친 듯하다. 3월 22일, 영국 기술매체 ‘The Register’는 1983년 ‘기술적 특이점’을 대중화한 SF작가 버너 빈지의 사망소식을 발빠르게 보도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는 세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많은 이들이 AI 관련주의 등락에 촉각을 세울 무렵, ‘새 시대’에 대한 북한
그는 독일에서 온 사람이었고, 우리는 분명 한국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어째서인지 한국의 개인정보보호 환경으로 옮겨갔고, 이내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해, 정부가 내외국인의 출입국 생체정보 약 1억 7000만 건을 당사자 동의 없이 민간 기업에 제공했던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며 마무리되었다. 놀란 표정으로 관련 뉴스를 찾아보던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독일이었으면 내각이 모두 사퇴했을 거예요…” 우리는 늘상 선택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나에게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묻는 것만큼 사안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질문도 드물다. 물 흐르듯, 어물쩍 결정되어버리는 사안이야말로 중요한 의제다. 내게는 왜 결정권이 없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지난 13일 통과된 EU 인공지능 법은 위험 정도에 따라 인공지능 서비스에 대한 규제 정도를 달리한다. 교육 분야 인공지능 서비스는 고위험으로 분류된다. 고위험 등급으로 분류된 인공지능 서비스는 높은 수준의 안전성과 정확도가 요구되며, 외부 감사를 위해 상세한 문서와 로그 기록 체계, 위험 최소화를 위한 안전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교육
인문학 수업 때였다. 요즘 젊은 학생들에게는 어떤 고민이 있는지 질문했다. 사람의 사는 모습은 서로 닮아있기에 20대 중반의 학생들 대답은 대동소이했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부터 현재 생활에 대한 것까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고민을 토로한 학생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아~나랑 비슷하네’를 연발했다. 각자의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였지만, 다른 듯 비슷한 서로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했다. 연신 끄덕거리며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모습은 지금까지의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와 위안을 느끼는 듯했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였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공감(Empathy, 共感)’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1975)는 ‘상대방의 삶에 들어가 상대의 깊은 의미를 감지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이해하고 마치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처럼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공감은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오늘도 어디선가에서 마음이 힘들었을 당신에게 누군가가 당신의 마
말은 사라진다. 반면에 글은 남는다. 말은 음성(소리)이어서 사라지고, 글은 문자(형태)이어서 남는다. 말이 존재하는 양식은 ‘사라짐의 양식’이고, 글이 존재하는 양식은 ‘보존됨의 양식’으로 구분되어왔다. 말은 사라지는 속성으로 인하여 그 존재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즉 말은 해버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금방 소멸한다는 현실 앞에 취약하다. 이것이 우리의 통념이었다. 말은 빅 히스토리(Big History) 차원에서 살펴봐야 할 정도로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사피엔스’의 진화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인지 혁명도 사피엔스가 말을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가능했다. 두텁고 오랜 말의 역사에 비하면, 글의 역사는 보잘것없다. 그런데 말이 있어서 글이 태어났다는 점을 우리는 놓친다. 말의 역동이 최고조에 달함으로써, 글을 탄생시킨다. 문명사회에서 글은 말을 주변으로 밀쳐내고, 지식과 문화를 거머쥐는 권력의 자리에 임한다. 말은 낮은 백성들의 세상 언저리를 지킬 뿐이었다. 말이 지니는 존재성의 취약함, 즉 말은 현실에서 금방 소멸한다는 점은 생각해 보면 숨은 함의가 많다. 이는 말의 위상을 거룩하게 만들기도 하고, 속되게 만들기도 한다. 유일신 종
돌이켜보면, 10대를 거쳐 20대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내가 어떤 일을 좋아 할지,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들보다 잘하는 일이 없었고 내게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한 정보도 없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적성에 맞는 진로를 상담해 주는 곳은 없었고 각자의 생존은 개인의 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청소년기에 직업을 선택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학교 성적에 따라 대학과 전공이 전해지고 그 선택은 한 사람의 인생을 규정짓는데 충분했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실업계로 불렸던 직업계고에 진학하거나 곧바로 직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막스 베버(Weber, M.)는 세속적인 직업노동이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소명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직업의식이 완전함을 추구하는 길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는 소가 웃을 일이다. 누구나 안정되고 좋아하는 직업을 가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노동은 신의 소명도 아니고 무간지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
며칠 전, 모 문화예술단체의 기념식에 초대받아 뜻있는 시간을 보냈다. 국기(國旗)에 대한 경례로 시작된 이 날의 국민의례는 약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애국가(愛國歌) 제창과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에 대한 묵념이 생략된 채 곧바로 정해진 자리에 앉아야 했다. COVID-19로 인해 5년 만에 재개된 기념행사라는 주최측 안내를 듣고 나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시작하는 애국가 1절은 불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개회선언, 내․외빈 소개, 축사, 환영사, 공로패 수여 등 족히 30분 이상 진행된 1부 행사에 경향 각지에서 온 500여 회원 청중들이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적극 호응하는 것을 볼 때 아쉬움은 더 컸다. 홀로 애국가 가사를 읇조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라는 구절에서는 가슴이 절로 뜨거워졌다. 예로부터 선열들은 나라사랑의 실천에 혼신(渾身)의 힘을 다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나라’는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집단. 국민·영토·주권의 3요소를 필요로 한다”로 정의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벌써 한의사로서 진료를 해온지가 20년이 넘어간다. 그 시간동안 의료인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반복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상세히 대답하기는 항상 진료시간이 짧다. 어떤 질문은 급격히 서구화된 문화로 인한 당연한 결과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정말 잘못 덧씌워진 이미지로 인한 질문도 있다. 한약과 간에 관한 질문도 그렇다. 지난 주말에 지인의 강력한 소개로 내원했다는 그는 한의원에서 치료받는게 처음이다. 애주가인 그는 불과 2개월여 전까지는 매일 술을 먹었는데, 최근에 너무 피로해져서 조금 줄였다고 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음주를 줄이고 식이요법을 권하며 에너지 회복을 위해 한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지지 않나요 괜찮나요" 하고 묻는다. 나는 술이 염려되는데 이분은 아닌가보다. 눈앞에 좋은 것이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드문일은 아니다. 이런 경우 한약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먼저 묻고 아는 범위를 바탕해서 대답한다. “한약이라고 하면 어떤게 떠오르세요. 한약이라고 생각되는걸 한 번 말해보세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도라지요” 한다. “맞아요. 도라지는 길경이라는 이름의 한약재예요. 또 어떤 것이
나이 들어도 젊어질 수 있는 역노화 시대가 우리 곁에 와 있다고 한다. 아주대 의대 연구팀은 최근 노인 장기조직에 ‘중간노화세포’라는 새로운 개념의 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여기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 다시 젊은 세포와 비슷한 기능으로 회복할 수 있음을 규명하였다. 중간노화세포의 기능회복으로 항노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하며, 그 내용은 2023년 11월 국제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 판에 발표되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질병의 일종이며, 그래서 치료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하버드 의대 유전학 교수이자 노화와 장수 분야 권위자인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가 자신의 25년 연구를 집대성한 저작에서 펼친 핵심 내용이다. 그 책이 2019년에 출간되자 도처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나라에는 그 다음해 '노화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고, 그 책에 소개된 소식,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이 유행처럼 번졌다. 생명 연장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연구와 저작은 의사,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그런데 투자전문가가 이 분야의 책을 내어 또 다른 주목을 받았으니, 2021년에 출간된 세르게이 영의 「역노화」가…
전라도 사투리다. ‘쌩’은 ‘생’의 된 발음으로 날것을 뜻한다. 익히지 않은 본연의 것. 가공하지 않은 본래의 것을 강조하고 싶을 때 첫머리에 붙여 썼다. 이를테면, 쌩고구마, 쌩밤, 쌩고기 하는 식이다. ‘가리’는 ‘가루’를 뜻한다. 사투리 그대로 옮겨 쓰면, 밀가리, 쌀가리, 보릿가리, 미숫가리가 된다. 한참동안 잊고 살았던 전라도 사투리를 다시 들은 건 땅끝 해남에서였다. 세 계절을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 보냈는데, 함께 살았던 작가들이 전라도 사투리의 달인이었다. 백련재에서의 하루는 “밥은 묵었소?”로 시작해서 “밸일 없지라?”로 끝났다. 소설 쓰는 이 선생은 완도가 고향이었고, 시 쓰는 박 선생은 광주가 고향이었다. 나 역시 장흥 태생이라 전라도 사투리에는 이골이 났는데, 셋이 모이면 쏟아지는 사투리로 푸지고 질펀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쌩가리였다. 이 선생의 입에서 나왔는지 박 선생의 말끝에 묻어나왔는지 기억은 없다. 처음 듣는 순간, ‘아, 이런 사투리가 있었지?’ 하고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랄까.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쌩가리에 얽힌 추억이 많다. 그중 하나가 전지분유다.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