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사회의 진보와 향상을 위한 진지한 첫걸음마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 주된 원인으로서 신앙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므로 신앙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가르침은 사회의 개선에 언제나 무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가르침이 훌륭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방식에는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훔친 불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니)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고 건강한 사회 기구를 위한 첫걸음은 언제나, 땅에 대한 당연하고 평등하며 빼앗을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물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럼으로써 그 밖의 모든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그 보장이 없는 한 다른 모든 것은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헨리 조지) 사회는 공통의 신앙과 공통의 목적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사회적인 활동은 종교에 의해서 성립된 원칙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마치니)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다. 어쩌면 “옛 성인들에게서 배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
1. 레토릭(rhetoric)은 ‘말과 글을 도구로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수사학자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레토릭은 B.C. 467년 시칠리아 시라큐스의 법정 변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레토릭은 양날의 칼이었다. 타당한 설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쓰이는 건강한 레토릭이 있다. 반면에 일그러진 언어로 진실을 왜곡하는 타락한 레토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정보기관은 작전 수행 시 의도치 않게 민간인이 사망하는 것을 “부수적 피해”라고 부른다. 가치판단을 말끔히 소거함으로써 현실의 참혹을 감추는 타락한 레토릭의 전형이다. 윤석열정부가 앞선 정부들과 크게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검사 출신들이 요직에 압도적으로 많이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압수수색 횟수 또한 역대 최고다. 과거에는 정치권 내부 공방에 불과했던 사안에 대하여 대통령실이 직접 형사고발을 한다. 법무부 장관이 (언론의 취재권리 억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자 접근 금지를 법원에 신청하기도 한다. 2.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차별점은 역시 기괴한 레토릭의 대잔치다.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바이든이 날리면” 소동은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독립운동은, 조국을 떠나 반제 해방 투쟁의 길로 나선 사람들과, 남아서 광복을 준비한 애국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수많은 동포들과 남은 가족들은 독립운동의 큰 뜻을 같이 하면서 극한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광복의 새날을 기다렸다. 따라서 광복 이후 세워져야 하는 민족 국가는 이들 독립운동가와, 그 뜻을 함께 하면서 독립투사들을 지원한 민중이 중심이 돼 건설돼야 마땅했다. 민족을 배반하여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부와 권력을 챙긴 친일세력은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것이 민족사적 正義였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반민족 행위자들이 외세의 힘을 빌어 해방 정국에서 패권을 이어가는 뒤틀린 역사가 펼쳐졌다. 외세의 한반도 분할 지배로 냉전이 시작되면서 이들의 득세에 유리한 정치 지형이 만들어진 결과다. 이 틈을 타 분단주의자인 이승만 세력은 이들 친일파와 손 잡고 미국의 비호 아래 나라를 결딴낸다. 전쟁의 여파로 더 깊은 분단의 수렁에 빠진 한반도는 오로지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전략에 따라 작동하는 반공독재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고 지금껏 분단세력이 `살아 있는 권력‘으로 이 땅을 호령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치안
인공지능(AI)이 기사를 쓴다는 건 알았다. 스포츠, 날씨, 증시 같은 분야로 한정해 있긴 해도 어느 쪽이 사람이 쓴 건지 구분 못 할 정도로 인정해 줄 만하다고 들었다. ‘로봇 기자’라고 불렀다. 로봇 기자가 단순 반복형 기사를 맡아 써준다면 인간 기자는 복잡하고 심층적인 뉴스에 전념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나왔다. ‘상대적 기대’지만 AI 기자가 인간 기자를 대체할 정도까진 다다르지 못했다고 평가했을 때 얘기다. 이번엔 좀 다르다. 오픈AI가 출시한 챗GPT는 출시 2개월 만에 1억 사용자를 돌파했다. 인공지능 챗봇이어서 이용자가 질문을 해야 답변한다는 한계가 있는데 인증 후기가 넘친다. 정치 연설문을 작성했다거나, 보도자료를 작성했다는 것들이다. 청년문제를 주제로 하는 기사 작성을 주문했더니 놀라움을 안겼다는 반응이 있고, “챗GPT에게 기후위기를 물었다”, “챗GPT가 작성한 여론조사 분석기사”라는 뉴스도 등장했다. 과학분야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은 챗GPT로 작성한 논문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덕분에 전문성과 숙련성이 필요한 문서 작업도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근거가 생긴…
어떤 사람이 죽어서 그 영혼이 하늘나라에 이르자, 그 앞에 온몸이 고름투성이에 추악하고 더럽고 소름이 끼치는 여자가 나타났다. “너는 도대체 누군데 내 앞에 나타나 내 길을 막느냐?” “나는 너의 행실이다.” (페르시아 속담) 중요한 것은 선한 행실에 대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탈무드) 착한 일을 하고, 자비롭고, 온화하고 겸손하며, 좋은 말을 하고, 선한 일을 생각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항상 배우며, 항상 진실을 말하고, 분노를 억제하고, 만족을 알고 인내심이 강하며, 친절하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와 스승을 존경하는 사람, 이들은 모두 선인의 벗이요 악인들의 적이다. 거짓을 말하고, 훔치고, 음란하고, 속이고 욕하고, 악한 일을 생각하고, 오만하고 게으르며, 이웃을 중상하고, 인색하고 무례하며, 파렴치하고, 화를 잘 내고, 남의 것을 가로채며, 복수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질투심이 강하며, 미신에 빠지는 사람, 이들은 모두 악인의 벗이요, 선인들의 적이다. (페르시아의 교리문답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말라. 왜냐하면 죽음은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불쑥 찾아오기 때문이다. 네가 이 세상
사회적경제의 지역 생태계 조성의 일환으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공동으로 사업을 개발하고 수행하는 사업연합 비즈니스모델이 전략사업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사업을 협력하여 발굴하고 공동으로 수주하기도 하며 상호거래 활성화와 사업성과를 위해 온라인 몰 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사회적경제에서의 협력과 연대는 상품이나 제품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향후, 헬스케어와 같은 서비스 분야에서도 활발한 사업연대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협력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지속 가능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개발이 필요하며 조직 및 사업 활동이 활발한 사업연합 방식으로 비즈니스 활성화를 모색함으로써 사업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헬스케어 사업 부문에서의 사업연합은 헬스케어 기기와 정보통신시스템의 연계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 간병인, 간병 보험 등의 이슈 속에서도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는 돌봄사업과의 연대가 필요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체계 구축과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당국, 의료계와 서비스 이용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 과정 또한 필요하다. 건강정보의 수집과 인공지능(AI) 분석 확대 등으로 가까운 미래에 디지털…
“아름다운 밤, 오~ 사랑의 밤. 오~ 사랑의 아름다운 밤이여!” 미녀 쥘리에타와 그녀를 마중 나온 니클라우스의 2중창. 애틋하고 달콤한 이 노래는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그 유명한 호프만의 뱃노래다. 주인공 호프만은 세 명의 여성과 비극적 사랑을 나눈다. 무대는 베네치아. 대운하의 물결 위로 곤돌라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사랑의 밤은 시작된다. 오펜바흐는 베네치아를 항해하는 곤돌라의 정겨운 풍경을 보고 이 곡을 작곡했다. 틀을 깬 천재 작곡가 오펜바흐. 1819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프랑스인으로 살다 파리 몽마르트르에 묻혔다. 오펜바흐가 프랑스인이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이삭 쥐다 오펜바흐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유대인 음악가였던 쥐다는 바이올린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아들을 파리 음악학원에 입학시켰다. 하지만 자크는 1년도 못돼 학교를 팽개치고 나와 파리 오페라 코미크 단원이 됐다. 이때 짤막한 메들리를 작곡해 인정을 받았고, 코메디 프랑세즈의 단장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5년 만에 여기도 청산하고 손수 극장을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 희가극과 오페레타를 처음으로 고안해 냈다. 그가 명성을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참담함을 넘어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여기저기 신문에 칼럼이랍시고 잡문을 끄적이면서도 ‘이런 글이 세상에 어떤 보탬이 되는가’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속칭 ‘검사정권’, ‘검찰왕국’ 치하에서 살아내기가 여간하지 않은 탓이다. 자기들만 가장 똑똑하고 정의로운 초엘리트집단이라 여기며 전횡을 휘두르는 형세는 그래, 집권했으니 권력놀이 한다고 치자. 또 정적제거에만 혈안이 된, 차마 두 눈뜨고 못봐줄 국내정치는 차라리 눈감으면 된다고 여기자. 그런데 3.1절 기념식에서 일제강점도 우리 탓이요, 침략자들은 이제 글로벌 협력파트너가 되었다고 하는데서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버렸다. 허나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강제징용배상문제마저 우리 기업 돈 걷어서 해결하겠다니 도대체 대한민국에 주권이 있기나 한 것인지 분노를 넘어서 부끄럽기가 이를데 없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에 국권찬탈을 항의하는 불길이 타오르자 조약체결을 이끌었던 학부대신 이완용은 고종에게 올린 상소에서 이런 망발을 지껄였다. “독립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는 안전하고 황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요즘 북한 김정은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말이 많다. 집권 초기에 인민 생활을 강조하면서 개방의 길로 가는 듯 하다가 지금은 국가와 이념 중심, 사상 통제에 전체주의 폭군으로 변화하였고 이례적으로 둘째 딸 김주애를 군사 및 경제 행사에 대동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김정은 행보에 대해서는 김정은 자신만이 의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를 포함한 국제 사회 당국과 전문가들은 정황상 추정에 의존하여 일종의 논픽션 소설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기대했던 기대하지 않았든 간에 국제사회 관심을 끌면서 여기에 더해 북한 비핵화 집중도 약화라는 효과를 얻고 있다. 즉, 국내외 언론에서 김주애가 과연 4대째 세습을 할 수 있을지, 남성위주의 동양 문화에서 과연 여성이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김주애 오빠가 있는지 없는지 이런 등등의 추측성 보도가 이어져 정작 중요한 북한 핵문제 심각성 그리고 어떻게 북한을 비핵화 시켜야 할지에 대한 언론 보도가 눈에띄게 줄어 들었다. 물론 비록 언론에 자주 노출되진 않더라도 북한 비핵화 관련해서는 한미를 포함하는 국제사회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나름의 해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
윤 대통령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두고 국내가 매우 시끄럽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계묘늑약”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난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다수의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이런 해법에 동의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필자도 이번 해법은 매우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 모두는 지지율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 지지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지지율은 곧 자신의 정치 행위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모든 대통령들은 지지율에 “일희 일비“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더욱 그럴 것이다. 여당이 국회에서 소수당이기 때문에, 자신이 의지할 곳이란 여론의 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룬 것도 지지율 관리 측면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발표했으니, 그 이유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윤 대통령의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라는 언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