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봉오리에 눈이 내리자 꽃들이 일제히 실눈을 뜬다. 앞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보려고 한다. 봄눈 내리는 내막을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봄인듯 했으나 겨울이 아직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겨울의 지독한 집착인가. 서술적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김춘수의 시 ‘처용단장 1-2’는 다음과 같다.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이 시에서는 ‘눈’의 중의적 표현을 읽을 수 있다. 앞부분의 눈은 설(雪)이고, 뒷부분의 눈은 안(眼)이다. 각각의 평행선을 가던 눈(雪)과 눈(眼)이 마주친다. 즉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인데, 표면적으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지만 함축적으로는 산다화를 응시하는 커다란 눈 즉 관능적인 눈이다. 시각적인 상황에서 역동성이 느껴지는 육감의 외침소리를 듣게 된다. 물개 수컷 우는
경찰지휘부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과 정치권으로부터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완전히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찰의 정치적인중립이 이루어지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베스트셀러의 요건으로 ‘쉽고 재밌어야 한다’를 꼽는다. 그런데 작년에 하버드대학교의 어렵고 딱딱한 정치학 강의를 담은 책인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매우 갈망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국민들의 좋지 않은 시선이 경찰에 쏠려 있다. 지난 3월 한국일보에 ‘국민이 지켜보는데…경찰, 기소청탁 굽신굽신 수사’라는 제목으로 경찰의 정당한 수사에 대해 검사가 부당하게 사건을 축소하고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그러자 국민들은 경찰이 검찰의 눈치를 보며 공정성을 저버리는 것이 아느냐 하는 의혹을 품게 됐다. 이러한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선진 형사·사법 체계가 갖춰지면 좋을 것 같다. 경찰이 사건처리 시 ‘기본과 원칙’에 따라 헌법·법령에 규정된 대로 당당하게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현재 검찰이 가진 수사·기소권한을 분리해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팔순의 독림가(篤林家)가 평생동안 일궈온 숲을 모두 사회에 기부해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83세의 손창근 옹이다. 손옹이 용인과 안성 일대의 임야 662㏊를 산림청에 남몰래 기부한 사실은 5일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시가 1천억원대에 이르는 이 임야의 면적이 서울 남산의 2배에 이른다니 손옹의 결단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손옹은 지난달 19일 산림청에 대리인을 보내 기부 의사를 밝히면서도 정작 자신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소유권 등기 이전까지 마쳤다. 이처럼 방대한 숲을 기부한 경우는 산림청 개청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손옹의 ‘얼굴 없는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현금 1억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쾌척하면서도 기부행사는 물론이고 언론 인터뷰도 일체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0년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추사 김정희의 회화작품 ‘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를 역시 아무 조건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했다. 하도 조용한 기부이다 보니 그 사실이 한참 지난 뒤에서야 세상에 알려진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공식 석상에 얼굴 한번 내비치
수원시 지동은 주택가가 밀집한 지역이다. 좀 낙후된 지역이긴 하지만 오래 거주한 토박이도 많고 이웃끼리의 정도 두텁다. 따라서 수원시가 추진하는 ‘수원마을 르네상스’ 마을 만들기 사업이 잘 추진되는 곳이 이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1일 이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 조선족 노동자가 20대 여성을 토막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범행 수법이 잔인해 전 국민적인 공분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 사건의 파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추방시켜야 한다는 극한의 상황까지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는 외국인 노둥자들에 대한 증오감까지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또 다른 파문이 일고 있다. 급기야는 경찰이 공식 사과문을 내놨다.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이 6일 발표한 사과문에는 경찰의 미흡한 현장 대응으로 국민의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지 못한 데 대해 피해자와 유족, 국민들에게 사죄를 드린다는 내용과 당시 상황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겠다는 ‘사후약방문’도 들어있다. 그리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현장 지휘소홀 등의 책임을 물어 관할서장
최근 사람들을 만나면 저마다 선거를 앞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떤 이들은 기존에 자기가 밀던 후보가 생각보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부터 이전에 지지했던 정당들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애정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각자 갖고 있던 정치 색깔을 대변해 활동할 대리 정치인을 뽑기 위해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정치로 인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정치하는 이를 잘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수 십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인을 제대로 보기 위해 꼼꼼하게 선거 공보물이나 전단지를 훑어 봤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고 후보자들을 잘 알기 위해 노력을 해 본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정치하는 분들과 특별하게 관계가 없다면 왜 정치를 하려 하는지, 비젼이 뭔지, 이사회를 어떻게 이끌고 싶은지에 대해 알 길이 없을뿐더러 주어지는 공적인 내용으로는 개인적인 인간 됨됨이나 리더로서의 고뇌를 살피거나 그의 정치철학을 알 수 없다. 마치 나와 매우 밀접하고 앞으로 수 년 동안 내 삶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었다. 내가 스스로 정치적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이번
지난해 정치권을 달군 것은 정치인들의 기행적인 태도 보다도 그들의 막말 퍼레이드였다. “춘향전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얘기”(김문수 경기도지사) “너 진짜 맞는 수 있다”(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원) 이밖에도 잎에 담지도 못할 언어폭력들이 난무해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사과 한마디로 어물쩍 현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말은 행위자의 인격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막말 정치인이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묵인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부호를 남기게 된다. 4·11 총선이 불과 6일 앞이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불길한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는 부실 공천으로 함량 미달 후보들이 어느 때보다 많을 것으로 우려됐지만 최근 불거진 후보들의 자질 논란을 보면 착잡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질 정도다. 서울 노원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과거 막말은 정말 상스럽고 저질스러운 것이다. 정치인 도덕성이 갈수록 추락하는 추세라지만 이런 사람들이 총선 후보라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김용민 후보는 2004년 한 인터넷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테러대책이라며 “유영철(연쇄살인범)을 풀어 라이스(전 미국무장관)는
염태영 수원시장이 5일 한 라디오 아침방송에 나와 수원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자전거 보험을 들어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점차 심각해져 가고 있는 도심교통난을 해소하는 동시에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공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인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시켜 고유가 시대 에너지를 절약하고 시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치이다. 전시민의 자전거 보험료도 수원시가 일괄적으로 부담하겠다고 하니 자전거 이용자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지자체들도 자전거 보험가입에 보다 적극적이길 바란다. 요즘 ‘자전거족’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경유와 휘발유값 부담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고 특히 건강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원시의 경우 지난 2010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율이 1.9%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앞으로 2014년까지 2.4%로 높일 계획이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자전거를 이용하다 보면 위험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다. 차량과 부딪힐 수도 있고 복잡한 도심에서 대인사고를 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자전거 타기 확
농사를 짓는 일이란 인간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농사꾼은 인류의 행복을 짊어진 사람들이다. 마을 앞에는 이조시대에 호조에서 농사를 관장하고 일찍이 경지정리를 한 들판이 지금은 시흥시 곡식창고라고 할 수 있는 호조벌이 있다. 호조벌은 넓어서 안현동, 은행동, 미산동, 포동, 매화동, 연성동을 걸치고도 또 여러 동이 걸쳐 있다. 안현동 앞 호조벌은 앞방죽, 오구재, 응담말, 개자리 등의 아주 토속적인 이름을 가진 논들이 있다. 지금은 농사짓는 일도 기계화돼 손쉽게 농사를 짓지만 1970년대 만해도 소가 논을 갈고 써레질하며 농사를 지었다. 시아버님은 집에서 기르는 암소에 멍에를 씌우고 쟁기를 달고 논으로 나가셨다. 그런 날은 여물에 콩이나 보리를 더 넣어 구수하게 쇠죽을 끓여서 먹이고 소를 부리셨다. 집집마다 소를 끌고 나와서 3월 중순이나 4월이 되면 호조벌은 여기저기서 “이랴, 이랴, 워, 워”하고 소 모는 소리가 왁자해 생동감이 일었다. 부녀자들은 점심과 새참을 해서 나른다. 때가 되면 남보다 뒤질세라 서둘러 음식이 든 광주리를 이고 논으로 나서는데, 논에서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새참이나 점심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논길에 할머니, 중년 부인,…
오래전에 상영됐던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이 “법이라는 것은 지켜야 할 최소한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피해가 발생하고 또한 피해자도 발생한다. 헌데 돌이켜보면 지키는 사람이 지키지 않는 사람보다 더 피해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라는 다소 자조 섞인 대사가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법대로 한다”, “법을 지킬 뿐이다”라고 소리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수히 들어왔으며 또한 법대로 다스리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다스리겠다는 데야 어느 누구인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며 거역 할수 있겠는가? 흔히들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기본 규칙은 그 사회의 생활관습이고 상식이며 이 테두리를 지키는 것이 그 사회의 윤리도덕이라 하고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되는 최후의 강제조치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 이전에 인간윤리와 도덕 그리고 인간적인 이해선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자제하라는 뜻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특히 오랜 세월 동안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해 온 우리나라는 고래로 집안 사람끼리의 송사는 금기시 했고 송사자체를 인간관계의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봄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얀마는 ‘아웅산 수치’여사의 정계복귀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아웅산 수치’여사를 미얀마 야당의 대표적 지도자라고 표현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표현하는게 그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국명(國名)을 바꾸기 전 명칭인 버마로 더 친근한 미얀마는 아시아 후진국가들이 걸었던 우울한 길을 따랐다. 근대화시기 유럽열강의 식민지로 고통받았고, 2차 세계대전이후 독립이라는 도식으로 진행됐다. 또 해방정국에서는 주도권을 둘러싼 독립운동 세력간 분쟁이 벌어졌고 이와중에 군부가 강압적으로 정권을 가져갔다. 이러한 과정이 수치여사의 가족사에 그대로 녹아있다. 미얀마의 독립영웅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수치여사의 아버지인 ‘아웅 산’장군은 해방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암살당했다. 수치여사의 정치입문은 우연성이 작용하는 역사와 잇닿어 있다. 영국인 남편과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수치여사는 1988년 와병중인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미얀마에 거주중 독재자 네윈이 물러나는 역사적 격변을 마주했다. 20여년의 철권통치로 국민을 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