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에서 주관하는 공기업 개혁을 위한 제22차 작업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파리에 왔다. 한국에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시 개발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돌출하고 있어 도시의 관점에서 파리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도 갖고 있다. 역사 의미가 현실에 살아있는 도시 파리와 서울을 비교하면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파리는 역사가 현실에 살아있는 도시라는 느낌이다. 현대의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하기보다는 1800년대, 1900년대 건설된 건물 가운데를 걸어서 지나도록 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물건은 중고품이 되어 값이 떨어지지만, 100년이 지난 물건은 골동품이 되어 고가가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멀리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즐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콩코드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2차 세계대전 중에 처칠 수상이 이야기한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는 어록과 함께 처칠 동상이 서 있다. 성공한 역사와 함께 전쟁 패배의 상흔도 간직하고 있다. 도시는 새로운 건축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 도시는 자신의 색깔을 가지게 된다.…
하얀 축복 속을 달리다 /박노빈 3월의 눈 그 긴 삼동의 아픔 온몸을 추워 떨게 하던 피 흘린 상처가 축복처럼 나를 휩싸고 수많은 베르누이의 흰 꽃이 오로지 나를 위해 휘날린다 비상을 위한 모든 상처들의 저돌 ‘눈’은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소재이다. 김수영의 시 <눈>에서 눈은 ‘참되고 순결한 생명’을 상징했고, 이청준의 소설 <눈길>에서 눈은 ‘사랑과 화해’를 상징했다. 이밖에도 눈은 여러 문학작품에서 주된 소재로 등장했는데, 이 시에서 눈은 ‘비상을 위한 상처’를 표상한다. 시간적으로 지난 3월은 겨울과 봄의 경계이다. 봄의 기운에 겨울은 곧 사라지고 말 테지만 막바지로 내리는 눈이 시적 자아를 휘감는다. 이 눈은 곧 지상에 추락하고 녹아내리게 될 테지만 시적 자아는 또 다른 비상을 꿈꾼다. 꿈꾸는 자는 늙지 않는다. 비상을 시도하다 생긴 상처는 아름다운 것이다. /박병두 시인·수원영화예술협회장
민심의 과학화가 여론조사다. 하지만 과학을 동반한 여론조사도 늘 공정성에 도전을 받는다. 누가 질문을 하는지, 어떻게 대상자를 모집했는지, 어떤 단어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193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와 공화당의 랜던 후보가 맞붙었다. 선거를 앞두고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가 무려 1천만명에게 설문지를 보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유권자 4.5명 중 1명꼴이라 오차가 거의 없을 것으로 확신하며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조사에선 랜던이 57%의 지지율로 이긴다는 예상이 나왔으나 뚜껑을 열자 루스벨트가 62%를 득표해 당선됐다. 선거사상 최대 표차라는 기록도 세웠다. 부유계층만을 참여시킨 잘못된 여론조사 표본 추출이 이유였다. 여론조사는 통계학이 빚어낸 과학적 산물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처럼 통계에 숨어있는 허점 또한 극명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생명인 정치판에서 여론조사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항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 깊이 간여하며 거의 모든 선거에서 위력을 떨친다. 후보자를 선정하고, 선거 전략을 수정하기도 한다. 선거전 판세를 읽는 데도 절
교차로 한 모퉁이에 붙어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 특별조사 실시” 어느 주민자치센터에서 붙였다. ‘무한 돌봄 콜센터 ○○○○-○○○○’이란 전화번호까지 들어있다. 지금 우리의 화두는 복지다. 분배의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도움이 필요하나 지원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경향이 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단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불행한 사례를 접하면 심리적으로 멍한 상태로 빨려 들어간다. 지자체에서 발 벗고 나선 것은 좀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참으로 다행이다. 이 어려운 고비를 넘어가는 우리 보통사람들도 그늘진 곳에서 도움의 손길조차 내밀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가득하다. 각 지자체에서는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복지소외계층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복지사각지대 발굴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며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잘 하는 일이다. 행정기관들이 솔선하여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늘 있어 왔다. 그런데 용어선택이 다소 어색하다. ‘복지사각지
봄이 창창(蒼蒼)이다. 거리마다 희거나 분홍의 여신들이 처처화신(處處化身)하셨다. 하여, 시 한 수 드린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落花)/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형기, ‘낙화’ 全文) 모든 것이 그렇듯 필 때보다 질 때, 태어날 때보다 죽을 때, 다가올 때보다 떠나갈 때가 중요하다. 그래서 시인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칭송했는지도 모른다. 한 세상 살다가 가볍게 떠나는 법, 그 중요함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다른 것이어서 떠남에 대한 두려움과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이 필부(匹夫)의 본능이겠다. 일찍이 법정 스님은 자신의 글 모음 ‘무소유’에서 소유와 집착의 어리석음을 이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끊임없는 광음(光陰)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曠野)라는 시다. 시인 이육사는 이외에 ‘청포도’ ‘절정’ 등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웬만한 사람이면 그의 시 한두 구절을 외우지 못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우리와 친숙하다. 또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일관한 삶을 산 그의 인생 궤적으로 인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110년 전인 1904년 오늘(4월4일)은 그가 태어난 날이다. 그리고 올해는 그가 숨진 지 꼭 70년이 되는 해이다. 1944년 1월16일 만 40세의 나이로 중국 베이징 주재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기 때문이다. 육사의 40년 평생 일제에 의해 모두 17차례 투옥되었고 이국의 옥중에서 숨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빨라지는 고령화에 따른 과잉인력의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과제이다. 이에 원만한 고용기회를 창출하려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은 절실하다. 실직자에게 희망을 주는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경기도가 금년에 6개 분야 139개 사업에 2조9천3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13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0만개의 일자리에 비해 30%가 늘어난 계획으로 구직자에 희망을 주고 있다. 여건을 고려한 수출산업을 활성화시켜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가야한다. 경기도는 일자리대책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일자리 지원과 여성·청년·중장년을 위한 취업을 지원한다. 중소기업 및 첨단기업 투자유치를 통한 기업육성을 비롯해서 민간과 협업 활성화를 통한 노사문화·비정규직 근무환경도 개선시켜 간다. 이 외에도 불합리한 규제개선 및 지역사회 개발을 통한 일자리 인프라 구축이 핵심 전략이다.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 직업능력개발훈련, 고용서비스, 창업지원, 기업유치 등 분야별 목표를 제시하며 추진해간다. 문제는 취업 대상자가 지속적으로 노동에 만족과 보람을 찾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 정부의 지침과 지원에 따른
경기도가 민통선 지역의 마을 역사와 주민들의 삶 등에 대한 유·무형 자원을 조사하기로 했다. DMZ 일원의 인문 역사 자원을 기록 보존하기 위한 조치다. 경기도내 민통선 지역에는 통일촌 마을, 대성동 마을, 해마루촌(이상 파주시)과 횡산리 마을(연천군) 등 4개 마을이 있다. 도는 우선 올해 대성동 마을을 대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나머지 마을에 대해서도 조사를 계속해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는 마을 형성 배경에서부터 주민 일상의례, 의식주생활, 세시풍속과 놀이 등이 포함된다. 물론 문헌에 나타난 역사는 기본이다. 이번 조사는 특히 주민들의 개인별 생애사 조사를 중심축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왜냐하면 역사라는 것은 어차피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개천 같은 그 이야기들이 모여 큰 강물과 바다 같은 역사를 엮어간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나 집권층 사대부들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의 기층을 형성하며 살았던 민초들의 이야기는 역사의 기반이 된다. 그래서 개인별 생애사가 중요하다. 특히 민통선 안이라는 특수상황에 놓인 마을 주민들의 기록은 세월이 지난 후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민통선 지역
너무 빠르게 바뀌는 세상이라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요즘 형편이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러시아 소치에 붙들려 있었다. 동계 올림픽 종목들이 그다지 인기 있는 것은 아닌 데다, 국제경기에서만 지나치게 흥분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내키지 않았지만, 다음 개최지가 평창이라서 관심을 안 둘 수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영웅은 김연아였다. 이미 생애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도 다시 도전하는 그 스포츠 정신은 결과와 상관없이 놀랍고 찬탄할만한 것이었다. 거기에 최다출전 기록의 이규혁이나, 쇼트트랙 어린 선수들의 투지를 더하면, 이제 대한민국은 경제만이 아니라 동계스포츠에서도 강소국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중요한 사건이 하나 불거졌다. 다름 아닌 러시아 쇼트트랙의 황제 ‘빅토르 안’, 즉 안현수 선수의 국적 문제였다. 그는 러시아 국가대표다. 이미 국적이 러시아인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의 입장은 애매했다. 그를 러시아인으로 선뜻 인정하지도 못 했고,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그를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 추켜세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빅토르 안이 우리 선수들을 여유 있게 제치며 최고의 기량을 유감없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자신이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죽음의 장사꾼, 숨지다(The merchant of death is dead)’라는 제목의 이 부고기사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자신을,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가로 부자가 된 ‘죽음의 장사꾼’으로 비하하고 있었다. 노벨은 자신의 지식을 축적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아까운 생명들을 죽이는 살상무기가 된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자신의 전 재산을 노벨재단의 전신인 스웨덴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함으로써 노벨상이 탄생했다. 노벨상은 무엇보다 자신의 지식으로 세상에 유익을 끼친 ‘지혜로운 지식인’을 기리고 격려하는 상으로 지금까지 내려온다.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지혜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 데 반해 지식은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 또는 정보 그 자체이다. 그러니 지혜는 타인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