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넓은 하늘을 가로질러 다닌 해가 아직 울분을 삭이지 못해 벌건 얼굴로 서쪽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 이제 또 오늘이라는 날과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숱한 이별을 요구한다. 어린 시절 친구와 헤어질 때는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입대하는 아들을 훈련소에 들여보내며 소중한 아들을 빼앗긴 듯한 아픔이 예상보다 오래갔다. 이처럼 계절이 지나듯 순탄한 헤어짐도 있고 뼈가 저리고 애간장을 녹이는 슬픔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슬픔이 자식의 죽음이라고 한다. 일컬어 참척(慘慽)이라고 하는데 잿더미 속에서 자식의 뼈를 줍는 일이라고 하니 그 슬픔의 척도를 어디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이 배우자의 죽음이고 나이가 들면서 가까운 친구의 죽음이라고 한다. 지난 한 주 사이에 참척은 아니었다 해도 아끼는 사람을 둘이나 잃었다. 한 사람은 후배이며 대녀의 남편으로 가정에서는 물론 지역에서도 어려운 일에 앞장서고 인사성도 밝고 늘 활기차게 일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그의 요절을 놓고 모든 사람이 애통했다. 유치원 막내딸은 아버지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을 따라 시장놀이를 하며 방글거리는 얼굴
한국전쟁 중에는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으로 근무하며 조선 공산당 총사령관 이현상 등을 토벌했다… 그는 귀순을 유도해 많은 빨치산의 목숨을 살렸으며 이현상을 화장해 장례를 치러줬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호국(護國)’은 ‘나를 지키고 보호하자’는 말이고, ‘보훈(報勳)’은 ‘보훈에 보답한다’는 말이다. 즉, ‘호국 보훈의 달’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며, 나라를 지킨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달’이다. 최근 우리의 안보 의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해마다 6월 6일 가정에 걸린 태극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크고 작은 대북 안보 문제가 불거져도 무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우리는 긴 역사를 간직한 만큼 비극적인 일들도 많이 벌어졌다. 고조선과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고려와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크고 작은 외침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데, 그럴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호국 보훈의 달이 되면 생각나는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유관순, 안중근, 안창호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국방부 전쟁기념관에서 선정한 경찰의 호국 인물인
카인(Cain)은 인류 최초의 살인범이다. 그것도 친동생을 죽인 패륜아로 성경은 묘사하고 있다. 단편소설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은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어 분단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카인의 후예’를 썼다. ‘카인의 후예’란 살인범이자 동생을 질투하고 증오한 카인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을 의미한다. 소설은 평양근처 양짓골이 무대로 1945년 광복직후 북한에서 벌어진 살벌한 공산사회 변혁과정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주인집의 충실한 마름이었다가 농민위원장으로 표변한 도섭 영감이나 신분상승의 기회를 맞아 빼앗고, 죽이는 인물들이 ‘카인의 후예’로 여겨진다. 하지만 황순원은 이념적 편향성을 떠나 사회적 변혁기에 나타나는 인간들의 탐욕과 섬뜩한 살인본능 등을 세세히 묘사하며 민족의 비극에 다가서고 있다. 한 형제같던 마을 사람들이 이념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해 질투와 증오 그리고 살인으로 이어지는 카인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나타냈다. 오늘은 6·25동란, 혹은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형제간 전쟁이 일어난지 62돌이 되는 날이다. 1950년 인민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남북한 합쳐 120여만명이 사망하고 290만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실종자만 120만명이 넘었다. 남북한 인
용인시 행정타운 시청사 지하 1층에는 참전유공자 기념전시관이 있다. 용인지역 참전용사 9천180명의 명부를 모신 곳이다. 비록 122.86㎡ 규모의 넓지 않은 곳이지만 시민들이 오가며 전쟁의 역사를 상기하는 숙연한 장소이다. 홀로 누군가의 이름을 더듬어 찾고 감회에 잠기는 나이 지긋한 분들도 적지 않다. 동양에서는 병가오덕(兵家五德)으로 지(智), 인(仁), 용(勇), 엄(嚴), 신(信)을 세우고 이를 무인(武人)이 갖춰야할 무덕(武德)으로 삼았다. 지혜, 충효, 용맹성, 절제, 신의 등 실용적이고 진취적인 덕목들을 무의 정신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런 오덕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을 어디 다른 먼 나라의 역사 속에서 찾으랴. 9천180명의 용사, 그들이 진정한 무덕을 실천한 무인들이며 용인의 소중한 유산이다. 용인시 참전유공자 기념전시관은 참전 유공자의 희생이 정당하게 보상받고 정신적 귀감으로 존경받는 사회가 실현돼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건립이 추진됐다. 그해 5월 좌측 벽면에 7천442명의 이름과 계급, 군번을 기록한 42.5㎡규모의 참전 유공자 기념의 벽을 준공한 데 이어 올해 5월 우측에 1천738명의 명부를 모신 3.816㎡ 규모의 벽을 더 만들었
수원이 자전거 지옥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마음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난 시절 200억원을 넘게 들여 수원시내에 거미줄망 자전거 도로를 갖췄다고 항변하는 수원시 공무원들은 이점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시민들이나 자전거 동호인들은 수원시내 도로에서 자전거 타기는 거의 목숨을 내놓고 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수원시의 자전거 정책에 관한 코미디는 수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 시는 수원천을 정비하면서 물줄기 양옆으로 시민들이 걷거나 조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조성해 놓았다. 그런데 이 길에 자전거 표식을 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수원천에 조성된 이 길이라는것이 행인 두명이 같이 걸어가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협소한데 자전거까지 씽씽 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전거는 평지에서 속도를 내면 평균 시속 20㎞ 이상을 낼 수 있다. 장애물을 발견하고 급제동을 걸었을때 5m이상 밀리게 된다. 자전거 특성상 어쩔수 없는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행인들과 잦은 마찰도 생긴다. 행인들이 안전에 큰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곳에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까지 합세해 행인들의 안전사고를 위협하는
지난 3일 임수경 의원이 탈북대학생 백모 씨에게 “근본도 없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대든다. 변절자들은 대한민국에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라”며 막말을 했다고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에 임수경 의원은 지난 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총살 운운한 학생을 꾸짖은 것이 전체 탈북자 문제로 비화됐다”며 “탈북주민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대한민국에 정착하도록 노력하는 측면에서는 관심사가 같다”고 해명했지만 새누리당과 보수단체, 탈북자 단체들의 비난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물론 여권에서는 정치적으로 색깔론이라는 ‘전가의 보도(傳家寶刀)’를 휘두를 수 있는 호재를 만난 것이고 야권에서는 ‘악재가 터졌다’라고 탄식할 만한 설화(舌禍)다. 탈북자 문제는 그만큼 예민하다. 왜냐하면 정치와 이념의 문제를 떠나 살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내걸고 사선을 넘어온 사람들이자 우리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통일부의 2012년 자료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 입국자 수는 2006년 이후부터 매년 2천명을 넘어 2012년 4월 현재 총 입국자 수는 2만3천56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북한이탈주민 입국현
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 언젠가 너와 함께 들른 적 있는, 바람의 입술을 가진 사내와 붉은 꽃의 혀를 지닌 여자가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읽어 내던 그 방이 아직 있을지 몰라.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창가에 앉아 너는 시집의 책장을 넘기리. 三月의 은행잎 같은 손으로 내 中心을 만지리. 그 곁에서 나는 너의 숨결 위 에 달콤하게 바람의 음표를 얹으리. 거기서 두 영혼의 안팎을 을 넘나드는 언어의 향연을 펼치리. 네가 넘기는 책갈피 사이 에서 작고 하얀 나비들이 날아오르면 그들의 날개에 시를 새겨 하늘로 날려보내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결코 서럽지 않으리. 소멸의 하루를 위하여, 천천히 신발의 끈을 매고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의 전부를 남겨 두고 떠나온 그 방. 나 오늘 들꽃 여관에 가 다시 그 방에 들고 싶다. -박완호 시집 ‘아내의 문신’ / 2008년 /문학의 전당 우리도 언젠가 여인숙이나 여관에 들른 적이 있다. 숙박계에 이름을 적어 넣고 밤새 창밖에 내리는 눈의 고요를 자장가 삼아 포근한 잠 속으로 찾아들던 아니면 연탄가스 냄새 떠도는 방에서 일박의 밤을 보내며 길고 긴 편지를…
새소리에 눈을 떴다. 근처 밤나무에서 조잘대는 작은 새 두 마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 더는 누워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연다. 훅 밀려드는 새벽의 신선한 공기 속으로 밤나무 꽃의 특유한 향이 밀려든다. 커피 한 잔을 들고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들판을 본다. 먼 곳의 개 짖는 소리와 과수원 약 뿌리는 소리 그리고 이른 출근에 나선 이웃이 가로막힌 차를 빼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이방인처럼 바라본다. 가까이 보이는 초등학교에 있는 접시꽃도 활짝 피었다. 탁구공만 하게 자란 배와 철조망을 타고 올라 보랏빛으로 핀 나팔꽃이 새벽이슬에 한결 싱그럽다. 낯설지 않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 속으로 생각을 몰아넣는다. 밤꽃이 필 때면 빗장을 채우고 동네 아낙들을 단속해야 한다는 말처럼 밤꽃엔 사랑을 불러들이는 마법이 숨어있나 보다. 딸이 여섯인 우리 집도 늘 분주했다. 2년 터울로 낳은 딸들을 단속하느라 아버지는 늘 바쁘셨던 것 같다. 푸르뜸 사내와 눈이 맞은 언니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밤 마실을 나서곤 했다. 어린 나를 데리고 아래 집에 마실 다녀온다고 허락을 받고 나와서는 적당히 따돌리고 언니는 푸르뜸 사내를 만나곤 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면 과
한국어 교육과 더불어 자기 언어를 유지하고 배울 수 있는 법적 지원을 하고 더 나아가 종교·전통예술 등을인정해 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체류외국인 130만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다문화 가정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권보호 및 사회 통합, 교육소외 방지, 인적자원 개발 측면에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 다문화 가정 교육지원은 소수문화를 보호하고 상호 이해를 확대해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는 사회 통합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실시 과정에서 오히려 사회 통합보다는 인종의 차별성이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빚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의거하여 대부분의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따돌림이나 차별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히 반영돼야 하고, 가정과 학교, 사회 전체의 관심을 유도해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줄 대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교육지원과 학습여건조성은 물론 학교에서의 차별과 놀림을 철폐하는 교사의 역할과 이에 대한 처벌법을 강화시켜야 한다. 또…