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리가 하얀 꽃을 피우고 아침저녁 으스스한 냉기가 스민다. 은행잎은 찬비를 맞아 우수수 떨어져 뜰 안을 노랗게 물들였다. 조금 도타워진 오후 볕을 맞으며 들길로 나섰다. 얼마 전 엔진소리가 요란하더니 들녘은 어느새 텅 비어 하얀 공룡 알들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인기척에 놀라 튀어 오르던, 그 많던 벼메뚜기들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지난달 중순쯤 육중한 콤바인 한 대가 들에 나타났다. 며칠 동안 황금빛 벼들을 게걸스럽게 삼켜, 토해낸 알곡들을 큰 자루에 가득가득 채워 떠난 뒤, 논바닥에는 볏짚만 가지런히 깔려 있었다. 그 다음에는 수상한 트랙터가 들어와 사람보다 더 정교하게 논바닥에 깔린 짚을 걷어, 돌돌 말아 비닐로 칭칭 동여매어 가축의 겨울사료라는 거대한 공룡 알을 만들었다. 벼농사가 시작된 이래로 근래까지 보아왔던 가을걷이와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물색(物色)은 좋거니와 추수가 시급하다. 무논은 베어 깔고 건답은 벼 두드려’ 농가월령가에서 이르듯, 들판이 금빛으로 물들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하얗게 들로 나가 벼를 베고, 볏단을 줄가리 친다. 말린 벼는 탈곡기로 낟알을 털어내고 바람개비로 지푸라기 등을 제거한 뒤 알곡을 가마
십일월을 넘기며 어느새 거리가 온통 ‘붉디 붉은 와인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의 ‘11월’이라는 숫자를 눈 여겨 본다. ‘가을’로 향하는 인생사계에 묻어 나는 절절한 삶의 철학들을 ‘일상 속 스승’으로 만나본다. 에이 로스쿠케의 〈대왕생(大往生)〉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이를 나무라지 마라. 지나온 길인 데... 노인을 비웃지 마라, 가야할 길인 데... 지나온 길, 가는 길, 둘이서 함께 하는 여행길, 지금 부터 가야하는 오늘의 길, 한번 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 인 것을”. 그렇다. ‘지금’이란 현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과거의 내가 모여, 지금 여기 오늘의 나를 이루 듯, 오늘의 나는 다시 내일의 나, 내일의 우리 사회, 내일의 다음 세상을 일구는 거름이 된다. 그래서인가. 우리 삶의 궤적들로 이루어진 ‘역사’라는 지나 온 길들의 ‘반추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최고의 스승인 성찰체’가 되고 있음
1783년 정조는 자휼전칙(字恤典則)이라는 구휼법(救恤法)을 선포했다. 흉년을 당해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걸식하거나 버림받아 굶주리는 사례가 많아지자 이들이 부모 및 친척 등 의지할 곳을 찾을 때까지 구호하고, 자녀나 심부름꾼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양(收養), 즉 남의 자식을 기르게 하기 위해 특별히 내린 법령이다. 특히 이 법은 국한문으로 인쇄, 한양을 을 비롯한 전국에 반포해 모든 백성들이 영구히 시행하도록 했다. 법에 구호대상자인 어린이 걸식자는 부모 및 친척, 또는 주인이 없어 의탁할 수 없는 4세부터 10세까지의 어린이로 규정했다. 특히 버려진 아이는 3세 이하의 유아로 못 박아 특별 관리하기도 했다. 또 걸식아이는 진휼청(賑恤廳)이라는 전문관청에서 구호해 옷을 주고 병을 고쳐주도록 했고 날마다 1인당 정해진 분량의 쌀·간장·미역을 지급하게 했다. 유기아는 유모를 정해 젖을 먹이고, 유모나 거두어 기른 사람에게도 정해진 분량의 쌀·간장·미역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들을 기르고자 원하는 자는 아무나 할 수 없고 진휼청의 입안(立案)을 받도록 했다. 지금의 입양제처럼 심사를 거치게 한 셈이다. 정조는 이러한 제도를 매우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34세
지난 1일 여의도에 공무원과 퇴직공무원, 교원들과 가족 등 12만여명이 모여 새누리당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성토하는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공무원 당사자를 배제한 ‘밀실 개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새누리당과 대립각을 세웠다. 아울러 앞으로 정권 반대 투쟁과 파업 등 강경 투쟁을 할 수도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 필요성을 강하게 들고 나온 후 연금학회와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발표됐다. 그러나 공직사회에서 하위직 공무원의 연금 손실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상위직은 좀 더 깎고 하위직은 좀 덜 깎는 방안인 이른 바 ‘하후상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의 ‘하박상박’ 개편인데다가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수준으로 하향평준화 되기 때문에 공직자들은 ‘공적연금 포기’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부가 공무원연금을 가져다 쓴 것이 재정 적자의 가장 큰 이유다. 공무원들은 책임을 슬그머니 자신들에게 전가하고 국민들과 이간질시킨다며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불어나는 연금 재정 적자를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
무릎은 우리 몸 중에서 가장 많이 활동을 하는 관절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어떤 관절보다 외상에 쉽게 노출되고 병도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무릎이 아플 수 있고, 일을 하다가도, 스포츠를 즐기다가도 무릎을 다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관절염이란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무릎은 다른 관절보다 통증이 심할 뿐 아니라 걷는 것조차 힘들어서 사회활동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도 못하고 즐기는 운동도 하지 못하니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후에는 우울증까지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절염이 심하게 진행되면 인공관절치환술을 시행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퇴행성관절염입니다. 제 경우, 지금까지 많은 환자분들의 정형외과적 수술을 시행했었는데, 몇몇 분들은 키가 150㎝ 정도에 몸무게는 100㎏~110㎏ 정도인 환자분들이 계셨습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관절염이 너무 심한데 마취나 수술에 대한 걱정과 공포 때문에 수술은 못하겠고, 무릎통증때문에 활동은 못하니까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못해서 살이 계속 찌고, 1년 이상 방안에서만 생활하다보니 우울증까지 생기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어 100㎏ 넘게 체중이 불어 전신건강 상태까지 나빠지게
사람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알리려고 다양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대로 이행해 보려는 것은 아닌지, 앞 다퉈 名山 여기저기, 유서 깊은 곳 여기저기, 커다란 이름자가 새겨진 비석들을 볼 수가 있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것이지만 그 사람의 頌德(송덕)을 기려서 길이길이 잊지 않으려는 不忘碑(불망비)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돈을 모아 재산이 크게 늘어나면 이름이라도 남기려는 듯 아주 커다란 碑(비)에다 이름을 새겨 넣으려고 한다. 그것을 막을 길이야 없지만 하찮은 일을 가지고 큰일을 한 것처럼 기록한 것도 있고, 워낙 큰비를 세워놓고 뒷면에 실제 기록할만한 내용이 없어서 가족 이름을 새겨 넣은 것도 있다. 옛 사람들의 비석이 큰 까닭은 높이 모셔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선 그분들이 살아오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 일들이 너무 많아 아무리 줄이려 해도 줄일 수 없는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옛글에 ‘내 평생 남의 눈 찡그릴만한 일 안하고 살면 이 세상에는 나를 향해서 원한을 품고 이를 가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을 어찌 꼭 비석에다가 새겨서 남기려는 것이냐’ 하였다. 길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알고 생각하고
수원 군 공항 이전계획이 본격 추진되어 120만 수원시민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게 됐다. 이 사업은 수원시가 4조5천억 원을 투입해서 525만㎡ 규모의 수원 군 공항을 이전하고 이곳에 테마공원과 첨단연구단지, 메디컬파크, 저밀도 주택단지를 조성하여 획기적인 도시개발을 추진해갈 방침이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여 추진해 가는 일이 중요하다. 수원시는 다행이 시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시민운동본부를 발족하였다. 고양시와 시흥시 그리고 부천시 등지에 위치한 도내 군사보호구역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 수원권 주변 도시지역민도 환영일색이다. 수원시는 국방부에 제출한 수원 군 공항 이전건의서에 대해 지난 6월 국방부·공군본부·수원시 간 공동협의체를 구성하고 지난달까지 매주 1회 회의를 개최하여 군 공항 이전에 대한 협의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부지면적, 보상비, 건축물 등 세부시설 설치계획, 화성시에 존치돼 있는 탄약고 부지 활용방안 등 다각적인 내용에 대해 합의했다. 수원 군 공항 이전은 수원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사업으로 국가적 차원에서도 국방전력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방부와 공군본부, 수원시는…
지난 2011년부터 거론돼오던 방학분산제 도입이 최근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당초 관광 및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의견을 냈던 방학분산제는 여러 가지로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논의가 중단된 바 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방학분산제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세계 주요국가들처럼 우리나라도 학습 효율성 제고, 체험학습이나 진로·직업탐색 기회 확대, 각종 평가(시험) 이후와 2월 학년 말 학사 운영의 충실 등을 위해 ‘방학분산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말 ‘방학분산제 실시 적합성 분석연구’결과를 이미 내놓았다. 교원, 학생, 학부모 7천2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6.7%가 방학분산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교원 75.4%, 학부모 70.9%는 ‘맞벌이 가정의 보육문제’를 방학분산제 시행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사회·경제적 차이로 인한 체험활동의 격차’도 각각 65.3%, 59.5%가 지적했다. 이처럼 방학분산제 전면 도입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주관하는 이번 의견조사는 방학분산제에 대한 찬반(동의), 도입시 단기방
본보의 연중기획 시리즈인 ‘사회적 경제기업 탐방’ 3일자엔 안산 ‘빵집아저씨들 협동조합’(이하 빵집조합)이 소개됐다. 빵집아저씨들 협동조합은 지역 봉사 활동을 함께하던 영세 제과점 제빵인 7명이 모여 지난해 12월 결성했다. 이 조합은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제빵업자들의 협동조합이다. 빵집조합은 골목까지 밀려 든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빵집에 맞서기 위한 자구책이다. 대형 쇼핑몰이나 골목까지 파고 들고 있는 대기업의 SSM(기업형 슈퍼마켓)은 영세 상인들을 고사시키고 있다. 서민들이 운영하던 동네빵집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금융위기 당시부터 크게 증가한 프랜차이즈 빵집은 전국 곳곳에 들어서 고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이들 프랜차이즈 빵집 가맹점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서민들의 동네 빵집은 붕괴된다. 한 통계에 의하면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지난 2009~2011년 1천230개 증가했지만 동네빵집은 2008년 한 해에만 3천개 넘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안산시도 지난 2009년 180여개였던 동네빵집이 불과 5년 만에 3분의 2가량이 문을 닫아 이제는 78곳만 남아 있단다. 살아남은 동네 빵집들이 그동안 겪었을 시련이 어땠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 5년간
지난 주말 12만명의 공무원들이 당정청의 연내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방침에 반대하고, 공적연금 수호를 결의하기 위해 여의도 광장에 운집했다. 이 집회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어째서 이렇게 많은 공무원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그 이면을 봐야한다. 대부분 국민들은 노후생계에 대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 26년 된 국민연금으로 현재 노인세대도, 미래노인 세대로 자식들의 도움이나 저임금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대책 없는 국민들의 노후 소득보장의 현실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무원연금과 비교하게 함으로써 국가로 향해야 했던 국민적 분노를 공무원으로 향하게 했다.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을 내세운 정부가 선택한 전략치고는 참으로 치졸하다. 공무원연금은 산업화 이전인 1960년대에, 국민연금은 산업화가 훨씬 지난 1988년에 도입됐다. 경제성장이 최우선인 국정기조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고, 이러한 국가철학으로 나이든 국민들의 삶이 국가정책의 대상이 되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공무원들에게만 연금을 일찌감치 제공했을까? 군사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박정희 정권에겐 안정적으로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