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과도하고 불합리한 규제는 성장 동력을 떨어뜨린다. 요즘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살리기의 해법으로 우선시해야 할 것이 규제완화다. 정부가 지난달 27일 경제 활성화의 걸림돌인 규제 280건을 한시 유예하거나 폐지하기로 한 것은 이런 점에서 마땅한 조치로 판단된다. 아파트형 공장에 극장 등 공연장, 문화시설 설치가 가능해지고 수도권에서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농지보전부담금이 면제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하나 하나가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활동에 장애요인이 됐던 규제들이다. 음식점, 제과점, 여관, 목욕탕 등 영세자영업자들의 하루치 장사를 못하게 하던 집합교육이 사라진다고 하니 다행이다. 각종 규제로 개발에 발이 묶여 있던 시.군들은 요즘 개발 청사진을 만드느라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화성시 비봉면에서 자동차부품과 프린트 관련 부품을 만드는 (주)도남전공은 정부의 연접개발제한 완화 조치로 공장 경영에 숨통을 트이게 됐다. 이 업체는 하이브리드 차와 같은 신차에 대비한 기술 개발의 길이 열렸다. 도시개발사업으로 조성된 토지의 수의계약이 외국인 투자기업에 한해 2년간 허용하기로 함에 따라 하남시가 미국 기업 등으로부터 15억달러를 유치해 신
로마법상의 인민재판을 민회(民會:comitia)라고도 한다. 재판권을 가진 일정한 사건에 대하여 인민집회가 행한 재판을 일컫는다. 처음에는 구두변론 형식에 의하여 절차가 진행되었지만 뒤에는 비밀투표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이후 인민재판은 점차 제한되었고, 제정기(帝政期)에 완전히 없어졌다. 사회주의국가의 인민재판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재판을 민중이 뽑은 자의 손에 맡겨 대중 앞에서 그들을 배심으로 심리·처결하는 재판이다. 말이 심리·처결이지 이미 결론이 난 결정을 아무런 변론도 없이 일방적으로 집행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반대자를 공공연히 처단함으로써 일반대중을 위험과 공포분위기 속에 몰아넣어 정권에 순응시키려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서울 한복판에서 인민재판이 일어 났다면 믿기겠는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29일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일부 추모객들이 60~70대로 보이는 노인 1명을 둘러싸고 집단적으로 매우 심한 욕설을 퍼붓고 몸으로 밀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네티즌을 흥분하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 매체 ‘프리존뉴스(www.freezonenews.com)는 ‘우르르 몰려가 노인에게 욕설·삿대질… 인민재판 열린 서울광장’이라는
교육과 학습이 이루어지는 시간, 장소, 비용 같은 조건들은 규제되는 것이 마땅한가? 또 규제될 수 있는 일인가? 사교육대책이 논의될 때마다 갖게 되는 의문이다. 그런 의문은 달리 표현될 수도 있다. 가령 학교교육이 허다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국가·사회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단순히 사교육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만으로 누구에게나 그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는가?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강화하자면, 교육목적에 비추어 학교교육이 그만큼 차별화되는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 당연하지 않을까? 사교육대책이 나올 때마다 국민들의 반응은 늘 시원치 않고 심지어 조롱을 받는 모습을 보면, 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 과정이 반복돼야 하는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기획위원장이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을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면서 “이 전쟁에서 전사해도 좋다”고 했지만, 교과부장관의 “준비 없이 성공할 수 없다”, 여당 원내대표의 “분수에 충실하라”는 비판에 따라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처절하게 싸우겠다”는 의지가 의지만으로 막을 내리며 결국 “동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가장 비극적인 방법으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했다는 면에서 더욱 슬픔을 배가시킨다. 서거 당일 뒤늦게서야 이러한 비보를 듣고 한동안 멍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검찰수사가 시작되고 소환조사를 거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냉철한 승부사로서의 모습을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검찰의 책임론은 물론 정치권에서는 이제 본격적인 공방전으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이런 움직임과는 별개로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국민들의 추모열기는 단순히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떠나 인간 ‘노무현의 힘’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보통사람들이 대통령의 서거에 문상 간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잘 알던 이의 상가를 찾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일일 것인데 7일간의 국민장 기간중 국민들이 보여준 추모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미워하지 말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썼다. 용서와 화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쓰기 어려운 말이다.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을 법한 유서에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가 담기니
2009년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연일 대학생들의 사고소식이 들려왔다. 애써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사기당한 여대생의 자살소식에 이어 학자금대출에 이은 사채 피해가 끝내 아름다운 젊은 청춘들의 비보를 전하기도 했다. 사회전체가 우울했고 학자금 대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수원시의회 강장봉 의원의 5분 스피치는 그래서 더욱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의 학자금대출 이자율이 7.8% 선으로 알려졌다. 다른 금융상품의 이자율을 2%정도 웃도는 이자율이다. 이러한 대출금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전국에 10만 명을 웃돌고 있다는 통계가 대학가를 음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가 제정한 학술 진흥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일부 개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도 대학생들의 학자금지원 등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치단체에서의 지원정책은 한계가 따르게 마련이다. 2만여 대학생들이 이미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사회진출도 하기 전에 이들의 장래에 대한 심각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졸업 후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이다. 대기업이던 국
미국 자동차 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려왔던 제너럴모터스(GM)가 결국 1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모양이다. 결국 GM은 채권단과 협상에 실패함에 따라 곧 파산보호를 신청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포드, 크라이슬러와 함께 ‘빅3’의 신화를 이끌어 왔던 GM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수없이 지적된 대로 GM이 쇠락의 길로 들어선 이유로 노조의 지나친 경영참여와 과도한 복지비용 지출이 가장 많이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황을 겪고있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자동차 업체들은 앞다퉈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상황도 예외일 수 없다. 쌍용자동차는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을 벌이고 있고, 현대·기아차 그룹 15개 계열사 노조는 구조조정 반대를 위한 연대투쟁에 나설 움직임이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노사화합을 통한 경영 합리화가 최우선으로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쌍용차는 해외 공장도 없고 국내외 단일공장 체제여서 다른 자동차 회사에 비해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 경영진이 전 직원의 37%인 2646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지만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져 전하고자 했던 것은 ‘화합’이다. 그도 한때 분열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던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속내야 어찌되었든 억울하고 아쉽고 심히 분노하고 억울하고 또 복수하고 싶었겠지만 그가 분열과 갈등으로 사회가 갈라지기를 원하지는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몸 던져 분열을 삭히고 화합하는 방법을 전해주려 했던걸까. 수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영전 앞에서 고개를 숙여 눈물을 훔친 것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그와 관련한 서민 대통령의 이미지가 새삼 부각되면서부터 더욱 그랬다. 아이에게 사탕을 주는 듯 하다 이내 자기 입으로 훌쩍 가져다 빨고 있는 사진은 장난끼 많은 우리 이웃집 아저씨 그대로다. 봉하마을 동네 가게 탁자에 않아 담배를 물고 주인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에서는 그가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지낸 분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서민적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과 대면한 적이 없는 필자는 수많은 사진 중에 특히 이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지녀야할 기본덕목을 이 사진에서 느꼈다면 지나칠까. 그는 분명 통치자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준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우리 국민은 위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엄수됐다. 경복궁 영결식은 엄숙했고, 서울광장 노제는 장엄 그 자체였다. 서울 심장부는 조문 인파로 완전히 뒤덮혔다. 다시는 이룰 수 없는 이승에서의 만남이 아쉬워 운구차를 가로 막을 수밖에 없었던 잠시동안의 혼잡말고는 너무나 성숙되고, 세련된 망자와의 이별이었다.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노란 스카프, 노란 수건, 노란 종이 비행기까지 서울광장은 노란색 일색이었다. 특히 2천여개의 형형색색 만장(輓章)은 국민장의 의미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만장은 만장(挽章), 만장(挽丈)이라고도 쓰는데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서 기를 만들어 상여 뒤에 따르게 하는 것으로, 문체에 따라 만사(輓詞), 만시(輓詩)로 구분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만장은 옛것과 달리 일상의 대화체 글이 많아서 더욱 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가 승하하고 나서, 3월 3일 덕수궁 대한문에서 국장을 치를 때 이왕직 장관이 왕족과 귀족, 한학자 등 200여 명을 만장제술원(輓章製述員)으로 임명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으나 만장수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와 비교하기는
지금 우리는 도덕성을 과소평가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나만의 도덕성을 유별나게 강조하고 과대평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아예 도덕 불감증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누가 무슨 일을 해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만큼만 깨끗하라는 과대평가 때문에 비롯되는 일이다. 따라서 도덕성의 확실한 실천 이외에 무엇으로도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러한 도덕성 문제는 의외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미래와 관련하여 어떤 이념논쟁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애통한 죽음을 앞에 놓고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갈등이 비등하고 반목이 창궐하고 있다. 애도의 시간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정성을 담보로 한 성찰의 시간이다.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약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바라는 바 그 무엇을 얻을 수 있고 그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굳센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믿음의 기초는 높디높은 도덕성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주는 것은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을…
본사가 올해로 다섯번째 열고 있는 화성돌기 행사에는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라는 타이틀이 붙여져 있다. 이맘때면 으레히 봇물을 이루는 동호인 중심의 체력단련 행사의 범주를 벗어나 말 그대로 가족단위나 친구들과 함께 민족의 얼이 살아 숨쉬는 화성을 걸으며 가족애와 친구의 정을 나누자는 의도에서다. 행사에 참여했던 가족들은 한결같이 화성의 역사성을 피부로 느끼고 또 땀을 흘리며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과 가족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수원에서 반세기를 살았어도 오늘처럼 화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고 말하는 촌로에서부터 친구들과 걸으니 이색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는 젊은 층에 이르기까지 화성은 매력 넘치는 소재였다. 화성돌기는 그래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사로 국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7년 UN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화성은 5.7Km다. 팔달문이 자동차 소통을 위해 일부 끊어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연결되어 있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화성장대로 이어지는 구간은 야트막한 산악지대여서 성곽을 걷는 재미가 솔솔하다. 화홍문 위쪽 방화수류정 아래에 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