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데,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고교시절 배웠던 이조년(李兆年)의 시 다정가((多情歌)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중년이상이면 누구나 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 난 이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험을 대비해 필수적으로 외웠을 뿐 배꽃 피는 시기에 대한 추억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서다. 처음엔 안 그랬다. 시골서 과수원을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흰 배꽃의 기억은 그 야말로 환상 이었다. 배꽃이 만발할 무렵이면 온 천지가 새하얗게 변하는 풍경 때문 이었다. 더군다나 달빛까지 내리는 저녁이면 눈꽃이 핀 것처럼 아름다워 어린 나이에도 감탄이 절로 나오기 일쑤 였다. 아마 중학교때 까지 였을것이다. 유학 이랍시고 서울서 학교를 다닌 덕분에 주말이면 간혹 집으로 내려와 느끼는 감정 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시골집에 간다면 학교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낭만과 목가적인 전원의 풍경을 애기하는 친구들의 말을 우쭐하는 폼으로 들어주던 그때. 바로 요즘과 같은 시기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들어가
두꺼비 /이능표 개똥 치우는 나를 두꺼비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시 노려보다가 달려들어 부삽으로 떠서 담장 밖으로 내던진다. 해 짧은 가을 날 개똥을 치우다 말고 물끄러미 밖을 내다본다. 두꺼비가 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듯 멀뚱멀뚱 바라본다. - 이능표 시집 『슬픈 암살』/북인 생태계의 오염도를 측정하는 자연생물들이 많이 있다. 그중 두꺼비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뜻있는 사람들이 생태 복원을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생물이 살 수 없는 자연이라면 인간들이 터 잡고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시에서처럼 단지 몇 년 전만 해도 두꺼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비가 온 뒤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두꺼비는 반갑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는 좀체 볼 수가 없으니 자연의 오염 정도는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고 다 같이 정화작업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성향숙 시인
안타깝게도 아직 ‘용인’이라는 지명을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난개발’ ‘경전철’ ‘인사부조리’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 중 난개발문제는 용인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난개발이 시작된 이후 전국의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학계, 그리고 일부 지자체에서도 용인을 벤치마킹했는데 그 벤치마킹 대상이 긍정적인 정책이 아니라 바로 난개발이었다고 한다. ‘우린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수치스런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용인난개발 문제는 도시계획 등 학계의 연구과제로 채택이 되고 논문도 많이 나왔다. 용인 난개발 문제가 초래된 것은 계획성 없이 단순히 주택공급을 확대했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생활권 배분 인구에 의거한 도시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주택사업을 승인했어야 하는데 적정수준의 기반시설을 배제한 것이 난개발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는 관공서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거버넌스가 구축됐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또 용인에서 난개발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용인시의회가 최근 ‘개발행위허가와 경사도 완화’를 담은 ‘용인시 도시계획조례 일부 개정조례안’을 원안 통과시켜 난개발 현실화가 우려된다. 이에 용인
경기 인천 지역 아동 인구 감소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인지방통계청의 ‘최근 10년 어린이통계 조사’ 결과 지난해 경기도 유소년부양비(인구 100명당 11세 이하 아동 비율)는 21.3명으로 10년 전보다 32%나 감소했다. 인천도 마찬가지다. 전국평균은 19.3명으로 10년 전보다 29%, 서울은 29%씩 각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이미 2차 세계대전 이후 젊은 층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우리와 일본 모두 미래 경쟁력 대비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이 같은 아동인구 감소는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체 인구에서 11세 이하 아동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8년 17.5%에서 6년만인 2014년 12.2%로 5.3%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신생아의 감소다.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가 8.6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지난 1970년 통계작성 이후 최저치다. 출산율도 1.19명으로 전년보다 줄었다. 통계청의 ‘2013년 출생 사망통계 수치’에 따르면 태어난 아이는 43만6천600명 수준이다. 전년(48만4천600명)보다 4만8천명(9.9%)이 감소했다. 경기도의
금년 봄에는 경기지역 학계에 두 가지 의미 있는 일이 발생하였다. 하나는 경기지역을 연구하는 경기학회가 창립된 일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문화재단이 경기학연구팀을 경기학연구센터로 그 위상을 승격시켜 경기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선 일이다. 경기학회는 대학 교수와 정부기관의 연구자, 기업의 역사문화 콘텐츠 개발자, 그리고 언론인 150여 명이 참여하여 만든 학회이다. 경기학 연구센터는 경기학을 연구하고,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콘텐츠를 만든 일 두 가지를 하는 기관으로 이해된다. 지역에서는 이 두 조직이 출범한 것을 보고 경기지역학 연구가 이전보다 훨씬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경기 지역학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그 역사는 조선시대 읍지 편찬까지 올라간다. 해방 이후 경기 지역학 연구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전개된다. 하나는 연구자들이 자생적으로 학회를 만들어 연구하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역학을 연구하고 그 성과물을 생산하는 흐름이다. 해방 이후 경기도는 매우 인상적인 지역학 편찬사업을 한 바 있다. 6·25 전쟁 직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 ‘경기도지’ 3권
아무리 기다려도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 있다. 어느 봄인들 그들의 만남을 허락했을까? 봄을 알리던 목련이 쓸쓸히 떠난 자리를 벌써 초록이 넉넉히 덮어주고 있다. 개동백도 그렇게 끝없는 기다림을 이어가던 끝에 사라졌다. 개나리 숲이 노란 꽃으로만 살더니 어느새 연둣빛 새싹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고 서로 엇비슷하게 어울려 보란 듯이 봄을 만끽한다. 대개의 식물들이 잎이 먼저 나와 꽃을 기다리고 꽃이 진 뒤에도 의연하게 한 해를 산다. 잎만 무성하거나 꽃만 있어도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꽃과 잎이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가 보는 사람에게도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우리 집에 자주 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늘 하시는 말씀이 정해져 있다. 언제나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내용을 외운지 오래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참 의연하시고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고 트인 분이라고 느끼지만 만남이 횟수를 반복하다보면 점점 식상하고 나중에는 슬슬 자리를 피하고 만다. 연세도 한 해에 두 살씩 드시더니 이제는 며칠 전에 여든 여덟이라고 하시던 분이 갑자기 구십에 잠깐 점을 찍고 바로 구십 넷이라고 하신다. 아무나 한 번 눈만 마주치면 나는 아들 딸 여섯인데 자식들에게
유교에서는 근본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열약한 기반 위에서 왕위에 오른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의 명예회복이 중요한 정책일 수밖에 없었다. 사도세자의 성화사업(聖化事業)은 재위기간 전반에 걸쳐 시행되었다. 사자(死者)의 명예를 높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혼백을 모시는 건축의 성역화인데 정조 역시 여기에 엄청난 공력을 쏟아낸다. 혼(魂)을 모시는 사당 묘(廟)건축은 종묘에 버금가는 경모궁을 건축하였고 백(魄)을 모시는 무덤 묘(墓)건축은 최고의 명당을 찾아 천장(遷葬)하였다. 그 곳이 수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이미 도시가 형성되어 있어 이를 이전하는 대역사를 하게 된다. 그 결과가 화성이며 과학적이며 경제적인 신도시가 된다. 이 도시는 현대에 와서 그 위대함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정조이후 화성은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고 현황만 유지하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쇠락기를 겪게 된다. 특히 이시기에 행궁영역은 다른 용도로 변경되어 건물들이 철거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에 성곽시설들은 대부분 소실되고 그 위용을 잃어버린다. 1970년대 박정희대통령은 ‘국방유적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수원화성도 복원정비를 하였다. 복원을 할
‘데이브 램지’는 미국인에게 가장 신뢰받는 강사 중 한 명이다. 그의 강의는 미 전역 500여개 방송국을 통해 방송 중이며 청취자 수가 매주 600만 명을 넘는다. 또 초청강연장에는 언제나 학부모들로 만원이다. 재무관리 및 사업 상담 전문가인 그가 이 같은 인기인이 된 것은 20년 넘게 운영해온 ‘재정평화학교’ 덕분이라고 한다. 그는 이 학교에서 한결같이 ‘자본주의 세상에 자녀를 내놓으면서 돈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직무유기’라는 주장을 펼쳐왔고 수강자의 공감을 사면서 그야말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그의 강의를 듣고 인생을 바꾼 가족이 적어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는 집계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강의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일하고, 소비하고, 사람을 만나고, 저축하고, 나누며 사는 삶,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생의 지혜가 대부분이다. 대신 일확천금의 꿈 이야기는 단 한마디로 없다. 그런데도 그의 강의는 언제나 인기다. 강의 내용은 그가 출간한 ‘내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라는 책에 상세히 담겨 있다.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녀가 성인이 되도록 부모한테 얹혀살고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려면 어릴…
나를 지우기 시작한다 /김진돈 오금동 교회 모퉁이엔 과일 파는 할머니가 겨울 칼바람에 졸고 있다 실눈을 뜨고 있는 과일은 길보다 먼저 허리를 편다 온통 나의 표정만을 주시하고 있어 나는 차마 눈을 뗄 수가 없다 서로 과일은 자기에게 오라고 끌어당긴다 그들은 자기식대로 나를 판단하고 있다 나는 무표정 앞에서 분해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나를 지우고 있지만 굴곡된 나와는 별개의 일이다 그들이 움직인다 빗나간 시선 사실 그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 김진돈 시집 〈그 섬을 만나다〉에서 좌판에서 쑥 냉이 달래 푸성귀를 사올 때가 있다. 추억을 자극하는 푸성귀를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할머니의 거친 손을 본다. 다리가 불편한 김진돈 시인은 칼바람 속에서 실눈을 뜨고 있는 과일들을 본다. 시인의 표정만 주시하고 있는 실눈은 과일주인의 눈빛일 것이다. 동병상련,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 쏠리는 그의 마음이 더 약한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 내게 관심을 많이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타인은 내게 관심이 없다. 가진 것이 많고 많이 배울수록 논리적이고 차갑다. 걸핏하면 백화점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빛나간 시선 속으로 서민 따위가 눈에 들어
대입전형제도는 ‘고정적이어야 할 것’이 ‘자꾸 바뀐다’는 부정적 인식의 대명사가 된 느낌이다. “또 바뀌나?” “자꾸 바뀌니까 혼란스럽고 더 힘들어진다” “하도 복잡하고 자주 바뀌어서 제대로 준비하기조차 어렵다” “제발 그만 바꾸고 그냥 두기라도 하면 좋겠다”… 심지어 학원가에서는 ‘○○컨설팅’ ‘○○코치’라는 이름의 안내 강좌를 개설해서 재미를 보고 그런 학원에서는 “정부에서 대입전형을 자주 바꿔주니까 우리로서는 고마울 뿐”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학년마다 다른 입시! 누가 책임져야 하나?” 마침내 이런 비판까지 등장했다. 현재 고등학교 1·2·3학년은 각각 다른 수능시험을 치르게 된 것이다. 고2 수능에는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추가되고, 고1 수능에서는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었다. 미안하고 성급한 분석일지 모르지만, 대입전형은 앞으로 더 바뀌어갈 여지가 있다. 교육부 차관은 “영어부터 절대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