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가 소설(小雪)이었다. 24절기 중 어느덧 스무 번째 절기가 지났으니 시간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섬뜩한 느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심정을 파고들지 않을까 싶다. 나만 그럴까. 아니다. 이즈음을 지나며 느끼는 소회는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것 같다. 모두가 인생의 어느 한순간을 그토록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도 이 같은 세월의 무상함 때문이 아닐까. 우리보다 훨씬 일찍 이 문제를 고민한 사람이 있다. 지혜의 왕이라 불렸던 솔로몬이다. 부와 명예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가져 봤지만 결국 인생의 석양 앞에서 회한에 가득 차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나 ‘가는 세월’만 탓하고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시인 도종환은 떨어진 잎은 다음 해 봄을 예약하고, 흐르는 물은 바다를 향한다고 하면서 인생의 어느 한 시점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라고 표현했다.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진달래 꽃잎은 착 달라붙어 /박정남 손가락으로 아무리 입술을 문대어도 떨어지지 않을 꽃잎 하나 진달래 꽃잎은 너무 진하고 얇아 네 입술에 붙어 오래 떨어지지 않는다 네 입술은 진달래 꽃잎이 떨어져 잠든 깊은 바다 진달래 꽃잎은 물에 떠가면서도 물결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에도 다시는 날아가지 않을 듯이 그 떨어진 자리에 고즈넉이 엎드려 있다 - 박정남 시집 ‘꽃을 물었다’ / 시인동네시인선 진달래 꽃잎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두께는 얇고 빛깔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 여리고 애틋한 것이 떨어져 어딘가 착 달라붙고 나면 어지간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진달래빛 입술의 꼭 다문 형상과 닮았다. 입술이 물고 있는 궁금한 이야기처럼. 진달래꽃잎을 보면 저마다의 환상 속으로 당겨오는 것이 있다. 진달래 꽃잎 하나가 피어나고 바람에 흔들리고 영원할 것 같은 그 흔들림이 결국 떨어지는 일, 그리고 떨어진 그 자리에 착 달라붙어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을 듯이 고즈넉이 엎드려 있는 풍경, 마치 우리네 삶을 바라보듯 저릿해 온다. /이미산 시인
온도계가 맞기 한데 참 이상한 온도계다. 겨울이 깊어 가고 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온도계의 눈금은 더 올라간다. 온도탑의 눈금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가슴도 덩달아 훈훈해진다. 바로 매년 연말이면 구세군 냄비와 함께 등장하는 ‘사랑의 온도탑’이다. 사랑의 온도탑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치하는 것으로 사랑의 열매, 사랑의 ARS 전화 모금 등 각종 모금을 합쳐 성금 온도를 표시한다. 즉 나눔 캠페인 기간 중 모금 목표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 모금되면 온도가 1도씩 상승한다. 당초 목표액이 달성되면 100도까지 올라간다. 사랑의 온도탑은 이제 우리 사회의 온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려주는 아이콘으로 정착됐다.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국민적 특성으로 대부분 100도를 넘겼다. 그러나 지난겨울은 모금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데다가 세월호 참사 여파 때문이었다. 게다가 연말정산 세금폭탄, 담뱃값 인상으로 예년과 다르게 이웃사랑의 수은주는 좀처럼 상승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부 지자체는 마감 때까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 피해는 홀로 사는 노인, 소녀소녀가장, 저소득가정과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 수용자들에게 돌아간다. 더 추운…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즉위 후, 본인이 영조의 적통(嫡統)임을 나타내려는 방안으로 영조의 어제각(御製閣)인 주합루(宙合樓)를 가장 먼저 건축하였다. 사묘건축의 대표인 종묘는 1층이지만 모두 원기둥이며 공포는 일출목 이익공으로 위계가 어느 정도 높은 편이다. 한편 주합루는 중층이지만 외부에 각기둥을 사용하고 공포는 출목 없이 처리하여 검약하게 보이고 있다. 전편에 이어 주합루만의 재미있는 점들을 찾아보자. 기둥=통재기둥(通材柱-1층에서 2층까지 하나의 부재로 된 기둥)을 사용한 것이 매우 특이하다. 보통 중층건물 내부공간에 층(層)구분이 없는 경우에는 내부기둥을 한 부재의 기둥을 사용하지만, 2층에 바닥이 있는 경우에는 층별로 별도의 기둥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재기둥이 구조적으로 유리한 것은 알지만, 이렇게 길고 큰 나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합루에서는 30개의 모든 기둥을 통재기둥으로 사용하고 있어 외관적으로는 검약하게 보이나 많은 공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난간=난간의 사용기법도 특이하다. 보통 난간의 위치는 기둥의 선(線)보다 외부로 더 돌출되어 설치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기둥과 같은 선(線)에 설치되어 난
경기도내 유치원과 특수학교를 포함한 초·중·고 각급학교의 60%가 석면 마감재로 건축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아직도 손을 놓고 있다. 학교 석면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4년 가까이 지났지만 석면 제거는 냉·난방기 공사, 화장실 개선사업 등 학교시설 개선공사 때 동반되는 공정으로 제한적으로 진행됐다. 어떻게 보면 석면제거 공사가 이들 학교시설 개선공사보다 우선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지난 2013년부터 올해까지 3년째 석면 제거에 투입한 예산은 728개교(18만2천㎡) 56억6천만원에 불과하다. 경기도교육청이 도의회 최종환 의원에게 제출한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4월까지 도내 4천565개교(분교장 포함) 가운데 석면 마감재로 건축된 학교는 59.5%인 2천716개교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이들 학교의 석면 시공 면적만도 891만㎡(269만평)에 이른다. 이를 모두 제거하려면 8천800억원의 예산이 든다. 최 의원의 분석으로는 지금과 같은 석면제거예산투입 속도로 봤을 때 학교석면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461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석면문제가 지적됐을 때만 해도 연차적으로 제거하겠다고 대답만 했다. 석면이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
회한과 분노를 못 이겨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는 고흐의 일화는 예술과 광기의 섬뜩한 관계를 일깨워준다. 고흐의 광기는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어서 ‘까마귀가 있는 밀밭’이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작품들은 누구하나 없는 적막한 풍경을 그렸지만, 캔버스는 이글거리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허공은 대기의 흐름도, 바람도 아닌 기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가득 차 있고, 까마귀들이 날고 있는 밀밭이나 캔버스를 수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나무, 산과 집들도 진짜로 꿈틀대고 있는 것처럼 매우 역동적이다. 두 작품은 각각 1890년과 1889년에 완성된 것으로 이 시기는 고흐가 자살 직전 샹레미 정신병원에 머물렀을 때였고, 이 시기의 다른 작품들도 이처럼 우울과 광적인 에너지를 잔뜩 머금고 있다. 고흐 말고도 뭉크, 달리, 카라바조, 피카소 역시 우울과 광기를 지녔던 예술가들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견디기 힘든 생의 비극들을 겪기도 했지만, 어쩌면 예술이라는 인간의 활동자체가 광기와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진짜 정신질환자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이들도 있다. 이들은 살면서 한 번도 미술교육을 받은…
서양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굴을 먹어라, 그럼 더 오래 사랑 하리라(Eat oyster, love longer)’ 굴과 정력의 상관관계는 의학적으로도 오래전 증명된바 있다. 굴에는 칼슘뿐 아니라 다른 식품에 비해 아연이 풍부하다. 그리고 아연의 역할을 알고 나면 곧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력이 세다는 것은 ‘정자가 왕성히 만들어 진다’는 말과도 같다. 아연은 정자를 만드는데 절대 필요한 요소다. 굴이 바로 이런 아연의 보고(寶庫)니 사랑과 어찌 관계가 없겠는가. 하루 굴을 50개이상 즐겼다는 전설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그보다 세 배나 되는 굴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굴을 꼭 챙겨먹었으며 고대 로마의 황제들도 굴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다. 굴이 남성들의 원기를 높여준다는 사실, 오래전부터 잘 알려졌던 모양이다. 날것을 잘 먹지 않는 서양서도 예부터 굴만은 생식으로 즐긴다. 보통 9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나는 굴을 제철 음식으로 친다. 그들이 기준으로 삼는 것은 월을 지칭하는 영문표기에 알파벳 ‘R’이 들어가는 달에 굴을 먹어야 제 맛 이라는 논리다. 봄에서 여름까지가 산란기여서…
paul /김명철 오랜 시간을 맑게 살아내고 있는 사랑의 뒷모습 투명한 무늬의 그림자가 뒤를 따르는 사랑의 뒷모습 똑같은 일을 똑같은 동작으로 해내고 있는 사람 공장 철문 옆 기름때 닦여진 나사더미에 사랑은 쌓이고 기름때 묻은 손과 발에도 모자도 없는 머리 위에도 - 시집 ‘바람의 기원’ /실천문학·20015 경건함이란 어떤 모습일까?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선뜻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변함없이 똑같은 일을 똑같은 동작으로 오래 해내는 사람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도 남들이 다 기피하는 하찮은 일을 아무런 불평 없이 오래 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동은 정신을 정화한다는 의미에서 오랜 시간을 맑게 산 탓에 그림자도 투명한 그런 사람을, ‘사도 바울’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사람, 우리는 그를 성자라 불러도 될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최기순 시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한국 민주화의 상징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자정께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투병생활을 수 년 간 해오면서도 최근까지 여야와 국민의 화합을 강조하며 작금의 정치상황에 안타까워했던 분이다. 누구나 한번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이치이지만 그가 이 땅에 남긴 정치사적 의미는 대단한 것이어서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매우 큰 충격을 받고 비통해했다고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로써 2009년 노무현 김대중 등 대한민국의 두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잃은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마저 영면했다. 정치인 김영삼은 암울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온 몸으로 권위주의와 독재에 항거하며 늘 민주화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고 최초의 문민정부를 탄생시켜 이땅에 항구적인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정치 풍운아였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군부내에서 정치집단화한 ‘하나회’의 싹을 완전히 도려냄으로써 정치군인들이 발딛고 섰던 토대를 허물어 내고 이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진 민주정부의 초석을 깔았다. 경제분야에서는 전격적인 금융실명제를 발표하여 경제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한계에 다다른 관주도, 국
참 신선한 행사다. 연천군 DMZ 일원서 열린 ‘나라사랑 DMZ체험캠핑’ 이야기다. DMZ에서 캠핑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했다. 올해가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고 민족이 얼싸안고 잘 살아갈 줄 알았는데 열강들에 의해 남북이 분단됐다. 이어 북한의 남침으로 동족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비극 6.25 전쟁이 발발했다. 3·8선은 휴전선으로 바뀌고 우리는 아직도 분단의 비극 속에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 휴전선 남북으로 비무장지대 DMZ가 형성돼 있다. 이곳에서 20일부터 22일까지 2박 3일간 ‘나라사랑 DMZ체험캠핑’이 열린 것이다. 분단 비극을 품은 정소이긴 하지만 그래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DMZ가 품은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경기도와 연천군이 주최하고 경기관광공사가 주관한 행사로서 경기북부지역의 체류관광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른바 공정캠핑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400여명의 캠퍼들은 현지 상점을 이용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DMZ일대의 자연·역사·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DMZ 관광도 접목했다. 주상절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