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나 학교 심지어 교회나 가정에 이르기까지 가장 무서운 적이 있다. 분위기가 침체되어 모두가 의욕을 잃고 있는 상태에 이르는 상황이다. 그렇게 침체된 상태로 세월이 흐르다 보면 결국은 실패하는 기업, 낙후된 대학, 사그라드는 교회, 몰락하는 가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들 주위에는 그런 기업, 학교, 교회와 가정들을 숱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게 침체되어 몰락하여가는 과정을 어떻게 반전시켜 활기를 되찾고 번영하는 미래에의 비전과 꿈을 지닐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다. 누군가가 불씨를 지펴 침체된 분위기를 활기 있는 분위기로 반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우리는 안된다>는 분위기를 <우리는 능히 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누가 앞장서서 그런 역할을 해 낼 수 있을까? 자신의 가슴에 불씨를 지닌 사람이다. 사명감의 불씨, 열정의 불씨, 비전의 불씨를 가슴에 품은 사람이 그 불씨를 퍼뜨리는 일에 삶을 투자할 때 변화는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세상에 그런 불씨를 퍼뜨
환절기에는 새로운 계절적 환경에 신체가 적응하는 과정으로 쉽게 피곤함을 느끼고 감기도 잘 걸리는 등 면역력의 저하가 쉽게 온다. 이를 틈타서 대상포진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대상포진은 어릴 때 앓았던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절 안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일시적으로 약해졌을 때 신경을 따라 이동한다. 특정 신경이 분포하는 영역에만 띠 모양(帶狀)으로 물집이 생기기 때문에 대상포진이라 한다. 면역력이 약해진 노인에게 많이 발생하나 젊은이도 스트레스가 많거나 피곤하면 발병한다. 50대 이상에서 주로 발병했던 대상포진은 최근 20·30대 젊은 층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주로 가슴부위에 많이 발생하는데 물집이 생기기 약 3~5일 전부터 한쪽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초기 증세가 감기나 신경통과 비슷해 적당히 쉬면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다. 증상은 대개 근육통처럼 뻐근하면서 몸살감기처럼 통증이 쭉쭉 뻗치며 나타나 참기 힘들만큼 고통스럽다. 또한 통증이 지속적이지 않고 시간차를 둬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에 비해 통증이 약한 편으로 간헐적으로 따끔따끔한 느낌만 호소하기도 한다. 대상포진에 걸리면 처음엔 몸의 한쪽 부위가 몹시
어린 시절, 여러 번 봤던 기억이 있다. 신촌 주변 노고산으로 쏘다니느라 때를 넘겨 어스름 저녁이 돼서야 돌아간 집 근처 골목, 의기투합해 같이 놀던 또래 중 한 명이 성난 엄마로부터 사정없이 등짝을 맞으며 몸을 꼬던 모습이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양손으로 빌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또래를 향해 ‘공부도 안 하고, 밥 처먹을 시간이 되도 안 오면 어쩌란 말이냐. 이놈의 시키 뭐가 되려고…’ 하며 인정사정 보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던 그 애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도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다. 그 애는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밥을 굶었다. 먹고 살기 힘든 형편도 그랬지만 버릇을 고친다는 이유를 들어서 체벌을 가한 것이다. 가끔 그 애는 하의를 벗은 채 맨발로 영하의 추운겨울 아침 대문 앞에 서있기도 했다.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를 두고 계모라는 둥 동네에선 여러 얘기가 분분했다. 바로 밑 두 살 터울의 딸에게 집안 허드렛일을 시키며 구박을 일삼아 더욱 그랬다. 그런데도 그 애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이는 자리엔 으레 나타나 ‘자식 교육을 위해선 패야 한다&rsquo
이모 /고경숙 엄마가 벗어놓고 간 치맛자락에서 내 울음 몇 조각 주워들고 이모 손에 이끌려 유치원에 갑니다 주머니에 넣어 온 그 울음조각 만지작거리는데 이모가 손을 잡아끌며 재촉합니다 우리들은 종일 놉니다 해가 뉘엿해질 때까지 엄마와 닮지 않은 이모들이 데리러 오나 내다보며 저녁이면 퇴근하는 이모 내 빠이빠이가 이모를 보내고 소파에 앉으면 이모가 벗어놓고 간 앞치마에 내 울음조각 또 몇 개 묻어 있습니다 - 고경숙 시집 ‘혈穴을 짚다’ 기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이제는 여성 참여도가 높은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의식변화로 우리네 삶의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젊은 부부들의 맞벌이가 늘었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육아법은 아직 속 시원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늙은 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모습이나 출근을 하는 엄마 대신 이모라는 이름의 육아도우미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를 보는 일은 흔하다. 날마다 엄마가 벗어놓고 간 치맛자락에서 주워온 내 울음 몇 조각 만지작거리며 해가 뉘엿해질 때까지 이모를 기다리는 아이, 엄마와 닮지 않은 그 이모를 따라 돌아온 집에서 저녁이면 퇴근하는 이모에게 손을 흔들고 소파에 앉아 홀로…
기후변화는 수십년에서 수백만년 동안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도처에서 발생하는 기상이변과 그로 인한 각종 재앙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와 뉴욕 등 미국 동부지역에 1m가 넘는 폭설이 내려 도시 전체가 고립되기도 하였으며, 우리나라도 제주도 폭설로 인하여 5일동안 발이 묶였으며 설악산의 수은주는 영하 30℃에 다다랐다. 이러한 자연재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기승을 부렸으며, 이상고온, 가뭄, 홍수 등 기상이변이 속출하여 세계 각국이 엄청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 이러한 기상이변의 주요 원인으로 화석연료의 사용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와 지구 온난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00년간 전 세계 평균기온은 0.75℃ 상승한데 비해 한반도는 지구평균의 2배가 넘는 1.8℃ 상승했다. 이러한 지구온난화는 지구 표면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염화불화탄소(CFC), 아산화질소(N2O) 등의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누적되면서 지구의 온도를 높여 지구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1999년 370.
개성공단은 폐쇄되었고, 사드 배치 나아가 전술핵의 재배치까지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UN에서 북한의 회원국 자격까지 문제 삼는 등 북한과 전 방위로 부딪히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 정부가 먼저 개성공단 조업중단을 선언하였고, 공단폐쇄는 북한 당국이 결정했다. 물론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북한이다. 지난 1월6일 제4차 핵실험에 이어 2월7일에는 장거리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다. 그러자 핵실험 등에 개성공단의 수익이 유입된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의 조업중단을 통보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 정부의 대응이 올바른 판단일까?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낼 것인가? 아니면 더 큰 도발을 불러올 것인가? 사드배치에 반발하는 중국의 무역보복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중국의 북한제재를 유도할 것인가? 지금 일반 국민으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국민 개인으로서는 정보도 부족할 뿐 아니라 판단할 능력이 충분하지도 않다. 그러니 현재의 찬반양론은 현 정부에 대한 호불호, 이른바 진영논리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북한도발에 대한 대응책은 대통령이 결정하고 책임져야 헌법은 이런 문제에 대한 국가적 판단을 대통령에게 맡기고 있다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혹자는 마라톤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인생과 마라톤을 연계 지을까? 둘 다 닮은 것이 너무 많아서 일게다. 몇가지 내용을 비교해 보아도 그렇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마라톤 또한 꿈을 자유롭고 거창하게 꿀 수 있다. 부와 명예를 향한 인생의 꿈처럼 생각 속에 세계 기록도 내보고 마라톤으로 전 세계를 일주하는 등등의 상상이 얼마든지 가능해서다. 또 꿈을 꾸고 실천 하다보면 언젠가 이루어진다. 인생도 꿈을 꾸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마라톤도 풀코스든 하프코스든 목표를 세워야만 달성할 수 있다. 때로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한다. 인생의 성공을 결과만 갖고 이야기하듯 마라톤도 그렇다. 다시 말해 성공한 사람의 이면에 어떠한 노력과 눈물이 배어 있는가를 따지기보다 얼마나 성공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지듯 마라톤도 순위에 따라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다르다. 뜻하지 않은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인생에 있어서도 예상치 못한 사고나 뜻하지 않은 질병 등이 발생하듯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재능이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인생이나 마라톤이나 열심히 하면 개인의 능력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대충…
복된 날 /백이운 목련이 피었나 했더니 어느 새 져버리고 천둥 번개 치나 싶더니 개들이 사라졌다 기적을 행하시느라 허리 휘인 그분도. - 시조집 ‘어찌됐든 파라다이스’ / 동방시선·2015 살면서 봄이 가고 여름이 간 것은 알겠는데 ‘개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개는 십이간지의 상징성을 보면 한해 수호신이라 들었습니다. 어째 수호신의 실종은 의지할 곳 없는 막막한 느낌입니다. 영락없는 가을 지나 겨울초입의 을씨년스런 풍경입니다. 이 적막함을 두고 시인은 ‘복되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급기야는 기적을 행하는 절대자조차 늙어 사라졌는다는데 삶은 너무 고독한 나날이지 않나요? 그래도 복된가요? 문득 김종삼의 시 한 구절이 겹치는군요.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어부’에서)” 속삭였던 구절입니다. 우리에게 적막과 고독만 남았어도 우리가 살아온 기적이 있었군요! /이민호 시인
청렴의 사전적 의미는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이다. 단순한 말일지 모르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까지는 쉽지 않다. 청렴(淸廉)은 단지 공직사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꼭 실천되어야 한다. 청렴은 공정사회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자본이고, 사회 전반에서 청렴도를 높이지 않으면 공정사회도, 선진국가로의 진입도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공정한 기회를 갖기를 원하며, 누구나 자신의 노력으로 평가 받기를 원한다. 우리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국민 사이에는 강자와 가진 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출발부터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불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요즘 드라마·영화 등에서 종종 상류층을 풍자하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허구적인 내용이 많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씁쓸한 한 단면을 반영하기도 한다. 소위 상류층인 가진 자들은 그들이 가진 재력을 이용하여 권력을 얻는다. 문제는 그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적욕심을 위하여 편법적인 부당이익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