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는 예부터 그 독특한 향기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식물이다. 따라서 부르는 이름도 주로 향기와 관련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향기가 있는 꽃이나 식물의 표상이라고 해서 국향(國香)·제일향(第一香)·왕자향(王子香)·향조(香祖) 등으로 불렀다. 이름에서 풍기는 의미가 향(香) 중 으뜸이라 느끼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이러한 향의 난초사랑이 유별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시도 남겼다. ‘풀이 되려거든 난초가 되고 爲草當作蘭/나무가 되려거든 솔이 되려므나 爲木當作松/난초는 그윽하여 향풍이 멀리 가고 蘭幽香風遠/솔은 추워도 그 모습을 아니 바꾸나니 松寒不改容’. 줄기와 잎은 청초하고 향기가 그윽하며, 어딘지 모르게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범상치 않는 기품을 지니고 있다 해서 난초를 군자나 고고한 선비에 비유한다. 난초를 군자의 상징으로 여긴 것은 공자 덕분이다. 공자 역시 군자의 상징을 난초 향에 비유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난초는 깊은 숲속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고 설파한 게 그것이다. 주
도플갱어 /이숙이 네가 누구냐……? 내가 알고 있던 평소 내가 아니다 무슨 근거로 거울을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대답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다 거울은 고집과 아집으로 굳어진 관념 덩어리 너의 진실은 어디 있는가? 어떤 논리가 거울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거대한 용트림을 한다 혹시 사악한 내면이 뿔 달린 악마로 나타나지 않을까 너의 그 잔혹한 법칙에 길들여진 무성한 핏발이 가지를 뻗어 파고 든다 내가 정말 나인지 내가 누구인지 혼절해버릴 것 같다 두렵다 아침저녁 매일 보는 또 다른 나를 난 믿지 않는다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내가 바라는 내가 아니거든. -이숙이 시집 ‘누가 시간 좀 빌려 주세요’ 내가 모르는 내 안의 나를 볼 때가 있다. 평소의 내가 아닌 내가 내뱉는 말과 행동은 참 낯설다. 내 안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참고 참아야 할 일이 많다. 그때마다 적절히 분출하지 못한 감정은 내 안에 층층이 쌓이는 찌꺼기로 남는다. 그것은 바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더 크게 느끼는 두려움이다.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랑과 보호 속에 건강하게 자라나야할 아동이 학대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루속히 근절되어야 한다. 당국의 철저한 예방과 강력한 처벌이 절실하다. 정부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특례법을 제정하였으나 홍보부족의 이유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는 어린이의 행복과 안녕을 저해하는 모든 종류의 신체적·정신적·성적 공격과 방임을 의미한다. 2013년 8월에 발생한 칠곡 계모 사건과 10월에 발생한 울산 계모 사건으로 인해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를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는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과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처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정부와 국회는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근절을 위해 특례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가정에서의 아동학대나 보육시설의 아동학대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에 인천 11세 소녀 학대 사건과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 훼손 사건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법이 시행된 지 1년 4개월이 넘은 아동학대처벌법이 일선 현장에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어 대안마련이 절실하다. 53년간 시행된
오산시 지곶동 산155 일대 독산에 위치하고 있는 독산성과 오산시 궐리동 궐리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독산성은 전형적 모습의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백제 온조왕(BC 8)때 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지하다시피 임진왜란 때인 1593년 권율장군이 산꼭대기에서 흰 쌀을 말에 끼얹어 이를 물로 오인한 왜군이 퇴각했다고 해서 ‘세마대’로도 불린다. 임란 이후 돌로 성을 다시 쌓았으며 정조대왕은 수원 화산릉 행차 시 독산성에 들러 마을 노인들을 위로하고 활도 쏘았다. 궐리사는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공서린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들에게 강의를 하였던 곳으로 1792년 정조가 이곳에 사당을 짓게 했다.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게 하고 공자가 살던 곡부의 궐리라는 곳의 지명을 본뜬 ‘궐리사’라는 편액을 내렸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매년 봄·가을 지역의 유림들이 엄격한 제례에 의해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러니까 독산성과 궐리사는 정조대왕과 연관이 깊은 곳이다. 정조대왕의 뜻에 의해 축성된 수원시의 화성이 이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데다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성왕릉 40기 중엔 화성시 융릉·건릉도 포함돼 있다. 여기에 더해 오산시
응급실에 오랜 세월 근무하다가 보면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술먹고 싸워서 다쳐온 환자, 음주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온 환자, 암 진단받고 나서 모든 희망을 버리고 체념하면서 죽을 날만 바라보는 환자, 마약이나 술에 중독되어 고래고래 소리치는 환자 등 많은 환자를 보아 왔지만,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환자는 태어나서 인생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영아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죽은 영아를 안고 통곡하는 엄마를 볼 때 마치 내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은 생각이 들곤한다. 내가 경험했던 일로 지금도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영아 엄마의 얼굴이 생각나 소개하고자 한다. 새벽 3시경, 2개월된 남아 환아를 이불보로 감싼 채 아이 엄마가 울면서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급히 이불보를 제치고 환아를 보니 이미 온 몸은 핏기가 전혀 없었다. 또한 청진상 호흡음이나 심박동은 들리지 않았으며, 맥박도 전혀 만져지지 않았고, 불빛에 의한 동공 반사도 전혀 없었다. 우는 엄마를 달래가며 아기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니 그 전날 잠들 때까지 건강하였으며, 우유도 잘먹고 자서 아무 걱정없이 엄마도 깊게 잠들었다가, 깨어 아가를 보니 호흡이 없으면서 온몸에 핏기가 없어 응급실로
‘병치레 하지 말고 신바람 나게 사는 해가 되길….’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새해 덕담을 나눈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하고도 사흘이다. 만물이 얼어붙고 매서운 찬바람이 기승을 부린 깊은 겨울 한가운데에서 그 새 입춘을 맞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시일이 빨리 지나가며 계절 또한 한 발 앞서는 것 같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라고 했던 속담이 요즘 같으면 실감난다. 연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빛은 보이지 않고 덩달아 마음속 겨울도 녹을 기미가 없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금세 녹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세월이란 본디 멈춤을 허락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조만간 ‘어느 틈엔가 마음속에 살포시 들어앉는 사랑’처럼 봄도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올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마음은 왠지 무겁다. 가슴속 묵은 먼지들을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시절을 맞으려 해도 쉽지 않아서다. 우선 코앞으로 다가온 설이 먼저 마음을 짓누른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례행사인데도 다가오는 무게감이 영 가벼워지질 않는다. 모레부터 시작되는 연휴도 달갑지…
클라우디 /최세라 때로는 구름 아래 서 있고 가끔은 구름 없이 누웠다. 통이 점점 넓어지는 바지를 입는 날이 많았다. 인파 속에서 너를 찾듯이 까치발 섰다. 내일 질 꽃이 가장 아름다웠다. 바깥의 가식으로부터 안쪽의 가식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지만 볶은 콩과 날콩을 분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눕히면 눈동자가 흔들리는 인형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는 되고 싶었다. 어제의 기분이 엉겨 붙을 땐 홑청 같은 나비 떼를 날리라고 배웠다. 아무에게도 그날의 행방에 대해 묻지 말라고 배웠다 오늘의 기분은 4그램 한 근을 맞추기 위해 고깃덩이에서 떼어낸 자투리 구름 - 웹진 ‘시인광장’ 2015년 8월호 발췌 클라우디는 사전적 의미로 ‘흐린, 구름이 잔뜩 낀, 탁한’이고 와인에서 부유물이 많을 때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시에서 너무 지나친 상상력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주거나 불쾌감을 던져 준다. 시를 어렵게 하고 객관성과 보편성을 얻기 어려워 버려진 시가 된다. 그러나 클라우디 시는 상상력이 발랄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큼함을 느끼게 한다. 전혀 흐리거나 혼탁하지 않아 클라우디 대한 반어법 같아 더 큰 매력
루마니아의 베가강가에 티미소아라란 도시가 있다. 그 도시 중앙에 있는 산책로에 4개 국어로 된 팻말이 세워져 있다. “바로 이곳에서 한 독재자를 쓰러뜨린 위대한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 독재자는 차우세스큐를 말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루마니아를 침공하엿을 때에 루마니아 안의 공산주의자는 일천명이 되지 못하였다. 그들 중에 구두 만드는 직공이었던 니콜 차우세스큐란 젊은이가 있었다. 전쟁 중에는 줄곧 교도소에 있다가 전쟁이 끝나자 석방되었고 이어 공산청년동맹의 비서로 임명되었다. 그때부터 소련을 등에 업은 그는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로 인하여 수백만의 지식인 학생 종교인들이 투옥되었고 그중 많은 수가 옥중에서 죽었다. 드디어 최고 권력자가 된 그는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의 통치술에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고 귀국 후 루마니아를 북한체제처럼 만들어 가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의 권력기반은 영구불변한 반석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차우세스큐 정권이 무너지리란 것을 상상조차 못하였다. 그러나 1989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차우세스큐 정권은 갑자기 허물어졌다. 그와 그의 부인은 분노한
수원시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난달 29일 낸 성명을 두고 지역 사회가 시끄럽다. 새누리당 시의원들은 ‘염태영 수원시장은 국토부 시절 비리 의혹으로 징계를 받자 스스로 옷을 벗은 인물에 대한 부시장 임명을 철회하고 시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원시가 신임 부시장을 선임하기 위해 비위공직자의 취업제한을 명시한 관련법률 조항을 삭제한 내용의 임용공고문을 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청렴도시 수원의 120만 시민과 3천여 공직자의 명예에 먹칠을 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수원시가 발끈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는 ‘전형적인 흠집 내기이자 총선을 겨냥한 정치공세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는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도태호 수원시 제2부시장을 비리인물로 규정하고 임명을 철회하라는 새누리당 시의원들의 주장에 ‘도 제2부시장은 경징계 처분 뒤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용퇴했고, 정부의 인사검증을 통해 작년 7월부터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했다’ ‘민생안정에 주력하고 있는 수원시정에 대한 근거 없는 정치공세를 당장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특히 임용 전 법제처와 경기도, 경찰서 등의 비위
서향각은 1776년 정조가 즉위하면서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 등 왕실의 연구도서관 단지를 조성하면서 여러 시설의 중 하나로 포쇄(종이류의 책을 햇빛에 말리거나 바람을 쐬는 일)를 주관하는 건물로 건립되었다. 당시 이곳에 많은 건물이 건축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이유로 인해 없어지고 주합루와 서향각만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이 두 건물도 비공개 시설로 분류되어 인적이 닿지 않고 사진의 배경 장소로만 활용되고 있다. ‘책의 향기가 나는 곳’의 이름을 가진 서향각의 내력을 살펴보면, 창건 시기에는 왕실 관련 책들의 포쇄를 위한 건물로 건립되었지만 포쇄는 항상 하는 것이 아니므로 평상시에는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던 것 같다. 규장각을 건립(1776년)한 후 정조는 자주 찾아와 규장각 각신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격려하였고 만나는 장소는 주로 서향각에서 이루어졌다. 그만큼 서향각이 편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장각의 역할이 커져 1781년 금호문의 근처로 이전하게 된다. 규장각이 이전한 후 조용해진 후원의 이곳은 왕실연구기관 용도보다는 포쇄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순조 3년(1803) 인정전의 화재 발생 시기에는 선원전의 어진을 이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